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94화 (9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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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이 새파래진 대대장과 몇몇 장교들의 모습에 아르비스 공작과 약혼녀의 미간이 좁혀지고 1소대의 소리아가 재빨리 손을 들었다.

    “제가 가서 바네트 소위를 데려오겠습니다!”

    “귀관은?”

    “기갑중대 1소대 기간트 오너, 소리아 마리스 소위입니다. 바네트 소위가 저희 소대 담당 상황 장교입니다.”

    “그렇군요. 부탁드립니다.”

    대대장과 기갑 중대의 중대장이 무슨 짓이냐며 그녀를 째려보았지만, 소리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두 사람에게 아르비스 공작의 시선이 머물자, 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소리아가 재빠르게 대대장실을 벗어나자 1소대원들은 통쾌함에 입꼬리를 씰룩였다.

    어린 여성 장교 하나를 병신 취급했는데, 그녀의 보호자가 아르비스 공작이라니, 이런 반전이 어딨겠는가.

    아르비스 공작이라면 마드세인 왕국을 좌지우지하는 인물로, 대륙을 주름잡던 제국들에 맞서는 4개국 연합의 수장같은 인물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처음부터 알려졌다면 대대장은 물론, 군단장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이브릴인데, 그런 인물을 핍박했으니 군생활은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니, 군생활만 끝나는 정도로 마무리가 되면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할 터.

    몰랐다곤 하나 그들의 행동은 아르비스 공작가를 욕보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훈화는 짧게 하도록 하죠.”

    “부, 부탁드립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손을 비비는 게 왠지 슬퍼 보이는 대대장.

    아르비스 공작은 그를 두 번 죽이는 말을 했다.

    “거창한 훈화가 아닌 당부의 말씀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서로를 향한 존중입니다. 비록 군대가 계급 사회긴 하지만 전쟁이 발발할 경우 여러분과 함께 사선을 넘을 동료들을 강압보단 존중과 배려로 대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아르비스 공작은 의도하고 한 말이 아닌지 숙연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잘못까지 좋게 타이르란 말은 아닙니다. 군기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처벌해야죠. 당연히 정당한 방식으로 말입니다. 부디 폐하와 국민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군인이 되도록 하십시오. 전투력도 전투력이지만 내부에서부터 곪은 군대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아시겠죠?”

    “네!”

    짧은 훈화가 끝나자 대대장실은 박수 소리로 매워졌다.

    그런데 그 훈화에 기분 좋게 박수치는 사람은 전체에서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거의 기계처럼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반응들이 이상하네요. 무슨 일 있습니까?”

    대대장은 아르비스 공작의 물음에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똑똑.

    “마리스 소위, 바네트 소위를 데려왔습니다.”

    때마침 이어진 노크 소리에 아르비스 공작은 대대장에게서 시선을 돌려 멀리 떨어진 문을 손짓으로 열었다.

    “전하?”

    그리고 대대장실에 들어선 이브릴은 따로 전해 들은 이야기가 없는지 아르비스 공작을 발견하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 우리 이브.”

    아르비스 공작은 환하게 웃으며 이브릴을 향해 안기라는 듯 양팔을 벌렸지만,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경례를 올렸다.

    그에 무안해진 아르비스 공작에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네가 좀처럼 얼굴을 안 비추니, 우리가 찾아온 것 아니겠냐.”

    “죄송합니다. 아직 부대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되었다. 내가 찾아오면 되는 일이니.”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승님.”

    “오랜만이야.”

    아르비스 공작과 그의 약혼녀가 사람 좋은 미소로 이브릴을 대하자, 훈훈한 분위기를 풍기는 세 사람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안색은 더욱 검게 물들었다.

    공작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화하는 게 불편해 보이는 이브릴의 모습에 대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제 장교들은 내보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 그러겠습니다.”

    드디어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소식에 굳어 있던 장교들이 안도했으나, 이브릴을 데려온 소리아의 난입에 막히고 말았다.

    “소리아 마리스 소위, 아르비스 공작 전하께 고발할 것이 있습니다.”

    “고발이요?”

    그녀의 돌발 행동에 대대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무, 무슨 짓이냐! 감히 아르비스 공작 전하 앞에서 예의 없이!”

    그러나 대대장의 호통에도 소리아는 할 말을 해야겠다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대대에서 바네트 소위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힘겹게 생활했습니다. 생활관은 직급에 어울리지 않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곳을 배정받았으며, 업무를 빠르게 통달한다는 이유로 휴식 없이 장시간 근무를 시켰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희롱에 무시, 폭언까지! 아마 부대 내에 바네트 소위를 향한 악의적인 소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공작 전하와 바네트 소위의 관계가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녀는 계속 부당한 대우 속에 힘들어했을 겁니다!”

