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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97화 (9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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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운은 툭하면 나를 감시하던 드래곤의 것이다.

    요즘 잘 안 느껴진다고 했더니, 저런 곳에 있네?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드래곤 두 마리 중 유독 저 녀석만 알짱거리는데, 혹시 둘이 나를 대하는 생각이 다른 걸까?

    딱히 서열이 있는 것 같지도 않던데, 한 녀석만 감각에 잡히는 것을 보면 다른 녀석은 내게 관심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드래곤이 멸종 직전의 상황을 겪고 리모트랜드에서 피해를 수습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왠지 피해를 수습한 것 치곤 드래곤의 수가 굉장히 적은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게 견제만 할 게 아니라, 뜻맞는 드래곤을 끌고 오면 교통정리까지 한 번에 될 텐데, 왜 굳이 한 마리씩 기어 나와 이런 귀찮은 짓을 한단 말인가.

    “드, 드래곤이라뇨? 제가 아는 그 드래곤 말입니까?”

    아크로스 왕국의 빌리엄 공작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적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육안으로 살필 수 있는 거리가 아닌지라, 그는 굉장히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내색을 안 할 뿐 이타루스 성왕국의 크리드 후작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괜찮을까요?”

    폴시스 공작의 물음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가서 이야기 좀 해보고 오겠습니다.”

    “주군! 안됩니다!”

    전위기사단은 마드세인 왕국의 비밀병기지만, 그들 모두가 내 수하들이었다.

    블레이크와 미하엘을 비롯한 마스터들이 극구 말렸지만, 나는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냥 깔끔하게 꿍꿍이를 묻고 오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안면이 있어서 당장 공격하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만약 공격을 취해와도 당할 이유가 없고요.”

    내 행동을 객기라 생각하는지, 빌리엄 공작은 괜한 짓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나는 허공에 몸을 띄운 후였다.

    “조심하십시오!”

    폴시스 공작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곤, 협곡을 향해 날아갔다.

    그에 다크 엘프 진영에서 파란머리를 가진 소년이 나를 따라 날아왔다.

    이어서 협곡 중간에 멈춰선 나는 그 소년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마그누스님.”

    “반갑군. 아르비스 공작.”

    영양가 없는 인사.

    예전에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느낌이 이랬을까?

    건방진 어린 소년의 모습은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녀석이 성룡급의 블루드래곤임을 아는 나는 방심하지 않고 감각을 일깨우며 물었다.

    “인간의 일에 무관심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이게 뭐하자는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실소를 흘렸다.

    “뭐긴, 드래곤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더 있겠나?”

    “전 잘 모르겠는데요.”

    복잡하게 말 돌리지 말고 직설적으로 이유를 밝히라는 태도에 그는 가볍게 답했다.

    “유희 중이다.”

    “유희··· 요?”

    순간적으로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참아낸 나는 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

    “지금 유희로 다크엘프와 인간 간의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겁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내 세력과 네가 가진 세력을 싸움 붙이는 거지.”

    내가 가진 세력은 그렇다 쳐도, 그가 가진 세력?

    마치 다크 엘프 외에 무언가가 또 있는 듯한 말투다.

    “설마···.”

    나는 그간 방어적이던 위스워드와 칼바도스가 돌연 공격적 태세를 취하는 것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다크엘프의 준동을 기다렸다는 듯이 전력을 재배치하는 것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녀석이 뒤에 있다면 모든 것이 납득된다.

    “칼바도스와 위스워드의 행동도 당신의 짓입니까?”

    “그렇다.”

    처음 봤을 때부터 눈빛이 정상이 아니라곤 생각했지만, 역시 이 드래곤은 미친 게 분명하다.

    “마치 전쟁을 놀이처럼 여기시는 것 같군요.”

    “인간들이 벌레를 서로 싸움 붙이며 노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지.”

    “······.”

    더불어 마그누스의 도발 능력 또한 상당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굳이 군을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까?”

    내 행동에 마그누스는 진정하라고 말하면서도 히죽 웃어 보였다.

    “나는 너와 사투를 벌일 생각이 없다.”

    “이렇게 도발을 해놓고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그냥 네가 만든 체스 같은 게임이라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어차피 네 녀석도 나와 싸우긴 거북스럽지 않은가. 더구나 약점이 없는 나와 달리 너는 약점도 많지.”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마력을 운용하던 나는 멈칫했다.

    “드래곤은 긍지 높은 종족인 줄 알았는데, 비열하기 짝이 없군요.”

