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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88화 (88/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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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기기긱!

    천공성 중심에 있는 코어의 마력이 불규칙적으로 변한다.

    동시에 주변의 좌표가 방해 수준을 넘어 공간 자체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설사 상대가 드래곤이라 해도 공간이동은 꿈도 못 꿀 것이다.

    크아아아악!

    이상을 알아챈 드래곤이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거대 작살과 연결된 사슬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설마, 네 녀석!”

    엘프 여왕이 분노하며 내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냉정하게 뿌리치며 말했다.

    “이 방법뿐입니다. 당신도 살고 싶으면 도망쳐요.”

    “······.”

    그녀는 이를 갈면서도 반박을 못 했다.

    여태 싸웠던 게 전부 의미 없는 짓이 돼버린 순간이니 당연하겠지만, 누구보다 열 받는 건 바로 나였다.

    결국,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자리를 피했다.

    “대화로 풀었으면 좋았잖아요. 그러면 굳이 적으로 돌아설 일 없이 천공성도 양보했을지 모르는데요.”

    나는 드래곤에게 그리 말하며 작살과 사슬을 언령으로 강화했다.

    “아, 혹시 모르니.”

    탈출을 위해 천공성을 벗어나던 중, 자폭의 폭발력을 높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간트용으로 제작된 마나 하트의 리미트를 해제하여 구멍 뚫린 천공성의 측면에 던져 넣었다.

    이미 천공성 밑에는 난리가 났다.

    아공간에 수납이 가능한 장비를 제외하곤 대마법사들이 모두를 띄워 도망치고 있었다.

    나도 뒤를 따라 부리나케 도망치는데, 밑에서 루시엘라가 단검을 쥔 채 천공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를 납치하듯 낚아채며 물었다.

    “왜 안 도망쳐요?”

    “혹시 못 빠져나오면 멈춰야 하니까.”

    루시엘라의 대답에 나는 웃음을 흘리며 손을 놓았다.

    그녀도 일단 6클래스의 고위 마법사다.

    도망치는 것 정돈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적절한 공격 덕분에 살았습니다. 고마워요.”

    만약 루시엘라의 센스있는 공격이 없었으면, 우린 격리된 공간에 갇혀 드래곤에게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의 적절한 지시에 천공성이 지원하면서 상황이 반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내 감사에 루시엘라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 할 수밖에 없었어.”

    설마 내가 그렇게까지 걱정되었나?

    그런데 예상치 못한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엘프 장로 중에 아버지가 있거든.”

    “네?”

    나는 저 멀리 도망치는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급히 얼굴을 가려서인지, 날 알아보시진 못했지만, 당혹스러워서.”

    엘프 여왕과의 전투를 앞두고 루시엘라에게 피신을 명령했을 때, 그녀가 머뭇거렸던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드래곤의 난입 없이 계속 싸우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정 위험하다 싶으면 막을 생각이었어. 하지만 미리 말하면 괜히 나 때문에 너희의 행동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잖아.”

    “만약 제가 엘프 여왕에게 지는 상황이 오면요?”

    “아마 동족들을 말려보려 노력은 했을 거야. 하지만 너와 달리 여왕님은 내 청원 따윈 듣지 않았겠지. 지금의 나는 배신자니까.”

    결국은 나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란 건데, 어째 가족의 재회를 막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크아아아아아!

    “터진다.”

    드래곤의 포효와 함께 루시엘라가 천공성의 폭발 소식을 전해왔다.

    지금은 천공성으로부터 3~4킬로미터 떨어진 구역.

    부하들은 여전히 앞만 보며 도망치고 있었지만,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폭발 범위가 얼마나 될까요?”

    “아슬아슬할 것 같아.”

    그 정도라고?

    하긴 드래곤을 쓰러뜨리려면 그 정도는 돼야지.

    안전을 위해선 더 멀리 도망쳐야겠지만, 폭발의 중심지가 아닌 외각이라면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만약을 대비해 남은 위성을 한데 모았고, 코어의 마력을 쏟아부어 거대한 마력탄을 만들었다.

    시간을 들여 만드니 마력탄이 거의 이프리트에 버금가는 크기가 되었다.

    루시엘라가 무식한 마력탄에 헛바람을 삼켰다.

    그리고 그때.

    쿵!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낮은 소음과 함께 회색의 에너지가 동그랗게 팽창하며 드래곤과 천공성을 집어삼켰다.

    그 구슬은 끝을 모르고 덩치를 키워갔는데, 영역 내의 모른 것을 가루로 만들며 확장했다.

    저건 막을 수 있는 종류의 에너지가 아니다.

