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78화 (78/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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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아르비스 공작령의 정령 아카데미와 기사 아카데미, 수도 세인의 군사학교, 제노아드, 아인트, 카르디아의 종합 아카데미까지.

    모인 학생들의 나잇대는 다양했는데, 보통 12세에서 15세 사이였다.

    일부러 나이를 골라 뽑은 건지는 몰라도, 덕분에 귀족들 속에 주인공처럼 자리 잡은 아르비스 공작과 비슷한 또래들로 보였다.

    “우리 교복이 제일 좋은 것 같다. 그치?”

    “맞아, 다른 학교도 나쁘진 않은데, 우리게 조금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야.”

    별생각 없어 보이는 남자 동기들과 몽롱한 눈빛으로 아르비스 공작을 바라보는 쥬리의 모습에 브라이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 14명, 기사 52명, 정령사 7명입니다.”

    남성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풍만한 가슴의 예쁜 여성 마법사가 아르비스 공작에게 매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마치 유혹하는 듯한 그 모습이 익숙한지, 아르비스 공작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강단 중앙으로 향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루이스 로이드 아르비스 공작입니다.”

    헙!

    아르비스 공작의 자기소개에 여기저기서 헛바람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지역의 학생들은 소문만 무성한 아르비스 공작을 실제로 본 게 처음이었다.

    자기 소개를 한 것은 아르비스 공작 본인인데, 턱을 치켜들며 우쭐대는 동기들을 보니 참 단순한 녀석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챈 학생도 있는 것 같지만, 일단 이렇게 여러분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는 바로 특별 교육을 위해서입니다.”

    불필요한 포장 없이 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아르비스 공작.

    학생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특별 교육이 아니라 특별 대우라고 하는 편이 맞겠네요. 여러분은 이제부터 왕실과 아르비스 공작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될 테니까요.”

    그러고 아르비스 공작의 추가설명에 브라이트를 비롯한 학생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현 시간부로 여러분은 신생 택틱스 아카데미의 학생이 됩니다. 여러분의 담당 교수는 6클래스 마법사와 최상급 익스퍼트의 기사, 상급 정령사가 될 것이며, 매주 마스터와 대마법사에게 지도를 받게 되죠.”

    마스터와 대마법사에게 직접 지도를 받는다?

    재능이 있으니 키우겠다는 뜻인데, 그 수준이 상상 이상이었다.

    브라이트는 등 뒤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정령 과목의 학생들에겐 미안하지만, 최상급 정령사가 본국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동등한 교육 조건은 만들어 드릴 수가 없군요. 대신 전폭적인 정령석 지원으로 그 차이를 메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르비스 공작의 사과에 정령사들은 당치도 않다면서 크게 고개를 내저었다.

    “교육환경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생활환경도 크게 개선 될 겁니다. 거대 저택에 발코니가 딸린 1인실을 갖게 되고, 개인 시종이 붙게 되죠. 식사는 아르비스 공작가의 정규 기사들의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며, 원하는 비품 요청서를 제출하실 경우 사소한 것까지 바로 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건강관리를 위해 매달 7클래스의 리커버리를 받게 되고 스트레스 해소 차 왕가 휴양지에서 휴식을 취하게 될 겁니다.”

    평민인 그들로썬 상상할 수 없던 대우.

    하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더불어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 매달 1골드의 생활비를 지급하며, 원한다면 언제라도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고임금으로 유명한 아르비스 공작령의 노동자들이 받는 급여가 월 50실버다.

    평민의 1년 생활비가 30~50실버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금액.

    그냥 너흰 공부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너무도 좋은 조건.

    그렇기에 부담감도 커진다.

    자신들이 비록 다른 학생들보다 우수하다곤 해도, 교육을 받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

    괜히 그들의 기대가 실망감으로 바뀌면 분노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르비스 공작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여러분이 책임질 것은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하지만 너무 나태하거나, 성적이 동기들보다 크게 떨어진다면 택틱스 아카데미에서 기존의 아카데미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해 주는 게 마음이 편하다.

    브라이트는 주변 눈치를 보다가 슬쩍 손을 들었다.

    무섭게 인상을 찌푸리는 기사와 여자 마법사의 눈빛에 어깨를 움찔 떨었지만, 아르비스 공작이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 뜨거운 시선들이 떨어져 나갔다.

    “네, 질문하세요.”

    “좋은 대우야 당연히 기쁘지만, 단지 그 이유가 저희가 재능이 있기 때문인가요?”

    학생들은 왜 당연한 것을 묻냐는 반응들을 보였지만, 그의 질문에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학생, 이름이 뭔가요?”

    의외의 반문.

    “브라이트라 합니다.”

    “좋아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아무래도 강단에 오른 사람들 대부분이 아르비스 공작의 사람이었는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아르비스 공작은 브라이트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새였다.

