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10화 (11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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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비스 공작가 소속 테일러 하울 남작이오.”

    스스로 아르비스 공작이라 밝힐 수는 없으니 나는 가신의 이름을 팔았다.

    아무리 마드세인 소속이어도 남작이란 작위는 백작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아르비스 공작가 소속이란 조건이 붙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내 소개에 여유를 부리던 자드 남작조차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 말 다했지.

    “그러시군요. 대영웅의 가신이라니 자긍심이 대단하시겠습니다.”

    세간에서 평가하는 아르비스 공작은 마드세인 소속이지만 자신만의 왕국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왕국이란 것이 진짜 나라는 아니지만, 막강한 수하와 동맹국 전체를 아우르는 영향력 등이 제국의 황제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인물이라나?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만, 덕분에 아르비스 공작가의 가신이라면 작위를 넘어서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긍심이 대단하다 뿐이겠소? 영주님 덕분에 이렇게 틈나는 대로 해외여행도 즐길 수 있는 것인데.”

    태연한 거짓말에 그는 자신이 속고 있다는 생각을 못 하는 듯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는 그를 살며시 노려보며 물었다.

    “그런데 외지인이란 이유로 그리 강압적으로 멈춰 세우는 것이오? 솔직히 굉장히 불쾌했소.”

    내 태도에 기사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고 행정장은 기겁하며 크게 손을 내저었다.

    “오,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일행들에게 가자는 제스쳐를 취했다.

    “잠시만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 입장에서 이대로 우릴 보내봐야 좋은 것이 없다.

    예상대로 발길을 붙잡는 그의 행동에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고, 성녀도 태연하게 행동했다.

    “뭐죠?”

    냉기 가득한 물음에 그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사과의 의미로 두 분을 영주성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 근방에서 가장 편안한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따로 영주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그 정도의 권한이 있는지 그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 꽤나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말 않고 가만히 있자, 성녀가 마치 부인이라도 되는 양 옆구리를 찔러서 호의를 받아들이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뭐, 좋소. 여행도 좋지만 제대로 된 잠자리와 식사가 그리워지던 차이니.”

    눈에 띄게 안도하는 행정관과 기사들.

    그렇게 안도할 필요 없다.

    오히려 고마워할 입장은 우리였으니.

    이후 우리는 자드 남작의 친절한 안내 속에 영주성으로 향했다.

    “마기의 밀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뭔가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주성에 들어서니 무언가가 있다는 직감이 든다.

    동시에 나조차 느낄 수 있는 이질적인 기운이 풍겨왔다.

    하지만 그것은 사기가 섞인 언데드와 기운이 상당히 달랐다.

    조금 더 순수한 느낌이랄까?

    마나와 굉장히 비슷한 기운이었다.

    “뭔가 마기라고 해서 엄청 불쾌한 기운일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그건 공작님이 마법사라서 그래요. 조심하세요. 마법사는 마기의 꼬임에 잘 넘어가니까요. 제가 느끼는 마기는 굉장히 불쾌하고 끈적한 기운입니다.”

    마법사가 마족의 꼬임의 잘 넘어가는 이유가 그 때문일까?

    “트리시아 백작령 영주성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역시 영주성은 도시의 분위기와 전혀 다르게 화려함의 끝을 달렸다.

    마드세인의 대귀족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화려함.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조사 때문이지만, 나도 많은 백성을 다스리는 영주고 성녀도 국왕이었기에 그다지 좋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성녀가 눈짓으로 위를 가리키자, 나는 자드 남작에게 물었다.

    “영주님께선 위에 계신 것이오?”

    “맞습니다.”

    “그럼 당연히 이곳 영주님께 인사를 드려야지. 응당 그것이 예의 아니겠소?”

    내 태도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는 저자세를 유지하며 우리를 마기가 강하게 풍기는 장소로 안내했다.

    정말 마족이 있는 걸까?

    긴가민가하지만 마족과 마주한다면 목표를 발견했다 해도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것 같다.