    우리는 급히 거리를 벌렸고, 지름 8km를 채운 후부턴 확장을 멈추고 다시 작아졌다.

    확장부터 축소 및 증발까지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말을 잃게 하기 충분했다.

    “섬이···.”

    섬의 한 면이 깔끔하게 도려졌다.

    방금까지 천공성이 있던 곳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그 튼튼하던 드래곤은 비늘 한 조각 남기지 못했다.

    파아앗!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가 증발한 부분을 뒤덮고, 그로 인해 큰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죽은 건가?”

    “아마 도망치지 못했을 거예요.”

    천공성이 자폭한 뒤로도 뒤집힌 공간 좌표는 돌아올 기미가 없어 보였다.

    공간이동은 꿈도 못 꾸고 육탄으로 탈주했다면 모를 수가 없다.

    그냥 죽기 아님, 살기로 텔레포트나 블링크를 써볼 수는 있겠지만, 공간이동을 하는 순간 다크엘프 여왕처럼 죽음 확정이라 볼 수 있다.

    나는 천공성이 있던 곳으로 날아갔고, 루시엘라가 뒤를 따랐다.

    또한 멀리서 경쟁하듯 엘프 여왕과 장로 한 명이 날아왔는데, 천공성이 사라진 현장을 살피기 위해 그러는 것 같았다.

    굳이 장로를 한 명만 대동한 이유는 싸울 의지가 없다는 뜻 같은데, 엘프 여왕은 여전히 이프리트를 소환해둔 상태인지라 만약이란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물론 내 머리 위에도 무식하게 큰 마력 덩어리가 미사일처럼 떠 있는 상태였다.

    “이런···.”

    가루 하나 남김없이 사라진 천공성에 안타까움을 토하는 엘프 여왕.

    천공성은 말할 것도 없고, 드래곤의 사체 역시 버릴 것 없는 최고의 보물이다.

    모든 게 깔끔하게 증발한 빈 공간을 보면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보물보다 귀중한 것은 바로 목숨이 아니겠는가.

    나는 미련을 떨치며 말했다.

    “살아남은 거로 만족하세요.”

    드래곤과 싸운 후여서인지, 더 이상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현재 전력은 막상막하.

    전투가 벌어지면 양패구상이 되거나, 승리한다 쳐도 피해는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젠 얻을 것도 없으니, 당연히 전투가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여왕 또한 마찬가지인지, 적대적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은 상당히 미묘하다.

    엘프 여왕은 인간을 적대 세력으로 간주한 상황이고, 그런 인간들의 틈에 나 같은 방해물이 있으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쪽의 전력을 알았으니, 치기도 쉽지 않다.

    엘븐 킹덤의 모든 전력을 동원하면 마드세인을 없애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나를 중심으로 인간 세력이 규합되기라도 한다면, 낭패를 보는 것은 쪽수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엘프 쪽이었다.

    현재 엘프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가 인간 세력의 결집이었으니.

    나나 그녀나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일은 잊죠.”

    내 제안에 엘프 여왕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피곤하군.”

    여왕과 대화가 이어지는 과정에 루시엘라가 로브를 더욱 깊게 뒤집어썼다.

    또한 엘프 장로 한 명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루시엘라?”

    아무래도 그 장로가 루시엘라의 아버지였던 모양이다.

    장로의 물음에 엘프 여왕 또한 나와 커플 로브를 입고 있는 루시엘라를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이내 미간을 좁혔다.

    “맞군.”

    아버지가 장로라고 말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여왕이 얼굴을 알아볼 정도이면 루시엘라의 집안이 상당한 명문인 모양이다.

    “바, 반갑습니다. 폐하.”

    정체가 들통난 그녀는 결국 로브를 젖히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루시엘라! 너 대체!”

    그녀의 아버지는 흥분해서 다가왔지만, 나는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그녀는 제가 사로잡은 포로입니다.”

    이미 정체가 다 탄로가 났으니, 그녀를 돌려보내도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루시엘라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은 최악 중에 최악인지라, 선뜻 내보낼 수 없었다.

    “포로? 네 녀석 설마!”

    아버지보단 오빠라는 호칭이 어울릴 그의 눈동자에 불길이 치솟자, 나는 괜한 오해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욕정 때문에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오히려 저는 그녀가 잡혀가려던 것을 구해준 사람이라고요.”

    내 말에 장로는 믿을 수 없다는 태도로 발끈했으나, 여왕이 뒤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처녀 맞다. 남자의 손길을 탄 적이 없군.”

    여왕은 그런 것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대답에 루시엘라의 아버지는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나를 훑었다.

    “적이었지만,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군.”

