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92화 (92/186)
  • -------------- 92/186 --------------

    “자네 키는 몇인가?”

    “162입니다.”

    “몸무게는?”

    “47입니다.”

    불필요한 질문.

    여성 장교는 남작이 자신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꼈지만, 묵묵히 묻는 것에 답했다.

    기계 같은 모습이지만 남작은 오히려 그게 더 마음에 드는지, 짙은 웃음을 흘렸다.

    “혹시 희망하는 부서나 부대가 있는가?”

    입은 질문을 하면서도 시선은 군복 위로 도드라진 가슴에 머물러 있다.

    아주 발칙한 발육상태가 아닌가.

    하지만 남작의 그런 태도에도 여성 장교는 표정 변화 없이 질문에 답했다.

    “가능하다면 전방의 기갑 대대에 가고 싶습니다.”

    “기갑 대대? 기간트 운용부대를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제야 남작은 그녀의 눈빛에 깃든 냉정함을 읽으며 미간을 좁혔다.

    “차라리 군단 본부 행정장교가 어떤가? 기간트 오너가 아닌 이상 진급을 생각한다면 기갑 부대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데?”

    “······.”

    “마침 비서 장교를 새로 들이려 했는데, 원한다면 군단장실의 비서 장교로 들여 줄 수도 있네. 모름지기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계급 높은 지휘관 옆에 있는 것이 좋거든.”

    뻔히 보이는 속셈.

    그녀가 아직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해도 뱀의 눈을 가진 그의 곁에 있으면 어떤 수작을 당할지 뻔했다.

    여성 장교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안전한 사령부보다 현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평민 주제에 꽤나 강단 있는 모습.

    남작은 자신의 작업에 넘어오지 않는 신입 장교를 보며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그러나 고아일지언정 자존심까진 버렸다는 것이 아니니, 길들일 재미가 있어 보였다.

    “마드세인 왕국의 군사력은 요 몇 년 사이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네. 그 무서운 칼바도스에도 비빌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니, 말 다했지. 이 모든 것이 평민들이 떠받들어 마지않는 아르비스 공작 전하의 위업이 아니겠는가. 혹시 자네도 그런 부류의 인물인가?”

    “그렇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아르비스 공작령의 인물이라면 당연한 이야기다.

    마드세인 왕국의 일반 백성들도 아르비스 공작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지만, 해당 영지의 영지민들은 거의 광신도 수준으로 그를 떠받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

    “그렇군. 아르비스 공작 전하께 감화된 군인들은 대부분 신의로 무장하고 있지. 신임 장교들에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네.”

    지극히 당연한 말만 하는 남작.

    하지만 어째 뉘앙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녀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으나,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남작은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본국의 군사력엔 신의로 커버할 수 없는 현실적 결함이 있네. 뭔지 아는가?”

    “숫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신입 장교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도 모자랄 판에 현실을 갖고 오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그가 무얼 위해 이리 장황하게 설명하는지 뻔한데.

    “맞네. 현재 마드세인은 소수 정예 방식으로 군사력을 키워왔지. 돈만 충분하다면 인구수가 적은 소국에는 아주 유효한 방법이지만 소수 정예 부대는 지원 병력에게 큰 부담을 주지. 전방에선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거네. 자네의 신념은 알지만 이왕이면 목숨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군.”

    더구나 요즘 마드세인에서 칼바도스를 도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전방은 언제나 긴장 상태였다.

    남작의 이야기에도 그녀의 안색엔 변화가 없었다.

    “쯧, 자네도 참 완고한 인물이군.”

    “죄송합니다.”

    “대체 왜 위험을 감수하려 드는겐가?”

    “모든 군인이 제 몸을 사리면 이 나라는 누가 지키겠습니까.”

    맞는 말.

    피식 웃음을 흘린 남작은 그녀의 의자 앞에 놓인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물었다.

    “이브릴 바네트 소위, 자넨 왜 군인이 되려 했는가?”

    “어느 분을 마주함에 있어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사모하는 남성을 위해 군인이 되었다는 건가? 고집치곤 이유는 꽤나 세속적이지 않은가? 그 남성이 군인인가 보군?”

    “밝힐 수 없습니다.”

    “뭐, 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더 이상 신임 장교에 대한 예우를 지킬 생각이 없는지.

