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95화 (9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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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개입

    쿵쿵!

    그날도 어김없이 마드세인 왕국의 기간트가 칼바도스 제국의 영토를 산책하듯이 넘어왔다.

    잦은 도발에도 칼바도스 제국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자, 도발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갔다.

    [이 새끼들이 정말!]

    마드세인 왕국의 기간트가 국경을 넘고 얼마 되지 않아, 칼바도스 제국의 기간트가 출동했다.

    이젠 약속된 패턴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허공을 땅처럼 딛고선 푸른 머리카락에 적안을 지닌 소년이 말했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다. 힘이 생기면 과시를 하려 들고, 같은 종족끼리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 굳이 세력을 나누고 서로를 향해 무기를 들이미는 이유는 모르겠군.”

    소년의 의문에 옆에서 함께 지상을 내려보던 금발 적안의 미녀가 답했다.

    “실버 엘프와 엘프가 다르듯 인간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민족과 종교, 지역에 따라 집단이 나뉘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국가별로 이념과 사상이 다른 별도의 종족이라 해야 할 것이다. 공통의 적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인간을 하나로 묶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죄송합니다아! 돌아 갈게요오!]

    긴장감 없는 목소리로 사과하고 물러나는 마드세인 왕국의 기간트들 보며 소년은 실소를 흘렸다.

    “그래서 더 어리석다는 것 아닌가. 엘프와 인간은 입장이 다르다. 같은 국가란 테두리에 있어도 어차피 인간은 태생만으로 왕족과, 귀족, 평민, 노예로 신분을 나눠 버리지. 녀석들은 차별을 위해 존재하는 종족이다. 스스로의 열등함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저열한 종족.”

    인간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다면 분쟁이 없을까?

    그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급 상황 시 보이는 단결력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인간은 단순한 열등종족이 아니다.”

    그럼에도 금발의 여성은 동의하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인간을 두둔하는 그녀의 의견에 되돌아오는 것은 조소였다.

    “어차피 그것도 선동과 명령에 의한 것. 만약 자유를 제한하는 테두리가 없다면, 모두 달아나고 말 것이다. 신의와 긍지는 윗대가리들에게만 허락되는 특성으로 평민 이하는 그저 장기말에 지나지 않지. 지성종족 중에 같은 동족을 노예로 부리는 건 인간이 유일하다.”

    “인간은 많은 발전 가능성을 지닌 종족이다. 지금은 단지 정치 체계가 발전하지 못했을 뿐, 이러한 문제점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녀의 반박에 소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간은 감싸줄 가치가 없는 종족이다. 왜 그리, 그들을 싸고도는 것인가?”

    “현재 인간은 미드랜드를 지배하고 있으며 로이아스 대륙을 통틀어 가장 강성한 세력을 지니고 있다. 비록 그 힘은 분열되어 있지만, 공통된 적과 싸우기 위해 힘을 합친다면 이길 수 있는 종족은 없다. 더불어 인간들에겐 아르비스 공작이란 위협적인 인물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차피 하나가 되긴 힘들다. 아르비스 공작의 존재가 위협이라곤 하나 우리가 힘을 합치면 문제 되는 상대는 아니다. 그대만 협력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다.”

    “우리가 아르비스 공작과 싸우는 일이 발생하는 순간, 그들이 하나가 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지고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을 우습게 보아선 안 된다.”

    걱정 가득한 금발의 여성과 강경론을 펼치는 청발의 소년.

    계속 대화를 나눠도 둘의 의견이 좁혀지는 일은 없었다.

    “우린 곧 멸망할 종족이지만 인간은 어차피 끝까지 살아남을 터. 우리가 인간을 핍박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종족 보전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너의 생각을 동의할 순 없다.”

    “이미 수만 년 동안 종족 차원에서 연구를 진행했음에도 진전이 없었다. 우리 둘만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차라리 지금은 로아아스의 조율자란 칭호에 맞게끔 드래곤이란 이름을 모두에게 각인시켜야 할 때다.”

    “역사에 드래곤은 악마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인간을 심판할 권리 따윈 없다.”

    “아니, 드래곤이란 존재 자체가 권리다. 네가 끝까지 부정한다면 나만이라도 나서는 수밖에.”