    따발총처럼 쏘아붙이는 소리아의 보고에 대대장실에 찬 바람이 불었다.

    아르비스 공작은 눈에서 열기가 느껴질 만큼 제대로 화가 난 모습이었으며, 그의 약혼녀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인 이브릴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입니까?”

    아르비스 공작이 빤히 바라보자 대대장은 크게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트러블이라고 해봐야 동료 간의 마찰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제가···.”

    그때 장교들 틈에 끼어 있던 1소대원들이 하나같이 손을 들었다.

    “아닙니다. 대대장이 가장 앞장서서 그녀를 핍박했습니다. 행정 장교들에게 의도적으로 그녀를 무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마치 엿 먹이기로 작정한 것 같은 1소대원들의 고백에 대대장은 머리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왜 말을 안 한 게냐?”

    “스스로 해결할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하아···.”

    아르비스 공작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브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는 우리 공작가 소속이다. 이런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어.”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

    그리고 공작은 광기 어린 눈동자로 대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대장님, 지금부터 저를 납득시켜야 할 겁니다.”

    “고, 공작 전하.”

    “만약 저를 납득시키면 강등 및 전출로 끝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아르비스 공작이 손가락으로 그의 화려한 계급장을 톡 치자, 은으로 된 계급장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당신의 인생은 이렇게 가루가 되겠죠.”

    사색이 된 대대장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

    ‘아르비스 공작이 최전선 부대를 찾아왔다.’

    따로 호출을 받은 게 아님에도, 아르비스 공작이 자신이 관리하는 휘하의 부대를 방문했는데, 군단장이란 자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하필이면 그곳엔 군단장인 베르넬 남작이 열심히 침을 바르고 있던 신임 장교가 배치되어 있어 살짝 불안했다.

    아르비스 공작은 그런 불민한 사건을 굉장히 싫어하는 인물이었으니.

    물론, 그도 귀족에 남자인 이상 이해는 해줄 가능성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호위 몇 명을 대동하는 단출한 인원으로 황급히 62기갑대대를 찾아왔고, 대대본부 앞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이브릴과 마주치고 말았다.

    “너 설마 공작 전하께 이상한 말씀을 드린 건 아니겠지?”

    “······.”

    자신의 물음에도 반응이 없는 이브릴의 모습에 그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지고, 남작의 호위기사가 앞으로 나서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녀가 등장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절세미인.

    하지만 이 타이밍에 군인으로 보이지 않는 그녀가 나타난 게 어찌 느낌이 이상했다.

    더구나 투명화 마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아티팩트가 아니라면 그녀는 최소 5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란 소리였다.

    “설마 이게 그 군단장이야?”

    그녀가 남작을 물건 취급하며 이브릴에게 묻자 남작과 호위기사들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물들었다.

    “귀하는 누구십니까?”

    지금 부대엔 아르비스 공작이 있다.

    그런 생각으로 분을 꾹 삼킨 그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남작의 미소에 도도하게 하늘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루시엘라는 쓰레기 보듯 말했다.

    “웃지 마, 기분 나쁘니까.”

    짝!

    그러면서 루시엘라는 가차 없이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이, 이게 무슨.”

    귀족으로 태어나 다른 사람에게 맞을 일이 어디 있겠는가.

    베르넬 남작은 순간 상황을 이해 못 하고 벙찐 표정을 지었으나.

    그의 호위기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귀하는 왕국의 귀족을 공격하였소. 이 일은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오.”

    그러나 루시엘라는 들을 것 없다는 식으로 베르넬 남작의 멱살을 잡았다.

    그에 호위기사들은 검 위에 손을 얹자, 루시엘라의 옆으로 똑같이 모습을 감추고 있던 메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3초 주지. 검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면 다신 검을 들지 못할 것이다.”

    미스릴 아머를 전신에 무장하고 미스릴 롱소드와 마법검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은 이제 너무도 유명해진 아르비스 공작가 고위기사들의 기본 모습이었다.

    한눈에 그녀가 아르비스 공작가 소속이란 것을 알아챈 호위기사들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백작의 작위를 가진 마스터일 가능성도 있었다.

    남작은 이브릴이 아르비스 공작에게 자신과의 이야기를 알렸다고 확신하며 손을 크게 내저었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설마 저 어린 계집의 말을 모두 믿으시는 것은 아니죠?”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지금 남작의 꼴이 딱 그랬다.

