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69화 (6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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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모트랜드의 다크엘프 영역, 수도 실버문의 왕성.

    “이 야심한 밤에 호출하다니, 무슨 일이지?”

    회의실에 들어선 남성 장로의 물음에 다크엘프 여왕의 딸이자 장로이기도 한 카밀리아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여왕님께서 돌아가셨다.”

    “뭐?”

    “방금 확인한 사실이야. 여왕님의 침소에 머리 없는 몸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더군.”

    그리고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에 경악하며 무섭게 윽박질렀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상대의 날선 반응에도 무덤덤하게 어머니의 소식을 전한 카밀리아는 감정이 결여 된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함정에 빠지신 모양이다. 목의 단면을 보니, 텔레포트 사용 중 변을 당하신 모양이야.”

    “여왕님과 함께 갔던 장로들은?”

    “여왕님께서 당하셨다면 나머지 장로들의 운명이야 뻔하지.”

    감정변화가 없는 카밀리아의 이야기에 남성 장로는 침음을 흘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여왕님을 비롯해 다섯 장로를 잃게 된다면, 우리의 전력은 절반으로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 실버엘프 진영의 위기라 할 수 있다.”

    “빌어먹을.”

    여왕과 함께 간 장로가 모두 당했다면, 장로는 이제 겨우 셋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카밀리아가 대를 이어 새로운 여왕이 된다면 남은 장로는 셋이 아닌 둘이 될 터.

    실버엘프의 8대 장로가 2대 장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장로가 되기 위한 조건이 8클래스 마법사와 상급 마스터임을 생각하면 장로의 확충은 매우 어려웠다.

    “대체 어떤 함정에 빠지셨길래.”

    딸인 카밀리아보다도 큰 슬픔에 잠긴 장로가 머리를 움켜쥐며 고개를 숙였다.

    “타르니스 장로는?”

    그는 자리에 없는 장로를 떠올렸다.

    “연락이 되지 않더군. 수행 중이지 않을까 싶다.”

    카밀리아의 대답에 한참 동안 감상에 빠져 있던 장로가 고개를 들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타르니스 장로를 앞세워 인간들에게 복수해야 한다.”

    “그의 전투 능력은 여왕님과 비슷한 수준이다. 장로 다섯이 함께한 여왕님께서 당하셨다면 모든 게 소용없는 짓이지.”

    종일 냉정한 카밀리아의 반응에 장로는 도끼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친모가 당했음에도 어쩜 그리 냉정하지?”

    “나는 최선의 판단을 할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이랜드 엘프와의 관계를 끊고 내실을 다지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겐 많은 7클래스 마법사와 마스터가 남아있지. 전력을 동원하면 충분히 복수할 수 있다.”

    “베이런 장로, 복수에 눈이 멀어 실버엘프의 운명을 파멸로 몰고 갈 생각인가?”

    “허튼 소리!”

    감정적인 장로를 보며 카밀리아는 고개를 내저어야 했다.

    카밀리아는 지극히 이성적이며 어머니의 자리를 물려받아 새로운 여왕이 될 테지만, 동족들에게 인정받는 존재는 아직 어린 그녀가 아닌 감정적인 베이런 장로였다.

    베이런 장로는 카밀리아가 공식적으로 여왕의 자리를 물려받기 전에 대대적인 전쟁 준비에 들어갔고, 다크엘프 최강의 전사인 타르니스까지 구슬렸다.

    카밀리아는 답답하긴 해도 이것이 동족의 결정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동족을 위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하지만 이런 다크엘프의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르드와 칸트가 우리 영역을 향해 진군하고 있습니다!”

    오크와 라이칸스로프를 중심으로 세워진 몬스터의 국가들이 다크엘프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

    하필 그 타이밍이 지나치게 공교로웠지만, 그들은 더 이상 복수심만을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평소 만만히 여기던 몬스터들의 국가지만, 두 곳이 뭉쳤다면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 되고 만다.

    더구나 현재 다크엘프들의 전력은 크게 흠이 난 상황이 아니던가.

    “베이런 장로, 복수는 뒤로 미뤄야 한다.”

    기계 같은 카밀리아의 말에 그는 울분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와 이종족간의 전쟁.

