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02화 (10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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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비스 공작?”

황제의 물음엔 어째서 네가 여기 있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화려한 백색 로브가 트레이드 마크인 금발 청안의 미청년.

바로 적대 세력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아르비스 공작의 등장이었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은 황성에서도 가장 은밀한 장소.

그런 곳을 아무런 낌새 없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완전히 자신들의 보안을 비웃는 행위가 아닌가.

황성의 보안 문제는 황제의 목숨과도 직결된 문제였다.

“아, 무단 침입해서 죄송합니다. 마그누스님께 경고 좀 하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식으로 황성의 뚫린 게 처음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드래곤에 의해 이미 전례가 있었으니.

황제는 새삼 아르비스 공작이 자신의 상식과 거리가 먼 인물이란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적진을 찾아오다니, 무슨 짓이지?”

“그러는 마그누스 님이야말로 무슨 짓입니까? 직접 개입하려 하다니.”

“개입이라니?”

마그누스가 짐짓 모르겠단 태도로 어깨를 으쓱이고 아르비스 공작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지금 칼바도스의 황제를 마인드 컨트롤하려고 했잖아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대는 듯한 그의 태도는 감히 인간이 위대한 존재인 드래곤에게 보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마인드 컨트롤은 직접적인 무력 개입이라 보기 힘들지. 내가 마법으로 그를 조종하나, 자네가 자신의 군대를 지휘하나 다른 게 뭐지?”

“황제는 승패를 결정하기 위한 존재입니다. 그런 인물에게 직접 마인드 컨트롤 마법을 거는 것 자체가 무력 개입이죠. 황제가 꼭두각시가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항복을 안 할 것 아닙니까.”

“그럼 자네도 지휘에서 손을 떼야지. 자네가 거절하는 한 마드세인은 항복을 못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나는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하네.”

능글능글한 마그누스의 태도에 아르비스 공작의 미간이 좁혀지고, 황제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계약의 내용을 이딴 식으로 와전 해석하다니, 그렇게 안 봤는데 드래곤은 마족에 가까운 존재였나 봅니다?”

“나를 도발하는 건가?”

“도발은 그쪽이 했죠. 이 빌어먹을.”

두 사람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황제는 주춤 뒷걸음질 쳤다.

아르비스 공작은 더 이상 마그누스를 존중할 가치가 없다는 듯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인간사회를 파괴하고 싶을 뿐이야.”

황제 또한 같은 생각인지라 안색이 어두워졌다.

“글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역시 장단에 어울리는 게 아니었어.”

“그럼 나는 네 가족을 인질로 삼았겠지.”

“쓰레기 같은···.”

“칭찬으로 듣지.”

분노로 인해 붉은 기운이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아르비스 공작의 모습은 악귀와 같았다.

하지만 그 기운은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다.

“뭐, 좋아. 나도 생각이 있으니.”

그는 더 이상 마그누스와 할 말이 없다는 듯 그대로 고개를 돌려 트라칸 황제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르비스 공작의 물음에 황제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잠깐, 이것이야말로 직접적인 개입이 아닌가?”

표정을 굳힌 마그누스가 다급히 공작의 팔을 낚아챘다.

“개소리하네.”

문제 될 것 있냐는 공작의 태도에 마그누스는 황제에게 말했다.

“어울릴 것 없다.”

그러면서 마그누스가 다시 마인드 컨트롤을 사용할 기미가 보이자 아르비스 공작은 가볍게 그의 마법을 파훼하며 조소를 흘렸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네. 천하의 드래곤이 이렇게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네 녀석···.”

조금이라도 늦어서 제국연합의 지도자들이 꼭두각시가 되었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어서 아르비스 공작은 긴말 없이 트라칸 황제를 바라보았고, 황제는 마음에 결정을 내린 듯 단호하게 답했다.

“칼바도스는 종전을 원한다.”

“누구 마음대로!”

마그누스가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중요한 것은 황제의 의견이지 마그누스의 의견이 아니었다.

“그 말은 항복이라 받아들여도 되는 거죠?”

항복이란 말에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 황제는 다시금 머뭇거렸지만, 이어진 아르비스 공작의 말에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방금 사용한 폭발 무기로 협상을 유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마세요. 저희도 비슷한 능력이 있으니.”

“항복하지.”

황제의 항복.

이로써 마드세인 왕국의 전쟁은 끝이 났다고 볼 수 있다.

마그누스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로 아르비스 공작을 노려보았다.

“아직 전부 끝난 게 아니다.”

그의 말대로다.

