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89화 (8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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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래곤 하트가 빠져나온 검은 구멍에선 각종 재화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분명 환호를 내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풍경이건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드래곤 하트에 정신을 담은 건가?

    스스로를 악마라고 착각하는 것 아닌가 싶은 녀석의 말에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드래곤 하트의 침투를 막았다.

    하지만 찰나에 드래곤 하트는 흡수가 되어버렸고, 몸속을 휘젓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루이스?”

    당황한 루시엘라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지만, 강력한 반발력에 피를 토하며 튕겨졌다.

    “큭!”

    때마침 날아온 스텔라가 루시엘라를 낚아채며 얼른 리커버리를 사용했다.

    다른 부하들은 나를 둘러쌓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은지라 함부로 내게 손을 대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조, 조용히.”

    소란을 떠는 그들을 진정시키며 내부를 관조했다.

    현재 드래곤하트는 내 몸을 잡아먹겠다는 듯 전신으로 기운이 퍼져나갔다.

    한 번에 나를 제압할 생각인 듯하다.

    팍!

    그리고 드래곤하트의 기운이 머리까지 닿자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미 두 차례의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의 정신력을 우습게 봐선 안 될 것이다.

    비록 삶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 전혀 다른 입장이었으니.

    더불어 드래곤하트 조각, 천년초, 드라켄의 코어가 결합되어 재창조된 핵은 하나의 소우주나 다름없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드래곤의 정신이 나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처럼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드래곤 하트를 차지하기 위해 천년초의 기운을 끌어올려 침식을 시도했다.

    ***

    마도제국과의 전쟁 이후 드래곤은 멸종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이것은 어느 문헌에나 적혀있는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살아남은 드래곤들은 부활을 위해 리모트랜드에 자리를 잡았으며 기나긴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드래곤들에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어째서 자가 수정이 되지 않는 거지?’

    ‘브릴란테 황제의 수작이 분명하다!’

    ‘이대로라면 로이아스의 드래곤은 씨가 마르게 된다. 가이아님께 도움 요청을···.’

    ‘가, 가이아님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신께서 우릴 버리셨단 말인가!’

    그건 바로 중성인 드래곤 족의 특혜라 할 수 있는 자가 수정(임신)이 더 이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가이아의 농단에 놀아나는가! 어리석은 녀석들 같으니! 내 죽어서까지 너희를 저주할 것이다.’

    드래곤 로드와 하이엘프 사이에서 태어난 마도제국 황제의 저주.

    분명 그 저주가 자신들의 상황과 연관이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드래곤들은 그 문제를 끝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신의 영역에 도전했던 인물의 저주는 가이아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나마 이성 간의 행위를 통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남성체로 변모하던 여성체로 변모하던 드래곤이 평생동안 낳을 수 있는 해츨링의 수는 하나 또는 둘밖에 되지 않았다.

    자존심을 버리고 번식을 우선시했음에도 그 수는 계속 줄 수밖에 없었고 현재 남아있는 드래곤은 겨우 셋에 지나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드래곤의 멸종은 이미 확정된 상태였다.

    [이렇게 어이없이 죽을 순 없다. 살아야 해.]

    레드드래곤 그랑기슈는 천공성이 폭발하는 순간, 필사적으로 정신을 드래곤 하트에 담아 아공간으로 피난시켰다.

    타이밍을 봐서 다른 사람의 몸을 탈취한다면 소생의 수단이 남아있는 만큼, 얼마든지 드래곤으로서 부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삶의 의욕이 가득한 그랑기슈는 강력한 능력치를 지닌 루이스를 타겟으로 골랐고,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아공간을 벗어나 육체에 침입하는데 성공했다.

    ‘뭐, 뭐냐. 이 녀석은.’

    하지만 그랑기슈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고고고고.

    루이스의 에너지의 근원을 찾아 제압하려던 과정에서 마주한 소우주가 잡아 먹히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잡아먹으려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처음 보는 형태의 코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운이 경시할 수 없는 수준인 데다가 융화의 힘이 깃들어 있어서 최악의 상대란 점이었다.

    ‘빌어먹을 아이로스 천년초라도 처먹었나.’

