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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83화 (8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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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 허락에 그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

    나는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고, 응접실의 문을 열었다.

    밖에는 집사와 콘스탄틴뿐만 아니라 루시엘라도 함께 서 있었다.

    루시엘라는 내 시선에 헛기침하며 유유히 방으로 돌아갔다.

    애초에 방음 마법을 사용한지라 감청이 불가능하다.

    대체 무슨 볼일이 있어서 내가 나오길 기다렸던 걸까.

    “왜 저래?”

    오늘따라 루시엘라의 행동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저, 잠시 외출합니다. 그렇게 아세요.”

    집사에게 짧은 통보를 하고 콘스탄틴과 응접실로 돌아왔다.

    “그럼 가볼까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마법 몇 번이면 끝나는 일에 꾸물거릴 필요는 없겠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언어 사전에서 감사하다는 말 빼고는 다른 대답이 사라진 모양이다.

    나는 영지의 공공 텔레포트 진에 간섭해서 페리트란 소도시의 좌표를 알아냈다.

    “이동.”

    그리고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현재 위치는 소도시 페리트의 상공 100미터.

    기겁하는 제이드를 진정시키며 서서히 고도를 낮췄다.

    화려한 백색의 로브와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무장을 갖춘 콘스탄틴이 등장하니, 주변 사람들은 알아서 우릴 피했다.

    “집이 어디에요?”

    “저, 저깁니다.”

    작지만 노라 마을에 있던 우리 집보다 훨씬 비싼 집.

    벌이가 제법 괜찮은 게 사실인 모양이다.

    “아리아 나왔어!”

    그렇게 좋을까?

    그의 목소리는 한껏 업이 되고 기쁨을 주체 못 했다.

    “응?”

    하지만 방문을 연 제이드가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리아! 아리아 어딨어!”

    이어서 화장실의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없는지 도로 닫았다.

    “이게 무슨?”

    이상함을 느낀 나는 바로 감각을 펼쳤는데 집안에선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제이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구 집에 찾아올 만한 사람 있어요?”

    “제가 없는 동안 아리아를 돌봐주시는 아줌마가 있긴 하지만, 집 밖으로 데려갈 이유가 없어요.”

    뭔가 심상치 않았다.

    패닉에 빠진 제이드, 나는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흔적.”

    팟!

    나를 중심으로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이어서 주변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

    그리고 내가 말을 잃자, 그는 무슨 일이냐며 매달렸다.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나는 흔적 마법을 제이드와 콘스탄틴도 볼 수 있게 했다.

    “3시간 이내의 흔적입니다.”

    “무, 무슨.”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집안이 온통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큰 발자국 투성이었으니.

    그건 결코 한두 명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혹시 원한 맺은 사람 없습니까?.”

    이건 누가 봐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나갔다고밖에 볼 수 없다.

    내 물음에 그는 ‘아아’란 짧은 말만 내뱉으며 고개를 내젓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거 일이 귀찮게 되었다.

    도와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 상태에서 모른 척 물러날 수도 없고.

    나는 한 사람 살리는 셈 치고 그의 어깨 짚으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리죠.”

    “고, 공작님.”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올려 보았다.

    “아직 100% 납치라고 볼 순 없으니 진정하시고, 일단 제이드 님은 주변을 탐문 해주세요. 분명 목격자가 있을 테니까요.”

    만약 돈을 노린 납치라 해도, 그가 그녀를 찾아다니면 누군가가 접근을 해올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나는 제이드에게 위치 파악을 위한 마킹 마법을 사용했다.

    이어서 그가 황급하게 집을 나서자, 아공간에서 조그마한 구슬을 꺼내 발로 밟아 으깼다.

    그에 자그마한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오래 걸리지 않아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콘스탄틴이 문을 열어 주자, 열려 있던 문이 스스로 닫혔다.

    그리고 투명망토를 걸친 마드세인 왕국의 정보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비스 공작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위스워드 페리트의 담당자인 폴이라 합니다.”

    “빠르시네요.”

    “어느 분의 부름인데, 감히 여유를 부리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에게 지시했다.

    “이 집에 거주하던 여성이 사라졌습니다. 납치일 가능성이 커요. 그녀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해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움직이겠습니다.”

    “네!”

    정보원이 다시금 투명망토로 모습을 감췄다.

    나는 바닥에 그려진 발자국의 흔적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집에서 멀어질수록 발자국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다시 흔적을 사용하자 주변의 모든 흔적이 더해지면서 점점 추적이 어려워졌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광장쪽에서 추적을 포기해야 했다.

    “이런 걸 보면 마법도 만능은 아니란 생각이 드는군요.”

    “도시가 아닌 외곽이었으면, 놓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린 광장을 둘러보며 방법을 궁리했다.

    소도시이긴 해도, 페리트는 유동인구가 제법 많았다.

