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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80화 (8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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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님, 에클로 공작님과 폴시스 공작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집사가 케일론의 두 공작의 방문 소식을 알려 왔다.

    예고 없이 쳐들어온 성녀와 달리 그들과는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성녀에게 그들을 들여도 괜찮냐고 물었다.

    그녀는 상관없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직접 문을 열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응? 아!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이타루스 여왕폐하.”

    “안녕하세요, 폴시스 공작님. 에클로 공작님과는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타루스 성왕국의 여왕과 케일론 왕국 차기 여왕의 만남을 주선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실비아까지 더하면, 무려 세 명의 여왕이 한 시대를 나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더구나 성녀와 실비아는 나로 인해 여왕이 된 인물들.

    이정도면 여왕 메이커라 불러도 되겠다.

    “오늘은 조금 갑작스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런 이야기요?”

    갑작스럽다고 해봐야, 성녀만 하겠는가.

    딱히 비밀이야기는 아닌지, 그들은 성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케일론 왕국의 국왕 폐하께서 조카딸인 ‘이사벨 르 세일’과 아르비스 공작님간의 혼인을 정중하게 제안하셨습니다.”

    그들의 제안은 성녀의 등장만큼이나 갑작스러웠다.

    “······.”

    대체 왜들 이러는 거야?

    나는 물론,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성녀까지 당황케 하는 제안.

    당연히 쉽게 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폐하께서는 아르비스 공작님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정략혼이 귀족에겐 흔하다고 해도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결혼할 생각은 없다.

    어떤 식으로 거절해야 그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음.”

    고민 끝에 나는 그냥 사실대로 속내를 밝히기로 했다.

    “저를 높게 평가해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머리보단 마음이 따르는 상대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내 대답에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그럴 줄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거절이군요.”

    가벼운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두 사람에게 부탁했다.

    “케일론 국왕 폐하께서 불편해하시지 않게 말씀 좀 잘 해주세요.”

    어쨌든 제안을 거절했으니 케일론 국왕 입장에선 불쾌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이죠. 이 일로 양국의 관계에 이상이 생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사실 폐하께서도 찔러보고 안되면 말라는 식으로 말씀하셨거든요.”

    “다행이네요.”

    하긴 우리는 동등한 입장이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지라 그들이 무언가를 강요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혹시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짝으로 염두에 두고 계신 여성분이 있나요?”

    폴시스 공작의 말에 문뜩 세 명의 여성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역시 구애를 했던 경험이 있는 루시엘라.

    그리고 마드세인의 여왕인 실비아와 옆에 앉아 있는 아이리 성녀가 차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들은 어디까지나 괜찮다고 생각하는 여인들이지 누굴 골라서 마누라로 삼아야겠다는 의식은 없다.

    “뭐 생각만이라면···.”

    슬쩍 내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성녀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일단 아직은 혼인 생각이 없습니다. 적어도 저부터 성인이 되어야죠.”

    “그렇군요.”

    그나저나 어째 생각나는 사람은 엘프나 여왕들뿐이다.

    나도 참 눈이 높아지긴 한 것 같다.

    “여, 영주님. 실비아 데 로이드 마드세인 여왕폐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응?”

    실비아가?

    이거 참 타이밍이 공교롭다.

    정말로 미드랜드의 여왕과 여왕 후보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다니.

    집사의 알림에 집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의아하단 반응을 보이면서도 실비아를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여왕 폐하.”

    “혹시 바쁘신데 방해했나요?”

    흰색 드레스 위로 입은 갈색로브.

    이어서 제논을 거느린 실비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영약의 효과로 키가 커서 이젠 내가 그녀보다 살짝 눈높이가 높았다.

    “아닙니다. 들어오시죠.”

    나는 그녀를 집무실로 안으로 에스코트했다.

    “반갑습니다. 실비아 여왕님, 저는 이타루스의 여왕인 아이리 크리우스입니다.”

    실비아는 먼저 온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당연하다는 듯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여왕이 되고 한 번도 왕성을 나선 적 없는 그녀가 뜬금없이 찾아와 굉장히 놀란 상태.

    “신축된 영주성에 방문하신 건 처음이죠.”

    “네, 성이 굉장히 멋지네요.”

