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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쿠쿵! 쿵!
으아아악!
마드세인 녀석들의 이상한 도발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갑자기 하늘에서 수십 개의 불덩어리가 칼바도스 국경성을 향해 쏟아졌다.
그로 인해 국경성을 비롯한 주변의 진지가 불타오르고 제국군의 지휘소가 엉망이 되었다.
[사령관께선 무사하신가?]
[상황실에 있던 사람들의 상태가 확인되질 않고 있습니다!]
[대마법사가 곁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성을 향해 쏟아진 건 파이어볼 만이 아니었습니다. 7클래스 방어막조차 꿰뚫는 창이 날아들어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그게 무슨···.]
[조심하십시오. 아무리 튼튼한 기간트라 해도 그 공격을 제대로 맞으면···. 어? 어어어! 아악!]
[상황장교! 상황장교 무슨 일인가!]
오프라인은 물론 통신망도 혼란으로 가득했다.
부대를 지휘해야 할 사령관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
덕분에 개전은커녕 갈피를 못 잡은 부대들이 모두 우왕좌왕 댔다.
[진정하도록! 지금부터 금장 기사단의 단장인 나 네스티 후작이 임시로 사령관직을 맡아 군을 지휘하겠다.]
[네!]
결국 지휘체계는 엉망이 되고, 보다 못한 기간트 운용부대의 리더가 임시로 군권을 잡았다.
[기간트들은 비행체가 날아오면 무시하지 말고 방패를 들어 막아라! 그리고 마법병단과 마총수, 마력포대는 적의 비행체를 공격하도록! 나머지 보병 부대는 뒤로 물러나!]
[알겠습니다!]
지시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래도 누군가가 나서서 부대를 지휘하니, 혼란이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온다! 방어 준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약 40대의 비행체가 숲속에 길게 늘어선 기간트를 향해 날아들고, 푸른 빛의 스파크가 번쩍하는 순간 기간트의 몸통에 구멍이 뚫렸다.
순식간에 기간트 10대가 행동불능에 빠졌다.
방패도 소용이 없었다.
[마법이 아닌 물리 공격이다! 방패를 비스듬하게 세워!]
까앙!
네스티 후작의 지시대로 기간트들이 방패를 비스듬하게 세웠고, 비행체의 공격은 방패를 관통하지 못하고 커다란 흉터를 만들며 스치고 지나갔다.
덕분에 단 한방에 현실에서 아웃이 되는 불상사는 피했지만, 기간트가 튕겨낸 창과 파편들이 뒤에 있던 보병 부대를 쓸고 지나갔다.
[사령부에 있던 대마법사 아로스 후작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사령관을 비롯해 지휘부의 모든 인원이 사망했답니다! 본인 또한 부상이 심각해 회복을 위해 잠시 물러나 있겠답니다!]
[알겠다. 그럼 지금의 체제를 유지한다!]
여기저기서 피어오는 불길과 연기.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질량과 파괴력이 난무하는 전장은 비명으로 가득했다.
그 와중에 제국을 조롱하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니 불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보병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듯 뒤로 물러났다.
[마력포대 사수, 마총수는 표적을 눈으로 쫓으며 사격하지 말고 미리 움직일 방향으로 예측 공격을 해라! 눈으로 좇는다고 맞출 수 있는 속도가 아냐!]
지시대로 예측사격을 하니, 운 좋게 마드세인 전투기 한 대가 마력포대 공격에 걸려 폭사했다.
그에 병사들은 환호했지만, 마력포대 운용부대는 다음 표적이 될 뿐이었다.
[사령관님! 적의 기간트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난전을 유도하라! 그럼 비행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네!]
시작부터 전황이 불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주요 전력은 거의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패배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기간트의 수는 우리가 압도적이다! 수로 밀어붙여!]
현재 마드세인 왕국의 기간트 중 30대가 케일론 제국 리모트 랜드 쪽에 배치되어 있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도에 30대, 남부에 20대를 배치했다.
그로 인해 전장에 투입된 마드세인의 기간트는 130대 정도.
칼바도스 제국은 이보다 월등히 더 많았다.
칼바도스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는 겨우 셋.
그중 하나는 동맹인 위스워드였으며, 나머지 둘이 마드세인과 이타루스였다.
때문에 기간트 전력을 마드세인처럼 남부로 돌린다든지 할 필요가 없어, 칼바도스가 보유한 330대의 기간트 중 수도기습을 대비한 30대를 제외한 300대가 전장에 투입되었다.
그중 이타루스 방면에 배치된 것이 80대, 마드세인 방면에 배치된 것이 무려 220대였다.