    그때 병사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갈 길 가도록.”

    언령이 담긴 내 말에 병사들은 하나같이 경례를 올리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모습을 감추고 싶지만, 그랬다간 정보요원 역시 우리를 못 찾고 말 것이다.

    머리를 굴리던 찰나, 마킹이 되어있는 제이드가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것을 느낀 나는 콘스탄틴의 어깨를 짚고 블링크를 사용했다.

    제이드의 뒤에서 나타난 나는 그를 붙잡았다.

    “헉!”

    “뭐, 알아냈어요?”

    깜짝 놀란 그는 울상이 되어 답했다.

    “영주성에서 기사와 병사들이 와서 데려갔답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음.”

    “이건 뭔가 오해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저희는 잡혀갈 만한 짓을 한 적이 없거든요.”

    그의 말투엔 억울함이 가득했다.

    그래도 위치를 알았으니 다행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둘을 데리고 마드세인으로 데려가면 되는 일이니.

    “만약 트러블이 생기면 두 분은 더 이상 이곳에 못 살게 될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구해 드리죠.”

    “네, 상관없습니다.”

    일말의 고민 없는 즉답.

    사랑을 모르는 나로선 그의 행동이 신기했다.

    “공작님.”

    그때 내 앞으로 정보원이 모습을 드러내 무릎을 꿇었다.

    어차피 그의 기운을 느끼고 있던 터라 아무렇지 않았지만, 제이드는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성에 있다는 것 같더군요.”

    “맞습니다. 아리아 양의 체포를 지시한 사람은 이곳 페리트 자작령의 소영주이며, 뒤에서 사주한 사람은 레스토랑 피앙세의 사장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네?”

    그의 보고에 제이드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유는요?”

    “피앙세의 사장이 제이드씨의 관리가 점점 쉽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피앙세는 도시의 주요 관광자원이고, 소영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도움을 청한 거고요.”

    아픈 사람을 볼모로 삼을 생각을 하다니.

    꽤나 사악하지 않은가.

    뭐 그들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결과겠지만, 아쉽게도 운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딱히 그들을 처벌할 입장은 아니지만, 가볍게 내뱉은 약속에 의해 이곳 소영주와 피앙세 사장의 운명이 정해졌다.

    “아리아님은 무사하죠?”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영주가 이상한 성벽을 갖고 있어서 시간을 오래 끌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상한 성벽?

    “소영주는 저항 못 하는 상대를 괴롭히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나는 혀를 차며 눈동자가 쉼 없이 흔들리는 제이드와 콘스탄틴, 정보원과 함께 영주성 방향으로 이동했다.

    “아리아 씨의 위치는요?”

    내 질문에 정보원이 빠르게 대답했다.

    “지하에 있습니다. 정문 내성으로 들어가서 우측의 통로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정보 부분에 투자한 보람을 느낀다.

    “어,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쾅!

    “끄악!”

    문지기의 물음에 나는 대답대신 손을 내저었고, 그들은 투명한 무언가에 부딪혀 멀리 날아갔다.

    우리는 막힘없이 전진 했다.

    “침입자다! 쏴라!”

    병사가 앞을 막아서면 막아서는 족족 죽이지 않는 선에서 타격을 입혔고,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온 화살은 방어막에 가로막혔다.

    “어, 어어?”

    병사들은 하나같이 당황하며 멍청한 소리를 낼뿐 아무도 나를 막지 못했다.

    그러나 변방이긴 해도 역시 제국의 귀족이란 걸까?

    침입자 경고가 울림과 동시에 텔레포트 방해진이 실행이 되고, 제대로 된 마법병단과 기사단이 빠르게 출동해 앞을 가로막았다.

    마드세인이었다면 결코 자작위의 귀족이 지닐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쳐라!”

    뭐, 그래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콰아앙!

    빡!

    펑!

    여러 소음이 요란히 울려 퍼진다.

    귀찮다는 투로 휘저은 손에 기사들의 무장이 분해되어 날아가고, 마법 한 번 날리지 못한 마법사들은 일제히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덕분에 영주성 입구에서 내성으로 이어지는 정원까지 걸음 한번 멈추는 일이 없었다.

    고고고.

    그런데 그때, 6클래스의 레이저 캐논 둘이 날아들었다.

    “자작 주제에 6클래스 마법사를 휘하에 둘이나 둔 건가?”

    왕국과 제국의 차이가 이렇게 큰 걸까?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페리트 자작령이 우스워 보이더냐!”

    병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나타난 두 장년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있어 앞서 쓰러진 녀석들보다 조금 더 튼튼한 장애물에 불과했다.

    손가락을 튕기자, 레이저 캐논 두 발이 깨끗하게 증발하고, 두르고 있던 방어막에서 붉은 가시가 쏘아졌다.

    푹!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든 가시는 두 고위 마법사의 복부를 관통했다.

