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84화 (8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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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천공성

    나는 전생에 농가의 자식으로 10여 년 동안 밀죽을 주식으로 살아온 탓에 맛이라는 것에 굉장히 관대했다.

    환생 초기엔 고향의 음식인 김치와 삼겹살, 자장면, 라면 등이 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농민에게 그런 음식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사치일뿐더러 살기 위해 배를 채우다 보니 나는 어느새 식도락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자연히 지구의 맛을 잊었고, 지금에 와서는 이 세계의 음식에 길들어졌다.

    지글지글.

    “네? 삼겹살을 처음 먹는다고요?”

    작은 화로 위에 손수 삼겹살을 굽던 제이드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부위는 많이 먹었죠, 이렇게 즉석에서 구워 먹기보단 대부분 훈제나 오븐 구이이긴 했지만요.”

    “그 정도 위치면 먹고 싶은 거 다 만들어 먹으면 되잖아요?”

    “딱히 별로 생각이 안 나서요.”

    아무래도 그는 이 세상에 온 지 5년여밖에 되지 않았고, 제법 살림살이도 괜찮아서 지구의 음식을 꽤 연구했던 모양이다.

    “김치도요?”

    재미교포 2세라면서 입맛은 토종 한국인이다.

    “사우어크라우트를 먹으면 되죠. 거기에 레드페퍼 치면 김치랑 비슷한 거 아니에요? 가끔 스테이크 먹을 때 그렇게 먹었는데.”

    상상도 할 수 없다며 몸을 부르르 떤 그는 하나의 가설을 내세웠다.

    “신체가 이곳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요? 전 미치는 줄 알았는데요.”

    “그런가?”

    양상추 위로 삼겹살을 얹고 손수 만든 고추장과 김치로 쌈을 싸서 내게 건네는 제이드의 행동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콘스탄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식기는 자네가 쓰던 것이 아닌가?”

    “네?”

    아무래도 그가 사용하던 젓가락으로 쌈을 싸주다 보니, 비위생적이라 느낀 모양이다.

    콘스탄틴의 불쾌하단 표정에 제이드는 어색하게 웃었다.

    “됐어요.”

    나는 개의치 않고 그가 건넨 쌈을 받았다.

    “주군 독검사를···.”

    독이란 이야기에 제이드의 안색이 하얘졌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며 쌈을 입에 넣었다.

    “음···.”

    입안에서 느껴지는 풍성한 맛.

    삼겹살과 김치는 지구에서 먹던 맛과 별반 다름없으며, 고추장은 조금 칠리소스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좋네요.”

    내가 작게 감탄사를 터뜨리며 놀란 모습을 보이자, 콘스탄틴이 자신도 줘보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에 제이드는 책잡힐라, 새 젓가락으로 쌈을 싸서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나처럼 쌈을 먹은 콘스탄틴이 헛웃음을 흘렸다.

    “괜찮군요.”

    졸지에 요리사가 된 제이드는 안도하며 말했다.

    “이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못 봤습니다.”

    “그렇군.”

    이 세상에도 지구의 돼지, 소, 닭, 양과 비슷한 종류의 가축이 많다.

    완전히 모습과 맛까지 똑같다고 볼 순 없지만, 비슷한 맛을 찾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나와 콘스탄틴, 제이드는 작은 화로에 둘러앉아 있었고, 주변에 많은 시녀와 조리 보조들이 서 있다.

    조금은 기이한 장면이지만,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제이드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피치 못하게 이런 모습이 되었다.

    “김치가 대단하군요. 어쩜 이리 맛이 비슷한지.”

    내 감탄에 그의 어깨가 높아졌다.

    그렇다고 감탄할 정도로 뛰어난 맛은 아니다.

    장르는 다르긴 하지만, 그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다 보니, 영주성의 셰프와 맛을 비교하긴 힘들었다.

    “화로에 직접 구워 먹는 고깃집을 차리면 영주민들을 상대로 장사가 잘될 것 같네요. 그 외에도 할 줄 아는 새로운 요리가 있으면 저의 영지에서 펼쳐주기 바랍니다.”

    “물론이죠.”

    기뻐하는 제이드가 열심히 고기를 뒤집었고, 난 삼겹살을 집어 먹었다.