    옆에 있는 성녀의 신성력이 더욱 작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원래부터 신성력을 숨기고 다녔지만, 지금 느껴지는 신성력의 양은 수습 사제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최대한 힘을 감추기 위한 행동인 듯하다.

    “영주님, 저 자드 남작입니다. 아르비스 공작령의 귀족분들을 모셔왔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에 대한 보고가 먼저 들어간 모양인지, 따로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아니면 나 또는 성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병력을 보낸 것이 영주라서 계속 지켜 보고 있었을 수도 있고.

    “모시게.”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고 문이 열렸다.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영주가 아닌, 벽에 길게 늘어선 예쁘장한 시녀들의 존재였다.

    비록 나는 저런 스타일은 아니어도 귀족들에게 이런 생활은 특별한 것이 아닌지라 담담한 척 성녀를 바라보았다.

    “반갑습니다. 제가 이 영지의 영주인···.”

    영주의 자기소개가 이어지는 와중에 성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마족이에요.”

    “마법 사용해도 돼요?”

    마법 사용허가는 주변에 다른 녀석이 없냐는 뜻이다.

    “네, 괜찮아요.”

    그에 즉시 기운을 개방하며 마법을 사용했다.

    딱!

    손가락이 튕겨지는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방금까지 집무실이었던 공간이 칠흑의 세상으로 바뀐다.

    사람들만이 흰색의 빛에 휩싸여서 형태 구분이 가능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이 암흑천지였다.

    일전에 천공성을 놓고 싸우던 레드 드래곤 그랑기슈가 사용했던 마법.

    정신을 혼돈의 영역으로 격리하는 9클래스의 스페이스 오브 카오스였다.

    꺄아악!

    “이, 이게 무슨!?”

    시녀들은 혼란에 휩싸이며 비명을 질러대고, 우리 앞에 있던 자드 남작은 크게 당황하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와중에 나와 성녀의 시선은 검게 물든 책상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 향했다.

    “정말, 마족이 있었군.”

    방금까지 의자에 앉아 있던 중년인은 검은색의 외뿔을 가진 창백한 인상의 미남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이 정신의 공간이다 보니, 녀석의 본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여, 영주님?”

    자드 남작이 바뀐 영주의 모습에 믿기지 않는단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마족은 남작에게 관심이 없었다.

    “9클래스 마법이라니, 인간 중에 너 같은 녀석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나도 설마 마족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 그 몸의 주인이 네 계약자였나?”

    “······.”

    말이 없는 녀석의 모습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지금 녀석은 본신의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육체가 온전하게 넘어온 게 아니라 정신만 넘어왔기 때문인데, 본래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느껴지는 수준으로만 봐선 7클래스 급이었다.

    그냥 마음먹는 순간 죽일 수 있는 상대란 소리.

    “뭐, 좋아. 말하기 싫으면 가야지. 이곳에서 죽으면 아예 죽는 거 알지?”

    육체를 죽이면 정신은 마계로 역소환이 되지만, 애초에 정신을 죽여버리면, 그냥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굳이 성녀가 나서지 않아도 이곳에서라면 나도 마족을 죽이는 것이 가능했다.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정체가 뭐지?”

    “알아서 뭐하게.”

    마족과 길게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손을 들었고, 그에 마족은 당황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죽는 것은 상관없다. 다만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하는군.”

    이야기는 무슨.

    마족이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들, 순순히 따를 사람이 어딨겠는가.

    녀석이 시간을 끌려 한다는 생각에 나는 바로 마력을 운용했고, 마족은 크게 외쳤다.

    “어차피 나 하나 죽인다고 끝이 아니다!”

    어지간히 죽기가 싫은 걸까?

    녀석의 외침에 나와 성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만약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해 내뱉은 소리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마력을 거뒀으니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지? 다른 녀석들이 또 있다는 건가?”

    “너희 정도면 인간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겠지?”

    “······.”

    “그렇게 생각하고 마족을 대표해서 너희와 교섭을 하고 싶다.”

    녀석의 이야기에 나는 너 따위가 무슨 마족을 대표한 교섭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딱 봐도 녀석의 수준은 고위 마족이라 볼 수 없었다.