    야금야금 자신의 기운을 잡아먹는 데 위기감을 느낀 그는 작전을 바꿨다.

    ‘안 되겠어. 정신을 먼저.’

    신체 제압보다 먼저 정신을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굳건히 자신을 상대하는 루이스의 정신력에 그랑기슈는 다시금 당황했다.

    ‘대체 뭐냔 말이다!’

    전투 능력을 봐선 강직한 정신력을 지녔을 것이 분명하지만, 아무리 인간이 잘나 봤자 결코 드래곤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신력 강화를 위한 수련이라도 따로 한 것인지, 상대하기 너무 까다로웠다.

    만물에는 ‘격’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건 결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격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랑기슈가 있는 곳은 상대의 홈그라운드.

    이렇게 소득 없이 시간을 끌면 불리해지는 것은 침입자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드래곤 하트의 기운을 잡아먹는 루이스의 코어는 커다란 압박이었다.

    간단할 것이라 생각한 육체 탈취가 난항을 겪게 되자 그는 결국 무리수를 던졌다.

    ‘젠장!’

    전신에 퍼진 기운을 한데 뭉쳐 정신을 파괴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루이스의 마력이 그물처럼 드래곤 하트를 포박했다.

    당황한 기랑기슈는 악에 받쳐 그물을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결판을 보자는 듯 루이스는 끈질기게 엉겨 붙어 놔주질 않았다.

    이미 루이스는 승기가 자신에게 기울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놔라! 놔! 미개한 벌레 주제에 감히!’

    [선물 고마워요. 잘 먹겠습니다.]

    그랑기슈는 드래곤 하트를 빠르게 침식하는 루이스의 기운에 발악했지만, 점차 정신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절망했다.

    ‘어찌, 드래곤인 이 몸이 한낱 인간 따위에게···.’

    [그러게 처음부터 대화를 했으면 얼마나 좋아요. 이야, 아주 운이 좋았네요. 환생과 회귀를 통한 두 번의 죽음이 이런 식으로 도움을 줄 줄은.]

    기고만장한 루이스의 이야기에 그랑기슈는 허탈함을 표했다.

    ‘설마 네 녀석은 브릴란ㅌ···.’

    ***

    “허억! 허업!”

    두 눈을 부릅뜬 나는 가슴을 움켜쥐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주변을 바라보니 수풀이 우거진 숲속이었고, 루시엘라와 부하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괜찮아?”

    루시엘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부하들은 모두 긴장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아무래도 드래곤에게 몸을 빼앗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하도 기세등등해서 잔뜩 쫄았는데, 의외로 별거 아니던데요?”

    내가 헛웃음을 흘리며 배를 쓰다듬자, 나를 둘러싼 부하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루시엘라는 나를 끌어안았다.

    “걱정했어요?”

    은근한 물음에 그녀는 눈물을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갈 곳도 없는데. 너까지 없어져 봐라.”

    왠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뭐, 미운 정도 정이란 거지.”

    여러모로 안 좋은 일을 겪은 그녀이기에 더는 캐묻지 않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드래곤 하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니 명치 부근에서 기존의 코어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기운을 지닌 드래곤 하트가 느껴졌다.

    두 개는 온전히 섞이지는 않았지만, 드래곤 하트는 완전히 나의 통제하에 있었다.

    “제게 됐네요.”

    “사용 가능한 상태로?”

    “네.”

    내 대답에 일제히 감탄사를 터뜨렸다.

    만약 이런 형태가 아니었다면 드래곤 하트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진 못했을 것 같다.

    이것도 기연이라면 기연이겠지.

    “혹시 9서클을 이루신 겁니까?”

    헤르만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내 눈앞에 엄지 손가락 만한 작은 태양이 만들어졌다.

    “내부가 정리가 안 된 느낌이지만, 이거면 9클래스 마법사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작지만 우습게 볼 수 없는 마법.

    그것이 9클래스의 ‘뉴클리어 익스플로전’임을 알아챈 마법사들은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애초에 그들을 놀라게 할 생각이 없는지라 나는 바로 마법을 소멸시켰다.

    기존의 마나코어와 드래곤 하트는 완전히 융합되지 않았다.

