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75화 (7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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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하의 초인이 12명이라니, 말이나 되오? 이건 분명 우리를 압박하기 위한 수작이 분명하오.”

    “그들이 모두 가짜라 해도 8클래스의 대마법사인 아르비스 공작을 어찌 상대하겠습니까. 괜히 밉보여서 내가 잠자고 있는 성에 헬파이어가 날아오는 건 사양입니다.”

    모두들 생각이 있는지라 아르비스 공작과 정면으로 맞서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그럼 이대로 어디서 굴러온 지 모를 근본 없는 자에게 우리가 대를 거쳐 쌓아온 권력을 양보할 생각이오? 내가 말하는 것은 정치적 싸움이지, 무력 충돌이 아니오! 자고로 귀족이라면 머리를 써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뭐든지 정상적인 반응보다 비정상적인 반응이 눈에 띄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은 선동하고 본질을 흐리는 데 재능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대로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오! 10개가 넘는 백작령을 국왕령만으로 대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오.”

    일전에 아르비스 공작과 마약 건으로 설전을 벌인 경험이 있는 러스티 백작의 이야기에 회의실은 일순 적막에 휩싸였다.

    그의 영지는 이타루스 성왕국과 국경을 맞댄 곳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로 알아서 아르비스 공작의 눈치를 보는 귀족들로 인해 교역이 중심인 백작령의 수입이 급감했다.

    뿐만 아니라 이타루스의 상회들도 어찌 알았는지, 그의 영지를 찾지 않으면서 손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만약 나라에서 귀족들의 지위를 몰수한다면 1순위는 모두 그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럴 순 없습니다. 어찌 선조부터 이어져 온 영지를 빼앗는단 말입니까?”

    “안 될 것 있소? 자신의 오라비를 죽이고 아버지를 몰아내며 왕좌를 차지한 것이 실비아 여왕이오. 그녀의 뒤에 누가 버티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찌 그런 망발을! 여왕폐하를 향한 모독입니다!”

    일부 충신을 자처하는 자가 반발하고 나섰지만, 러스티 백작이 차갑게 말했다.

    “여왕폐하는 인정하지만, 아르비스 공작은 인정하지 못하겠다? 모순이라 생각하지 않소?”

    “누구도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그럼 이대로 손 놓고 지켜보겠다는 거군? 아니면 자신은 어중간한 태도를 취해도 누군가가 이 사태를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하는 거요?”

    그에 좌중은 조용히 러스티 백작과 신경전을 벌이는 잉클레어 백작을 바라보았다.

    잉클레어 백작은 중북부의 귀족으로 작위를 물려받은 지 채 3년이 되지 않은 젊은 인물이었다.

    “억지로 엮지 마시죠.”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야 하오. 잉클레어 백작의 행동은 생존을 위한 북부의 단합을 방해하는 짓이란 걸 왜 모르오?”

    “그럼 방해꾼은 물러가도록 하죠. 아무래도 이곳은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잉클레어 백작이 못 어울려 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생각에 동조하던 몇몇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러스티 백작은 차갑게 말했다.

    “그럼 혹시라도 영지 몰수 사태가 벌어지면 남아있는 북부의 영주들이 한목소리로 귀공들을 추천하면 되겠소.”

    “······.”

    잉클레어 백작은 미쳤냐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잉클레어 백작은 아니요?”

    둘 사이의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지자, 결국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마드세인 왕국 북서부의 대제후 프리드 후작이 나섰다.

    “우리 모두 다급하기에 이 자리에 모인 것 아니겠는가. 서로 감정싸움을 하기보다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네. 하나로 뭉쳐도 모자랄 판에 내부 균열이라니.”

    후작의 훈계에 잉클레어 백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이렇게까지 안 하면 우리의 목소리가 중앙에 닿겠는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제후가 언제부터 이리 작아 보였단 말인가.

    잉클레어 백작은 씁쓸한 표정으로 분을 삼켰다.

