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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73화 (7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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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래곤 하트를 섭취한다고 온전히 흡수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몸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죠.”

    폴시스 공작의 의견은 지극히 타당했다.

    나는 드래곤 레어에서 습득한 서적을 통해 체내에 코어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 방법을 이용하면 충분히 드래곤 하트 조각정도는 흡수할 수 있지만, 문제는 내 몸속에 이미 막대한 마력을 품은 코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네임드 히드라 드라켄의 심장.

    손에 쥔 드래곤 하트의 조각보다 마력의 양이 크면 컸지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 개의 마력 차이가 크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어서, 자칫 두 기운이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결국 내가 가진 마력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파동은 고스란히 내 몸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다.

    괜한 욕심을 부리다가 폐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나는 지금 대륙 최고의 영약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드래곤 하트 흡수하고 천년초로 이상을 잠재우려고요.”

    내 대답에 폴시스 공작은 성녀에게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로스 천년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이 가이아 교단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네, 가능합니다. 아이로스 천년초는 모든 이상을 치료하고 흡수자의 신체를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어 주죠. 만약 두 기운이 충돌하더라도 천년초가 융화시켜 줄 겁니다.”

    그러면서 성녀는 마치 사명을 받은 사람처럼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이 자리엔 어떤 이상이라도 치료할 수 있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이상이 생기더라도 제가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든든한 말이 아닌가.

    인간 중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성녀밖에 없을 것이다.

    국왕으로서 내 부름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전혀 그런 기색 없이 나를 생각해 주었다.

    “여왕 폐하께 많은 사랑을 받고 계시는군요?”

    “감사할 뿐입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닐 것이다.

    내 모습이 어린아이인데, 어찌 이성으로서 감정을 느끼겠는가.

    우리의 대화에 성녀는 헛기침을 하며 어서 일을 진행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우선 장소를 옮기도록 하죠.”

    나는 집무실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영주성 지하의 개인 수련실로 장소를 바꿨다.

    수련실 주변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경비 병력들을 배치한 상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성녀는 성물로 보이는 화려한 롱스태프를 소환했고, 폴시스 공작은 마도시대의 유물로 보이는 건틀릿을 손에 끼었다.

    준비를 마친 성녀와 폴시스 공작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역사의 한 장면을 보게 되는군요.”

    거창한 폴시스 공작의 말에 나는 웃으며 드래곤 하트 조각을 집어 들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네.”

    삼키기엔 조금 크지만, 망설임 없이 드래곤 하트 조각을 입에 넣었다.

    굵직한 보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생생하다.

    그것이 가슴까지 내려갔을 때,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후려쳤다.

    콰직.

    드래곤 하트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콰콰콰!

    동시에 가슴에서부터 주체할 수 없는 묵직한 마력이 급격히 부피를 더해갔다.

    무섭게 팽창하는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다스리려 애를 쓰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고통 어린 표정으로 천년초를 집어 입에 뿌리째 쑤셔 넣었다.

    천년초는 마치 초콜릿처럼 녹으며,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갔다.

    세계 최고의 영약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곤 하트와 아이로스 천년초.

    그 두 개를 모두 섭취하다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어딨겠는가.

    식도부터 시원한 기운이 아래로 퍼져나간다.

    드래곤 하트의 마력이 무섭게 타오르는 불꽃이라면, 아이로스 천년초는 소방수와 같았다.

    이를 악물며 아이로스 천년초가 드래곤 하트의 불길을 진화하기를 기다렸다.

    얼굴의 혈관이 터질 듯이 울퉁불퉁해졌지만, 아직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서 성녀도 폴시스 공작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천년초의 기운이 드래곤 하트의 마력과 맞닿았다.

    스스스.

    놀랍게도 그 흉포하던 드래곤 하트가 순식간에 폭주를 멈추고, 자그마한 덩어리로 뭉쳐졌다.

    원래부터 자리 잡고 있던 드라켄의 코어처럼 말이다.

    역시 세계에 둘도 없는 영약.

    죽음도 빗겨 나가게 만든다는 만능의 약다웠다.

    위기를 넘긴 나는 편안해진 표정으로 깊이 심호흡했고, 그 사이 천년초의 기운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때, 내 몸이 지면에서 떠올랐다.

    마치 작은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사지를 옥죄는 느낌이 나고.

    쩌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온몸을 압박하던 구속감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블레싱!”

    이건 신성력일까?

    맑은 기운이 몸 안에 흡수되고 뒤이어 외부에서 유입된 농도 짙은 마력들이 신성력과 함께 명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 곳은 드래곤하트와 드라켄의 마력코어 중간이었다.

    두 개의 묵직한 마력 덩어리가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며 소용돌이처럼 하나로 뒤섞였다.

    뒤이어 전신에 퍼져 있던 천년초의 기운 역시 그 소용돌이에 융화가 되고 심장에 위치한 8개의 마나 서클도 그 뒤를 따랐다.

    내가 품은 모든 기운이 하나로 뭉쳐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은 은하계였다.

    고밀도로 압축된 마력 코어를 중심핵으로 삼아 회전하는 천체.

    여덞개의 서클은 그런 천체를 구성하는 성단이 되어있었다.

    나는 마치 무언가에 매료된 것처럼 가만히 그 은하를 지켜보며 스스로를 관조했다.

    “음···.”

    그렇게 얼마나 나 자신에게 빠져있었을까?

    스르르 눈을 뜨니, 어째 주변의 풍경이 바뀐 느낌이 들었다.

    “주군! 정신이 드십니까?”

    나는 바닥에 누운 상태였지만, 주변엔 캐노피가 쳐있고 온도와 습도유지, 공기정화 아티팩트가 한쪽에 놓여 있었다.