    남작은 차갑게 말했다.

    “움직이지 말게나. 이건 상관의 명령이니.”

    오히려 남작 입장에선 그녀 같은 스타일을 다루는 방법은 아주 쉽다.

    귀찮게 머리를 굴리는 것보다 입도 무겁고, 권위로 찍어 누르면 반항을 못 하니.

    그리고 만에 하나 규칙을 들이밀며 고발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 세계에선 계급이 깡패였으며, 여성의 권위가 굉장히 낮았으니.

    그녀의 단발머리를 뒤로 넘겨 새하얀 목덜미를 드러내게 만든 그는 만족스레 웃었다.

    “근래 들어 나를 이리 흥분시킨 것은 네가 처음이다.”

    이어서 그의 손이 풍만한 가슴 위로 향하자.

    이브릴은 차갑게 말했다.

    “굉장히 위험한 행동을 하고 계십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차라리 업소를 가시는 게 어떨는지요.”

    “뭐?”

    남작은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으나,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진 것에 의아해했다.

    후우욱!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공기.

    고개를 든 남작은 새빨간 동공 두 개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발견하고 기겁하며 뒤로 자빠졌다.

    일찍이 본적 없는 몬스터의 등장.

    그녀의 등 뒤에 앉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외뿔 늑대는 덩치가 3미터는 돼 보였으며,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 하나하나가 잘 벼려진 단검과 같았다.

    “이 아이가 제가 데리고 있는 소환수 퍼피입니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깜찍한 이름.

    남작은 속으로 저게 어떻게 회색늑대냐며 소리를 질렀지만, 겉으론 ‘어어’ 소리밖에 못 냈다.

    “저는 군단장님을 위협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아이는 제가 위협을 느끼면 자동소환이 되게끔 되어 있거든요.”

    “어, 어서 돌려보내지 못하겠는가!”

    “퍼피 돌아가.”

    낑.

    이브릴의 어깨의 뺨을 부빈 괴물 늑대는 그녀의 명령에 바로 모습을 감췄다.

    “퍼피가 소환되는 조건에는 생명의 위협뿐만이 아닌 정조의 위협도 포함이 되어 있으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 미리 못 나오게 지시를 내리면 되지 않느냐!”

    “소환에는 감정 요소가 크게 작용합니다. 아무리 제가 고아여도 군단장님의 행동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지라 퍼피의 소환을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얼굴을 붉히던 남작은 결국 폭발하며 소리쳤다.

    “네년은 지금 본관을 위협했다! 이번 일에 대해 징계를 각오해야 할 것이야!”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군요. 퍼피는 제가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소환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군사학교 교장님도 알고 계신 내용이고요.”

    “큭.”

    군단장보다 윗줄인 군사학교 교장이 거론되자, 그는 주춤거렸다.

    보통의 교장이라면 어떻게 구슬려 보겠지만, 군사학교 교장은 아르비스 공작에 의해 세워진 꼬장꼬장한 노인네였으니.

    만약 이브릴이 교장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의 군생활은 꼬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분을 삼키며 그녀를 내쫓았다.

    이후 이브릴은 본인이 원하던 대로 최전방에 배치되었으며, 칼바도스 제국을 수시로 도발하는 아주 위험한 부대의 상황 장교가 되었다.

    이브릴은 그날 있었던 일을 후원자인 아르비스 공작에게 알리지 않았다.

    부끄럽기도 했고 바쁜 사람에게 괜한 신경을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지 않는다고 아르비스 공작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

    세계 군사 정상회담은 굉장히 지루했다.

    첫날엔 음악을 즐기며 좋은 사람들과 술 한잔이라도 즐길 수 있었지.

    둘째 날부턴 날 선 공방전이 오고 가는 회의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라파즈 왕국 대 회의실.

    3층 구조로 된 원형 회의실엔 65명의 대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1층엔 제국 동맹과 4개국 동맹이 마주 보고 있는 형태이며, 2층은 대왕국과 중견 왕국이, 3층엔 소왕국의 대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국가별로 출력총합을 제한해야 합니다. 그 이상의 기간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발각된다면 거액의 벌금은 물론 압수조치를 하는 거죠!”