    그로 인해 리모트랜드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지만, 반대로 케일론 왕국은 평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

    “아르비스 공작님은 현존하는 인간 중 최고의 전투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위험한 전투를 치러서인지, 부쩍 사이가 가까워진 폴시스 공작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마법의 경지는 폴시스 공작님보다도 아래입니다.”

    나는 겸손하게 손을 내저었으나, 그는 그렇지 않다며 미소를 지었다.

    “마법의 경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9클래스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해도 아르비스 공작님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겁니다.”

    확실히 다크엘프 퀸과의 전투 이후, 누구와 싸우더라도 지지 않을 것 같단 자신감이 들었다.

    나는 마법사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캐스팅을 극복해냈으니.

    “정말, 아르비스 공작님을 만나게 된 건 최고의 행운입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무뚝뚝한 에클로 공작이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게 왜 그러세요.”

    “일이 다 잘 풀려서 기분이 좋아 그럽니다.”

    그동안 다크엘프는 케일론에게 항상 고민거리를 안겨주던 존재였다.

    그런데 그게 깔끔하게 해결되었으니 기분이 홀가분할 것이다.

    “이젠 아리타 왕국이 어처구니없는 시비를 걸어와도 참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대륙에 네 번째 제국이 탄생하는 것 아닌가 싶군요.”

    “케일론 제국이라···. 나쁘지 않은데요?”

    케일론 왕국의 군사력은 이미 로엘 제국보다 우위에 있는 만큼, 바로 제국 선포를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냥 예의상 한 말인데, 둘은 진심으로 받아들인 듯 제국이란 단어를 곱씹었다.

    “그런데, 오르드와 칸트가 손을 잡는다고 해서 몬스터들이 다크엘프들의 상대가 될까요?”

    내 물음에 폴시스 공작은 오르드와 칸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두 세력의 로드는 최상급 마스터이며, 전사장이라 할 수 있는 챔피언들은 마스터급이거든요. 현재 전력은 다크엘프보다 녀석들이 위입니다.”

    아마 지금쯤 다크엘프의 세력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리모트랜드를 혼란에 빠뜨린 배후에 우리가 있었다.

    “대단하군요. 제가 아는 오크나 라이칸스로프와 완전히 급이 다르네요.”

    혹여라도 다크엘프가 여왕의 죽음에 복수를 외치며 덤비는 상황을 막기 위해 폴시스 공작이 직접 몬스터의 국가에 은밀하게 접근해 다크엘프들의 현재 상황을 알려주며, 공격을 종용했다.

    평소 다크엘프와 몬스터 3개국의 사이는 꽤나 좋지 않았다.

    다크엘프는 몬스터들을 야만스럽다고 멍청하다며 무시했으며, 몬스터들은 그런 다크엘프들을 오만하다고 여겼다.

    다크엘프의 전력 약화 소식은 단순하고 싸움을 좋아하는 몬스터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로인해 리자드맨들의 국가 드라크를 제외한 나머지 두 세력이 경쟁하듯 다크엘프의 구역을 향해 전진해나갔다.

    “몬스터를 설득해내시다니 대단한데요?”

    내 칭찬에 폴시스 공작은 입을 닫았다.

    사실 말재주만으로 두 몬스터 국가를 움직일 순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어떤 수법을 썼을 터.

    그런데 좋게 말하기 힘든 내용인 듯 내 물음에 그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에클로 공작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뭐지? 무슨 일이 있던 거야?

    “폴리모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죠.”

    대체 폴리모프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건지, 궁금했지만 말하는 걸 꺼리는 기색에 더는 캐묻지 않았다.

    나도 그들에게 숨기는 게 많긴 하지만, 이건 기밀 정보여서가 아닌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 알겠다고 답했다.

    그가 왜 이러는지는 언젠가 알게 되겠지.

    케일론 왕국도 안정을 찾았고, 칼바도스도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지라 마드세인도 평화로웠다.

    이제 앞으로는 함께 연구개발에만 집중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다크엘프 퀸으로 인해 새삼 텔레포트 좌표 교란에 대한 위험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것에 대비한 연구도 진행할 생각이다.