비록 10여 대가 전투기에 먼저 당하긴 했어도, 아직 남아있는 수가 워낙 많다 보니, 기간트 대전에선 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겁 없이 달려드는 마드세인의 기간트들은 어째서인지 위기감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도리어 칼바도스의 오너들이 묘한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데세라 아세라 저주의 주문! 칼바도스엔 패전의 고통을!]
신경을 긁는 음악소리.
그리고 공개 통신에서 마드세인의 기간트 오너들이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수가 압도적인데, 분위기에서 완전히 지고 있었다.
[분대별로 합 맞춰 싸워! 절대 애새끼들에게 당하지 마라!]
[네!]
마드세인 왕국의 기간트 오너는 다른 국가의 오너들과 달리 한가지 특징이 있다.
고위기사 위주로 기간트를 하사하는 국가들과 달리, 애초에 기간트 운용을 위한 전문 오너를 육성해 배치했다는 것이다.
마드세인 왕국의 오너 중 약 7할 정도가 갓 성인이 된 어린 기사들이었다.
실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를 높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 오너 육성의 역사가 짧은지라 대체로 경지가 익스퍼트 초급이나 중급에 머물러 있었으니.
경지뿐만 아니라 전투경험이 적다는 점은 마드세인 기간트 오너들의 중대한 단점이었다.
[시끄럽다, 젖비린내 나는 새끼들아!]
급기야 마드세인의 오너들이 합창하듯 노래를 불러대자, 발끈한 칼바도스의 오너가 소리쳤다.
그리고 이어진 거대한 질량의 충돌.
철의 파도가 서로 부딪힌다는 표현이 적합할 만큼 엄청난 굉음이 숲속에 울려 퍼졌다.
한 대의 기간트가 걸음을 내디뎌도 땅이 울리는데, 300대가 넘는 기간트가 서로 뒤엉켜 춤을 추니,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쾅!
평범한 첫 합.
하지만 이어진 난전에서 칼바도스 제국의 오너들은 만만히 봤던 마드세인의 오너들에게 굉장히 애를 먹었다.
[이 새끼 무슨 움직임이···.]
인간의 몸과 기간트의 동체는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분명히 움직임에 차이점이 많다.
아무래도 기간트는 관절 구동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인간같은 유연함을 바라긴 힘들었다.
때문에 기사들이 기간트에 탑승해서 자신의 검법을 완벽하게 펼치는 경우는 거의 전무했다.
반복 훈련을 통해 나름 기간트에 익숙해졌지만, 역시 본인의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마주한 마드세인의 오너들은 달랐다.
그들은 철저하게 기간트에 맞춰진 존재들인 만큼, 제 실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검을 쥐었을 때가 아닌 기간트 조종간을 잡았을 때다.
기간트는 확실히 유연성은 부족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실현 불가능한 움직임도 있었다.
목, 팔, 발목을 360도 회전 시킨다든지, 관절을 반대 방향으로 꺾는다든지.
이러한 기간트의 특징을 100% 살린 공격이 날아들 때면 완전히 전투에 대한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큭! 어찌 익스퍼트 초급밖에 안 되는 녀석에게···.]
[그것은 검을 잡으셨을 때의 이야기죠.]
더불어 조종의 센스가 완전히 달랐다.
마드세인 왕국의 오너는 국민들 사이에서 거르고 걸러진 엘리트.
경지가 높은 기사라면 반사신경도 좋고 전투경험도 많은 만큼, 기간트에 탑승한 상태에서도 준수한 능력을 발휘했지만, 상대는 준수한 수준이 아닌 기간트 그 자체였다.
[뭐, 뭣들 하는 게냐! 철저하게 수로 밀어붙여! 하나는 방어, 하나는 공격을 하면 되잖아! 분대장들 뭐하나! 제대로 기간트 배정해서 싸우게 해! 거기! 마스터 상대하냐!? 왜 다섯 놈이 하나에 붙어 있어!]
여기에 우월한 성능이 더해지니, 마드세인의 기간트는 마치 늑대 무리에 낀 범과 같았다.
[떨어지지 마! 비행체들의 타격이 된다!]
더불어 하이에나처럼 빈틈을 노리는 전투기의 존재도 큰 압박.
그로 인해 밀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기간트 전투는 수적 우위를 뒤집고 완전히 마드세인에 기울었다.
육상과 공중의 보조가 더해지니, 도망치기도 힘들었다.
정면 전투임에도 어째서인지 함정에 빠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
칼바도스 제국의 기간트가 속속 바닥에 쓰러졌다.
그에 비해 마드세인의 기간트들은 수적열세에도 좀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사령관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수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기세는 순식간에 적들에게 넘어갔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몇 가지 없었다.
잠시 후, 결론을 내린 그가 지시했다.