    기간트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중립의 대왕국 그리미아와 슈엔다르크의 국방대신이 기간트 생산 제한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제한규정이 생겨난들 누가 지키겠는가?

    제국 동맹은 물론, 나 역시 지킬 생각이 없는데.

    “전쟁 났을 때, 총출력이 규정을 어겼다며, 압수할 테니 오너에게 기간트에서 내리라고 하면 누가 내립니까?”

    어이없다며 웃음을 흘리는 내 모습에 로엘 제국의 도미니크 황태자가 잘 걸렸다며 시비조로 대답했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투가 너무 무례한 것 아니오? 그리고 충분히 검토를 해봐야 할 타국의 제안을 공작이 무슨 권리로 쳐낸단 말이오.”

    그리미아와 슈엔다르크의 대표들은 적대국이라 할 수 있는 로엘 제국의 황태자가 자신들을 두둔하자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차리리 칼바도스와 위스워드의 기간트 수출을 제한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무리한 기간트 수입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는 거잖아요. 제국 동맹의 로엘 제국과 우리 4개국 동맹의 아크로스 왕국은 동맹 차원에서 지원해주면 되는 일이죠.”

    그러나 나는 도미니크 황태자의 지적을 깔끔히 무시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그 말은 기간트 생산 못 하는 세력은 그냥 찌그러져 있으란 소리 아닙니까!”

    꽤 다혈질로 보이는 슈엔다르크의 국방 대신이 발끈했다.

    솔직히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라서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법이죠. 각국에서 자신들의 사정에 맞게 군비증강을 했으면 이런 회의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얼굴이 붉어진 도미니크 황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주변에서 군사력을 키우는데 어찌 지켜보고 있으란 말이오! 무리를 해서라도 따라가는 것이 당연하지! 아르비스 공작은 지금 회의의 의미를 흩트리고 있소!”

    한번 무시를 당해서인지, 아예 대놓고 삿대질을 하는 황태자.

    피식 웃음을 흘린 나는 이제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말을 무시했다.

    “먼저 회의를 통해 정해진 사안이 지켜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강력한 국제기구부터 만들어야죠.”

    “이익! 지금 로엘 제국의 황태자인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솔직히 이 상태로 제국 동맹이나 저희 4개국 동맹에서 규정을 어긴다면 누가 강제할 수 있겠습니까.”

    계속되는 내 무시에 옆에 있던 실비아와 성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흘리고, 그리고 요점을 지적하는 내 이야기에 다른 국가 대표들은 생각에 잠겼다.

    “아르비스 공작!”

    황태자가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 같은 태도를 취하자 로엘 제국의 국방대신이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말렸다.

    “아르비스 공작의 의견이 옳소. 말뿐인 규정을 정해봤자 어차피 지켜질 것 같지도 않으니. 아마 서로에 향한 의심 때문에 군비증강을 멈추지 못할 것이오.”

    위스워드 제국의 황제가 내 의견에 공감을 표하고, 칼바도스 제국의 황제도 동의했다.

    역시 제국의 황제다운 합리적인 사고다.

    “이 회의를 확장시킨 국제 기구를 만든다면. 재원확보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각국에서 분담금을 내야죠. 하지만 저는 아직 하겠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이 회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죠.”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일까?

    오늘 회의의 의장을 맡은 라파트 왕국의 국왕은 휴정을 제안했고, 이는 곧 받아들여졌다.

    나는 3시간의 휴식 후 회의가 재개된다는 소리에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실래요?”

    “일단 자리를 옮겨서 차라도 마시죠. 저분이 거슬리기도 하고요.”

    나는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로엘 제국의 황태자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너무 어린 티를 내네.”

    외모적은 회의장에서 내가 가장 어렸지만,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

    그 후 이틀 동안 이어진 회의 끝에 로이아스식 IMF인 ‘국제 경제 연합’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냥 능력이 되지 않으면 무리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국제기관으로 제국 동맹과 4개국 동맹의 적극적인 지지하에 결성이 결정되었다.

    다만 ‘국제 경제 연합’만으로 중립국들의 위기감을 잠재울 수 없는 만큼, 전쟁을 방지하며 국가 간의 마찰을 대화로 풀고 중재해주는 UN같은 ‘국제 평화 기구’를 추가 설립하기로 했다.

