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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72화 (7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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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색이 새하얗게 질린 파티원들.

    나와 관점이 다르다 보니, 고르트의 헛소리도 그들에겐 더없이 절망스럽게 들린 모양이다.

    크르르.

    이쪽의 쪽수가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짐승 특유의 감각으로 나의 존재감을 느낀 걸까?

    네임드 늑대는 경계만 할 뿐 좀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몇몇이 의문을 표했으나, 고르트는 승리자 놀이에 취해 악당같이 거만을 떨어댔다.

    나는 흘러나오는 조소를 억지로 감추며 물었다.

    “혹시 보물이라는 게 아이로스 천년초를 말하는 겁니까?”

    예상치 못한 물음일까?

    그의 표정이 바뀌며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그걸···.”

    빙고.

    유명세에 비해 머리는 그리 좋지 않은 모양이다.

    더 이상 귀찮은 짓거리를 할 필요가 없어진 나는 웃으며, 그에게 선물을 주었다.

    “레이저 캐논.”

    기습 공격이란 선물을 말이다.

    손가락을 튕기자, 마법진 없이 굵은 백색 광선이 공간을 가득 메우며 뻗어 나간다.

    그리고 순백의 빛은 순식간에 고르트 일행을 삼켰다.

    끄아아악···.

    레이저 캐논에 적중된 용병들은 비명과 함께 증발해버렸다.

    “크윽!”

    고르트가 최상급 익스퍼트던가?

    미완성된 오러블레이드를 뽑아 든 그만이 사지육신 멀쩡하게 레이저 캐논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한 손에는 A급 용병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역시 마나유저와 익스퍼트급 검사는 신체의 내구성부터 다른 모양이다.

    사지가 증발하고 살이 날아가 뼈가 드러낸 상태에서도 고르트에게 목덜미를 잡힌 A급 용병이 꿈틀대며 움직이고 있으니.

    나는 혀를 차며 손을 휘둘렀고, 죽어가던 A급 용병의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게 무슨···.”

    미완성 오러블레이드에 자신의 부하를 방패 삼아 살아남긴 했지만, 기습 공격에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황망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고고하게 굴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의 몰골과 표정은 아주 볼만했다.

    나는 상황파악을 못 하고 어버버거리는 쿠르츠 일행을 보호하기 위해, 네임드 늑대를 샤이닝 쉴드에 가둬 놓았다.

    “뭐긴요. 용병 놀이하던 대마법사한테 잘못 걸려서 좆된 거지.”

    “뭐?”

    그리고 느긋하게 그에게 다가간 나는 씩 웃어 보였다.

    “쓸데없이 머리 굴리는 모습이 아주 웃겼습니다.”

    내가 허공에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자, 고르트의 주변을 날아다니던 날벌레가 착지했다.

    이어서 날벌레는 푸른 마나가 되어 흩어졌는데, 그 모습을 본 고르트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퍼, 퍼밀리어라니.”

    나는 그에게 손가락 끝을 겨누며 말했다.

    “마드세인 왕국의 아르비스 마탑주, 루이스 로이드 아르비스 공작이라 합니다. 과연 제 이름이 로엘 제국까지 알려졌을는지 모르겠네요.”

    친절한 자기소개에 그는 눈을 부릅떴다.

    “8클래스···.”

    다행히 이름이 알려지긴 한 모양이다.

    이렇게 알아보는 것을 보니.

    내 시선에 고르트는 기겁하며 어깨를 움찔 떨었다.

    “여기서 자기소개를 했다는 뜻은 살려줄 생각이 없다는 거겠죠?”

    “제기랄!”

    결국 녀석은 기겁하며 도망을 쳤지만, 내 손가락 끝에 붉은 기운이 모이며 7클래스급의 마력탄이 발사되었다.

    피하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녀석은 급히 검을 들어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미완성된 오러블레이드로 막아낼 만큼 어설픈 것이 아니었다.

    “끄아아악!”

    오러블레이드와 함께 검을 분쇄하고, 손과 몸, 머리 순으로 증발했다.

    결국 고르트는 두 다리만 덩그러니 남아 바닥에 쓰러졌다.

    잘난 척한 것 치곤 보잘것없는 최후였다.

    나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쿠르츠 일행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흔들었다.

    “정체를 숨겨서 미안합니다. 실은 찾는 게 있어서.”

    가벼운 내 반응에 그들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귀인을 몰라뵀습니다.”

    완전히 바뀐 그들의 태도에 살짝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란 것을 알기에 나는 뒷목을 긁적였다.

    “제 정체가 알려지면 곤란하거든요.”

    고르트에게 정체를 드러낸 이유가 살려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대사를 기억하는지 그들은 더욱 몸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안심하세요. 해칠 생각은 없습니다. 어쨌든 동료였으니까요.”

