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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68화 (68/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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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엘프 퀸은 눈을 굴려 주변 지형을 살폈다.

    금속 벽이 둘려진 거대한 공동은 도시를 세울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고, 까마득한 높이의 천장엔 라이트, 공기생성, 정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출구 따윈 어디에도 없었으며 사방이 꽉 막힌 공간.

    도대체 용도를 알 수 없는 장소였다.

    “설마 침입 가능성이 있는 모든 곳에 강제 텔레포트진을 설치한 건가?”

    다크엘프 퀸의 물음에 폴시스 공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17개 장소 침입 루트 여기저기에 설치해놨죠. 아마 설치된 강제 텔레포트진만 300여 개에 달할 겁니다.”

    “허···.”

    “덕분에 돈이 엄청나게 깨졌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이곳을 지키는 바람에 요즘 잠도 부족하네요.”

    “이런 무식한 방법에 당하다니.”

    “하지만 효과적이죠. 제대로 먹히지 않았습니까? 무려 여왕이 걸렸으니.”

    그의 말대로다.

    다크엘프 퀸은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머리를 식혔다.

    “그나저나 신기하군요. 텔레포트 방해 마법으로부터 시전자를 보호하는 방법이 있다니.”

    폴시스 공작의 옆을 지키고 있던 소년이 여왕의 손목에 걸려 있는 미스릴 팔찌를 보며 말했다.

    “혹시 그 팔찌가 공간이동 마법의 좌표오류를 수정하는 아티팩트인가요?”

    다크엘프 퀸은 자신을 품평하듯 위아래로 훑어보는 소년의 모습에 눈꼬리를 씰룩였다.

    “하지만 도망칠 생각을 못 하는 것을 보면 재사용 시간이 꽤 긴 모양이네요.”

    다크엘프 퀸은 길게 대화 나눌 생각 없다는 태도로 검을 뽑아 들었고, 다크엘프 장로들도 이를 갈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네 녀석이군. 쓸데없이 청혈초를 모아놔서 우리를 방해한 인간이.”

    발뺌할 생각이 없는지, 순순히 전염병의 주동자임을 밝히는 다크엘프 퀸.

    “맞습니다.”

    자신감이 가득한 루이스의 모습에 그녀는 비웃음을 흘렸다.

    “설마 우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녀의 물음에 폴시스 공작의 아내이자, 케일론 왕국의 차기 국왕이 유력한 에클로 공작이 스윽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적어도 당신 중에 그랜드 마스터나 9클래스 마법사가 있는 게 아니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폴시스 공작이 오른손을 들자 케일론, 마드세인 동맹의 초인들이 일제히 전투태세를 취했다.

    “쯧!”

    다크엘프 퀸이 혀를 참과 동시에 폴시스 공작의 손이 내려가고, 초인들과 기간트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에 다크엘프들은 마법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는지, 사방에서 조여오는 포위망을 향해 마주 달렸다.

    한 곳에 뭉쳐서 두들겨 맞으면 답이 없다고 여기며 그들은 난전을 유도했다.

    타타타탁!

    다크엘프 퀸의 목표는 루이스.

    두 명의 8클래스 마법사 중 한 명이라도 먼저 줄여 놓으면 상황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같은 클래스지만 폴시스 공작에 비해 마법의 경지가 낮은 8클래스 초입의 루이스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녀는 8클래스 마법사 겸, 그랜드 마스터를 목전에 둔 검사.

    샤를로트 공작과 폴시스 공작의 혼합체라 할 수 있다.

    다크엘프 퀸의 오러블레이드에 뇌전이 더해지고, 오러블레이드는 일반적인 크기를 넘어 거대한 대검이 되었다.

    그녀의 한발 한발에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마법사는 강력한 공격력을 지녔지만, 캐스팅이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캐스팅 없이 공격을 이어가기 위해선 두 클래스 낮은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6클래스 마법은 마스터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근접전에선 마스터가 대마법사를 압도하는 것이 정설이다.

    더구나 그녀는 평범한 마스터가 아니지 않은가.

    슈슈슉!

    “헙!”

    하지만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그녀는 발밑에서 솟구쳐오르는 붉은 가시 다발에 헛바람을 삼키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녀가 허공으로 몸을 날리자, ‘세이크리드 데스’라는 8클래스 대인 공격마법이 날아들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순백의 빛 수백 가닥이 유도미사일처럼 하나하나가 다크엘프 퀸의 심장을 노리며 허공을 유영한다.

    발아래선 붉은 가시다발이, 허공에선 8클래스의 악명 높은 대인 마법이 떨어져 내리니,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

    완전히 예상을 깨뜨리는 연계였다.

    다크엘프 퀸은 표정을 굳히며 급히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

    8클래스의 대마법사이자, 그랜드 마스터를 목전에 둔 마검사라니.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가 아닌가.

    나는 무시무시한 공격을 검으로 방어해내는 다크엘프 퀸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2미터가 넘는 크기의 오러블레이드로 ‘세이크리드 데스’를 막아내고, 발아래에서 솟구쳐오른 7클래스 수준의 마력 가시들은 홀로 춤추는 플라잉 소드로 막아냈다.