    실비아가 아무리 내 위세에 짓눌리고 있긴 해도 이 나라의 국왕이다.

    대뜸 왜 왔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선 두 대왕국의 대표들이 자신을 거치지 않고 나를 찾아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실비아는 오히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며 뺨을 긁적였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하시던 이야기 계속하세요.”

    그 말은 자신의 용무는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

    나는 슬쩍 근위기사단의 단장이 된 제논을 바라보았지만, 그도 영문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상대가 실비아라 해도 기존에 있던 손님들을 물릴 수는 없었다.

    “급한 겁니까?”

    내 귓속말에 그녀는 작게 손을 내저었다.

    안도한 나는 태연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이김에 식사하며 친목을 다지는 게 어떨까요?”

    내 제안에 모두가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친밀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식당으로 향했다.

    원래부터 폴시스, 에클로 공작과 식사할 예정이었기에, 식당엔 음식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식사하는 사람들의 신분이 너무 대단하기에, 시녀들과 요리 책임자가 매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응?”

    테이블에 둘러앉아 요리들을 살피는데, 버섯과 새우가 들어간 새하얀 소스의 면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이거 뭐에요?”

    내가 그 요리를 가리키며 묻자 쉐프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크림 파스타입니다. 요즘 빠르게 퍼지고 있는 위스워드 제국의 음식이지요.”

    “아, 저도 먹어봤어요. 여자들이 좋아 할만한 맛이더라고요.”

    나와 실비아 빼고는 모두 그 요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케일론과 이타루스는 위스워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성녀가 쉐프의 말에 보조 설명을 덧붙이자, 나는 스프보다 먼저 크림 파스타를 달라고 했다.

    내 요구에 시녀가 큰 접시에 담긴 크림파스타를 덜어서 건네주었다.

    당연하지만 이 세계 귀족의 식문화는 굉장히 발달했다.

    그 중엔 지구의 것과 굉장히 닮거나 거의 똑같은 음식도 있었다.

    알리오올리오나, 봉골레 파스타와 비슷한 요리는 먹어봤는데, 크림 파스타를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긴 것만 비슷할까?

    나는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맛을 떠올리며 놀라움을 표했다.

    “이건?”

    너무 비슷하다.

    지구에서 먹던 것과.

    내 반응에 다른 사람들도 파스타를 먹었고, 모두 맛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맛.

    더구나 음식 이름도 상당히 흡사하다.

    지구에서의 파스타는 이탈리아어로 ‘반죽’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반죽’이란 단어를 요리의 이름으로 가져다 붙였다.

    비록 언어의 차이 때문에 표기는 다르지만, 뜻은 같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에 웃음을 흘렸다.

    나는 크림파스타의 존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음식으로만 즐겼다.

    귀족의 식사시간은 길다.

    1시간 반이 훌쩍 지나 디저트까지 먹은 우리는 오늘의 자리를 파하기로 했다.

    원랜 각자 다른 목적이 있었지만, 모두 용건은 끝났으니.

    “오래 기다리셨죠? 대단히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식사 맛있었어요.”

    집무실로 돌아와 실비아 여왕과 단둘이 마주 앉은 나는 용건을 물었다.

    그에 실비아는 확장 마법이 걸려 있는 주머니에서 책 한 권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오늘 제가 공작님을 찾은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기심이라.

    그녀가 내민 책은 평범했다.

    검은색 가죽 표지에 색이 바랜 누런 종이가 오래된 서적으로 보였지만 제목이 없어서 내용을 유추할 수가 없었다.

    “마드세인이 약소국이긴 하지만,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전통 있는 국가인 만큼,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용건이 뭐길래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는 걸까?

    “그 책, 마도시대 물건입니다.”

    “네?”

    나는 크게 놀라며 책과 실비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드세인 왕가의 국고엔 고서적이 제법 많습니다. 그것들을 하나씩 살펴보던 중 발견한 거죠.”

    그러면서 실비아는 책을 펼쳐 한 곳을 가리켰다.

    “어?”

    책은 일반적인 인쇄본이 아니라, 수기로 작성되어 있었는데, 그 중심에 작은 단검이 그려져 있었다.

    “항상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허리에 차고 다니시는 그 단검 아닌가요?”

    그녀의 말대로다.