    마그누스는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인질 삼아 자신의 룰에 따르라며 협박하는 것이다.

    녀석과 1:1로 싸우면 승리는 확신 못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꾸준히 드래곤과의 전투에 대비를 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녀석이 전투를 고집하지 않고 다를 수를 쓴다면 골치 아플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너도 국가 간의 경제를 갉아먹는 이런 대치가 길어지길 바라지 않을 것 같은데? 계기가 없었을 뿐이지, 일찍이 적대 세력을 몰아내고 싶지 않았나? 그 빌미를 만들어 주겠다는데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거 참 눈물 나게 고맙네요.”

    누가 보면 나를 생각해서 이런 짓을 벌인 건 줄 알겠다.

    “어차피 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혀를 찬 나는 마그누스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뭡니까?”

    “말하지 않았나, 유희라고.”

    이런 중2병 드래곤 같으니.

    “진짜 재수 없는 분이네.”

    나는 팔짱을 끼며 녀석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쩌자고요?”

    “앞서 말했듯이, 양 세력 간의 전쟁하는 거다. 다만 너와 나는 직접적인 무력 개입을 안 하는 거지.”

    “무기개발 및 제공 등의 간접 개입은 가능하고요?”

    “그렇다.”

    “저 다크엘프들의 기간트가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당신이 제공한 것이었군요.”

    마그누스는 따로 답을 안 했지만, 무언은 곧 긍정이 아니겠는가.

    이를 갈던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말대로 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해온 입장이니, 이걸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자기 합리화도 되고요.”

    “말이 통해서 좋군.”

    말이 통하긴.

    가소로워서 그런 것 뿐이다.

    “대신 조건을 걸죠. 그냥 하면 의욕이 반감되니.”

    당연히 나는 그냥 순순히 녀석이 하자는 대로만 따를 생각은 없다.

    의아해하는 마그누스를 향해 나는 차갑게 말했다.

    “내기를 하지 않겠습니까?”

    “내기?”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까?

    내가 담담하게 반응하자, 그의 눈빛에서 당혹스러움이 느껴졌다.

    “진 사람이 100년간 상대방의 노예가 되는 것 어떨까요. 대신 상대의 신변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더해서요. 보아하니 제 목숨은 끔찍이 아시는 분 같던데, 이 정돈 괜찮잖아요?”

    녀석이 미간을 좁히자 나는 조롱하듯 말했다.

    “싫어요?”

    의기양양하던 마그누스의 표정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스스로가 음모를 꾸미는 역할이고 내가 당하는 입장이라 생각했을까?

    아무래도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그의 반응으로 보건대, 애초에 전쟁의 승패 따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 정도 보상도 없이 왜 당신의 장난에 놀아나야 합니까? 그냥 쳐들어오세요. 다 막아드릴 테니.”

    마그누스는 오래가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재밌겠군.”

    끝까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녀석다운 반응이었다.

    이거 상황이 우습게 되었지만,

    나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녀석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 결론을 봐야지.

    남이 차린 판이지만, 이 승부에서 이긴다면 얻는 것이 매우 많았다.

    영토는 물론, 드래곤 노예까지.

    녀석이 만약 나의 노예가 된다면 아주 철저하게 굴려줄 것이다.

    이후 몇 가지 룰을 정하고 미드랜드를 전쟁터로 만들 게임이 시작되었다.

    “아르비스 공작님!”

    내가 진영으로 돌아오자, 폴시스 공작을 비롯한 동맹의 주요 인사들이 달려왔다.

    그리고 다크엘프 진영의 군세가 물러나기 시작하자, 빌리엄 공작은 격양된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일을 해결한 겁니까?”

    하지만 나는 다크엘프들이 돌아가는 이유를 몰랐다.

    “쟤들 왜 가지?”

    “그야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협상을 잘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빌리엄 공작의 이야기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전쟁하기로 했는데요.”

    “전쟁이라뇨?”

    “제국연합에 다크엘프를 더한 4개 세력과 저희 4개국 연합간의 전쟁이요.”

    “네?”

    뜨악한 빌리엄 공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나는 그에게 힐을 사용해 주곤 마그누스와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밝혔다.

    “완전 미친놈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지만 덩달아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시간을 오래 끌면 불리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상대는 드래곤의 백업을 받는 군세니까요.”

    빌리엄 공작은 시간이고 뭐고 우리의 안위가 어떻게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새로운 편제를 도입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내 이야기에 폴시스 공작은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공성 사태 이후 4년여 동안 아무 생각 없이 기간트만 생산해낼 리가 없지.