    “그, 그럼.”

    내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게 하는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제안했다.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이대로 저에 대한 기억을 잃고 일상으로 돌아가던가. 저를 따라 마드세인으로 근거지를 옮기던가 둘 중 하나요. 여러분의 삶을 틀어지게 하였으니, 저를 따라오신다면 충분한 금전적 보상과 지위를 드리죠.”

    그들은 자신들이 나의 안내역이었단 사실을 모르겠지만, 천년초를 찾는데 아주 중요한 일을 해준 인물들이다.

    어떤 식으로든 보상할 필요가 있었다.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그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쿠르츠가 말했다.

    “가능하다면 당연히 보상을···.”

    그들은 로엘 제국에 애착이 많지 않은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돈과 지위를 선택했다.

    “좋습니다.”

    나는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제논 경.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 주세요.”

    그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색이 입혀지며 제논이 나타났다.

    제논은 내가 쿠르츠를 따라다니는 동안 계속 비밀호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천년초를 캘 동안 제논이 용병들을 지켜볼 것이다.

    “예, 주군.”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쿠르츠 일행은 더욱 주눅 들었고, 나는 잠시 기다리란 말을 남긴 채 걸음을 옮겼다.

    “음?”

    샤이닝 쉴드에 갇힌 뿔 달린 네임드 늑대가 배를 바닥에 붙인 채 끙끙 앓았다.

    뭐지?

    항복 표시인가?

    나는 샤이닝 쉴드를 해제하고 녀석에게 손을 뻗었다.

    어차피 오토 쉴드가 항상 나를 보호하고 있어서, 타격을 입을 일은 없다.

    그런데 녀석은 내 손의 냄새를 맡은 후 큰 개가 애교를 부리듯 뒹굴 뿐, 덤비지 않았다.

    갑자기 죽이기 찜찜해지는데?

    그렇다고 놔두고 가면 누군가가 당할 테고.

    한 번도 몬스터를 두고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혹스러웠다.

    테이밍 마법을 사용해 볼까?

    테이밍은 6클래스 마법이지만, 좀처럼 사용할 일이 없었다.

    마침 7클래스 마법 중에 길들인 몬스터를 소환하는 게 있어 언제고 한번 실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살고 싶으면 저항하지 마라. 테이밍.”

    푸른 빛이 녀석을 감싸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녀석과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테이밍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이 내게 다가와 비비적거린다.

    하지만 어찌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클리어로 녀석을 깨끗하게 만들어 줬다.

    “네 이름은 오늘부터 퍼피다.”

    컹!

    개 키운다는 심정으로 키워봐야지.

    “가자.”

    나는 퍼피 뒤쪽으로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

    던전에 입장하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청량한 공기가 폐부에 스며든다.

    더불어 주변의 마나가 더욱 정순해진 느낌과 함께, 향긋한 꽃내음이 풍겨왔다.

    오래 걸리지 않아 마주한 막다른 길.

    거기 한 구석에 온실처럼 숨구멍으로 뚫어 놓은 천장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왔고, 그 햇빛이 닿는 곳엔 풀들이 자라 있었다.

    “이게 아이로스 천년초.”

    그리고 그 중심에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꽃망울과 다섯 개 이파리를 손처럼 뻗은 신기한 식물이 자라나 있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로이아스 최고의 영약.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아이로스 천년초에 다가갔다.

    듣기로 가이아 교단에선 채집 전에 기도문을 올려야 부정을 안 탄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속는 척 외워온 기도문을 올렸다.

    그에 아이로스 천년초가 마치 주인임을 인정한다는 듯 살랑살랑 몸을 떨어댔다.

    천장을 통해 들어온 바람에 흔들린 건지.

    아니면 정말 기도문에 반응한 건지는 몰라도 나는 더욱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문을 마쳤다.

    “꽃부터 뿌리까지 모두가 귀한 영약이라 했으니.”

    나는 붉은 마력을 거대한 포크레인 같은 형태를 만들어, 땅을 크게 팠다.

    식물의 크기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양이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여유 있게 퍼서 조금씩 털어냈다.

    이거 어째 흙을 터는 데 근래 들어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10여 분에 걸쳐 조금씩 흙을 털어낸 결과, 천년초의 뿌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천년초의 뿌리는 산삼과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었다.

    나는 아공간에서 미리 준비해놓은 목함을 꺼냈는데, 습도와 온도 유지, 보존 마법이 걸려 있는 천년초 전용 아티팩트 케이스였다.

    어차피 앞으로 5일 동안은 절대로 지지 않겠지만, 만약을 위한 조치였다.

    “휴···.”