    아르비스 공작은 가볍게 답했다.

    “저희의 목적은 여러분을 그저 뛰어난 기사와 마법사, 정령사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네?”

    “마스터와 대마법, 대정령사를 만드는 게 목적이죠.”

    “······.”

    “택틱스 아카데미는 대륙 최초의 초인양성 아카데미가 될 겁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두 눈을 부릅떴고, 브라이트는 입꼬리를 씰룩였다.

    “여러분은 재능있는 학생들이죠. 그런 여러분을 마스터와 대마법사들이 적극적으로 지도하고, 엄청나게 돈을 바르는데 성과가 안 나올까요?”

    이건 어떤 감정일까?

    등골이 오싹하면서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오려 한다.

    “부디 마드세인의 초인양성 시스템을 위한 주춧돌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브라이트는 어느새 옆자리에 앉은 쥬리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아르비스 마탑 지하의 비밀 연구소로 쓰이는 유적 정박장.

    바쁘게 움직이는 마법사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내게 헤르만이 다가왔다.

    “주군께서 주의 깊게 살피라던 브라이트라는 아이, 열의가 대단하던데요? 자료에 의하면 재능이 뛰어나지만 수업 태도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전혀 아닙니다.”

    헤르만의 이야기에 나는 한 소년을 떠올렸다.

    12살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은 만큼 많은 생각이 담긴 눈빛.

    좋은 판단력과 감히 최고위 귀족에게 질문을 던지는 용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그 소년이 마음에 든 가장 큰 이유는.

    전생에 나와 함께 전장을 누빈 동료였기 때문이다.

    “크게 될 것 같은 녀석입니다. 잘 키워보도록 하죠.”

    “물론입니다.”

    설마 그 녀석을 만나게 될 줄이야.

    교장실에 들어설 때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하마터면 아는 척을 할 뻔했다.

    ‘아, 씨발. 여자 손 한번 못 잡아 보고 가다니.’

    전장에서 브라이트의 죽음을 똑똑히 지켜보았던 나는 녀석의 마지막 대사를 기억한다.

    그 유언 하나만으로 녀석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브라이트는 나보다 2살이 어렸지만, 전쟁통에서도 유쾌하고 태평한 녀석이었다.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서, 녀석도 나처럼 환생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특히 브라이트의 짙은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는 한국을 떠올리게 만들어 더욱 그런 느낌을 풍겼다.

    아마 녀석과 친해지게 된 계기도 그 익숙한 생김새 때문일 것이다.

    뭐, 동양인치곤 하얀 녀석이었지만.

    브라이트로 인해 잊고 있던 몇몇 전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도 분명 어딘가에서 마법 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일이 찾아서 추억팔이를 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나를 모르고 이제는 신분이 완전히 다르니까.

    그래도 혹시 브라이트처럼 알아서 내 시선이 닿는 곳에 들어온다면 잘 챙겨 주겠지만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해줄 생각은 없었다.

    “부디 택틱스 아카데미가 좋은 성과를 거두었으면 좋겠군요.”

    “그럴 겁니다.”

    여러 초인이 직접 나서서 지도하고, 각종 영약 및 마법적인 백업이 더해지면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더구나 재능있는 아이들끼리 모아놨으니 경쟁심을 부추기기에도 좋고, 오로지 훈련과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니 기대해 볼 만할 것이다.

    “주군 시작됩니다.”

    헤르만의 신호에 택틱스 아카데미의 생각을 떨친 나는 앙상하게 뼈대를 드러낸 은색의 거체를 바라보았다.

    출력 12.5Mmp, 높이 5.7미터, 무게 52톤(비무장 상태).

    오늘은 마드세인 왕국의 첫 양산 기간트이자, 미래의 오너들을 위한 훈련용 기체가 될 ‘마인트1’의 운용실험이 있는 날이었다.

    훈련용 기체라 해도 무장만 제대로 갖추면 얼마든지 실전에서 사용 가능하며, 마스터나 마법사가 아닌 이상 맨몸으로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괴물이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능력치지만, 이미 V1을 통해 가상으로 충분히 점검했으니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쿵! 쿵!

    테스트 파일럿이 아직 조종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움직임이 굼뜨고 엉기적거리는 모양새가 이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조종에 조금씩 익숙해졌는지 걸음걸이가 나아지고 움직임도 부드러워졌다.

    [패트릭 경, 최대 출력으로 달리기와 점프해주세요. 시트는 충격 방지가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확성 마법을 이용한 엠브리오의 지시에 마인트1이 정박장 내부를 속도를 높여 달리고, 메뚜기마냥 점프도 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통해 마인트1의 상태를 체크했는데, 파란색의 예측선을 따라 그대로 그려지는 붉은선을 보며 만족했다.

    “역시 예상대로군요.”

    마도시대의 장비가 측정한 능력치인데, 어찌 틀리겠는가.

