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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87화 (8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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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향해 공격을 퍼붓던 여왕과 루이스는 당황하며 방어막을 펼쳤지만, 그 공격은 두 사람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콰콰쾅!

    목표는 천공성의 측면.

    이프리트의 브레스와 비교되지 않는 화염 파도가 천공성의 벽면을 꿰뚫었다.

    쿠쿠쿠쿠!

    그에 천공성은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처럼 심하게 요동쳤다.

    엘프 여왕과 루이스는 서로를 향한 적개심을 잊고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후우욱! 후우욱!

    구멍이 뚫린 구름 사이로 서서히 활강하는 붉은빛의 거대 동체.

    붉은 피막에 쌓인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주변의 구름이 터지듯 흩어졌다.

    “레드······ 드래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루이스의 혼잣말.

    엘프와 인간들은 하나같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늘 섬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은 다르니스 천공성에 버금가는 덩치.

    머리서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200미터는 가볍게 넘을 것 같았다.

    몸통은 마치 스케일 아머를 입은 것처럼 단단한 비늘로 감싸졌고, 이마엔 세 개의 검은 뿔이 왕관처럼 자리 잡았다.

    목덜미부터 꼬리까지 검붉은 뿔들이 가시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있으며, 흉흉하게 반짝이는 새하얀 송곳니는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섬뜩한 예기를 발했다.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

    루이스는 그제야 왜 천공성이 재앙의 성이라 불리는지 깨닫게 되었다.

    천공성은 마도 제국의 보고.

    당연히 그것을 드래곤의 표적이었다.

    드래곤이 크게 숨을 들이키자, 루이스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도망쳐요!”

    천공성의 측면에 거대한 구멍을 뚫은 것만으로 부족했는지, 드래곤의 브레스는 상부를 휘저었다.

    천공성의 상부엔 전투 중이던 루이스 일행과 엘프들이 위치해 있었다.

    마치 납으로 만들어진 금속판에 가스용접기를 가져다 댄 것처럼, 브레스가 닿은 부위는 붉게 달아올라 흐물흐물해졌다.

    “V1 저공 위성 공간이동 방해 해제!”

    루이스는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날아가며, 엘프 여왕에게 외쳤다.

    “공간이동 방해 풀어요!”

    “그, 그러지.”

    항거할 수 없는 힘 앞에 그들의 다툼은 무의미해졌다.

    여왕은 이프리트의 불꽃을 몸에 두른 채, 장로들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엘프 여왕이 공간이동 방해를 풀었음에도 파랜섬 일대는 공간이동이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였다.

    “주군! 주변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빌어먹을!”

    공간이동이 불가능하고 천공성 주변엔 보이지 않는 결계가 둘러싸고 있다.

    이건 누가 봐도 하늘에서 브레스를 내뿜고 있는 드래곤의 짓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불의 폭포나 다름없는 브레스를 피한 루이스는 급히 마력을 끌어올려 자신들을 가둔 결계를 공격했다.

    콰콰쾅!

    그에 결계는 속절없이 무너지며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천공성에서 도망치려던 찰나 갑자기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사람들과 천공성, 드래곤만이 하얀빛에 둘러싸여 검은 공간에서 존재를 구분할 수 있었다.

    “스페이스 오브 카오스···.”

    그들의 몸은 분명 파렌섬에 있지만, 사고는 해당 공간에서 격리된 상태.

    이곳은 차원과 차원의 틈새라 할 수 있다.

    빠져나가기 위해선 시전자가 마법을 해제하던가 시전자를 쓰러뜨려야 한다.

    때문에 9클래스 마법인 ‘스페이스 오브 카오스’는 결전 마법이라 표현되었다.

    “휴전입니다.”

    루이스는 차가운 눈으로 드래곤을 노려보며 엘프 여왕에게 말했다.

    “······.”

    엘프 여왕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고, 천공성을 파괴하는데 열을 올리는 드래곤을 보며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살기 위해선 방법이 없었다.

    지금 이대로면 보상은 꿈도 못 꾸고 그냥 죽게 생겼으니.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군.”

    여왕의 혼잣말에 루이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제일 짜증 나는 건 접니다.”

    힘들게 차린 밥상을 빼앗으려는 엘프나, 그 밥상을 부숴버리겠다며 갑자기 망치 들고 쳐들어온 드래곤까지.

    루이스는 짜증이 났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들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할 때였으니.

    ***

    하늘을 가득 메운 붉은 비늘.

    검은자에 핏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는 파충류의 것이었다.

    이대로 천공성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엘프 여왕을 바라보았다.

    “힘을 합치면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요?”

    이쪽엔 정령왕 소환자와 그에 비견되는 전투 능력을 가진 마법사가 있다.

    압도적인 포스에 밀려 주춤거리긴 했지만, 나와 여왕은 개개인이 드래곤에 준하는 존재였다.

    “웜급(성룡)이라면 어떻게 비벼보겠지만···.”

