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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98화 (98/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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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세인 걸즈의 멤버들은 전쟁 소식에 벌써 손이 떨려오는 것 같은데, 태연한 사장의 분위기에 자신들이 잘못된 건가 싶은 착각이 들었다.

    “전쟁이 일어난다는데 왜 그렇게 무덤덤해요?”

    “뭐,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잘 해결해 주시겠지.”

    역시 과거 공작가의 행정관 다운 배포라 해야 할까?

    철저한 아르비스 교의 신자인 사장은 믿음이 전쟁의 공포를 이기는 수준이었다.

    “그럼 칼바도스와 국경을 접한 북부 지역은 난리 나겠네요?”

    “아마 전체는 아니어도 북부 국경 요새는 직접 공격권에 들어가겠지. 이미 그쪽 지역의 영지민들은 소개되어 중부로 이동하고 있데.”

    “저희들의 공연장소가 그 북부 국경 요새고요?”

    “맞아. 나도 이번엔 무조건 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게 선택은 너희가 해. 전쟁의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전방은 분명 위험할 테니까.”

    그녀들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선택은 자유지만, 감히 아르비스 공작의 의뢰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르비스 공작이 아무런 뒤끝 없이 거절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를 신봉하는 신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바닥에서 앞으로 생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르비스 공작은 가벼운 마음으로 전장의 분위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생각해낸 아이디어일 뿐인데, 아르세인 걸즈에겐 엄청난 시련으로 다가왔다.

    “저희의 공연이 군인들에게 힘이 될까요?”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그리고 가장 큰 압박은 바로 눈앞에 위치한 아르비스 교의 광신도인 사장의 존재였다.

    뭐가, 하기 싫으면 말라는 것인가.

    정작 본인이 좋지 않게 생각할 게 뻔한데.

    아르세인 걸즈의 멤버인 베라, 미야, 시아는 서로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고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저희의 노래가 나라에 힘이 된다면 기꺼이 해야죠.”

    “맞아요. 국가를 위해 그 정도도 못하겠어요?”

    그녀들의 대답에 사장은 너무도 기쁘게 함박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의 그 정신은 공작님께서도 분명 높게 평가해주실 거다. 위험성은 높지만, 이번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너희는 부뿐만 아니라 엄청난 명예도 얻게 되겠지.”

    돈과 명예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눈먼 마법이나, 화살에 죽으면 말짱 꽝인데.

    아르세인 걸즈의 세 여성은 그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째서인지 눈에선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유언 남기고 가야겠네.’

    아르비스 공작이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그녀들은 감히 이 상황에 대해 불만조차 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조간신문으로 갑작스런 개전 소식이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그 밑에 아르세인 걸즈가 전선에 향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아르세인 걸즈, 국가의 명예를 등에 짊어진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전선으로 향하다! 개인의 안위보단 조국을 우선시하는 그녀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애국자라 부를 수 있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고 국가를 위해 노래를 불러야 할 처지에 놓인 그녀들이었다.

    ***

    1. 루이스와 마그누스는 전쟁에 직접적인 무력행사를 금한다.

    2.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선 방어를 위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

    3. 마그누스는 루이스의 가족과 연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

    4. 다른 드래곤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다.

    5. 마도제국에서 생산한 마도병기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6. 마그누스는 선조들이 남긴 유산을 전쟁에 사용하지 않는다.

    7. 전쟁의 승패는 국가 지도자의 항복에 의해 결정이 되며, 지도자의 직접적인 사살은 금지한다.

    8. 루이스와 마그누스 중 전쟁의 패자는 상대방의 노예로 100년을 살아간다.

    9. 승자는 패자를 신체적으로 유린하지 않으며, 선공을 받지 않는 이상 가족과 연인을 해치지 못한다.

    10. 위 내용은 용언과 마나의 언약, 피의 족쇄로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고지 한다.

    게임엔 응당 룰이 있어야 한다며 인심 쓰듯 마그누스가 해당 내용을 제안하고 나는 이를 받아들였다.

    마그누스는 처음에만 해도 전쟁의 승패엔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자신이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 지원하면 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지 자신감이 가득했다.