    제이드는 결국 내가 거둬들였다.

    더는 폐를 끼칠 수 없다는 그에게 보답하고 싶으면 내 수하가 되라는 말로 끌어들였다.

    고급주택과 시종, 경호원을 내려준 나는 앞으로 그를 우리 영지의 문화발전을 위한 주춧돌로 써먹을 생각이다.

    다른 건 몰라도 지구에서의 기억 중 대중문화는 이 세계에서 잘 통하는 부분이었으니.

    무엇보다 그는 지구에서 나름 유명했던 싱어송라이터였던 만큼 지구의 대중음악을 전파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제한하는 것보다 다양할수록 좋으니까.

    그래서 제이드를 문화진흥부의 전담 고문으로 임명했다.

    위치는 아르비스 공작령의 고급 행정관인 부장 정도.

    낙하산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뜻이다.

    “아, 그러고 보니 수색대에서 연락이 왔는데, 제이슨 씨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깨어난 장소 있잖아요. 거기가 다르크 산맥 제하 계곡 쪽 맞아요?”

    또한 그는 문화진흥의 주춧돌이기도 하지만 차원이동 연구의 중요 샘플이기도 하다.

    이는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보다 내 개인의 호기심 충족을 위한 것이다.

    아직 손에 쥔 자료 하나 없고, 걸음마도 떼지 못한 상황이지만, 이것이 아마 내 인생 최대의 연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네, 맞습니다. 다르크 산맥 초입에 세르기스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마을 입구에서 북쪽으로 3킬로미터 정도 직진하면 나오는 계곡입니다.”

    “음.”

    “왜, 그러십니까?”

    “그 주변을 탐색하긴 했는데, 별다른 걸 발견하지 못해서요.”

    “그때 분명 비행기의 잔해를 비롯해 이것저것 널려 있었는데···.”

    어쩔 수 없다.

    탐사 범위를 확대하는 수밖에.

    그가 처음 눈을 뜬 장소에 차원이동의 단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물. 우물.

    나는 경계심 가득했던 모습과 달리 맛있게 삼겹살을 해치우는 콘스탄틴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주군과 함께 자리할 수 없다며 튕기던 사람이 제일 잘 먹고 있었다.

    “아리아씨는 어때요?”

    “영주님 덕분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족한 근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리아의 이야기가 나오자 제이드는 내게 무한한 감사를 보냈다.

    그에게 감사하단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말버릇처럼 느껴질 정도다.

    “잘됐네요. 그럼 어서 혼인하셔야죠.”

    “네, 안 그래도 슬슬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좋을까?

    사랑이란 감정이 내겐 너무 모호해서, 행복함이 가득 담긴 그의 모습은 언제봐도 신기했다.

    내 전부를 줄 수 있는 연인이란 존재는 어떤 느낌일까?

    고기 구워 먹으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나였다.

    *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을 통칭 ‘베이스 플래닛’이라 한다.

    이 베이스 플래닛에 존재하는 육지는 단일 대륙인 로이아스가 98%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2%는 자잘한 섬이라 할 수 있다.

    로이아스 대륙 자체가 워낙 크기에 섬들을 자잘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 2%만 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면적이다.

    섬들은 대부분 로이아스 대륙 4대 만(바다가 육지로 파고 든 지형)에 포진되어있으며 마드세인 왕국의 경우 칼바도스 만에 바다를 두고 있기에 적지 않은 섬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이아스 대륙의 바다는 워낙 위험해서 근해의 섬이 아닌 멀리 떨어진 섬은 국가에서 관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륙엔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5대 금지가 있는데, 그 5대 금지를 제외하고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베이스 플래닛의 대해 전체다.

    그 이유는 해양 몬스터의 원인이 크다.

    상급 괴수 중에서도 레비아탄, 크라켄, 터틀드래곤, 씨서펜트, 메갈로돈 등 수위에 드는 초대형 몬스터들이 득실대기 때문.

    또한 바다는 인간을 대신해 머맨과 머메이드, 세이렌 등 인간형 몬스터가 굉장히 많았는데, 소문에 의하면 인간과 비슷한 숫자가 있다고 한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미드랜드따윈 우스운 대해의 면적을 생각하면 마냥 헛소리라 치부하기도 힘들었다.