    샤를로트 공작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

    그러나 언제까지 검무를 추는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이유가 없는지라 나는 쉬지 않고 공격을 날렸다.

    콰콰콰쾅!

    시각을 가리기 위한 4클래스의 파이어 월과 7클래스의 플라즈마 버스터를 거의 동시에 날렸다.

    “그럼 믿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내가 막강한 다크엘프 퀸을 붙잡아 두는 동안 폴시스 공작과 에클로 공작이 난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결국 다크엘프 퀸은 이를 갈며 샤이닝 쉴드를 생성해 모든 공격을 막아내며 거리를 좁혀 왔다.

    “꼬맹이 새끼가!”

    “여왕이라면서 품위가 없으시네. 다크엘프라 그런가?”

    샤이닝 쉴드를 믿고 달려드는 그녀에게 손가락을 튕기며 헬파이어를 선물해 주었다.

    7클래스 시절 샤를로트 공작의 플라잉 소드에 어느 마법도 버티지 못하고 여지없이 베였는데, 역시 8클래스의 헬파이어는 급이 다르다.

    플라잉 소드를 삼킬 뿐만 아니라, 8클래스 방어 마법인 샤이닝쉴드조차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쿠쿠쿠쿠!

    하지만 플라잉 소드와 샤이닝 쉴드를 거치며 위력이 감소한 헬파이어는 결국 그녀가 휘두른 검에 두 동강이 나며 폭발했다.

    파훼 된 헬파이어는 본래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콰콰쾅!

    오러를 몸에 두른 채 헬파이어의 폭발을 뚫고 빠르게 달려오는 다크엘프 퀸.

    예전이었으면 당황했겠지만, 샤를로트 공작을 상대했을 때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르다.

    클래스가 오르면서 함께 위력이 급상승한 마력 공격이 다크엘프 퀸의 플라잉 소드를 멀찍이 튕겨냈고, 나는 샤이닝 쉴드를 펼치며 이어질 충격을 대비했다.

    콰앙!

    그녀의 오러블레이드가 샤이닝 쉴드와 충돌했다.

    괜히 8클래스의 방어 마법이 아님을 증명하듯, 샤이닝 쉴드는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이상하군. 메모라이즈 같진 않은데, 어찌 마법을 딜레이 없이 사용하지?”

    다크엘프 퀸은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한폭의 그림과 같은 미인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좋았지만, 샤이닝 쉴드를 파고드는 오러블레이드를 보고 있자니 외모 감상이나 할 여유가 없었다.

    “마법 천재라서요.”

    그녀는 다시금 플라잉 소드를 조종했고, 마력 가시가 그것을 튕겨냈다.

    “그럼, 이 공격은 뭐냐?”

    “굳이 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까?”

    나는 내 머리 위로 썬더 스톰을 사용했다.

    가닥가닥 무서운 위력을 뽐내는 썬더 스톰에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접두사 마법인 ‘부스터’를 활용해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물론 그만큼 마력의 소모는 크다는 단점이 있는 공격이었다.

    “빌어먹을!”

    하늘에서 쏟아지는 벼락들을 가볍게 피하면서 마법 캐스팅을 하던 그녀는 샤이닝 쉴드를 완성하며 내게 바짝 달라붙었다.

    거리를 벌리면 쉽게 피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는 것을 보니 내게서 멀어지면 다시 달라붙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위치한 공간에서 미묘한 마력이 감지되었다.

    나는 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장소에 7클래스의 세퍼레이션이 펼쳐졌다.

    콰직!

    공간을 비트는 섬뜩한 소음과 함께 허공에 균열이 생긴다.

    동시에 플라잉 소드가 날아들어 샤이닝 쉴드에 틀어박히니, 새삼 완성된 마검사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심한 마력 소모로 인해 썬더 스톰을 중단했다.

    그에 다크엘프 퀸은 뇌전이 깃든 거대한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러 내가 두른 샤이닝 쉴드를 박살 냈다.

    “뒈져!”

    내게 발목을 붙잡힌 게 그리 분한지, 악에 받친 얼굴로 검을 뻗는 그녀의 모습은 악귀와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바닥에 그리스를 사용해서 뒤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동시에 지금까지와 비교되지 않는 규모의 붉은 가시들이 내가 서 있던 곳을 덮치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솨솨솨솩!

    “세이크리드 데스!”

    “세이크리드 데스!”

    검으로 내 공격을 막아내면서 나와 동시에 마법을 외치는 다크엘프 퀸.

    아무래도 여태껏 비밀스레 캐스팅하고 있던 모양이다.

    본체로 검을 휘두르고, 플라잉 소드 날리고, 마법까지 캐스팅하다니.

    무슨 뇌가 세 개라도 되는 건가.

    흰색의 빛줄기들이 상대를 향해 날아가는데, 두 마법이 교차하면서 나와 다크엘프 퀸을 향해 뻗어갔다.

    세이크리드 데스의 목표물은 오로지 심장.

