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186 --------------
“성욕 가득한 눈빛이 두 눈을 축출해서 다져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네?”
나는 예의 바른 말투로 근본 없는 독설을 내뱉는 여성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팍!
“악!”
그에 여성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나를 노려보았고, 카르디아 공작은 내 인성을 다시 봤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외모는 어차피 제 취향에 맞춰 만들어진 껍데기에요. 원래 꼬맹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부려먹기엔 보기 좋지 않잖아요?”
“그게 무슨?”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는 카드리아 공작.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당신이 선배입니다. 그녀도 제 노예이니 마음껏 부려 먹으세요.”
“그, 그렇습니까?”
마음껏이란 부분에서 오해했는지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카르디아의 모습에 여성은 다시금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인간분의 숨에서 분변 냄새가 납니다. 부탁인데 입을 닫아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그는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모양이다.
오히려 그녀의 이상한 말투에서 매력을 느끼는지 카르디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나는 숨이 더욱 거칠어진 카르디아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왠지 그대로 두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알 수 없으니, 경고를 잊지 않았다.
“이 녀석의 이름은 마그누스, 리모트랜드의 드래곤이죠.”
“마그누스 님이군요? 이름에서 왠지 모를 힘이 느껴집니다. 하하하! 그리고 드래곤이라니, 살면서 처음 보네요. 저는 카르디아···.”
뒤통수를 긁적이며 자기소개를 하던 그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두 눈을 껌뻑거렸다.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방금 드래곤이란 단어가 들린 듯한.”
현실을 부정하는 카르디아.
나는 웃음을 흘리며 그를 현실로 소환했다.
“블루드래곤 마그누스입니다.”
그러면서 마그누스가 손위로 작은 태양을 만들자, 카르디아는 뜨악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 작은 태양은 헬파이어를 가볍게 상회하는 9클래스의 뉴클리어 익스플로전이었다.
나는 마그누스의 뉴클리어 익스플로전을 움켜쥐어 소멸시키며 경고했다.
“혹시라도 괜한데 목숨 걸지 마세요. 집에 부인도 많으신 분이.”
결국 엉덩방아를 찧고 마는 카르디아.
나는 불만 가득한 마그누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어때요? 최고의 고급인력이죠?”
“바, 방금 망발은 부디···.”
“걱정 마세요. 불미스러운 일이 없는 이상 누구도 해하진 못하니까요.”
나는 마그누스의 마리를 툭툭 내리치며 카르디아를 안심시켰다.
내 행동에 마그누스는 불쾌하단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야, 너 키 몇 센치냐?”
마그누스의 머리에 손을 올려놨는데, 높이가 살짝 안 맞는 느낌이 들었다.
“160입니다.”
“팔걸이 치곤 너무 높은데? 5cm만 줄여.”
내 지시에 녀석은 이를 갈며 폴리모프를 사용했고, 곧 신장이 원하던 사이즈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키만 줄고 나머지가 그대로여서 뭔가 비율이 안 맞는 느낌이다.
“야 가슴이랑 엉덩이가 너무 크잖아. 뭐든지 비율이 중요하다고.”
“이런 강아지님. 죽음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빈정대며 수정을 요청했고, 녀석은 다시 빛에 휩싸이며 딱 보기 좋은 몸매가 좋았다.
애초에 드래곤은 중성인데, 정해진 성별이 없어 남자도 여자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습은 감상용이지 녀석을 어떻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여자에 목을 맬 필요도 아니고, 이미 내 옆엔 매력적인 여인이 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일전에 마그누스를 냉정하게 쳐낸 테라시아가 녀석의 아버지였다.
드래곤이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곤 들었지만, 설마 자식이 위기인 상황에서 그리 행동하다니 인간의 사고방식으론 쉬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본 주 5일 근무. 내가 하루 일당 량을 정해 줄 테니까, 대충 할 생각 마라.”
내 지시에 마그누스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선배로서 잘 알려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카르디아 공작은 마치 고양이 앞에 놓인 쥐처럼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미개한 인간님. 앞으로 제 앞에선 웃지 말아 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위대한 존재시여.”
뭐, 시간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마그누스를 공장에 던져두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
에리스 덴 아르비스.