    “이, 이건?”

    “살고 싶으면 얌전히 힐이나 하고 계시죠.”

    빠악!

    “컥!”

    내 손짓에 그들은 예외 없이 날아갔다.

    화려한 등장과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퇴장이었다.

    “저기로 가면 되는 거죠?”

    그렇게 프리패스나 다름없이 성 내부에 진입한 나는 우측의 계단을 가리키며 물었다.

    토끼눈을 한 정보원과 제이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 맞습니다. 지하 2층입니다.”

    지하 2층에 도착한 후 흔적마법을 사용했다.

    바닥에 나타난 발자국들은 모두 한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저곳이군.”

    목적지 앞에는 두 명의 기사 서 있었는데, 밖에서 들려온 폭음 때문인지 그들은 꽤나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어?”

    빡!

    마지막 방해물인 그들까지 날려버리고는 지체 없이 방문을 열었다.

    “내가 함부로 들어오지···.”

    그곳은 나름 깨끗한 침실이었는데, 침대 위에 앙상하게 마른 여성이 반쯤 알몸으로 누워 있었고, 그 옆에 남근을 덜렁거리며 서 있는 남성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웬 놈이냐!”

    그곳은 방음이 확실히 되어있었다.

    덕분에 밖의 상황을 알아채지 못한 모양.

    “병신이네. 볼모로 삼으려고 데려갔으면 얌전히 구금 해놓을 것이지,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내 말에 그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리아!”

    “제, 제이드.”

    제이드가 폭풍 오열하며 달려갔고, 병색이 완연한 여성도 눈물을 흘렸다.

    “이것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

    “뭐긴 고자지.”

    녀석의 다리 사이에 거슬리던 살덩어리가 산산이 조각이 나서 떨어졌다.

    “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 소영주.

    이어서 그의 손목과 발목이 떨어져 나갔다.

    “끄아악!”

    덕분에 고장난 마네킹 같은 모습이 된 그가 비명을 질러댔다.

    다다다닥!

    문밖에서 요란하게 발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코어 마력으로 방을 둘러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툭.

    다행히 아리아는 겁탈은 당하지 않은 것 같다.

    제이드가 그녀의 옷을 추슬러주곤 소영주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병자를 상대로 성욕을 느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 변태 앞에 철제 단검을 던지며 말했다.

    “직접 처리 하실래요?”

    제이드에게 복수의 권한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차가운 눈빛으로 단검을 집어 든 제이드가 소영주에게 다가갔다.

    “개새끼!”

    “사, 살려···.”

    그는 가차 없이 소영주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날렸다.

    푹!

    “끄아아악!”

    하지만 제이드는 검을 다루는 인물이 아니었고, 소영주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어깨에 검이 박혔다.

    그런데 제이드는 검을 뽑아 다시 휘두르지 못했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에 몸이 굳은 것이다.

    전생의 전쟁터에서 많이 보아온 모습.

    차라리 한 번에 죽이면 덜 하는데, 상대가 자신의 공격에 고통스레 몸부림치는 모습은 큰 트라우마를 심어준다고 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죽이는 건 제가 할게요.”

    나는 제이드를 다독이며 팔을 잡아당겼고, 그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딱.

    “으아아악!”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상어처럼 솟구쳐 오른 붉은 마력이 소영주를 통째로 삼켰다.

    “······.”

    이런 내 행동에 제이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제이드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연인인 아리아였다.

    아리아가 손을 꼭 잡자 정신을 차린 제이드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이드의 모습에 나는 스스로가 살인에 무감각해졌다는 사실을 느끼며 쓰게 웃었다.

    “제이드님. 아리아님에게서 떨어지세요.”

    “네?”

    다신 놓지 않겠다는 듯 아리아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제이드가 움찔거렸다.

    “치료해달라면서요.”

    “가, 감사합니다.”

    제이드는 그제야 급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영문을 모르는 아리아는 내가 다가오자 어깨를 떨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내가 무서운 걸까.

    나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부활.”

    파앗!

    마치 성녀의 부활처럼 눈부신 순백의 빛이 주변을 물들인다.

    완전히 빛에 삼켜진 그녀는 놀란 듯 손을 허우적거렸으나, 빛은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다.

    “아아.”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심장 박동.

    더불어 깡말랐던 체형이 표준까진 아니어도 보기 좋아졌으며, 탄력을 잃은 피부에선 윤기가 흘렀다.

    자신도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아리아는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았다.

    제이드는 감격하며 격하게 아리아를 끌어안았다.

    “······.”

    나는 정보요원에게 지시했다.

    “피앙세 사장 처리해 주세요.”

    “네.”

    나는 세상 다 가진 표정을 지은 제이드를 바라보며, 앞으로 그를 어떻게 굴릴지 고민했다.

    *

    천공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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