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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82화 (8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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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말도 안 돼!”

쿵!

내가 잔뜩 동요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테일러가 움찔 놀랐다.

옥상정원을 거닐던 루시엘라가 무슨 일인가 싶어 집무실로 돌아오고, 난 테일러의 팔을 잡아채며 물었다.

“이 쪽지 준 사람 어딨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놀라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일 터.

테일러는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해, 행정관청 민원실에 있을 겁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나의 뒤를 어째서인지 루시엘라가 따라왔다.

덕분에 콘스탄틴과 메어리를 비롯한 많은 호위기사가 따라붙으면서 대인원을 이루게 되었다.

“충성!”

이런 우리가 지나갈 때면 병사와 기사들이 군기 가득한 얼굴로 경례를 올렸다.

이어서 나는 행정청에 도착했고, 초조한 기색을 보이는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

비싼 값을 주고 텔레포트 게이트로 마드세인에 입국한 제이드는 페리트와 비교되지 않는 거대 도시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여, 여기가 아르비스 공작령?”

세계정세에 대해선 잘 몰라도, 위스워드 제국이 대륙에서 손꼽히는 거대 제국이고 마드세인 왕국이 소국이란 것쯤은 그도 알고 있다.

요즘 마드세인이 나름 잘나가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국력의 차이는 뒤집을 수 없는 수준이고, 문명력 또한 마법사의 나라인 위스워드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눈에 들어온 아르비스 공작령의 발단된 모습은 그가 생각해온 이 세상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도로를 달리는 마력차와 하늘에 떠 있는 경비용 비공선, 깔끔하게 줄 지어선 건물들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개중엔 10층이 넘는 빌딩 같은 건물들도 상당히 많아 이곳이 로이아스 대륙인지, 유럽의 어느 대도시인지 헷갈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그를 만나야 해.”

그는 영주성으로 향하기 위해 길을 알려줄 사람 하나 잡아보려 했는데, 위스워드 제국에선 상류층이나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있어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근처 과일과게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어···.”

“어서오세요! 아, 외국인이시군요? 여행 중이십니까?”

다행히 제이드의 복장은 최고급은 아니어도 고급축에 속하다 보니, 점원은 그를 우습게 여기지 않고 친절히 대했다.

미드랜드는 사투리는 있을지언정 통일된 하나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한다.

때문에 외국인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복장과 외형이었다.

케일론인의 얼굴을 닮은 제이드의 모습에 점원은 그를 외국인이라 판단했다.

“네, 길 좀 물으려고 하는데요. 혹시 영주성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페리트라면 멀리서도 영주성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이곳은 건물들이 높고, 도시 자체가 워낙 커서 영주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주성이요? 시청이 아니라?”

하지만 이어진 점원의 물음에 제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영주성을 가시려면 마드세인 왕국 북동부의 발테르 시로 가셔야 합니다. 그곳이 아르비스 공작령의 수도거든요.”

그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제이드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그를 향해 과일과게 점원이 다시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르비스 공작령은 원래 따로 떨어진 영지 3개가 합쳐져서 만들어졌거든요. 이곳은 마드세인 중남부 아르비스 공작령의 다리우스 시고, 다른 두 영지는 왕국 북동부에 있습니다. 외국분들이 헷갈릴 만하죠.”

영지가 따로 떨어져 있다니.

왜 그렇게 불편하게 되어있는 건지.

“가, 감사합니다. 발테르 시는 여기서도 텔레포트로 갈 수 있는 거죠?”

“물론이죠.”

제이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텔레포트 게이트를 향해 돌아갔다.

다행히 아르비스 공작령끼리의 텔레포트 비용은 굉장히 저렴해서, 필요 이상의 지출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다리우스 시도 극도로 발달된 모습을 갖고 있었지만, 발테르시는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방금까지 있던 곳과 다른 점이라면, 고층 건물이 더 많고 길이 넓으며, 주변의 모든 게 새것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많은 수의 인부들이 바쁘게 주변을 오가는 것을 보며 이 화려한 도시가 아직도 성장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주변의 상인에게 영주성의 위치를 물었다.

영주성은 텔레포트 게이트와 멀지 않은 덕분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는데, 입이 떨 벌어지는 거대 건축물에 위축되고 말았다.

이렇게 큰 성이라니, 같은 귀족이라곤 해도 페리트의 영주와 완전히 급이 다른 모양이다.

영주성의 입구를 서성이던 그는 집에 누워 있는 아리아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입구에 향하는데, 문지기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외지인이군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군기 잡힌 병사의 물음에 그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정면승부를 보기로 했다.

“저는 아르비스 공작 전하와 동향인입니다.”

그 말에 병사는 제이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딱 봐도 마드세인의 사람이 아닌데, 동향인이란 말에 의문을 표하면서 기사로 보이는 상관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의 목숨을 지구보다 훨씬 가볍다.

그래서 기사가 힐끔 바라볼 때마다 그는 목을 움츠려야 했다.

철컥철컥.

번쩍이는 풀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기사가 다가와 물었다.

“노라 마을 출신이오?”

“그건 아니지만 확실한 동향인입니다! 제 메시지를 전달해 주시면 영주님께서 알아봐 주실 겁니다.”

거짓이 아닌 것 같은 절실함이 담긴 말투.

기사는 결국 병사 한 명을 불렀다.

“행정청으로 안내하도록.”

“네! 절 따라오시죠.”

“혹시라도 오해받을 짓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성안에 지켜보는 눈이 매우 많으니.”

“네.”

패기 하나로 영주성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제이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병사를 따라 길고 긴 정원을 걸었다.