[방어 위주로 싸우면서 물러난다! 명심해라! 즉시 퇴각이 아니라 조금씩 물러나면서 싸우는 거다! 마력포대, 마총수 너희도 물러나!]
즉시 퇴각을 하게 되면 입게 될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터.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시간을 끌며 지원을 기다리고, 기회를 엿보는 일이다.
‘저 비행체의 탄도 마법이 아닌 이상 분명 보급이 필요 할거야.’
당장 퇴각의 걸림돌이 되는 전투기가 사라진다면, 문제없이 퇴각할 수 있을 터.
어쩌다가 칼바도스 제국의 주력 부대가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자신들은 전략 전술 필요 없이 순수하게 힘에서 밀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쓰러진 기간트의 잔해가 눈에 밟힌다.
얼핏 봐도 40대는 넘어 보였다.
비록 전투를 방어적으로 바꾸면서 피해는 급감했지만,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른다면 수적 우위라는 것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때, 마드세인의 기간트 몇 대가 사령관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어딜!]
사령관의 호위들이 침입자들을 막았지만, 성능과 조종기술의 차이로 경지의 우위를 못 살리고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하지만 경지의 우위를 못 살리기 힘든 것은 익스퍼트 끼리의 이야기다.
사령관인 네스티 후작은 금장 기사단의 단장이란 직위에 걸맞게 기간트의 검 위로 오러블레이드를 뿜어내며 마드세인의 기간트를 두 동강 내버렸다.
익스퍼트와 마스터는 존재 자체가 급이 다르다.
더불어 그것은 기간트에 탑승한 상태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와라!]
[사령관님! 뒤를!]
[뭐?]
사령관은 자신들의 뒤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기간트에 눈을 부릅떴다.
[아공간형 기간트? 그럴 리가 분명 마도시대의 기간트는 사용을 못 한다고···.]
하지만 새로이 후방에 나타난 기간트가 마도시대의 것이 아닌, 현재 자신들이 싸우고 있는 기체와 같은 기종임을 알아보곤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기간트의 성능 차이뿐만 아니라, 하늘을 나는 전투기에 아공간형 기간트까지.
칼바도스와 마드세인의 마도공학 기술력은 몇 단계나 차이가 나고 있었다.
더 이상 마드세인은 평범한 왕국이 아닌, 대륙 최고의 군사력을 지닌 국가라 봐야 할 것이다.
뒤를 노리고 나타난 20대의 기간트.
그중 10대에선 완성된 오러블레이드가 뿜어지고, 나머지 10대에선 미완성의 오러블레이드가 뿜어졌다.
마스터 10명과 최상급 익스퍼트 10명으로 구성된 기사단이라니.
완전히 사기가 아닌가.
대륙 어디에도 이런 기사단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었다.
사령관은 패배를 직감했다.
현재 아군 진영의 마스터는 자신을 포함해 3명.
샤를로트 공작이 포함된 기간트 부대가 아닌 이상, 저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어 보였다.
[하핫! 한눈파시면 안 되죠!]
[큭!]
후방의 마스터도 마스턴데, 익스퍼트 중급 주제에 겁 없이 달려드는 기체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령관은 방심한 틈을 노리고 날아든 검을 막아낸 후, 가볍게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렀지만, 상대는 너무도 쉽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빙글 회전하며 사각을 파고들었다.
위협적인 공격이지만 사령관은 재빠르게 오러블레이드의 크기를 키워 날아들던 검을 갈라버렸다.
하지만 상대는 짧아진 검으로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를 노려왔다.
[뭐냐, 네 녀석은!]
기간트를 사용하고 있지만 마스터도 아닌 녀석을 쉽게 물리치지 못한다는 것이 황당했다.
[에이스 칭호자입니다아아!]
더욱 짜증나는 것은 상대가 장난 같은 말투를 쓰는 어린 녀석이란 점이었다.
[젠장.]
결국 사령관은 적의 팔을 자르는 데 성공했지만, 녀석은 팔이 사용 불능 상태가 되자, 뒤도 보지 않고 적진으로 도망쳤다.
콰앙!
그리고 하이에나를 물리치니, 이번엔 범이 나타났다.
오러블레이드와 오러블레이드의 충돌.
불규칙한 공격의 녀석과는 다르게 제대로 된 검술을 구사하는 존재의 등장이었다.
사령관은 치열하게 상대와 검을 주고받으며 표정을 굳혔다.
[사령관님! 지원입니다!]
하지만 절묘한 타이밍에 이어진 목소리에 그는 안도했고, 멀리서 샤를로트 공작가의 문장이 달린 기간트와 하나같이 오러블레이드를 뿜으며 달려오는 5대의 기간트를 보며 환호했다.
***
전장의 꽃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