    다크엘프 퀸의 아티팩트가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텐데, 머리만 남기고 몸통이 사라져서 아쉽다.

    몸통이 보물덩어리인데.

    그때 에클로 공작이 미스릴로 만들어진 팔찌를 안주머니에서 꺼내 내게 슥 밀었다.

    “이게 뭔가요?”

    “다크엘프 장로들에게서 얻은 전리품입니다. 저희가 장로 2명분을 챙기고 그곳엔 3명분의 물건이 들어 있죠.”

    그것은 아공간 팔찌였다.

    “오.”

    그 안엔 다크 엘프 전용 마법서를 비롯해 각종 재화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이건···.”

    바로 아공간에서 물건을 꺼내 들었는데, 그것은 엄지손톱만 한 붉은 보석이었다.

    그 작은 보석에 담겨 있는 기운이 어찌나 무서운지, 드라켄의 코어에 버금가는 마력이 느껴졌다.

    나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에클로 공작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드래곤 하트의 조각입니다. 저희 폐하께서 아르비스 공작님께 드리는 선물이죠.”

    “허···.”

    *

    25. 아이로스 천년초

    무협을 보면 천년하수오나 만년설삼 같은 자연의 영약이 등장하곤 한다.

    섭취만으로 엄청난 내공 증진을 이루며 종류에 따라선 만독불침이라든가, 내공재생률이 상승하는 등, 보조 효과가 따라붙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기적의 영약들은 보통 무협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재로, 지구의 상식으론 실존한다는 생각은 안 한다.

    하지만 이곳이 어딘가.

    판타지 세계를 기본 배경을 하고 있는 로이아스 대륙에는 그와 비슷한 효과를 지닌 영약들이 실존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황금사과라 일컬어지는 ‘제로니아의 과실’이다.

    제로니아의 과실은 드래곤이 깊은 동면에 빠지면 드래곤 하트의 마력이 조금씩 흘러나오면서 형상화된 과일로 오러를 다루는 기사가 섭취할 시 무협의 영약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마나석 광맥 위에서 자란다는 ‘루비드 꽃’, 극한의 오지에서 자라나는 ‘속성초’ 등 다양한 영약이 로이아스 대륙 곳곳에 존재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는 영약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이로스 천년초’다.

    황금사과에 비해 인지도는 낮지만, 그 효과는 황금사과를 아득히 넘어선다고 하여 대륙의 정기가 깃든 신비라 칭해진다.

    아이로스 천년초는 오지 속에서 천 년 동안 살아가는 풀이 아니다.

    천 년을 주기로 단 한 송이만 대륙 어딘가에서 피어나는데, 일반적인 식물의 성장환경을 무시하여 바위 또는 나무 위에서도 피기도 한다.

    [가이아님의 선물인 아이로스 천년초의 개화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이하게 아이로스 천년초 때가 되면 가이아 교단에서 개화 시기를 알려주는데, 어차피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 국가의 지도자는 엄청난 포상을 약속하며 영주와 국민들을 움직인다.

    “아이로스 천년초라···. 지금이 그때군.”

    아이로스 천년초의 약효는 보유한 오러나 마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며, 신체를 재구성하면서 독에 대한 내성과 수명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듣기로 인간이 섭취할 경우 수명이 엘프 수준으로 늘어난다는데, 실제로 확인된 사례가 없는지라 확실치는 않다.

    그래도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은 많은 지배자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한 사안.

    그로 인해 전생의 나도 아이로스 천년초를 찾겠다며 마을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진 기억이 있다.

    그때가 적성검사를 받기 몇 개월 전으로, 복권 긁는단 생각으로 찾아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인간이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천년초는 피어나는 장소도 예측이 불가능한 데다가, 대륙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워낙 많았으니.

    만약 천년초가 5대 금지를 비롯해 하이랜드나 리모트 랜드에서 피어난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또한 악랄하게도 천년초는 단 열흘간만 핀다는 타임리밋까지 존재했다.

    -로엘제국 테르주 지방의 한 용병이 아이로스 천년초를 발견, 황제에게 진상하여 백작의 작위와 함께 방대한 영지를 하사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피어나는지 알고 있다.

    아이로스 천년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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