    그래서 따로 새로운 서클이 만들어지진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9클래스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서클을 8개지만 클래스는 9클래스.

    아무래도 드래곤 하트 때문인 것 같다.

    서클이란 것 자체가 드래곤에 비해 부족한 능력치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으니···.

    드래곤은 심장에 서클을 만들지 않고도 마법을 익히는데, 지금 내 능력은 인간보단 한없이 드래곤에 가까운 형태기에 이런 이적이 가능한 것 같다.

    “신기하네요. 그럼 이제 서클 마법에 목멜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스텔라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구성이 달라진 8개의 서클에 새로운 서클을 추가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그리고 이젠 그녀의 말대로 서클에 연연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나저나.”

    짤랑.

    나는 발에 밟히는 금화를 보며 두 눈을 껌뻑였다.

    “드래곤이 갖고 있던 아공간의 물건 같습니다.”

    마치 쓰레기처럼 숲속을 가득 채운 귀금속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일전에 드래곤 레어에서 얻은 재화의 두 배는 될법한 양.

    천공성의 파괴로 느낀 씁쓸함이 드래곤 하트와 산처럼 쌓인 보물에 잊혀졌다.

    엘프 여왕이 이 장면을 봤으면 꽤나 배 아파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 사라지기 직전에 뭐라 말하려 한 것 같은데?”

    ***

    33. 4년 후

    칼바도스 제국 남부, 로투스 영지 방면 국경.

    쿵! 쿵! 쿵!

    국경선을 순찰 중이던, 남부군 소속 은장 기사단은 멀지 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퍼져.”

    지휘관의 지시에 기사들은 넓게 포진했는데, 점점 굉음이 가까워지자 모두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쿵!

    이어서 굉음의 정체가 밝혀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나무를 지팡이처럼 잡으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높이가 7미터는 될법한 철거인이었다.

    “정지! 정지! 귀하는 칼바도스 제국의 영토를 침범했다! 더 이상 접근한다면 침략행위로 간주하여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알린다!”

    지휘관은 당장 자신들이 나선다고 저 괴물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규칙은 규칙이었다.

    쩌렁쩌렁한 그의 외침에 철거인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제스쳐를 취하며 말했다.

    [아, 이런. 산책 중이었는데, 너무 깊이 들어 왔나 보네요.]

    철거인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성인이 되었을까 싶을 만큼 굉장히 앳된 여성의 것이었다.

    “분대장님, 기동전단이 출동했습니다. 5분 후에 도착한답니다.”

    긴장감 없는 그 행동에 말을 잃은 지휘관은 부하의 보고에 안도했다.

    그리고 이젠 자신들도 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철거인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산책에 기간트를 타고 나오냐! 이 새끼야!”

    [저흰 기간트가 남아돌아서요. 민폐 끼쳤네요. 국경 넘어서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세요오오.]

    쾌활하게 손을 흔들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기간트의 모습에 괜히 긴장했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지휘관은 신경질적으로 풀뿌리를 걷어찼다.

    “씨발!”

    잠시 후 자국의 기동전단의 기간트가 출동했으나, 이미 적국의 기간트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이었다.

    “마드세인, 이 빌어먹을 새끼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기동전단의 기간트 오너도 짜증나긴 마찬가지.

    은장기사단 분대장의 보고에 오너는 기간트의 발을 내리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번 주에만 몇 번째죠?”

    “5번째 무단 침입입니다.”

    기간트 오너와 은장기사단의 분대장은 계급이 같지만, 지방군과 황실소속이라는 점이 달랐다.

    때문에 기동전단의 오너를 상대하는 은장기사단의 분대장의 행동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주 본국을 우습게 보고 있군요.”

    “요즘 녀석들 때문에 순찰량이 많아져서 피곤해 죽겠습니다.”

    “하··· 저희도 비슷합니다.”

    칼바도스와 비교되지 않던 약소국인 마드세인 왕국.

    하지만 그런 마드세인에서 제국을 조롱하듯 도발을 해오는 통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소국 따윈 밀어 버렸으면 좋겠지만, 지금의 마드세인 왕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기에 만만히 볼 수도 없었다.

    “왠지 내일 또 올 거 같은데.”

    4년 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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