    당연히 그 속엔 드래곤에 대한 대비 및 마도병기의 다양화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그누스와 몇 가지 규칙을 정할 때, 그는 선조들이 남긴 유산 및 다른 동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린 마도제국의 유물을 전장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다.

    과연 녀석이 어떤 수를 꺼낼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그 장단에 놀아나는 것이었다.

    ***

    36. 전장의 꽃

    마드세인 왕국에 라디오와 오디오가 보급되면서 가장 크게 발전한 문화는 다름 아닌 음악이다.

    항상 앞선 문화를 선도하는 마드세인에선 관현악이 주를 이루던 음악과 완전히 다른 대중음악이 자리를 잡았다.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호소력 짙은 가사는 단 몇 년 사이 국민의 생활 속 깊이 파고들었으며, 마드세인을 대표하는 주요 문화가 되었다.

    이런 유행을 만들어낸 데는 아르비스 공작령의 문화진흥부의 역할이 컸으며, 해당 부서의 대표인 제이드가 지구에서도 인지도 있는 가수였기에 가능한 업적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르세인 걸즈였습니다!”

    와아아아아! 베라! 미야! 시아!

    그런데 요즘 아르비스 공작령엔 그런 제이드조차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는 가수들이 존재했다.

    이들의 등장은 제이드는 물론 아르비스 공작에게까지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귀여운 복장으로 반주에 맞춰 춤을 추고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사랑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걸그룹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노래와 공연이 영지를 넘어 국가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음악 저장 장치의 보급을 촉진시켰고, 팬덤이라는 신문화가 형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들이 입는 옷과 착용 악세서리, 화장품은 금세 유행을 타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지금에 와선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치부되었다.

    “으아, 힘들다.”

    “팬들이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좋다.”

    비록 아직 공연 수익을 제외하면 광고비나, 음반 같은 매출구조가 잘 닦여있지 않아서, 인지도나 인기에 비해 수익이 떨어졌지만.

    그 정도만 해도 감히 평민이 만져 보기 힘든 거액이었고, 아르세인 걸즈를 탄생시킨 문화진흥부 행정관 출신의 사장은 신흥 부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전반기 정산금 계좌로 입금시켰으니까 나중에 은행 가서 확인해봐. 금액은 전에 말했던 것보다 조금 많을 것 같다.”

    아르세인 걸즈가 전용 마력 차에 탑승하니,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사장이 수고했다며 그녀들을 위로했다.

    “와! 감사합니다. 사장님!”

    “저 이번에 정산받은 돈이랑 지금까지 모아온거 합쳐서 부모님을 1거주구로 이사시켜 드릴려고요.”

    “나도 부모님 가게 차려 드릴 거야.”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다.”

    아르세인 걸즈의 멤버들도 인기를 얻으면 건방져질 법하지만, 워낙 어려운 시기를 살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다들 순진하고 착했다.

    “많이 피곤하지?”

    걱정 가득한 사장의 물음에 그녀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뭐가 안 피곤해, 피곤이 쌓인 게 눈에 보이는 고만.”

    “헤헤.”

    사장은 이런 순진한 모습에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그녀들을 위한 일이라며 바쁘게 굴렸다.

    악덕까진 아니지만, 행정관 출신이기에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큰일이 하나 들어왔어. 지금처럼 바쁘게 뛰지 않아도 되고 금액도 엄청난데 꽤 위험한 일이야.”

    “무슨 일인데요?”

    “위문 공연.”

    “위문 공연? 그게 뭔데요?”

    “군부대 공연이야. 의뢰인은 아르비스 공작 전하 본인이시고.”

    의뢰인이 아르비스 공작이란 말에 그녀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무조건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선택에 맡긴다고 하셨어. 그분은 곡해할 것 없이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들으면 되니까 거절해도 상관없을 거야.”

    “얼마나 위험한데요?”

    “전쟁 지역에 위치한 부대를 돌면서 위문 공연을 하는 거래. 아르비스 공작 전하께서 호위를 확실하게 붙여 준다고 하셨지만, 역시 전쟁 지역인 만큼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

    “저, 전쟁이요?”

    현재 마드세인에 전쟁지역이 있던가?

    아르세인 걸즈의 멤버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자정을 기준으로 제국 연합과 4개국 연합의 전면전이 시작된 다나 봐.”

    그녀들은 비명과 같은 헛바람을 삼켰다.

    마치 남 일처럼 말하는 사장의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전장의 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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