칼바도스는 세력 중 일부이니.

“어리석은 녀석.”

마지막으로 황제에게 한마디 내뱉은 마그누스는 미련이 없는지 바로 모습을 감췄다.

“협상 일자는 통신으로 정하죠.”

공간이동 방해 마법이 깔린 공간에서 마그누스의 뒤를 따라 아르비스 공작까지 사라지자, 홀로 남게 된 트라칸 황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귀신에 홀린 건가?”

무엇하나 현실감이 없는지라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드래곤의 꼭두각시가 되는 일도, 죽음을 맞이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

위스워드 제국의 황성.

홀로 마그누스를 상대하던 칼바도스 황제와 달리 위스워드 제국의 황제는 부하들과 함께인 탓에 설득이 더욱 어려웠다.

개중엔 파괴의 힘이라도 승리를 위해선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과격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존재에겐 말보다는 행동을 보여줬다,

위스워드 제국의 수도 옆에 떨어지는 자폭위성 세례에 어렵지 않게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칼바도스와 위스워드가 항복을 표명하면서 자연히 제국연합과의 전쟁은 중지되었다.

더불어 케일론 제국을 치던 다크엘프들도 4개국 연합의 지원에 결국 다시 리모트랜드로 쫓겨났다.

“전쟁이 이렇게 마무리될 줄은 상상치도 못했네요.”

아크로스 왕국 빌리엄 공작의 말에 이타루스 성왕국의 크리드 공작이 말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닙니다.”

“하하,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래도 이제 거의 끝났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위스워드와의 전쟁으로 다른 동맹국과 달리 거의 밀릴 뻔했던 아크로스 왕국이건만, 이젠 아예 위기감을 잊은 듯 보인다.

나는 강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케일론 제국과 완전히 환경이 다른 리모트 랜드를 바라보며 흥미를 표했다.

“리모트 랜드도 꽤나 살만한 땅 같습니다.”

리모트랜드는 열대지역이다.

전체적으로 습하긴 하지만, 여기저기 처음 보는 식물이 가득했으며 여러 동물이 어우러진 멋진 땅이었다.

문제는 동식물 중에 몬스터 비율이 상당하다는 것이지만, 여기저기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맑은 샘물과 먹음직스러운 과일이 풍요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아마 숨겨진 자원도 상당하겠죠?”

“그렇겠죠.”

리모트 랜드는 드래곤 랜드라고도 불리는 데다가 워낙 몬스터가 많아 대륙을 대표하는 금지 중 하나였다.

지금 우리의 힘이라면 개발 못 할 이유도 없지만, 솔직히 리모트 랜드에 들어서면서도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드래곤이란 존재 때문에 실천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이번 전쟁은 마그누스가 계획하고 벌인 일이다.

당연히 우리에게 명분이 있고, 엄연히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리모트 랜드에 들어선 것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래곤들이 대거 나서서 방해한다면 골치 아파질 수밖에 없다.

만약 여기서 마그누스의 세력인 다크엘프를 정리하지 못하면 우린 계속 하늘을 바라보며 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공격에 떨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안위와 생존권이 달린 만큼 위험을 무릎 쓰고서라도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굳어 있는 폴시스 공작과 크리드 공작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제가 모두 텔레포트로 이동시킬 테니까요.”

두 사람은 애써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의외로 아크로스 왕국의 빌리엄 공작이 배포가 큰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슬슬 다크 엘프의 영역이란 생각이 들 때쯤, 새롭게 편성된 감시 장교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공작 전하! 해당 좌표 상공에 마법탄 30여 개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간을 좁혔고, 폴시스 공작이 재빨리 외쳤다.

“요격부대!”

케일론과 마드세인의 혼합 마법사단이 아공간에서 주먹만한 구슬을 꺼내 하늘로 던졌다.

그에 구슬들은 자아를 가진 것처럼 매섭게 하늘 위로 솟구쳤다.

날린 구슬의 수 만해도 족히 100개.

어느 정도 안정 고도에 접어들자 구슬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하늘 위에 촘촘한 전기 그물이 깔렸다.

콰콰콰콰쾅!

하늘을 뒤덮는 화염의 향연.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리게 만드는 장면이었으나, 이미 몇 차례나 이렇게 공격과 요격을 반복하고 있었다.

“요격에 성공했습니다!”

저것도 모르고 당할 때나 위협적인 거지.

대비를 착실히 해놓은 상태에선 그리 큰 위협이 아니었다.

“드디어 타의에 의한 전쟁이 끝나겠군.”

잠시 후.