    금발의 여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슬픈 표정으로 소년의 팔을 잡았다.

    “마그누스, 모두 쓸데없는 짓이다. 너의 행동은 분풀이에 지나지 않아.”

    “테라시아, 너야말로 이해할 수 없다. 그랑기슈가 당하고 아르비스 공작을 치자는 제안도 거절하고 왜 그렇게까지 참고 넘길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참는 것이 아니라, 순응할 뿐이다. 이것이 여신께서 정해준 운명이라면 그에 따라야지.”

    “여신은 이 세계를 버렸다. 드래곤을 멸종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존재를 두둔할 이유는 없지.”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여신님의 은총이다.”

    “정말 너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더 이상 대화의 가치를 못 느끼겠군.”

    블루드래곤 마그누스는 골드드래곤 테라시아의 손을 뿌리치며 고개를 돌렸다.

    “잠깐.”

    그녀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그를 향해 급히 물었다.

    “설마 죽으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최대한 쓸 수 있는 패는 다 쓰고 내키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 너는 종의 보전을 위한 연구나 계속하도록.”

    그가 모습을 감추자 홀로 남은 테라시아는 분개하는 칼바도스 제국의 기간트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칼바도스 제국 황제 집무실.

    그곳엔 군무대신과 정보부부장, 근위기사단장인 샤를로트 공작이 황제와 자리를 함께했다.

    “오늘도 로투스 영지 방면에서 마드세인 왕국의 도발이 있었습니다.”

    군무대신의 보고에 황제 트라칸은 일전에 마주했던 아르비스 공작의 얼굴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살판났군.”

    불편하지만 지금 녀석들의 도발에 넘어가 반격을 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 노림수에 어울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때문에 답답해도 황제는 참으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폐하! 더 이상 녀석들의 망발을 두고 볼 순 없습니다! 주제를 모르는 마드세인을 향해 철퇴를 내리시지요!”

    군무대신의 외침에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라고 왜 이 사태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싶겠는가.

    하지만 이미 마드세인은 쉽게 상대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고, 아르비스 공작이 샤를로트 공작을 넘어서는 괴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가?”

    “어차피 1:1로는 마드세인에 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타루스에서 개입하기 전에 전격전으로 밀고 나가시면, 승산은 있습니다.”

    “그 승산은 누가 계산한 건가?”

    기본적인 병력의 수가 워낙 차이 나는지라, 사방에서 인해 전술로 밀고 내려가면 마드세인을 밀어버릴 가능성도 있긴 하다.

    현재 마드세인의 군사력이 칼바도스에 밀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이유는 기간트 전력 때문이었으니.

    하지만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전쟁을 벌인다면 칼바도스 제국의 군사력엔 큰 구멍이 생길 것이다.

    더구나 100% 확실하게 밀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지라,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노릇.

    “그야, 누구나가 알고 있는 내용으로···.”

    “군부의 책임자란 인물이 이렇게 대책이 없어서야.”

    황제의 힐난에 군무대신은 목을 움츠렸다.

    “전쟁은 더 이상 우리만의 전쟁이 아니다. 동맹 전체의 전쟁으로 번질 텐데 그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되지.”

    그나마 제대로 승부를 벌이기 위해선 로엘 제국을 북부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황제가 되었을 때만 해도 자신이라면 대륙을 일통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그 자신감이 많이 옅어진 상태.

    트라칸 황제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인물이었기에 이젠 더 이상 하나의 국가가 대륙을 일통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드세인 녀석들은 시간을 주면 줄수록 점점 강해질 겁니다.”

    샤를로트 공작의 이야기에 황제는 작게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개국 동맹을 깨뜨리기 위해 아크로스를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 정보가 사전에 새어나가는 바람에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양 세력 간의 정보전이 워낙 치열한지라 뒤에서 공작을 벌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황제도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것은 자신들이란 걸 알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병기 개발에 열중하는 수밖에···.

    현재 마드세인과 케일론의 주력 기간트의 출력은 32Mmp로, 24Mmp의 출력을 가진 칼바도스의 주력 기종보다 월등한 성능을 갖고 있다.