    덕분에 로이아스 대륙의 섬 중 과반수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라 할 수 있다.

    “절경이군.”

    에메랄드빛 바다를 품은 새하얀 백사장.

    자연을 그대로 품고 있는 드넓은 원시림.

    나는 마드세인 왕국령의 섬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파렌섬을 둘러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휴양지로 꾸미면 좋겠다.”

    대양에 위치한 섬인지라 관리에 애를 먹겠지만, 그만큼 파렌섬의 풍경은 마드세인에서 보기 힘든 풍경을 갖고 있었다.

    파렌섬은 열대기후를 갖고 있다.

    관리를 잘하기만 하면 휴양지로 제격인 데다가 크기도 상당히 커서 아르비스 공작령에 버금간다.

    더구나 섬 내부엔 몬스터나 위험한 짐승이 없기에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파렌이 대양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휴양지로 삼기엔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주변을 서치해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크라켄과 씨서펜트로 보이는 거대 생명체의 반응이 느껴졌으니.

    뭐, 어차피 오늘은 관광지 탐사를 위해 온 것이 아니기에 상관은 없었다.

    두두두두!

    쿵! 쿵!

    내 뒤로 원시림을 훼손하며 땅을 고르게 하고, 마력포대를 비롯해 각종 아티팩트를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쪽엔 대외비로 알려진 마드세인 왕국의 첫 양산 기간트 ‘마인트1’ 5대가 무장을 갖춘 채 서 있고, 하늘엔 많은 저공 위성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중엔 감시용 장비도 있지만, 대부분이 자폭 공격용 위성이었다.

    위성은 플라즈마 버스터와 플레임 블레스터들이 인챈트 되어 있지만, 그중에 헬파이어가 인챈트된 것도 있었다.

    여기에 나를 비롯한 대마법사들의 화력이 더해지면, 만약의 상황이 발생해도 어렵지 않게 천공성을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를 향해 루시엘라가 말했다.

    “천공성이 소환된 동안 나는 네 허가가 없으면 천공성에 명령을 내릴 수가 없어.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

    “이건 루시엘라를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대비죠.”

    “대비?”

    천공성을 소환하고 안에 있는 핵심 정수들을 챙긴다.

    나는 아주 간단하게 생각했다.

    다른 유적들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천공성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자에서 마지막 장에 쓰인 문구가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천공성의 또 다른 이름은 재앙의 성. 항상 많은 피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재앙의 성이라 칭해졌다.]

    항상 많은 피해를 발생시킨다니.

    꺼림칙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 문구 하나 때문에 천공성의 존재를 마음속에 묻어둘 순 없으니, 대비를 철저하게 할 뿐이다.

    간략한 내 설명에 루시엘라 또한 꺼림칙 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괜히 나섰나?”

    “이미 늦었어요.”

    “그래서 나를 무장 시킨 거군.”

    “그렇죠.”

    만약을 대비해 그녀는 평소의 드레스 차림이 아닌, 활동복 차림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 것과 같은 마도시대 로브를 쓰고 매직스펠 링을 끼고 있어 만약의 사태를 단단히 대비한 상태다.

    “주군, 배치 끝났습니다.”

    어딘가 신나 보이는 헤르만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병과 영주성 소속의 장인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루시엘라에게 건네줬는데, 세상 무서운 거 없을 것 같은 그녀가 긴장한 기색을 보이자, 나는 참고하란 식으로 말했다.

    “만약 돌발 상황이 발생해서 루시엘라님의 목숨을 위협받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망치세요.”

    “뭐?”

    “웬만해선 제가 지켜 드리겠지만, 저조차 누군가를 챙길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스스로 목숨 부지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 아티팩트에 도주를 위한 텔레포트와 블링크, 플라이가 담겨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좋게 말할 수도 있지만 포장 하나 없는 대답에 그녀는 어째서인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루시엘라를 바라보았다.

    “저 이래 보여도 정신 연령은 50대입니다만?”

    “나의 3분의 1밖에 안 되네.”

    “인간의 50대면 노인이거든요?”

    헷갈리는 짓 하지 말라며 그녀에게 딱밤을 날린 나는 턱짓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흐읍, 후.”

    루시엘라는 단검의 날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천공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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