    “무슨 오해가 있고, 왜 그녀가 이상한 말을 했을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아, 아르비스 공작전하.”

    이어서 대대본부에서 아르비스 공작이 걸어 나오자, 루시엘라는 손을 풀었고, 남작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국가 실세의 등장.

    실상 이 나라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 앞에 남작의 작위를 지닌 군단장의 존재는 한없이 초라한 것이었다.

    “군단장씩이나 돼서 딸뻘 되는 신임 장교에게 추파를 던지다니.”

    남작은 여기서 잘못을 인정하고 선처를 바랐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했다.

    “오해십니다. 저는 절대로 그러려는 의도가 없었어요. 모름지기 이야기는 양쪽의 말을 들어야 봐야 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녀가 저에게 꼬리 쳤습니다. 저는 피해자입니다!”

    군단장은 아르비스 공작 뒤에 서 있는 대대장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눈빛을 쏘아 보냈지만, 모든 것이 쓸데없는 짓임을 아는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르비스 공작은 그런 군단장의 태도에 재밌다는 표정으로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내 딸이나 다름없는 이브릴이 당신 같은 늙다리에게 꼬리를 쳤다고?”

    제대로 화가 났는지 존댓말을 잊은 그의 물음에 베르넬 남작은 눈을 부릅떴다.

    “그, 그게 무슨.”

    “그녀는 아르비스 공작가 소속이다.”

    너무 놀라면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베르넬 남작은 손발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닙니다! 오해가 있는 겁니다! 제발 믿어 주십시오.”

    “믿긴 개뿔. 아무래도 군 전체에 대한 감사를 시작해야겠군. 많이 청소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이 남아있을 줄이야.”

    아르비스 공작은 차가운 눈빛으로 대대장에게 지시했다.

    “이 인간 가둬두세요.”

    “네.”

    “전하! 아르비스 공작전하!”

    남작은 일말의 반성 없이 스스로가 저지른 일을 부정했다.

    그렇게 베르넬 남작은 62기갑 대대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병사들에 의해 개처럼 끌려갔다.

    ***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질 않는지 스테이크를 깨작대는 이브릴에게 물었다.

    “내가 부담스럽니?”

    “아뇨, 절대 그렇지 않아요.”

    이브릴은 당치도 않다며 크게 손을 내저었지만, 솔직히 그녀가 이렇게까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몰랐던 나로선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를 거둔 것은 변덕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다느니, 걱정 끼치기 싫다느니, 그런 말은 안 했으면 한다.”

    내 이야기에 그녀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네.”

    간결한 대답이지만, 어쩐지 쓸쓸함이 담겨 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생각을 읽기 힘든 아이였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서 멀어지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바로 앞자리에 앉은 이브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뭐 필요한 거 없어?”

    “어차피 전하께서 주신 아르비스 상회 카드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잖아요.”

    “별로 쓰지도 않는 것 같던데?”

    “이젠 급여도 받으니까요.”

    어깨를 으쓱인 나는 그저 이브릴을 응원할 뿐이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너의 편이란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이브릴은 문뜩 궁금한 것이 있는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군단장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조사해 보니 꽤나 악질이더군, 여성 장교 중에 피해자가 상당히 많았어. 아마 강제 퇴출 정도로 안 끝날 거다. 대대장을 비롯해 주요장교는 1계급 강등에 다른 지역으로 전출될 거고. 나머지 장교들은 그대로 남겠지만, 앞으로 너를 귀찮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그리고 이브릴에게 말은 안 했지만, 군단장은 개인적으로 손봐줄 생각이다.

    불필요한 것은 떼버리는 것이 상책.

    아마 그는 평생 오줌을 앉아서 싸야 할 것이다.

    “그렇군요.”

    착한 이브릴은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다.

    “그래도 담당 소대 사람들이랑 친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다들 네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네, 좋은 사람들이에요.”

    “아마 그들에게 포상이 내려올 거다. 이김에 영지로 초대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한번 이야기해볼게요.”

    이브릴과 함께 있으면 아빠가 된 느낌이다.

    조금은 에리스처럼 애교 있는 성격이면 좋겠는데.

    “그런데, 스승님은 어디 가셨어요?”

    “영지로 돌아갔다. 나보고 잘 위로해 주라고 어찌나 당부하던지.”

    “그. 그렇습니까?”

    나는 몸을 비비 꼬는 이브릴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불쾌한 일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이브릴의 존재는 군 전체에 알려졌을 것이다.

    본인은 원치 않더라도 앞으로의 군생활은 꽤 편해질 터.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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