    대체 어떤 비장의 수가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 이상의 수는 뽑아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드래곤이 대단한 종족임은 확실하지만,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단시간에 마도제국에 버금가는 기간트를 생산해낼 순 없다.

    그래도 제법 연구를 했는지 3세대급의 기간트를 만들어 다크엘프들에게 제공했지만, 말 그대로 ‘3세대급(28.0~29.9Mmp)’이라는 현실적인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듯.

    녀석이 우리보다 특출난 마도병기 제작 능력을 지녔다고 보긴 힘들었다.

    드러난 수준만 보면 우리보다 조금 낮다.

    그것만 해도 제국 연합과 다크엘프의 양산능력이 더해지면 충분히 위협적인 수치임은 분명하지만, 그거야 양산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 되는 일.

    녀석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린다 해도 우리를 상대로 우위를 접하긴 힘들 것이다.

    적어도 이쪽엔 숨겨둔 패가 몇 개인가 있었으니.

    이 기회에 어리석은 제국연합에게 붙어먹을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것을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군, 영지에서 아르세인 걸즈란 공연단이 도착했습니다.”

    헬리온 요새의 영주 전용 집무실을 차지하고 앉아 있던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세인 걸즈?”

    한창 왕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아르세인 걸즈에 대해 모르는지 루시엘라가 의문을 표했다.

    “우리 군의 사기를 높여줄 비장의 카드죠.”

    내 대답에 그녀는 호기심을 드러내며 문을 바라보았다.

    “어서 오세요.”

    나는 직접 문을 열어 손님을 맞이했다.

    그에 꽤나 사업 잘하게 생긴 남성과 귀여운 복장의 예쁜 여성 3명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르비스 공작전하를 뵙습니다!”

    “전하를 뵙습니다.”

    그들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건네왔다.

    좀처럼 집무실에 들어서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웃으며 사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들어오시죠.”

    “무한한 영광입니다.”

    제이드와 함께 일했던 행정관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마치 나를 처음 보는 듯 반응이 과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르세인 걸즈 3인방도 어정쩡하게 일어서 집무실에 들어섰다.

    현재 집무실에 있는 사람은 나와 루시엘라, 그리고 콘스탄틴과 메어리 뿐이었다.

    “사장인 브로디님과 아르세인 걸즈의 멤버인 베라, 미야, 시아님 맞으시죠?”

    모두 크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러면서 시선은 자연스레 루시엘라에게 향했다.

    왕국 최고의 인기인으로 꼽히는 그녀들이지만, 외모에선 엘프에 비할 바가 아닌지라 살짝 위축된 표정을 지었다.

    “이쪽 제 약혼녀인 루시엘라 양이고 두 기사분은 제르갈 백작과 힐리스 백작입니다.”

    소개를 들은 네 사람은 송구하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덕분에 한참이 지나서야 응접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군사력이 가장 큰 승패 요인이지만, 저는 그 군사력만큼이나 중요한게 병력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컨디션 관리요?”

    “네, 컨디션은 신체의 피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피로도 포함되어 있죠.”

    내 말뜻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장과 달리, 아르세인 걸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나는 웃으며 그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다.

    “앞으로 여러분이 해줘야 할 일이 바로 병력의 정신적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저와 함께 최전선을 누빌 테니까요.”

    “전하와 함께요?”

    “여러분이 모든 전선을 관리 할 순 없으니, 가장 치열한 최전선 부대로 보내질 겁니다. 그리고 그곳엔 당연히 제가 있겠죠. 그래서 아예 같이 움직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가장 최전선이란 이야기에 아르세인 걸즈의 멤버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당연히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함께 해주신다면 여러분은 부와 명예를 얻게 될 것이며, 아르비스 공작가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게 될 겁니다.”

    그녀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자신들끼리 시선을 나눴다.

    다행히 고민은 길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제 와서 물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부족한 몸이지만, 부디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 웃겼지만, 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아르세인 걸즈 여러분은 전장의 꽃이라 불리게 될 겁니다.”

    ***

    [제국연합과 4개국 연합의 전쟁.]