    국제 평화 기구는 ‘평화 기사단’이란 중립 무장 단체를 포함한다.

    평화 기구는 전쟁보다 대화를 우선시하며 만약 국제법을 지키지 않은 전쟁국에 대해선 무력도 동원할 수 있다.

    평화기사단은 기본적으로 20Mmp의 출력을 가진 기간트 30대로 시작해 서서히 전력을 증강할 생각이다.

    물론 기간트가 배치되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재화가 필요하다.

    평화 기구는 가입국의 분담금에 의해 운영되는데, ‘경제 연합’에서 평가한 경제력을 기준으로 많게는 10만 골드에서 적게는 3천 골드를 내야 한다.

    분담금이 비싸긴 하지만 약소국들은 ‘국제 평화 기구’의 설립에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들이 하나 간과하고 있다.

    어차피 평화 기구도 많은 분담금을 내는 강대국들의 발언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

    기구에 10만 골드의 분담금을 내는 국가와 3천 골드를 내는 국가의 위상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찬반 투표제라는 것이 귀찮긴 하지만, 그건 얼마든지 정치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두 기관의 설립으로 애초에 중립국들이 바라던 기간트 생산 제한은 결국 불발로 끝이 났다.

    그렇게 아쉬움과 나름의 성과를 남긴 제1회 세계 군사 정상회담은 막을 내렸다.

    “괜히 국제기구 이야기를 꺼냈네요.”

    내가 뒤통수를 긁적이자, 아인트 공작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대화의 장이 생겼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네. 앞으로는 조금 더 개방적인 교류가 이뤄지겠지.”

    그럼 좋지만, 괜히 거액의 분담금을 떠안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마드세인의 수출 규모는 국가의 위상에 비하면 작지만, 유동 금액은 어느 제국 못지않았다.

    경제 부분에 대해서는 지식이 빈약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국가 경제력이 평가될지 모르지만 아마 적지 않은 금액이 배정될 터.

    하지만 그는 국제기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서 분담금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참, 자네가 돌아오는 대로 한가지 알려 주려 한 게 있는데.”

    “뭔데요?”

    “이브릴 양 말일세, 자네가 굉장히 신경 써주는 아이 말이야.”

    “아, 그제 자대 배치됐을 텐데, 어디로 갔는지 안 물어봤네요. 이브릴이 왜요?”

    “북부 2군단으로 전입했네. 정확하겐 2군단에서도 최전방인 기갑 대대의 상황장교가 되었지.”

    “뭔가 위험해 보이는 데요?”

    “본인이 그리 희망을 했다는 고만.”

    나는 차라리 이브릴이 군인이 되기보다 마탑의 마법사가 되길 원했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내 제안을 거절했다.

    이미 넘치게 받은 만큼, 내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이브릴을 한 번도 짐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아무래도 섬세한 나이다 보니,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했다.

    어차피 그녀는 이미 내 가족이나 다름이 없는지라, 무슨 일이 생기던지 도와줄 생각이니.

    “그런데 전입 과정에 군단장과 트러블이 있던 모양이야.”

    “군단장하고요?”

    이브릴은 누군가와 트러블을 일으킬만한 아이가 아니다.

    나는 당연히 의아하단 반응을 보였다.

    “군단장인 베르넬 남작이 호색한이거든.”

    귀족 중에 호색한이 아닌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그 상대가 내가 아끼는 인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대충 상황을 이해한 나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미쳤나? 어린 애를 상대로.”

    “뭐, 15살이면 일단 성인이긴 하지.”

    15살이면 한국 나이로 16, 17살이지만, 이곳에선 어엿한 성인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 이브릴을 데려와서인지, 성인이란 느낌보단 아직도 애처럼 느껴졌다.

    퍼피가 호위로 버티고 있으니 문제는 없었겠지만, 이 사태를 얌전히 지켜볼 생각은 없다.

    이브릴이 후원인이 나란 사실을 밝히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녀석은 내게 폐를 끼치는 것을 굉장히 꺼렸다.

    분명 군단장의 부당한 대우에도 참고 넘길 터.

    “제가 그동안 너무 조용했나 봐요.”

    “어찌할 생각인가?”

    “모처럼이니 참교육에 나서야지요.”

    이브릴의 응원을 겸해 군단장과의 면담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국경지대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