우리는 기대하던 대로 다크엘프의 주력과 마주하게 되었다.

리모트랜드에 어울리지 않는 말끔한 거대 요새.

그리고 그 요새를 포위하듯 150대에 가까운 기간트가 줄지어 서 있었다.

“항복을 권고할 건가요?”

크리드 공작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공격하죠.”

“알겠습니다.”

길게 재고 따질 것 없는 간단명료한 지시 제안.

그는 웃음을 흘리며 크게 손짓을 했다.

그에 300대에 가까운 기간트들이 일제히 다크엘프 진영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쾅! 콰아앙!

다크 엘프의 요새는 순식간에 밀렸다.

그리고 수도라 할 수 있는 중앙 도시까지 일직선으로 밀고 들어온 인간들로 인해 다크 엘프의 보금자리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다크 엘프 퀸 카밀리아는 당장이라도 항복해서 이 바보같은 전쟁을 끝내고 싶었지만, 자신의 왕좌를 차지하고 앉은 채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소년으로 인해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이제 내가 정한 세력 중에 남은 것은 너희뿐이다. 너희가 당하면 모든 게 엉망이 되니, 보금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마그누스로 인해 나라가 엉망이 된 건데, 아무렇지 않게 보금자리를 옮기자는 그의 행동에 여왕은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죄송하지만, 이곳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 땅은 저희 선조들의 흔적이 담겨 있는 장소입니다.”

그에 마그누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크엘프는 기회만 되면 리모트랜드를 벗어나 미드랜드에 진출하려 하지 않았나?”

일말의 가책이 없는 마그누스의 태도가 지극히 드래곤 답긴 했지만, 그것을 보는 다크 엘프는 얼굴에 드러날 정도로 불쾌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진출일 뿐이지, 이곳을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확장인 거죠.”

“나를 따르지 못하겠다는 건가?”

“웬만해선 함께하고 싶지만, 무리한 요구까지 수용하면서 따를 이유는 없습니다. 저흰 마그누스님의 노예가 아니니까요.”

처음으로 반발하는 카밀리아의 모습에 마그누스는 그녀마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장로들은 여왕의 똑부러지는 대답에 공감하면서도 괜한 해코지가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마그누스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했다.

“지금 인간들은 단단히 분노한 상황이다. 그 분노의 화살은 나만이 아니라 너희에게까지 향해 있지. 이곳에 남아있으면 인간들의 손아귀에 자신을 팔아넘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

“특히 여자 엘프라면 인간들이 사족을 못 쓰는 존재라는 걸 모르진 않겠지?”

드래곤은 ‘자긍심이 높고 고결하며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말이 무색해질 만큼 비열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말을 잃은 카밀리아에게 마그누스가 재촉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우선 여왕인 너만이라도 따라오면···.”

급기야 마그누스가 카밀리아의 팔을 낚아채자, 참다못한 다크엘프 최고의 전사인 타르니스 장로의 손이 검으로 향했다.

“그만.”

하지만 허공에 검은색의 게이트가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금발의 미인으로 인해 마그누스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테라시아? 어째서···.”

“네가 졌다. 패배를 인정하고 아르비스 공작의 밑에서 100년간 자신을 돌아보는 게 나을 것이야.”

테라시아의 말에 마그누스의 눈에 불꽃이 튀고, 그는 그녀에게 따지듯 말했다.

“애초에 네가 도왔으면 이런 꼴을 겪을 일도 없었을 거다. 나는 아직 지지 않았어.”

“내가 도왔다면 전쟁은 경쟁 구도로써 이리 깨끗하게 진행되지 않았겠지. 너는 인간을 너무 무시한 나머지 안일하게 행동했다. 그래서 네가 진 것이다.”

한눈에 테라시아의 존재가 드래곤임을 알아챈 다크엘프들은 병풍처럼 조용히 물러나고 단호한 상대에 반응에 마그누스는 광기 어린 눈동자로 다크엘프 퀸의 손목을 낚아챘다.

“추한 짓 그만하고 현실을 받아들여라. 너는 너무 어려. 유희를 하고 세상을 경험했다면 인간에게 이리 당하지 않았겠지. 황혼인 드래곤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자아도취에 빠져버렸다.”

“뭐?”

두 사람의 설전이 길어질 기미가 보일 때.

다크엘프 퀸의 뒤에서 청년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저 조금 있다가 올까요?”

“······.”

그곳엔 테라시아와 같이 검은 문을 열고 나타난 금발 청안의 청년이 멀뚱히 서 있었다.

의외의 종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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