    갑작스런 소식은 미드랜드를 충격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바로 얼마 전 국제회의를 통해 협력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해 놓고 전쟁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대륙의 군사력을 양분하고 있는 두 세력 간의 전쟁은 주변 국가에 큰 영향을 끼칠 터.

    이번 전쟁의 향방에 따라 미드랜드의 패자가 정해질 것이다.

    때문에 미드랜드의 모든 눈이 미드랜드 북부에 집중되었다.

    칼바도스 남단 로투스 영지 국경성.

    숲속을 가득 메운 철의 향연에 이를 지켜보는 병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 느껴지는군.”

    마총수로서 대기 중인 병사의 혼잣말에 옆자리의 병사가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이 철거인의 전투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거군.”

    “한 대의 가격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우리 같은 병사입장에선 좋은 것 같기도 해.”

    “하긴 병사를 활용한 소모전은 뒷전일 테니.”

    “성벽의 존재도 쓸모없어지겠어. 이 철거인에겐 순식간에 파괴될 테니.”

    “인간 이외에도 적이 있지 않은가. 몬스터를 잊어선 안 되지.”

    “아, 그렇군.”

    병사들은 힐끔 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곳엔 개전 시간을 알리는 마법 타이머가 떠 있었는데, 모든 숫자가 0으로 통일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개전과 동시에 칼바도스 제국군은 마드세인을 향해 남침할 것이다.

    워낙 많은 병력이 포진되어 있는지라, 칼바도스의 병사들은 자신들이 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개전: 0030]

    개전까지 남은 시간앞으로 30초.

    모두가 타이머만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데.

    [아세라 데세라 승리의 주문! 마드세인엔 승리의 영광을!]

    느닷없이 하늘 위로 거대한 홀로그램 이미지가 떠오르며 멋들어진 기사 정복을 걸친 세 명의 여인이 해괴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이 나타났다.

    “뭐, 뭐야 저게?”

    [데세라 아세라 저주의 주문! 칼바도스엔 패전의 고통을!]

    칼바도스 입장에선 조롱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모습.

    가벼운 멜로디에 살랑살랑 춤을 추며 칼바도스의 패배를 바라는 것이 조롱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살다 살다 이런 해괴한 도발은 처음이었다.

    멍하니 홀로그램을 바라보던 칼바도스의 병사들은 헛웃음을 흘렸다.

    멜로디는 쓸데없이 중독적이다.

    “기운이 쭉 빠지네.”

    엉뚱한 데 정신이 팔리다 보니 어느새 타이머는 0을 가리켰고, 진군을 잊은 채 하늘을 올려 보던 칼바도스 제국군의 머리 위로 요란한 굉음이 들려왔다.

    ***

    개전 직전, 아르세인 걸즈에게 공연을 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국군 총사령관인 제노아드 공작이 진심이냐며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아무도 내 고집을 꺽지 못 했다.

    공연은 하늘에 거대한 홀로그램 마법 이미지를 띄워, 우리뿐만 아니라 적군도 지켜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정신이 팔린 틈에 나는 개전 타이머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개전: 0000]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하늘 위로 수십 개의 비행운이 긴 궤적을 그리며 나타났다.

    본래 요란해야 할 소음은 음악에 묻히고 그대로 비행운은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쳐 칼바도스를 향해 날아갔다.

    “선제 타격이 중요하죠.”

    유려한 곡선을 지닌 날렵한 동체.

    압축되어 뿜어지는 공기.

    대기를 가르며 날아드는 속도는 보는 것만으로 위협적이었다.

    비공선 같은 어설픈 비행 전단이 아닌, 무 연료 추진체를 장착한 전투기의 등장이었다.

    “제노아드 공작님.”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껌벅이던 제노아드 공작은 내 부름에 헛기침을 하곤 크게 외쳤다.

    “출진!”

    기간트가 동시에 한 발을 내딛자, 땅이 크게 울렸다.

    그에 아르세인 걸즈는 움찔거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말라며 공연을 지시했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전장이라니, 나름 느낌 있지 않은가.

    이어서 들려오는 폭음이 마치 아르세인 걸즈가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처럼 들려왔다.

    전장의 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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