    그나마 수적 우위로 출력총합은 이쪽이 앞설지는 모르지만, 무려 3할이나 높은 성능을 지닌 기간트를 상대로 어디까지 싸울 수 있을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솔직히 병기 개발 능력에서 크게 밀리다 보니, 모든 것이 위축되고 있었다.

    “쯧!”

    황제는 혀를 차곤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지금 싸우는 것도 불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싸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불리함을 감수하고 싸워야 하는지 아니면 미래를 기약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신중한 성격의 그는 도박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한가?”

    그런데 그때.

    황제는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샤를로트 공작의 검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팟!

    콰앙!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하여간 인간들은 예의가 없어.”

    하지만 오러블레이드를 듬뿍 머금은 샤를로트 공작의 검은 상대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산산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폐하!”

    샤를로트 공작은 급히 황제의 앞을 막아섰지만, 언제 당한 건지 갑자기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

    정보부 부장과 군무대신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붕어처럼 벙긋거렸다.

    하지만 황제는 호들갑을 떨지 않고 조용히 난입해 들어온 인물을 살폈다.

    이제 겨우 10살 되었을까?

    너무도 앳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모습을 진짜라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푸른 머리카락에 새빨간 눈동자.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 굉장히 이질적인 소년.

    그런 소년을 바라보던 황제는 대뜸 무릎을 꿇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렸다.

    “칼바도스의 트라칸이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소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역시 제국의 황제란 건가? 다른 녀석들과 다르군.”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린 샤를로트 공작과 두 대신이 경악했다.

    그리고 드래곤은 마치 자신의 자리인 양,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며 말했다.

    “나는 리모트랜드 갈색평야의 주인인 마그누스다. 오늘 너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 찾아왔지.”

    ***

    이타루스와 아크로스의 존재도 무시할 순 없지만, 엄연히 4개국 동맹의 축은 우리 마드세인 왕국과 케일론 제국이라 할 수 있다.

    케일론이 위스워드를 압박하고, 마드세인이 칼바도스를 압박하고 있는데, 거기에 이타루스와 아크로스가 보조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덕분에 양 진영 간의 힘은 우리 쪽으로 기울어 있으며, 동맹 내부에서도 진지하게 선제공격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덕분에 한창 탄력을 받아 진행하던 ‘국제 평화 기구’나, ‘세계 경제 연합’이 요즘 들어 삐끗하고 있는 느낌이다.

    의견은 낸 사람은 나지만 그냥 의견만 낸 것이지, 그것을 무조건 지지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

    군사 회담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하며, 두 기구의 설립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한 이유는 기간트 생산을 제한하는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한 것으로 평화를 바라서가 아니었다.

    덕분에 군사 회담에 참여했던 나라들을 대표해 라파즈 왕국에서 불만을 표해 왔다.

    당연히 그에 대해 우린 앞에선 미안하다고 하면서 뒤로는 선제 타격의 가능성을 점검하고 있었다.

    비겁하긴 하지만, 원래 국가 간 외교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모두 자국의 이득을 우선시하지, 인류의 평화를 위해 움직이는 나라 따윈 없으니.

    그런데 그렇게 견고하고 강력한 4개국 연합의 한 축인 케일론 제국에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네? 다크엘프가요?”

    [그렇습니다. 다크엘프가 대규모 군대를 일으켜 케일론 방면에 전개하고 있습니다.]

    폴시스 공작의 이야기에 나는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다.

    이건 케일론 왕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맹 전체의 문제지.

    다크엘프라도 2백여 대의 기간트를 보유하고 있는 케일론에 시비를 거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다크 엘프의 강점이라면 초인이 많다는 것인데, 그 초인의 수도 우리가 지원에 나서면 아무런 이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뒤에 자신들을 공격했던 몬스터들의 국가가 버티고 있는데, 굳이 패전할 확률이 높은 케일론을 향해 검을 들이미는 이유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저희가 지원해드릴게요. 이김에 다크 엘프 쓸어버리죠.”

    녀석들이 먼저 공격 의욕을 드러낸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

    이젠 우리의 군사력이 오히려 우위에 있었으니.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폴시스 공작의 추가 설명에 나는 말을 잃었다.

    [당혹스럽게 다크엘프들도 기간트로 무장하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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