아르비스 공작의 여동생이자, 왕국에서 가장 귀여움을 받는 소녀.
물론 에리스가 받는 관심과 사랑은 그녀의 오빠인 아르비스 공작의 영향이 컸지만, 굳이 신분을 무기 삼지 않아도 함께 있다 보면 자연히 매료될 수밖에 없는 착하고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했다.
11살이 된 에리스는 화려한 금발을 흩날리며 오라비의 집무실로 향했다.
“수고 많으시네요. 혹시 오라버니는 안에 계신가요?”
에리스는 집무실을 지키는 기사들에게 예쁜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
천사나 다름없는 그녀의 미소에 기사는 괜히 헛기침하며 군기 가득한 태도로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에리스는 오라비를 놀라게 하기 위해 문을 벌컥 열었다.
“오라버니!”
“왔어?”
하지만 무뚝뚝한 오라비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태도로 태연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자신의 오라비가 대단한 마법사란 것을 알지만 가끔은 알면서도 속아주면 좋을 텐데···.
그는 이런 부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인물이었다.
에리스는 태연하게 자신의 스승이자 새언니가 될 루시엘라와 차를 마시는 루이스의 모습에 입술을 삐쭉 내밀며 다가갔다.
“오늘도 러브러브 하시군요.”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는 거야?”
루이스는 웃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권했다.
그에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에리스는 언제봐도 아름다운 루시엘라에게 시선이 향하는데, 어째서인지 스승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이 의아했다.
루시엘라는 애써 태연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녀를 한두 해 보는 것도 아니고 에리스는 뭔가 이상하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응?”
그러다가 문뜩, 에리스의 시선이 집무실 구석으로 향하는데.
그곳에 자신들 이외에 선객이 있었음을 깨닫고는 큰 눈을 껌뻑였다.
“오라버니.”
“왜?”
“저기에 계신 분은 누군가요?”
“아아. 쟤?”
그에 모두의 시선이 집무실 구석에 무릎을 꿇고 벌서듯 양팔을 들어 올리고 있는 파란 머리의 여성에게 향했다.
“앞으로 자주 볼 테니까. 인사해둬. 마그누스라고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할 거야.”
“······.”
자신은 한 번도 안 해봤지만, 그게 체벌의 자세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은 에리스는 영문을 모르겠단 반응을 보였다.
“저분이 무엇을 잘못 하셨나요?”
“응. 값비싼 금속을 증발시켜버렸거든.”
저 여성 때문에 루시엘라가 불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나?
에리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야, 그대로 이리와.”
“강아지님. 성교하세요. 빠른 죽음을 기원합니다.”
루이스의 지시에 영문모를 말을 내뱉은 마그누스는 양팔을 든 자세 그대로 땅에서 1cm 미터 정도 떠서 다가왔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보호해야 할 인물 중 한 명이니까 얼굴 익혀놔.”
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그저 평범한 눈빛임에도 알 수 없는 압박을 느낀 에리스는 괜히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그러나 루이스가 때릴 것처럼 손을 들자 그녀의 눈에서 느껴지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는 에리스는 크게 당황했다.
“루시도 그만 긴장해.”
“그, 그렇지만. 어찌 위대한 존재를···.”
에리스가 어리긴 해도 어느 정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 나이다.
눈앞에 우스꽝스런 자세로 벌 받는 파란 머리 여성이 루시엘라가 긴장하며 위대한 존재라 칭할 만큼 대단한 인물이란 것을 알고는 호기심이 밀려왔다.
“반갑습니다. 저는 에리스 덴 아르비스라고 합니다.”
에리스는 모두가 좋아하는 천사 같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지만, 상대는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루이스는 그런 마그누스에게 인사 안 받고 뭐 하냐는 듯 턱짓을 했다.
“마그누스입니다.”
이상한 말을 하길래 특이한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과묵할 뿐 딱히 정신상태가 비정상적인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쩐지 남자 같은 이름이네요.”
“이름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론 여성성보단 남성성을 선호합니다. 저는 아래에 깔리는 것보단 공격을 선호하는 편이며···.”
퍽!