    “콘스탄틴 경.”

    내 부름에 캐노피 밖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던 콘스탄틴이 얼른 다가왔다.

    감격한 그의 표정을 보며 뭔가 이상하단 것을 깨달았다.

    영약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있던 성녀와 폴시스 공작이 안 보였고, 7클래스 대마법사들도 사라진 상태였다.

    깨달음을 얻어 시간을 잊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체감과 달리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이다.

    “오래 누워 있었나요?”

    내 물음에 그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3개월 조금 넘게 누워 계셨습니다.”

    “네?”

    그의 대답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26. 언령

    부하들이 정신없이 몰아닥쳤다.

    계약으로 시작된 관계지만, 그들의 얼굴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주군!”

    나는 그들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네며 현재의 상태를 체크 했다.

    일단, 내 서클은 아직 여덟 개.

    9서클을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한 서클의 형태가 당혹스럽기 그지없는데, 일반적으로 심장에 서클을 만드는 마법사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뱃속에는 모든 기운이 합쳐져 만들어진 새로운 코어가 있고, 그 코어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회전하는 막대한 기운들이 우주를 형상화했다.

    더구나 심장에 있어야 할 서클 또한 그곳으로 위치를 옮겼는데, 자기들이 행성 또는 성단이라도 되는 양, 우주를 유영하는 구성체가 돼버렸다.

    영약의 힘을 빌러 9클래스의 벽을 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9클래스가 아니라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말았다.

    문뜩 스텔라의 시선이 내 아랫도리에 향해 있는 것을 느낀 나는 뒤늦게 스스로가 알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째 신체 재구성을 겪으면서 입고 있던 옷이 바스라져 버렸다.

    얼른 아공간에서 바지와 로브를 꺼내 입은 나는 부하들에게 잠깐 물러나라고 말했다.

    “잠깐 마법 좀 실험해 보게요.”

    그들은 의문을 표하면서 순순히 내 지시에 따랐다.

    “헬파이어.”

    따로 마력을 운용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헬파이어 마법이 형성되길 바랐고, 그 바람에 따라 손위로 거대한 지옥불이 피어올랐다.

    무섭게 덩치를 키워나가는 헬파이어.

    하지만 나는 헬파이어가 주변에 영향을 주기 전에 작게 응축되는 것을 상상했다.

    그러자 솟구쳐 오른 거대 불꽃이 점점 축소되기 시작하더니,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구슬이 되었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그 안에 담긴 흉포한 기운은 분명한 헬파이어였다.

    장난치듯 이 구슬을 던지면 성하나를 날릴 수 있다는 소리.

    나는 압축된 헬파이어를 손으로 움켜 쥐었다.

    그에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헬파이어는 사라졌다.

    분명 어디서 배운 적이 없건만, 나는 새로운 힘의 사용방법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내 힘을 내가 몰라서야 되겠는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행동에 수하들은 눈을 크게 다가왔다.

    “9클래스를 이루신 겁니까?”

    헤르만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마법사들이 살짝 아쉬워했으나, 이어진 내 말에 그들은 개구리처럼 펄쩍 뛰었다.

    “그런데 보통의 마법과 다른 힘을 얻었습니다. 이걸 뭐라 해야 할지? 의지의 힘? 아, 자료속의 언령과도 비슷하네요.”

    “어, 언령이라면, 에이션트 드래곤의 권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에이션트 드래곤의 권능이라면 용언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턱을 집고 고민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거 같아요. 조금 구현성은 떨어지지만, 마법 공격을 한다면 헬파이어보다 강력한 공격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용언은 세계에 대한 절대 명령권이다.

    허공에 말만으로 원하는 물건도 생성해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진 안 된다.

    다만 원하는 물건과 형태, 같은 기능을 가진 마력 덩어리는 만들 수 있었다.

    “언령이라면 9클래스보다 위인 거 아닙니까?”

    “글쎄요. 9클래스 마법사를 본 적이 없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힘이라면 9클래스 마법사와 싸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힘은 클래스의 한계를 초월한 상태였으니.

    “그 상태에서 9클래스에 도달하면 에인션트 드래곤이나 다름없겠네요?”

    뭔가 무서운 말을 하는 스텔라였다.

    모든 것은 예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9클래스를 달성하면 이 능력 또한 더욱 강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9클래스를 만드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나의 서클은 규격을 벗어나 있으니.

    내 몸에 깃든 마력의 양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

    드라켄의 심장과 드래곤 하트 조각, 천년초의 기운이 한데 뭉쳐져 스스로가 드래곤이 된 것 아닌가 싶은 착각에 들 게 만들었다.

    물론 드래곤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마법을 깨우치는 편리한 옵션은 없지만 말이다.

    “바깥 공기를 쐬고 싶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응?”

    그러다가 문뜩 눈높이가 높아진 느낌을 받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와 눈높이가 비슷했다.

    “저, 키 컸죠?”

    내 물음에 모두가 감탄사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영약으로 신체가 재구성돼서 그런가 봅니다.”

    “축하드립니다! 주군!”

    물론 남자치곤 작은 편이었지만, 적어도 꼬꼬마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었다.

    “스텔라 경. 키 몇이에요?”

    “162정도 됩니다.”

    “오!”

    이 정도면 또래 중에 평균은 되지 않을까?

    어쩐지 바지가 좀 끼는 것 같더라.

    언령의 힘을 얻은 것만큼이나 기쁨을 표한 나였다.

    나는 기분 좋게 싱글벙글 웃으며 거대한 영주성을 거닐었다.

    언령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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