    그 장비 때문에 우리의 연구 속도가 이리도 빠른 것인데.

    “그럼 이제 무장을 갖추고 테스트를 해보죠.”

    내 지시에 마인트1이 기계 팔이 달린 곳으로 다가갔다.

    그에 마인트1에 무장이 입혀지기 시작한다.

    훈련용이기에 미스릴 코팅이나 대마법방어진이 없는 평범한 강철 장갑이었다.

    장갑이 갖춰지니, 볼품없던 마인트1의 외모가 제법 기간트다워졌다.

    당연히 몸이 무거워지면 운동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달리고 점프를 하고, 매끄러운 움직임을 보면 마인트1의 제작은 성공이라 결정지어도 될 것 같았다.

    “좋아요. 마인트1의 양산에 들어갑시다.”

    12.5의 출력이면 애초에 우리가 전력으로 염두 해놓은 수치와 비슷하지만, 케일론과의 동맹으로 욕심이 커졌다.

    케일론의 첫 양산기체의 출력은 겨우 10Mmp.

    당연히 그들도 12.5의 기간트를 제작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마인트1을 훈련용 기체라 표현하는 것처럼, 그들이 지금 보유한 기체는 훈련, 과시용 기체였고 본격적으로 대량생산에 들어갈 출력을 20Mmp로 잡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몇 대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일단 24대만 제작하죠. 20대는 훈련용으로 쓸 테니, 무장은 저 정도면 되고요. 4대는 왕실과 아르비스 공작령에서 과시용으로 사용할 생각이니 화려하게 꾸며주세요.”

    과시용이라고 해봤자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케일론처럼 은밀하게 배치를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전 배치가 되면 어떤 식으로든 알려질 수밖에 없으니, 과시용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영주성 지하에 만들어 놓은 기간트 공방이 돌아가게 생겼다.

    “대략 200만 골드 상당의 재화와 자재가 필요합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마음껏 쓰세요.”

    “알겠습니다.”

    마운트1에 대해 만만하다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제대로 미스릴 코팅까지 한다면 한 대 제작비는 10만 골드에 달하고, 훈련용도 8~9만 골드는 필요하다.

    예전 다리우스 백작령의 한 해 수입이 5만 골드고, 수백 년에 걸쳐 모아 놓은 재산이 200만 골드 수준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비용이다.

    이렇게 많은 금액이 드는 이유는 미스릴과 가격이 폭등한 토르말린 때문인데, 다행히 두 광물 모두 보유량이 넉넉한지라 그나마 제작비가 상당히 절감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마운트1을 판매한다면 못해도 대당 15만 골드 이상은 받아야 제값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칼바도스와 위스워드 제국은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을까요?”

    “흠, 글쎄요. 아인트 공작님이 노력하고 있지만, 그 부분의 정보는 수집이 어렵다네요.”

    마음 같아선 마운트1을 대량 생산해서 칼바도스 제국에 쳐들어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왜냐면 녀석들이 위스워드가 손을 잡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칼바도스와 위스워드의 동맹.

    정말 욕이 나오는 상황이 아닌가.

    위스워드 제국의 연구 개발능력은 대륙은 최고 수준으로 단독으론 우리 마드세인이나 케일론도 어떻게 비벼볼 수가 없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대마법사의 수만 11명.

    더구나 그 안엔 마르스 공작이란 8클래스 마법사까지 포함되어 있다.

    케일론과의 공동연구로 우리가 밀릴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따라잡히지 말란 보장도 없기에 방심해선 안 된다.

    물론 칼바도스에서 기간트 관련 기술을 공유 안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기간트가 목적이 아니라면 위스워드에서 칼바도스의 손을 잡을 이유가 없으니 불필요한 희망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하지만 두 제국의 동맹 덕분에 위스워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들이 난리가 났다.

    미드랜드 5대 대왕국 중 하나로 위스워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크로스에선 요즘 우리 마드세인을 향해 적극적인 구애를 벌이고 있다.

    위스워드와 칼바도스의 야욕을 막기 위한 마드세인, 케일론, 이타루스, 아크로스의 4각 동맹의 구성.

    케일론이나 이타루스와 달리 신뢰가 없는지라 망설여지지만, 전략적으로 봤을 땐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그래서 현재 아인트 공작이 아크로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상태다.

    만약 녀석들이 별다른 꿍꿍이 없이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동맹을 원하는 거라면 손을 잡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동맹이 견고해진다면 아크로스에 기간트를 팔 수도 있다.

    이미 이타루스 성왕국에는 이번 생산 분량 중 5대를 비롯해 추후 많은 양의 기간트 거래가 예정되어 있었으니.

    “기밀관리에 신경 써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변하는 국제 정세.

    하지만 치열하게 눈치싸움만 벌이다 보니 겉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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