에리스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말이 나오자 루이스가 그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에 루시엘라는 더없이 놀라며 제자리에서 껑충 뛰었고, 마그누스의 입에선 방언처럼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나열되었다.
“이런 강아지님. 명을 재촉하지 마세요. 당신의 뒤를 훔치겠습니다.”
“말 가려서 해라. 아직 어린애 앞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 하면 말 못하게 한다?”
불만 어린 태도에도 결코 오라버니의 말에 거역하지 않는 모습이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것 같았다.
그리고 남들이 모두 떠받들어 마지않는 오라버니가 어린 여성을 때리는 것을 본 에리스는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응? 아아, 오해하지 마. 얘 꽤나 악당 짓을 하다가 잡힌 거거든. 솔직히 맞아도 싸.”
“그, 그런가요?”
에리스는 새삼스런 눈빛으로 마그누스를 바라보았다.
“마그누스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겉모습만 봐선, 영락없는 10대.
그런 그녀가 악당 짓을 하다 잡혔다고 하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1,521살입니다.”
“네?”
아무래도 그녀가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정상인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에리스의 눈빛에 동정의 감정이 담겼다.
상대의 감정을 눈치챈 마그누스는 발끈했지만, 에리스의 친하게 지내자는 말에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무슨 일이야? 처음에 들어올 때만 해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던데?”
에리스는 잠시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 짝 박수를 치며 루이스에게 달라붙었다.
“오라버니.”
“얘가 또 왜 애교야?”
말투는 퉁명스러워도 예쁜 여동생의 애교가 싫지는 않은지 루이스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이번에 승전 기념제 있잖아요.”
마드세인이 칼바도스 제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토까지 빼앗았다.
이로 인해 왕국은 지금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이번 전쟁에서 루이스가 나서서 무력을 보인 적은 없지만, 이 승리가 누구에 의한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 루이스는 신자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국민들 사이에선 말로만 신처럼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신전을 건설해야 한다는 둥 위험한 발언까지 나왔다.
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다른 존재를 신처럼 떠받든다는 것은 천벌 받을 만한 이야기.
덕분에 루이스는 그저 우스갯소리로 여겼지만, 국민들은 매우 진지하게 신전이 안되면 영웅 기념관을 건설하자는 의견을 냈다.
루이스로 인해 자유를 억압하던 영주집권체제가 느슨해졌으며, 세금 인하에 굶을 걱정이 없어지면서 영지민보단 국민이란 개념이 강해지고 있었다.
마드세인 왕국의 국민들에겐 어려울 때 도움 한번 주지 않은 가이아의 존재보다 루이스의 존재가 클 수밖에 없었다.
“승전 기념제가 왜?”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고양이같이 자신을 올려 보며 눈을 반짝이는 에리스의 행동에 루이스는 슬쩍 미간을 좁혔다.
“그 말은 파티에 참석하고 싶다는 뜻이야?”
“네!”
승전 기념제는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축제지만, 수도에선 논공행상을 비롯해 여왕이 주도하는 귀족 위주의 행사가 많았다.
만약 사교계에 데뷔할 생각이라면 이만한 자리는 없지만, 루이스는 사교계라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았다.
루이스가 내키지 않는 기색을 보이자 에리스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보통 제 나이의 귀족이면 모두 파티에서 친구도 사귀고 하지 않나요?”
“그거야 그렇지만···.”
11살이면 한국 나이로 12~13살인 만큼, 사교계에 데뷔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실제로 귀족가의 자제들이 에리스 나이 정도에 사교계에 데뷔하곤 했으니.
하지만 루이스는 괜히 에리스가 그곳의 화려함에 취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었다.
더구나 에리스라면 여기저기서 침을 흘리며 달려들 텐데.
“저도 이젠 성을 벗어나고 싶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오라버니가 해결해 주실 거잖아요.”
“음···.”
그녀의 말대로 루이스는 어떤 일이 발생하든 해결할 능력이 있다.
새삼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든 루이스는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편한 대로 하렴.”
“야호! 사랑해요, 오라버니!”
에리스가 뺨에 입을 맞추자, 루이스는 승천하는 광대를 감추지 못했다.
승전 기념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