    그리고 그가 마지못해 자리에 앉자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러스티 백작. 의욕은 알겠는데, 자네의 말투는 너무 시비조네. 자제하게.”

    “죄송합니다.”

    러스티 백작은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거 보면 생각이 있으시겠죠?”

    “물론이오. 하나 방법을 생각한 게 있긴 하지.”

    “어디 그럼 러스티 백작님의 생각을 들어보죠.”

    잉클레어 백작의 말에 러스티 백작은 어깨를 으쓱였다.

    “북부의 귀족이 하나가 되어 강경하게 행동한다면 왕실도 무시하진 못할 것이오.”

    “무시는 못 하더라도 귀찮게는 생각하겠죠. 그럼 진지하게 물갈이를 고민할 수도 있고요.”

    “그런 짓을 함부로 할 수 없게끔 만들면 되는 일 아니겠소? 혼자의 힘으론 불가능하지만, 우리가 모두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왕실과 아르비스 공작을 압박할 방법이 존재하오.”

    러스티 백작의 진지한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회의장의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바로 경제지.”

    경제란 이야기에 귀족들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인물이 다름 아닌 아르비스 공작이며, 그 뒤를 잇는 것이 왕가와 나머지 3대 공작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북부의 귀족들을 무시해선 안 된다.

    그들이 권력을 쥐고 흔든 기간이 한두 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라면 4대 공작가를 비롯한 왕실에 비교할 수 없지만, 북부의 가문 수십이 뭉친다면 충분히 나라를 흔드는 것이 가능하오.”

    러스티 백작의 생각에 귀족들은 모두 생각에 빠진 듯 턱을 짚었다.

    “경제를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 생각인가?”

    프리드 후작이 물었고, 러스티 백작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답했다.

    “재산을 해외에 분산시켜 놓는 것이죠. 그 돈을 인질로 삼으면 쉬이 우릴 쳐낼 수 없을 겁니다.”

    그에 잠자코 있던 잉클레어 백작이 경악하며 눈을 부라렸다.

    “그 말은 우리 왕국의 돈을 외부로 유출하자는 겁니까?”

    “그게 어떻게 왕국의 돈이오? 우리의 사유재산이지.”

    러스티 백작의 주장에 잉클레어 백작은 기가 막힌다며 다시 따지고 들었다.

    “허가 없는 자본의 국외 유출은 불법인 거 모릅니까? 더구나 러스티 백작님의 말대로라면 북부 영주의 거의 모든 재산을 국외로 내보내야 하는데,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찌 대응하려 하시는 겁니까? 자칫 문제가 생기면 북부의 영지들이 줄줄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거야 잘 분산하면 되는 것 아니겠소. 그리고 이리 해두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은밀하게 움직이기가 더 쉬워지지.”

    “무슨 일이라니, 설마 망명을 이야기하는 겁니까?”

    “허, 이 사람이 무슨 무서운 말을.”

    북부 귀족들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못해도 마드세인에 존재하는 돈의 3~4할은 될 것이다.

    그 막대한 자금이 국외로 유출된다면 여파는 상상할 수 없을 터.

    잉클레어 백작은 분노를 표출하며 말했다.

    “겨우 한다는 이야기가 만약을 대비해 도망칠 생각이라니, 이런 비겁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내가 바보였군.”

    그가 자리에서 벗어나는데, 이번엔 잉클레어 백작을 따라 움직이는 영주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러스티 백작의 이야기에 수긍했다는 뜻이었다.

    “여러분 제정신입니까? 이 헛소리에 놀아나겠다고요?”

    “······.”

    “어차피 아인트 공작에게 모두 들키고 말 겁니다!”

    “내가 바보인 줄 아나? 걱정하지 말 게 방법은 많으니.”

    분명 처음 회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러스티 백작 쪽이 소수파였는데, 어느새 입장이 바뀌어버렸다.

    “잘나셨군. 그 머리를 영지민을 위해 사용할 것이지.”

    “칭찬으로 받아 들이지.”

