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71화 (7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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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에 숨을 데랑 골목도 많으니까, 신중하게 움직이자.”

    코볼트나 라이칸스로프 따위가 나와 봤자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지시에 따랐다.

    쿠르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발광 구슬을 꺼내 들었다.

    “중간중간 햇빛이 들어오는 구간이 있긴 해. 하지만 대부분이 어둡거든. 그런데 어둡다고 랜턴이나 라이트를 사용하지 마. 동굴의 몬스터들은 빛에 예민하거든.”

    이곳에 처음 입장하는 사람은 나뿐인지, 쿠르츠는 연신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처음에 봤을 땐 험상궂고 계속 꼬마 마법사라 불러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장난기가 많을 뿐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와 함께 천년초를 찾더라도 제대로 된 보상을 해줘야겠다.

    그렇게 폐광산에 입장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우린 회색늑대 두 마리와 조우했다.

    “바인드.”

    늑대는 가죽을 채취해야 하기에 상처 없이 죽이는 게 중요하다.

    나는 녀석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고, 그사이 어택커 둘이 달려들어 눈알에 검을 찔러 넣었다.

    마나유저는 정식으로 오러를 다루는 기사와 달리 신체 기능을 강화하는 능력이 끝이다.

    그래서 무기에 오러를 담진 못하지만, 실전 기술이 몸에 밴 그들은 간결하고 정확하게 힘을 실어 무기 자체의 살상력을 극대화 시키거나 철저히 약점을 노리는 방식으로 싸웠다.

    덕분에 기사들 입장에선 꼴사납다고 느껴질 수 있는 모습이 많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고 적을 쓰러뜨리면 그만이니.

    용병에겐 돈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생존이 중요했다.

    “앞이 보이긴 보여요?”

    우리가 들어온 입구는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라, 발광구슬의 빛에만 의지해야 했다.

    하지만 발광구슬의 빛이 너무 약해서 사물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나야 신체가 재구성되면서 시력도 좋아졌지만, 그들은 앞이 보이긴 보이는 걸까?

    “우린 야간에 활동을 많이 해봐서 그런지, 나름 괜찮아.”

    참, 용병들 보면 사소하게 다재다능하다.

    중간중간 환풍을 위해 구멍을 뚫어 놓은 천장에서 아스라이 햇빛이 스며들어온다.

    덕분에 그 주변은 일종의 안식처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물론 그런 곳엔 높은 확률로 햇빛을 쬐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코볼트 다섯.”

    “매직스피어.”

    몬스터의 숫자가 많으면 내가 3클래스 마법을 사용해 무조건 숫자를 줄이고 시작한다.

    어김없이 코볼트 한 마리가 내 공격에 머리가 터졌고, 달려드는 나머지 셋을 디펜더와 근접 어태커들이 막았다.

    하지만 던전이라 함은 변수가 자주 생기는 사냥터.

    근접전투 파티원들이 코볼트 다섯을 막는 동안, 나와 궁수의 뒤에서 회색 늑대 세 마리가 나타났다.

    분명 전부 해치우면서 온 것 같은데,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루이!”

    늑대 셋 중에 두 마리가 나를 노리고 달려온다.

    용병 궁수는 화살을 날리며 익숙하게 몸을 피했지만,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던 나는 반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크르릉!

    동료들의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흡!”

    놀란 그들과 달리 정작 나는 여유만만.

    지금까지 싸워온 상대들의 레벨이 있지, 겨우 늑대에게 위협을 느끼겠는가.

    아무리 3클래스 마법사로 위장하고 있다고 해도 당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캐스팅이 필요 없는 매직미사일을 날리고, 번개처럼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휘둘렀다.

    깨갱!

    매직미사일에 코를 명중 당한 회색늑대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자빠지고, 나머지 녀석은 목덜미가 깊게 베어 피를 쏟으며 절명했다.

    그리고 매직미사일에 맞아 낑낑거리던 늑대의 미간에 단검을 던져 칼침을 선물 해주었다.

    “바인드.”

    근접 전투원들이 입을 떡 벌린 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나는 코볼트들을 구속하며 파티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 그렇지.”

    그제야 용병들은 바쁘게 무기를 놀렸고, 궁수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던 회색 늑대에게 매직스피어를 선물해 주었다.

    전투는 별 탈 없이 끝이 났다.

    단검을 회수한 나는 눈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쿠르츠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뭐야, 그 몸놀림?”

    “호신술을 조금···.”

    성왕국 내전 이후로 틈나는 대로 아델에게 근접 전투기술을 배우고 있는 나다.

    스승이 소드마스터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일반인과 달리 나는 신체가 재구성된 상태고, 마나코어를 이용해 기사처럼 신체 강화가 가능했으니 평범한 마법사와 달랐다.

    “너 진짜 알면 알수록 대단하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어깨동무하는 쿠르츠.

    “역시 크게 될 인물이란 느낌인데.”