    사방에서 포위하듯 뻗어오는 빛줄기는 수백 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 같았다.

    나와 다크엘프 퀸은 동시에 샤이닝 쉴드를 펼쳤다.

    시전 속도를 보니 메모라이즈 해두었던 마법인 모양이다.

    투투투투툭!

    마치 우산 위로 굵은 빗줄기들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음들.

    최강이라 표현할 수 있는 다크엘프 퀸을 상대로 이렇게 싸우다니, 문뜩 나 자신이 동급의 마법사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 드래곤급의 마나코어를 이식해서 이 정도인데, 드래곤 하트를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서로의 샤이닝 쉴드에 8클래스의 대인 공격이 쏟아지고, 그녀는 플라잉 소드를, 나는 붉은 가시로 추가 공격을 했다.

    다크엘프 퀸을 상대로 대등한 전투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밥값은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전황을 살폈다.

    ***

    그랜달에 탑승하여 8클래스급의 상급 소드마스터를 상대하던 콘스탄틴은 압도적인 경지의 차이를 장비로 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군과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다크엘프 퀸 수준의 검사는 없었지만, 빈틈을 노리며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플라잉 소드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최상급 소드마스터라고 할 수 있는 샤를로트 공작과 다크엘프 퀸이 플라잉 소드로 검술까지 펼치는 데 반해.

    상급 소드마스터인 다크엘프 장로들과 에클로 공작은 플라잉 소드를 표적을 향해 날리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기사가 두 개의 오러블레이드로 원거리와 근거리 공격을 동시에 한다는 것만으로도 전투에선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쿵!

    또다시 빈틈으로 노리고 날아온 플라잉 소드가 그의 코앞에서 둔탁한 충돌음을 만들어냈다.

    기간트에서 가장 방어력이 높은 부분이 조종석 부근이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플라잉 소드에 두세 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콘스탄틴은 열심히 조종간을 놀렸고, 비행형 기간트 이카로스에 탑승한 제논과 함께 다크엘프 장로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끄아악!”

    그렇게 기간트에 탑승한 둘이 쥐잡듯 다크엘프 장로를 몰아치는 사이, 폴시스 공작 부부가 다크엘프 장로 한 명을 처리했다.

    루이스와 다른 마스터들이 시간 끌기용이라면 두 사람은 제거조였다.

    괜히 부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폴시스 공작과 에클로 공작은 마치 둘이 하나인 것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승기는 완전히 기울어졌고, 평생 한 명 보기 힘든 8클래스 마법사와 상급의 마스터들이 계속해서 목숨을 잃어간다.

    전투가 큰 위기 없이 진행될 수 있는 이유는 하이 스펙의 다크엘프 여왕을 루이스가 홀로 붙들어 놓은 덕분이었다.

    시간이 경과 하면서 조금씩 힘에 부치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치열했다.

    다크엘프 장로 셋이 죽고 둘밖에 남지 않았다.

    패배가 확정된 상황.

    그들은 결국 싸우기를 포기했다.

    장로들은 여왕에게 달려갔다.

    “여왕님! 이탈을!”

    “빌어먹을!”

    8클래스 마법사가 자신의 여왕을 살리기 위해 그녀가 있는 구역의 좌표를 정상화했고, 다른 장로는 사방에서 달려드는 적들에게 미친 듯이 오러블레이드를 날렸다.

    죽음을 각오한 그 모습이 사뭇 매서웠다.

    한정된 구역이지만, 텔레포트 방해마법의 좌표를 정상화시킨 장로가 여왕을 바라보았다.

    다크엘프 퀸은 장로들의 희생에 눈을 질끈 감으며 메모라이즈해둔 마법을 사용했다.

    “텔레포트!”

    그러나 그녀를 상대하던 루이스가 그 광경을 얌전히 지켜볼 리가 없었다.

    “디스펠!”

    거의 동시에 펼쳐진 마법.

    하지만 여왕의 마법은 캔슬되지 않았다.

    “디스펠 저항 아티팩트가 있다. 또 보지.”

    복수를 다짐하듯 푸른빛에 휩싸인 다크엘프 퀸이 그리 말했다.

    폴시스 공작과 에클로 공작은 당황한 모습으로 달려왔지만, 이미 다크엘프 퀸은 사라진 뒤였다.

    루이스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쪽에 디스펠을 사용한 게 아닌데.”

    “으아아아악!”

    다크엘프 퀸이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장로가 비명을 지르며 땅을 내리쳤다.

    그런 장로의 눈앞에 입만 벙긋거리는 여왕의 머리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녀의 몸은 원하던 장소로 이동했지만, 머리는 이동하지 못했다.

    즉, 텔레포트에 실패했다는 뜻.

    루이스는 다크엘프 퀸이 아닌, 그녀를 보조하던 장로에게 디스펠을 사용한 것이었다.

    “코어 마력이 거의 다 떨어졌는데 다행이네.”

    이후 충격을 받은 다크엘프 장로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여왕 옆에 머리를 나란히 장식했다.

    *

    함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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