    아이로스 천년초를 아공간에 수납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으로 마법의 경지가 어디까지 높아질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이로스 천년초는 어떠한 부작용도 없는 완전무결한 영약이라 전해진다.

    어쩌면 코어가 드래곤 하트에 가까운 형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존의 마력코어에 아이로스 천년초가 더해지면 충분히 성룡 수준의 코어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것은 예측에 불과하다.

    결국은 섭취해봐야 알일.

    어쨌든 나쁜 결과로 이어질 리는 없으니, 가슴속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좋았어.”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나는 쿠르츠 일행에게 기사 작위와 함께 제법 규모가 있는 저택과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는 거액의 보상을 주었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는지, 그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막대한 재산을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겠는가.

    쿠르츠 일행은 내게 넙죽 엎드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어차피 나는 그들의 맹세보다 보상을 했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라 해야 할까?

    전생에 쿠르츠가 받은 백작위와 방대한 영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금전적 보상이면 몰라도 능력이 되지 않는 자에게 과분한 지위를 줄 순 없다.

    더구나 그들의 상황은 내 영향 때문이라곤 해도 전생과 다르지 않은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능력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능력이 되는 부하가 있다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주는 게 당연하니까.

    참고로 오랫동안 무명생활을 견뎌온 휘하의 마스터와 대마법사들을 위해 근시일 내로 제대로 된 작위와 영지를 줄 생각이다.

    당연히 내가 주는 것은 아니고 실비아에게 부탁해서 말이다.

    아르비스 공작령의 초인들은 이미 어마어마한 부를 갖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일정 한도 내에서 부를 공유했고, 그 일정 한도란 것은 다른 귀족들의 상식으로 납득하기 힘든 막대한 금액이었다.

    그래서 다들 물질적 보상엔 무덤덤하지만, 명예라 할 수 있는 작위와 영지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이로 인해 왕국 내에 대귀족이 10명 넘게 추가되니, 상당히 시끄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갖고 트집을 잡는 간 큰 인간은 없을 터.

    마드세인에서 나를 건드리는 짓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영주성을 찾아온 성왕국의 새로운 왕이 된 성녀와 케일론 왕국의 폴시스 공작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게 되어 기뻐했는데, 결국은 부탁할 게 있어서 부른 거군요.”

    아이리 성녀가 부루퉁한 모습으로 나를 흘겨봤다.

    “그동안 바빴거든요.”

    여자를 상대하는 것은 특기가 아니다.

    나는 폴시스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고 그는 바로 나를 두둔하고 나섰다.

    “그렇습니다. 여왕폐하. 아르비스 공작은 저희 케일론을 도와 중대한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게 지냈습니다.”

    폴시스 공작은 성녀를 깍듯하게 대했다.

    제 살을 깎아 먹는 내전으로 이타루스의 위세가 많이 줄었다곤 하나, 대왕국은 대왕국.

    당연한 태도였다.

    “뭐, 케일론 왕국과 동맹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또 뭔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고 계시는구나, 라고 예상하긴 했어요.”

    그녀는 장난이라며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안도한 나는 간단하게 그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성녀는 내전의 후유증을 다스리는 데 애쓰고 있었으며, 폴시스 공작은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두 사람은 나로 인해 나라가 평화를 맞이했다며 고마워했다.

    나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지만,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과여서 다행이다.

    “그런데 중요한 부탁이라니, 뭔가요?”

    왕관을 내려놓고 지인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한 성녀가 본론을 꺼냈다.

    나는 아공간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

    “저희가 선물로 드린 드래곤하트 조각이군요?”

    하나는 케일론 왕국에서 선물로 받은 드래곤하트 조각으로 폴시스 공작이 바로 알아보았다.

    내 마력 코어에 비견되는 막대한 마력이 담긴 보물.

    그리고 나머지 하나인 목함을 열자, 두 사람은 눈을 부릅떴다.

    “아, 아이로스 천년초?”

    그것의 정체를 알아본 두 사람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대체 공작님은···.”

    마치 정체가 뭐냐고 묻는 듯한 성녀의 모습에 나는 겸손하게 답했다.

    “운이 좋았죠.”

    운으로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닌지라, 나를 바라보는 성녀의 눈빛은 대단히 진지했다.

    “대단한 분이라곤 생각했지만, 어쩌면 여신님의 선택을 받으신 분일 수도 있겠어요.”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그녀와 달리 폴시스 공작은 순수하게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것들을 복용하실 생각입니까?”

    “맞습니다. 두 분께선 만약을 대비해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집무실엔 우리 셋 이외에도 아르비스 공작령의 대마법사 4명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내 부탁에 기도를 올리듯 두 손을 꼭 말아쥔 성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폴시스 공작도 고민 없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언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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