    내게 도움을 받은 궁수의 말에 디펜더와 창을 쓰는 어태커가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칭찬은 기분이 좋긴 했지만, 내 목적은 용병 놀이가 아니다.

    나는 쿠르츠에게 이동을 재촉했고, 파티는 전리품 습득 후 바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턴 우리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장소야.”

    광산은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갈림길이 많아졌다.

    그리고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도 급격히 증가했는데, 한 번에 열 마리가 넘는 회색 늑대가 달려든 적도 있어서 공략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그냥 귀찮은데, 부하들 불러서 다 뚫어 버릴까?

    아니, 아니다.

    천년초가 피어 있는 곳은 이곳이 아닐 가능성도 있기에 아직은 쿠르츠를 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험하다 싶으면 적당히 클래스를 넘는 힘을 발휘하면서 전투를 이어나가면 되겠지.

    잠시 후, 광산에 물이 고여 생긴 지하 호수가 우릴 반겨주었는데, 그 위로 한줄기의 햇빛이 스며들어 꽤나 멋진 풍경을 자아냈다.

    “어?”

    여기저기 놓인 기다란 목제 의자를 봐선 광산이 운영되던 시절 휴식처로 사용되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물도 바닥이 보일 만큼 깨끗하고 박쥐 동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결한 해충도 없었다.

    절로 엉덩이를 붙이고 싶은 공간.

    그런데 그곳엔 이미 주인이 있었다.

    더구나 몬스터가 아닌 용병들이 말이다.

    “뭐, 뭐야. 당신들.”

    놀란 쿠르츠의 물음에 일제히 무기를 들어 올린, 10인의 남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기를 내렸다.

    “나일세.”

    “고르트님?”

    10인 파티의 리더로 보이는 사내와 안면이 있는지, 쿠르츠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궁수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테르주 후작령에서 유명한 S급 용병이야.”

    보통 고위기사라 칭해지는 상, 최상급 익스퍼트를 S급으로 초, 중급 익스퍼트를 A급으로 등급을 매긴다.

    제논도 내게 영입되기 전에는 S급 용병으로 활동했고, 그가 이끌던 카이트 용병단은 구성원 모두가 A급의 용병이었다.

    고르트란 인물은 S급으로 보이지만, 뒤에 있는 남자 일곱, 여자 둘의 파티원들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A급으로 보이는 검사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쿠르츠들과 비슷한 수준일까?

    하지만 고위기사급인 S급 용병 하나만으로도 쿠르츠네가 비빌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혹시 그들이 천년초를 챙긴 건 아니겠지?

    다행히 기색을 보아, 그들은 던전에서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천년초를 캐지 않았다는 뜻.

    “아무래도 던전에 또 다른 출입구가 있는 모양이군요.”

    고르트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저쪽에 광석을 올릴 때 쓰는 수동 승강기가 있거든. 자넨 정면 출구로 들어온 모양이군.”

    고르트는 이 던전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예상치 못한 방해꾼의 등장에 혀를 찼다.

    괜히 천년초를 찾는데 방해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여차하면 그들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다.

    “따로 찾는 게 있는가?”

    고르트의 물음에 쿠르츠는 손으로 날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 파티 신입에게 던전 구경을 시켜 주고 싶어서요. 몬스터 사냥이 목적입니다.”

    “흠···.”

    10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내게 향한다.

    그들 대부분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녀석도 있었는데, 아마도 겉모습만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르트는 작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정규 마법사군.”

    그제야 다른 사람들의 표정에 놀람이 깃들었다.

    나는 고르트보다 경지가 아득히 높은지라, 그는 내가 의도적으로 퍼트리는 3클래스의 기운에 속아 정체를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

    “혹시 고르트님께선 뭔가 찾으시는 거라도?”

    “우린 던전 탐사가 목적이네.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 볼 생각이야.”

    평범한 대화 같지만 서로 눈치 싸움을 하는 게 눈에 훤하다.

    “그럼 각자 갈 길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개미굴처럼 길이 여러 갈래니.”

    괜히 쫄아 돌아가겠다고 하는 거 아닌지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강단 있는 쿠르츠였다.

    고르트는 그런 쿠르츠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알겠다며 동의했다.

    “고르트님은 어느 쪽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우린 이쪽으로 가지.”

    “그럼 저흰 이쪽으로 가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고생하게.”

    우리는 그대로 고르트를 지나쳤다.

    어쩐지 꽤나 꺼림칙한 분위기를 가진 인물이다.

    만약을 위해 그들에게 퍼밀리어를 붙여둔 나는 쿠르츠에게 물었다.

    “혹시 뒤를 치거나 하진 않겠죠.”

    “그러지 않을 거야.”

    원래 알던 사이에 이런 걸 묻는다면 화를 낼 수도 있지만, 반응이 약할 걸 보니 많이 친하진 않은 모양이다.

    ***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방향은.”

    부하의 물음에 고르트는 목을 풀며 말했다.