곳곳에 삼엄하게 경계를 서는 기사와 병사들.

누구 하나 허투루 근무하지 않고, 눈빛들이 살아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지의 모습과 병사, 기사들의 장비 수준을 보면 아르비스 영지가 굉장히 부유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아르비스 공작은 대륙에서도 3명뿐인 8클래스의 대마법사여서 그럴 터.

제이드는 문뜩 자신은 이 세계로 오고 엄청나게 고생했는데, 아르비스 공작은 어떻게 이런 위치까지 올랐는지 궁금해졌다.

만약 이 세상이 만화나 영화 같은 이야기 속이라면, 자신은 엑스트라고 아르비스 공작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나 고개를 내 저으며 불필요한 생각을 지운 그는 머릿속에 아리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웠다.

잠시후 도착한 행정청은 마치 은행 창구를 연상시켰는데,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행정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병사가 남성 행정관에게 제이드를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영주님과 동향분이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제이드는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 바로 직설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에, 미리 준비해온 메모를 그에게 건넸다.

“이건?”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그 문자를 보시면 바로 반응을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꼭 전달 부탁드립니다.”

그에 행정관이긴 해도 말단인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함부로 영주님께 물건을 전해드릴 수는···.”

“제발 부탁드립니다! 영주님께서 이걸 보시면 저를 알아주실 거에요!”

그의 절박할 태도를 무시할 수 없던 행정관은 결국 상관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전달해드리죠. 그런데 만에 하나 영주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면 영주님을 우롱한 대가를 치루셔야 할 겁니다.”

제이드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데, 그의 쪽지가 행정관에게 전달되고 한참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행정관들의 말에 의하면 여러 보안 절차를 통과한 후에나 쪽지가 전달될 거라 했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자 초조함이 몰려왔다.

철컥. 철컥.

그런데 그때.

충성!

큰 경례 소리가 울려 퍼지고, 행정관청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제 겨우 13~14살 정도 됐을까 싶은 소년이 행정관청으로 들어섰다.

앳된 얼굴이지만, 그의 뒤를 따라오는 인물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았다.

서늘한 눈빛을 가진 때깔부터 다른 갑옷의 기사들과 감히 접해 본 적 없는 절세의 미인까지.

그저 평범하게 걷고 있을 뿐인데도.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옆에 있던 병사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아르비스 공작과 눈을 마주치고도 멀뚱히 서 있던 제이드가 사색이 돼서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세요.”

소년의 지시에 다시금 병사가 옆구리를 찌르고, 제이드는 어정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아르비스 공작입니다. 당신은 누구죠?”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 소년 아르비스 공작이라니.

하지만 이내 그의 모습은 마법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제이드는 공손하게 답했다.

“위스워드 제국, 페리트 영지의 제이드라 합니다.”

“제게 준 쪽지. 당신이 쓴 거 맞습니까?”

공작의 물음에 제이드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한국인 부모를 둔 미국인입니다. 아르비스 공작님도 지구인 맞으시죠?”

“······.”

다급함이 느껴지는 그의 물음에 아르비스 공작의 눈동자가 쉼 없이 흔들렸다.

“후, 자리를 옮기죠. 조용히 이야기해요.”

“네!”

이후 아르비스 공작은 답이 없었으나, 자신의 생각이 맞음을 깨달은 제이드의 표정은 더없이 밝아졌다.

***

한 번쯤은 생각해봤다.

내가 이대로 마도 기술들을 발전시키고 스스로도 더욱 높은 위치에 오른다면,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물론, 지난 생과 달리 지구에 대한 애착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곳에 두고 온 가족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히 갖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 지구인이 등장했다.

더구나 나와 다르게 차원 이동이란 형태로 원래의 몸을 가진 채.

‘설마 지구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의 존재는 하나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오는 방법이 있으면 가는 방법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주절주절 자신의 프로필과 그동안 로이아스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설명하는 그를 보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단둘이 응접실에 남게 된 상황에서 제이드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의 처우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그의 초기 환경은 나보다 좋지 않았다.

이곳에서 새로운 가족을 얻은 나와 달리, 그는 혈혈단신이었으니.

하지만 그는 음악이란 특기 덕분에 지금은 적지 않은 돈을 벌며 잘 살아가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크림 파스타 먹으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하하, 너무 기쁩니다. 정말로 저와 같은 지구 출신이 있다니.”

환생과 차원 이동이란 점이 달랐지만, 그가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그래서 제게 바라는 것이 뭔가요?”

“네?”

“뭔가 이유가 있으니, 찾아오신 거 아닙니까? 혹시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묻는다면 소용없습니다. 저도 모르니까요.”

직설적인 물음에 그는 당황했다.

그러나 마음을 추스른 듯 조용히 내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제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데 심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제발 동향의 정을 생각하시어 공작님께서 그녀를 치료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무, 물론 사례는 하겠습니다. 공작님께서 보기엔 보잘것없는 돈이겠지만, 100골드 정도 모아놓은 게 있으니···.”

그는 내게 빌붙어 먹으려는 생각이 없는지, 연인의 치료만을 바랐다.

확실히 100골드는 평민에겐 평생 꿈도 못 꿀 금액이지만, 내겐 푼 돈이다.

하지만 공짜가 아니라 보상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그에 대한 처우로써 깔끔하게 죽여서 처리한다는 예시가 없어졌다.

“제발! 제발 그녀를 살려주십시요! 그럼 평생의 은인으로 삼으며 다시는 귀찮게 굴지 않겠습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애절한 표정.

솔직히 심장병 정돈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비비며 바라는 일이, 내게는 너무도 간단한 것이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나는 큰 고민 없이 그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구 출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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