    일전에 드래곤의 레어에서 얻은 용도를 알 수 없는 아티팩트.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지만, 아무리 봐도 구동이 불가능한 수식이 새겨져 있어 의문투성이인 물건이었다.

    외형이 화려해서 호신용으로 지니고 다녔는데, 눈썰미 좋은 실비아가 내 단검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허리춤에 걸려 있는 단검을 뽑아 들었고, 그림과 비교하니 세세한 마법진까지 똑같았다.

    그런데 책에선 내 단검을 무기가 아니라, 이렇게 소개했다.

    [열쇠]

    이젠 완전히 익숙해진 마도시대의 문자.

    마법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룬문자와 함께 기본 교양으로 취급되는 문자였기에 읽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솔직히 내용이 너무 허무맹랑하지만, 장난으로 치부하기도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기니 또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크기 비교를 위해 첨부된 기간트를 점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대한 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 성은 지상이 아닌 하늘에 떠 있으며, 이런 이름이 붙어있었다.

    [다르니스 천공성.]

    “······.”

    [다르니스 천공성은 브릴란테 제국의 보고로 드래곤의 공격을 대비해 다른 차원에 숨겨져 있다. 천공성을 호출하기 위해선 열쇠와···.]

    “허.”

    이거 아무래도 실비아가 크게 한 건을 해준 것 같다.

    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자, 실비아는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

    30. 지구 출신

    위스워드 제국 남부의 소도시 페리트.

    그곳엔 남부의 명물로 손꼽히는 큰 레스토랑이 존재하는데, 맛있는 음식은 물론 멋진 음악이 어우러져 위스워드 제국의 상류층에게 인기가 매우 많았다.

    “제이드, 지금 중앙 마탑의 고위 마법사분들이 찾아오셨거든? 잘 부탁한다.”

    레스토랑 피앙세.

    피앙세의 사장은 케일론 인과 비슷한 외형을 가진 흑발 흑안의 청년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부탁했다.

    그에 제이드란 이름의 청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오늘 일당은 더 쳐줘야겠네. 평소보다 열심히 하려면 그만한 보상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이 나라에서 점원이 돈을 주는 주인에게 건방 떠는 것은 보기 힘든 모습이다.

    더구나 제이드의 일당은 무려 금화 1개.

    위스워드에선 평민이 일 년을 꼬박 일해도 벌기 힘든 금액이 그에겐 하루 일당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은 제이드의 요구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 알았어. 오늘은 1.5배 쳐줄게.”

    “좋아.”

    “하여간 악착같긴. 가게 매출도 일부 가져가면서.”

    “내가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거 몰라서 그래?”

    제이드가 있기에 레스토랑이 존재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위스워드 제국에서 크게 유행 중인 크림파스타를 비롯해 많은 음식을 개발하고,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면서 망해가던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재기시킨 인물이었다.

    덕분에 레스토랑 피앙세는 영지의 돈을 쓸어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사장과 점원의 관계지만, 동업관계이기도 했다.

    “아리아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사장의 물음에 제이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여전히 안 좋아. 고위 마법사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치료할 수 없다더군.”

    “네가 이리 지극 정성이니 좋은 결과 있을 거야.”

    “그래야지. 그동안 아리아가 나를 도와줬으니, 이번엔 내 차례야.”

    심장병에 걸린 여자친구를 떠올린 그는 굳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부탁해.”

    “걱정하지 마, 돈에는 철저하니까.”

    특이하게 생긴 현악기를 집어 든 제이드가 홀 중앙에 있는 무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등장하자, 손님들의 얼굴에 잔뜩 기대감이 걸렸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악기의 상태를 점검한 그는 노래하기에 앞서 자신의 관객이 될 손님들을 쭉 둘러 보았다.

    ‘저들이 중요 손님인가 보군.’

    딱 봐도 때깔이 다른 사람들이 주변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와인을 즐기며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들의 시선을 가져오는 것이 그의 임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시작하려던 순간.

    “체크 메이트.”

    “이런 당했네.”

    그들이 즐기던 보드게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제이드는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성큼성큼 손님들에게 다가가자, 당황한 사장이 뒤에서 제이드를 불렀다.

    “체, 체스?”

    지구 출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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