    “좋잖아. 녀석들이 우릴 도와준다는데, 어차피 저 전력으론 가디언을 못 뚫어.”

    그에 우려를 표했던 A급 용병은 고르트가 어째서 쿠르츠 일행을 자신들의 목적지로 유도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만약 녀석들이 가디언을 쓰러뜨린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땐, 정리해야지. 여기 있는 녀석들과 함께.”

    평소 인성 좋기로 소문이 난 고르트와 어울리지 않는 눈빛.

    하지만 그 눈빛을 받은 부하는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함께 있는 동료들과 쿠르츠 일행은 모두 보물을 얻기 위한 장기 말에 불과했으니.

    그때, 진한 웃음을 흘리는 고르트의 머리 위로 작은 날벌레 하나가 눈을 반짝였다.

    ***

    “저게 뭐지?”

    나는 붉은색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그에 파티원 모두가 고개를 내밀며 눈을 가늘게 떴고.

    크아아아!

    광산을 뒤흔드는 포효와 함께 하얀 뿔이 달린 거대한 회색 늑대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걸어 나왔다.

    “뭐, 뭐야. 저거.”

    당황한 파티원들은 주춤거렸다.

    그런데 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천년초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아홉머리 히드라 드라켄과 같은 변이체(네임드)다.

    물론 히드라와 늑대는 극심한 종의 차이가 있지만, 녀석도 마나 코어를 가진 것이 확실해 보였다.

    변이체가 되기 위해선 어떤 계기가 필요한데, 그 계기는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이 던전이 무슨 고대 마법사의 연구실이나 유적도 아니고, 단순한 광산일 뿐인지라 환경이 특별하다고 보긴 힘들다.

    그렇다면 이곳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만약 천년초가 근처에 있다면 이는 충분한 각성의 계기가 될 것이다.

    “네임드 몬스터 아냐?”

    더구나 녀석만 있다면 어떻게 부딪쳐 보기라도 할 텐데, 방금 전의 포효에 회색늑대들이 우글우글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늑대 소굴.

    문뜩 쿠르츠가 이 포위망을 뚫고 천년초를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할까란 의문이 들었다.

    뭐, 그때의 정확한 상황을 알 수가 없으니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그만큼 일반 용병들이 상대하기엔 버거워 보이는 전력이었다.

    “뭉치세요.”

    내 말에 쿠르츠 일행은 나를 보호하듯 둘러쌌다.

    “좋은 생각 있어?”

    늑대에게 완전히 포위를 당하는 바람에 쿠르츠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물었고, 나는 가볍게 웃으며 안주머니에서 스크롤 두장을 꺼내 들었다.

    “마법스크롤?”

    B급의 용병입장에선 쉬이 갖기 힘든 고급품.

    더구나 지금 내가 꺼낸 것은 5클래스의 공격 마법이었다.

    나는 그 스크롤 두 장을 동시에 찢었다.

    “체인 라이트닝.”

    치치치치칙!

    그에 굵은 전기다발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깨깽!

    컹!

    던전을 요란하게 울리는 늑대의 비명 소리.

    리액션이 좋은 쿠르츠는 입을 쩍 벌리며 수십 마리에 달하던 늑대가 순식간에 정리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대장으로 보이는 네임드 늑대는 체인 라이트닝을 가볍게 피했는데, 마법이 끝이 나고 두 다리 멀쩡하게 서 있는 늑대는 4마리가 전부였다.

    “값비싼 5클래스 스크롤을 두 장이나···. 목숨을 빚졌군.”

    쿠르츠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저 녀석은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울 테니.

    하지만 그전에 해결 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나오세요.”

    네임드 몬스터를 앞에 두고 긴장하고 있던 파티원들이 무슨 뜻이냐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뒤쪽, 골목에서 어둠을 뚫고 나타난 용병들의 모습에 표정을 굳혔다.

    “고르트 님.”

    그들은 아까 마주쳤던 고르트란 용병과 똘마니들이었다.

    “어린 마법사의 눈치가 제법이군. 그런 파티에 있기 아까운 인재야.”

    “무슨 용건이죠?”

    내 물음에 그는 히죽 웃음을 흘리며 네임드 늑대를 가리켰다.

    “녀석의 뒤에 보물이 숨겨져 있거든. 그걸 가지러 왔다.”

    쿠르츠는 아직 상황파악을 못 한 듯 의문을 표했다.

    “그 말은 일부러 우릴 이쪽으로 보냈다는 겁니까?”

    “맞다.”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는 그의 모습은 비열함 그 자체였다.

    쿠르츠는 충격을 받은 듯 보였지만, 나는 이 상황이 꽤나 재밌게 느껴졌다.

    녀석은 뭐라도 된 것마냥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 돌연변이 늑대와 싸워라. 도망치려 한다면 우리의 손에 죽을 테니.”

    지랄 생쇼하네.

    아이로스 천년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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