    “설마 에이션트(고룡)라는 겁니까?”

    여왕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최악은 우리가 어쩌지도 못하고 드래곤에게 당하는 시나리오를 뜻한다.

    혹시 대화를 하면 통할까?

    “아서라. 애초에 말이 통하는 존재였으면, 다짜고짜 공격하고 격리시키진 않았겠지.”

    “지금 자기 이야기 하는 거 아니죠?”

    내 반응에 그녀는 짧게 혀를 차며 이프리트의 불꽃을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크게 키웠다.

    “일단 시도라도 해보죠.”

    “뭐?”

    싸우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다.

    나는 드래곤을 향해 외쳤다.

    “위대한 존재시여! 부디 멈춰 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외침에 돌아온 대답은 브레스였다.

    “저 개새끼가!”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순진하게 나섰다면 그대로 증발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기겁한 나는 브레스를 이리저리 피하며 엘프 여왕에게 외쳤다.

    “쳐요!”

    “빌어먹을!”

    엘프 여왕도 지금의 상황이 당혹스러운지 식은땀을 흘리며 앞으로 손을 내뻗었다.

    그에 드래곤의 절반 수준까지 덩치를 키운 이프리트가 매섭게 날아갔다.

    어디선가 불 속성인 레드 드래곤과 이프리트는 제법 사이가 좋다고 들었는데, 소환자의 바람을 무시할 생각이 없는지 불의 정령왕은 드래곤을 향해 매섭게 공격을 퍼부었다.

    키에에에에엑!

    드래곤과 이프리트의 피어가 혼돈의 공간을 뒤덮는다.

    이프리트의 공격으로 브레스를 피한 나는 부하들을 압박하는 피어의 기운을 가르며 외쳤다.

    “여러분은 방어에만 신경 쓰세요!”

    “주군!”

    부하들이 하나같이 기겁했지만, 나는 아랑곳 앉고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이프리트가 나름 분투하고 있지만, 드래곤을 상대론 아무리 봐도 역부족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피닉스의 형상을 한 이프리트와 드래곤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압박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여기서 이 지랄을!”

    나는 드래곤을 향해 응축된 블리자드를 마구 날려댔다.

    크아아악!

    그러나 응축되긴 했어도 8클래스 마법은 드래곤에게 소용이 없는지, 녀석의 포효에 풍선처럼 터지며 얼음 가루를 흩날렸다.

    아무래도 녀석에게 마법은 먹히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에는 언령과 마력을 이용해 공격했다.

    내 손을 떠난 집채만 한 마력의 창이 드래곤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꼬리로 창을 쳐냈다.

    상처 부위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지만, 얼마 안 가 말끔하게 복구되었다.

    성퀴벌레에 이은 드퀴벌레의 등장인가.

    “약화! 둔화! 경련! 마비!”

    머릿속에 온갖 저주를 떠올리며 언령을 쏟아부었다.

    언령이 날아들 때마다 녀석의 큰 몸이 움찔거렸지만, 효과는 그리 길지 않았다.

    마력을 드릴 형태로 만들어 연달아 날렸음에도 드래곤은 약간의 피를 흘릴 뿐, 꿋꿋하게 이프리트를 압박했다.

    그래도 나를 무시하긴 힘든지 중간중간 마법을 날렸다.

    “큭!”

    그러다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마법이 날아들었다.

    그것이 ‘파워 워드 킬’임을 직감한 나는 이를 악물며 요단강이 보이는 듯한 환상에 저항했다.

    진짜, 죽을 뻔했다.

    한시라도 긴장을 풀면 그냥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겠다.

    파워 워드 킬을 이겨낸 나는 더욱 독하게 드래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힘의 차이는 뚜렷해졌다.

    그나마 고룡은 아닌지 용언을 쓰는 건 못 봤지만, 고룡에 필적한 성룡인지, 나와 이프리트가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부하와 엘프 장로들은 감히 끼어들 생각을 못 하고,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드래곤이 관심을 보이는 순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으니.

    머릿속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딱히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키아아아아아!

    이프리트가 드래곤에게 날개를 구속당한 채 브레스를 정면으로 맞고는 비명을 질렀다.

    같은 불 속성임에도 브레스를 이겨낼 순 없는 모양이다.

    정령왕이 온전한 상태라면 드래곤을 상대로 밀릴 이유가 없지만, 로이아스 대륙에 소환이 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핸디캡이었다.

    “아아악!”

    결국 이프리트의 날개가 뜯기듯 떨어져 나가자, 엘프 여왕이 오른쪽 가슴을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젠장!”

    이프리트는 피륙으로 이뤄진 육신을 가진게 아니기에 다시금 날개가 돋아났지만, 여왕은 상당한 타격을 입은 듯 한쪽 팔을 축 늘어뜨렸다.

    지상 최강의 생명체, 로이아스의 조율자란 칭호를 가진 만큼 드래곤이 강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런 존재를 쓰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동안 스스로의 강함에 심취해 있던 걸까?