    귀족들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지만, 신념까지 팔아먹은 모습에 잉클레어 백작은 실망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회의실의 대표 귀족이라 할 수 있는 프리드 후작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리고 그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린 순간.

    프리드 후작의 손이 반짝였다.

    퍽!

    “무, 무슨?”

    “좋게 해결하려 했지만, 안 되겠군.”

    잉클레어 백작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프리드 후작을 바라보았고 회의실의 영주들은 하나같이 기겁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 작전에 동의하는 바이네. 하지만 사전에 새어나간다면 말짱 꽝이 아닌가?”

    뻥 뚫린 가슴.

    잉클레어 백작은 손으로 구멍을 틀어막아 봤지만, 이미 심장은 파괴된 상태.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쿵!

    “잉클레어 백작님!”

    “후, 후작각하! 이게 대체!”

    패닉에 빠진 회의실.

    “최고로 합리적인 시나리오 아닌가. 싸움을 벌여 보고 안 되면 마는 거지.”

    이야기가 돼 있었는지, 러스티 백작과 프리드 후작측 귀족들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설명은 충분히 됐겠지? 모두 선택하게나. 뜻을 같이하던가, 아니면 죽던가.”

    이어서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기사들이 우르르 밀고 들어왔다.

    *

    “뭔가 좋은 향기가 나는데?”

    “네?”

    나는 집무실을 찾아온 루시엘라와 다과를 즐기다가, 그녀의 영문모를 소리에 의문을 표했다.

    여기저기 코를 킁킁거렸지만, 딱히 특별한 향기가 나지 않았다.

    혹시 차와 다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까?

    “아니, 너한테서 좋은 향기가 나.”

    그리고 대뜸 옆자리를 차지하고 손목에 코를 들이미는 루시엘라를 보며 당황했다.

    킁킁 냄새를 맡은 루시엘라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 보았다.

    “혹시 엘프가 좋아하는 향수라도 뿌렸어?”

    “그게 뭐예요?”

    하지만 그녀의 눈빛이 진지해서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빠졌다.

    “아, 혹시 그건가? 아이로스 천년초 먹어서?”

    “뭐? 천년초?”

    그녀는 경악하며 다시금 내게 코를 들이밀었다.

    “대체 그런 건 어떻게 구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전체적인 기운도 바뀌었네? 키도 크고.”

    “운이 좋았죠.”

    “운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어쩌면 성녀의 말대로 여신님의 선택을 받았을지도 모르죠.”

    “인간의 성녀가 그런 말을 했어? 그러고 보니 아이로스 천년초를 먹으면 수명이 대폭 상승한다고 들었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들었어요. 더구나 2차로 신체 재구성을 했으니, 어쩌면 루시엘라님만큼 오래 살지도 모르죠.”

    이렇게 가까이서 그녀를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새삼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그림의 떡.

    “너한테서 아주 좋은 꽃냄새가 나.”

    나는 별다른 동요 없이 받아쳤다.

    “전 잘 모르겠는데요. 왜 그렇게 얼굴을 들이밀어요? 유혹하는 겁니까?”

    실제로 누구도 내게서 좋은 향기가 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엘프의 특성 때문일까?

    덜컥!

    “아르비스 공작님! 드디어 정신을 차리셨···.”

    그때 집무실의 문이 예고 없이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인물은 다름 아닌 성녀.

    노크도 없이 들이닥친 것을 보면 그동안 걱정이 많았던 모양인데, 이거 좀 상황이 조금 공교롭다.

    나는 헛기침을 했고, 루시엘라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태연하게 떨어졌다.

    “오셨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인사를 받은 성녀는 나와 루시엘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공작님도 남자였군요.”

    그러면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와 아무 관계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자, 앉으시지요.”

    성녀에게 가장 상석을 내준 나는 루시엘라 맞은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의심 가득한 눈빛.

    만약 성녀와 내가 지인 이상의 사이라면 불편할 수밖에 없는 트라이앵글 존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여성 중 누구 하나 내 여인이 아닌지라 나는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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