    “나는 노도의 마왕이신 가르도님 휘하의 중급 마족 가헬이다. 우린 정착지를 원한다. 로이아스 대륙에 정착할 땅을 내어준다면 굳이 싸울 생각이 없다.”

    역시 마족과 길게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기껏 한다는 게 말이 함께 살자는 헛소리라니.

    절로 웃음이 난다.

    “혹시 마드세인 왕국에 인펙션 워커를 푼 게 너냐?”

    “인펙션 워커? 아니, 아니다. 조용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하겠나.”

    “뭐, 좋아. 그럼 로이아스에 다른 마족들의 위치 알려 줘봐. 신뢰의 표시를 보이면 믿을게.”

    내가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녀석은 낚시에 걸려들지 않았다.

    “혀, 현재 우리의 상황은···.”

    그때 성녀가 내게 말했다.

    “녀석이 도망치려 하네요.”

    역시 대화는 시간 끌기였나?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마기가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도망칠 생각인지는 몰라도 굳이 여지를 줄 필요는 없다.

    나는 즉시 언령을 이용해 녀석을 공격했다.

    “죽어라.”

    녀석은 나의 강력한 언령을 막아내지 못하고 발끝부터 서서히 가루가 되어갔다.

    마족을 믿느니, 마그누스를 풀어 줄고 말지.

    “빌어먹을! 왜 하필!”

    억울함이 가득 느껴지는 원통한 외침.

    그러나 나는 힘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중급 마족 가헬은 신기루처럼 소멸했다.

    이어서 스페이스 오브 카오스를 해제했다.

    털썩.

    믿기 어려운 현상에 하나같이 말을 잃은 시녀들과 자드 남작.

    “방금 있던 일은 잊으시죠.”

    나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우리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

    이어서 태연하게 영주성을 나선 내게 성녀가 물었다.

    “정말 다른 마족이 더 있을까요?”

    “일단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확신은 못 하겠지만, 녀석들이 뭔가 꾸미고 있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

    마드세인 왕국 승전 기념 파티에서 봉변을 당하고 억류되어있던 귀족들이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마드세인 왕국은 인펙션 워커 사태에 대해 이리 밝혔다.

    ‘조사를 해봤지만 밝혀진 게 없으며, 더는 귀족들을 억류할 수가 없어 풀어 주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나라는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의문이 들어도 감히 궁금증을 공론화할 수가 없어서 쉬쉬했다.

    마드세인에서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겠지만, 불필요한 헛소문을 퍼트리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협박성 멘트를 날렸기 때문이다.

    마드세인 왕국이 그런 말을 하다니, 예전이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마드세인 왕국은 단순한 왕국이 아니라 대륙 패권세력의 중심 국가였으니, 그 효과는 굉장히 컸다.

    “그쪽은 왜 안 보내는 거야?”

    나는 여전히 마그누스의 의자가 되어 있는 네이브 왕자를 보며 물었다.

    “파티장에서의 추태가 알려지는 바람에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사죄의 의미로 처형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아예 마드세인에서 죗값을 받겠다고 합니다.”

    마그누스의 보고에 나는 혀를 찼다.

    요는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니.

    저런 모습을 보는 것도 한두 번이나 통쾌하지, 계속 볼 것이 못 됐다.

    더구나 지금은 성녀를 비롯한 손님들도 있는데 창피하게 시리.

    “네이브 왕자는 크로스비 왕국으로 돌아가세요. 왕실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할 테니.”

    “가,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에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끝까지 그의 등 위에 앉아 있는 마그누스의 머리 꽁다리를 잡아당겨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나가 계세요.”

    “네!”

    중요한 말이 있기에 네이브 왕자를 쫓아낸 나는 마그누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대륙에 숨어든 마족이 하나둘이 아닐 수도 있어.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해.”

    내 이야기에 마그누스 큰 눈을 껌벅였다.

    “혹시 드래곤의 도움을 받고 싶으신 겁니까?”

    “그래.”

    마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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