    눈앞에 마주한 존재는 한낱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고고고고!

    “무슨?”

    그때 지상에서 드래곤을 향해 마법 공격이 이어졌다.

    여왕을 위해서인지 엘프 장로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헬파이어를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 전까지 최강의 포스를 자랑하던 헬파이어는 드래곤의 날갯짓에 촛불처럼 꺼져버렸다.

    그럼에도 종류를 바꿔 마법을 사용하는 엘프 장로들의 모습에 내 부하들도 움직이려 했고, 나는 드래곤이 시선을 돌리지 못하도록 더욱 강력한 공격을 퍼부어야 했다.

    [벌레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지는 목소리.

    동시에 드래곤의 눈동자가 지상으로 향했다.

    “피해!”

    그런데 그때.

    천공성에 이상이 생겼다.

    끼기기기기긱!

    엉망진창이 된 천공성 전체에서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기둥이 솟구쳤다.

    그리고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운에 몸을 날리자, 보이지 않는 투명한 공격이 드래곤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마치 지우개로 지운 듯 깔끔하게 증발한 타격 부위에 뼈와 내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키에에엑!

    굳건한 성과 같던 드래곤이 처음으로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했다.

    빠르게 자리를 피하지 않았으면 나 역시 위험할 뻔했다.

    상처는 금세 아물었지만, 회복보다 빠르게 이어지는 공격들이 드래곤의 거대한 신체를 갉아먹고, 드래곤의 몸은 사격용 표적지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뚫렸다.

    “하, 하하.”

    아무래도 파렌섬에 남은 루시엘라가 천공성에 공격 명령을 내린 모양이다.

    ‘저희 외에 침입자들을 배제하세요.’

    그것은 엘프들이 등장했을 때 내가 내린 지시였다.

    그런데 그 지시가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이야.

    내 지시 없이 천공성에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루시엘라의 센스있는 대처.

    마치 너는 아직 쓰러질 때가 아니라는 것처럼 운도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크아아악!

    드래곤 브레스가 다시 천공성에 작렬하고 마치, 누군가의 내구성이 더 뛰어난지를 대결하듯 매서운 공격이 오고 갔다.

    당연히 천공성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볼 이유가 없는 나와 엘프 여왕은 마구잡이로 공격을 퍼부었다.

    덕분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황이 우리에게 유리해졌다.

    과연 마도시대의 정수.

    드래곤을 적으로 둔 문명다운 능력치다.

    “허!”

    그렇게 얼마나 난타전이 이어졌을까.

    드래곤의 전투 패턴이 바뀌었다.

    배 아래 거대한 마력 덩어리가 생성되더니, 마치 내가 사용하는 가시 공격처럼 사방으로 굵직한 마력이 퍼져 나간 것이다.

    그 공격은 천공성의 기둥들을 파괴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노리며 날아왔다.

    나는 얼른 부하들이 있는 장소로 날아가 방어막을 펼쳤다.

    옆을 보니 어느새 도착한 엘프 여왕도 이프리트로 우리를 감쌌다.

    쿠쿠쿠쿵!

    사정없이 방어를 두들기는 공격에 나와 엘프 여왕의 입가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엘프장로들이 급히 샤이닝 쉴드를 더하고 내 부하들이 강화 배리어를 더했다.

    쿵!

    7클래스는 물론 8클래스도 드래곤의 공격 앞에 종이장에 불과 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연타를 막아냈다.

    상처를 치료하고 또 치료함에도 점점 회복속도보다 천공성에 의한 상처가 빠르게 늘어갔다.

    드래곤은 결국 우리보단 천공성을 먼저 부셔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공격을 한 곳에 집중시켰다.

    끼이익!

    천공성이 심상치 않은 비명을 지르자, 다급해진 나는 코어의 마력을 모두 써버린다는 생각으로 공격을 쏟아부었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발아래에서 엄청난 폭음이 울리고.

    천공성이 기울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천공성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지, 길이가 100미터는 될법한 금속 작살이 드래곤의 배를 꿰뚫은 상태였다.

    키에에에에엑!

    팟!

    드래곤의 비명과 함께 검게 물든 하늘이 푸른 빛으로 되돌아오고,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코끝을 자극했다.

    드래곤의 격리 마법이 깨졌다.

    “지금!”

    내 외침에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던 부하들이 얼른 천공섬에서 탈출했다.

    드래곤은 말뚝을 뽑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작살의 줄이 당겨지면서 천공성과 찰싹 달라붙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 천공성의 정수를 얻겠다니 하는 생각은 없어졌다.

    살아야겠다는 생각뿐.

    [루시엘라! 자폭기능 있어요!?]

    나는 멀리서 단검을 손에 쥔 채 천공성을 올려 보고 있는 루시엘라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어. 이, 있어.]

    [자폭시켜요!]

    [알았어!]

    드래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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