    루시엘라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나의 평가가 올랐다.

    내가 겉모습은 아이지만, 당연히 누구도 나를 아이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 참 고맙군요.”

    나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답했다.

    장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여왕은 그의 어깨를 짚으며 말렸다.

    “우린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주변의 좌표가 뒤틀린 채 고정되어 있어서 텔레포트를 사용하려면 꽤 멀리 자리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잠시만요.”

    “뭐지?”

    나는 가족과 재회를 했음에도 인사 외에 한 마디도 못한 루시엘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그동안 엘프들에게 제힘을 숨긴다는 목적으로 구금하고 있던 포로입니다. 하지만 이젠 의미가 없어졌죠.”

    예상치 못한 말에 루시엘라는 물론 장로까지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은 데려가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항상 하이랜드로 돌아가고 싶어 했거든요. 그녀가 제 곁에 있는 것도, 천공성을 소환한 것도 모두 강제적으로 맺은 마나의 언약 때문입니다.”

    루시엘라는 말을 잃었고, 장로는 힐끔 여왕의 눈치를 살폈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지만, 선처하여 데려가 주시지 않겠습니까?”

    엘프의 지도자인 그녀가 인정하면 루시엘라는 다시 하이랜드로 돌아갈 수 있다.

    흥미롭다는 투로 나를 바라보는 여왕의 모습이 거슬렸지만, 루시엘라와 그동안 함께 해온 정이 있는지라, 꾹 참았다.

    “너는 인간으로서 보기 드물게 긍지 높은 존재다. 인정하지.”

    “그럼?”

    나에 대한 인정은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루시엘라에 대한 판결.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은 나를 그 자리에 굳게 만들었다.

    “루시엘라는 추방이다. 이 시간부로 하이랜드의 출입을 금한다.”

    “네?”

    황당함이 가득 담긴 내 의문에 여왕은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루시엘라의 행동이 엘프를 향한 배신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마나의 언약을 하던 그때 깨달았어야 한다. 어떤 말로 포장하던 루시엘라가 우리의 목적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엔 변함이 없으며, 이를 용납할 수 없다.”

    “폐, 폐하!”

    루시엘라의 아버지가 기겁하며 엘프 여왕 불렀으나 그녀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등을 돌렸다.

    솟구쳐 오르는 짜증을 참고 있던 나는 결국 폭발했다.

    “대체 사람 이야기를···.”

    내 머리 위의 마력 덩어리가 움직이자 엘프 여왕도 이프리트를 움직였다.

    그러나 충돌로 이어지기 전.

    루시엘라가 너무도 담담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움켜쥐는 통에 나는 움직이지 움직일 수 없었다.

    “이건 엘프들의 문제야. 여왕님의 말씀은 곧 법이고.”

    담담한 척해도 그녀의 눈빛엔 짙은 좌절이 담겨 있었다.

    “잘 알고 있군. 돌아가지.”

    엘프 여왕은 루시엘라 아버지의 팔을 잡아당기며 해당 구역을 벗어났고, 나와 루시엘라는 그 모습을 얌전히 지켜봐야 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니야, 너는 최선을 다했어. 정말 고마워.”

    평범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모습이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째 오늘은 하나도 예상대로 흘러가는 일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

    “주군!”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부하들이 날아오고.

    나는 루시엘라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돌아가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잡았고, 두 손이 맞닿는 순간 루시엘라에게 걸려 있던 족쇄 마법들을 모두 해제했다.

    조금이라도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한 행동.

    하지만 도주 방지와 위치추적 마법 등이 사라졌음에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이 그녀의 현재 상황이었다.

    저 멀리서 엘프들이 텔레포트로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마음 무겁게 부하들을 향해 날아갔다.

    [벌레들이···.]

    “!!!!!!”

    그런데.

    항상 돌발 상황은 예상치 못한 때에 찾아온다.

    단 한 번 밖에 들은 적이 없지만,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직접 입력되고, 나는 급히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에서 루시엘라를 끌어당기며 등 뒤에 숨겼다.

    아공간처럼 검게 물든 공간이 눈에 들어오고, 그곳을 벗어난 붉은 색의 무언가가 내게 날아왔다.

    급히 마력을 끌어올려 방어막을 형성했으나, 그것은 너무도 쉽게 방어를 부수며 내 가슴에 틀어박혔다.

    “무슨?”

    그것은 내 목숨을 노리고 날아든 공격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깃든 붉은 돌.

    바로 드래곤 하트였다.

    점점 살 속에 파고드는 그것을 떼기 위해 손으로 움켜쥐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몸···. 내놔라.]

    드래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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