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67화 (6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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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함정

    “전염균에 의한 피해가 너무 미미한데요?”

    엘프 장로의 물음에 다크엘프 퀸은 혀를 차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사타니스 전염균의 위력은 퍼트린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철저하게 해독초를 죽이며 빠르게 확산하는 병균은 공포 그 자체.

    감염되면 채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체내의 모든 피를 쏟으며 고통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그런 무서운 전염병을 이리 빠르게 잡아내다니.

    “청혈초를 그렇게 쟁여 놓는 미친 인간이 있을 줄이야.”

    해당 전염균에 대한 백신을 바로 개발해낸 케일론의 연구 능력도 대단하지만, 설마 약초인 청혈초를 수백 톤이나 보유한 인간이 있을 거라는 것을 어찌 생각이나 해봤겠는가.

    여왕은 이 상황이 너무도 어처구니없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설마 또 다른 전염균을 갖고 계신 건 아니겠죠?”

    “사타니스 수준의 전염균은 없다. 그리고 녀석들도 바보는 아니니 같은 수엔 당하지 않겠지.”

    “그럼 이제 전면전을!”

    “아니, 그건 아니야.”

    일반적인 상식으로 다크엘프의 전력이 위인 것은 사실이지만, 케일론 왕국은 기간트를 개발해낼 정도로 높은 마도 공학 기술을 갖고 있다.

    그 말은 즉, 그들에겐 기술의 기본이 되는 마도시대의 병기가 있다는 뜻인데, 무엇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무턱대고 덤빌 수가 없었다.

    또한 마도 병기도 병기지만, 케일론 왕국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힘이 있다.

    그것이 다크 엘프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대체 케일론 왕국이 뭐길래 이리도 망설이는 겁니까?”

    다크 엘프 여왕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케일론인의 외모 특징을 알고 있겠지?”

    “그야···.”

    케일론 왕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미드랜드의 다른 인종과 매우 다른 외모를 갖고 있다.

    피부톤이 진했으며, 흑발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것이 특징.

    많은 세월이 흘러 여러 인종의 피가 섞이면서 머리와 눈동자 색도 제법 다양해지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케일론 왕국인하면 그 특성을 떠올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케일론의 그 특성은 드래곤 때문이야.”

    “네?”

    “케일론 왕국의 선조가 드래곤의 피를 마신 종족이라 불리는데, 후천적 변이를 일으켜 그런 외모를 가지게 된 거거든.”

    “그, 그렇습니까?”

    케일론인의 외모에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게 어떻게 위협이 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드래곤의 피를 마셨다고 해서 인간이 드래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약간의 능력치 상승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처음 이야기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특성은 없는 거나 다름이 없다.

    다크엘프 퀸은 엘프장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케일론 인에게 피를 나눠준 드래곤이 케일론 왕국의 수호룡을 자처하고 있지.”

    “헉.”

    “수호룡이 케일론 왕국에 어떤 장치를 해놓았다고 해. 그래서 우리가 이리 조심하는 거다.”

    이제 이해했냐며 턱을 치켜드는 다크엘프 퀸을 보며 엘프 장로는 크게 당황하며 물었다.

    “어, 어째서 그런 무서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겁니까? 혹시라도 그 수호룡이 나서는 것은 아니겠죠?”

    드래곤은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차라리 정체 모르는 무엇보다 드래곤이 나서는 편이 낫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드래곤이 나서면 모든 것이 끝나는데!”

    엘프 장로가 수호룡의 존재에 대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다크엘프 퀸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실버 엘프는 너희와 달라. 우린 드래곤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란 것을 잊었나?”

    “아···.”

    “우리가 드래곤을 직접 공격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실버 엘프를 공격할 수 없다. 이건 가이아님께서 정해주신 법칙 같은 거다.”

    다크엘프가 리모트 랜드의 전통적인 주민임을 떠올린 그는 안도했다.

    “우리의 여왕께서 실버 엘프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신의 한 수였군요.”

    “이제야 우리에 대한 평가가 오르는구만.”

    그녀의 이죽거림에 엘프 장로는 재차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기회가 생기면 암살로 가야지.”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다크엘프 퀸의 반응에 엘프장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요. 드래곤의 안배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모든 머리를 지킬 수는 없을 테니까요.”

    엘프 장로는 진작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 녀석은 우리가 어떤 피해를 입건 상관이 없는 모양이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크엘프는 암살에 특화된 종족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더 높은 능력치를 발휘하는 종족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크엘프 퀸이 직접 움직인다면 아마 미드랜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도 없을 터.

    엘프 장로가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미간을 좁힌 그녀가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보지 않아도 기회가 된다면 직접 움직일 거다. 실버 엘프의 여왕은 너희 여왕처럼 엉덩이가 무겁지 않거든.”

    마지막에 불필요한 말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참 좋았을 텐데.

    ‘우리의 여왕님께선 당신처럼 경망스럽지 않습니다!’

    엘프 장로는 그 말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

    내 이야기에 루시엘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나보고 애들을 보라고?”

    “할 일을 찾고 계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일거리를 만들어드린 겁니다.”

    나는 루시엘라를 멍하니 바라보는 두 여자아이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마법과 정령소환을 제한하던 저주를 풀어주겠다고 해서 좋아했더니, 이를 위한 거였나?”

    내가 저주를 풀어 주면서 지금 루시엘라는 온전한 자신의 힘을 찾은 상황.

    호신을 위한 방어가 아니라면 사람에게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도망가지 않겠다는 제한이 걸렸지만, 그녀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알고 보면 모든 게 이를 위한 밑밥이었지만 말이다.

    “6클래스 이상의 마법사 중에 손이 남는 사람이 루시엘라 뿐이거든요.”

    “나는 적이라며?”

    “이제 그런 거 안 따지겠다면서요.”

    루시엘라가 끙 소리를 내며 내 동생 에리스와 케일론 왕국에서 데려온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 소녀의 이름은 이브릴.

    텔레파시로 겨우 알아낸 이름이었다.

    “와, 천사 언니다.”

    에리스가 특유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루시엘라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같은 건물에 살다 보니 오가며 수차례 마주쳤겠지만, 다가오지 말라는 오오라를 마음껏 내뿜는 루시엘라로 인해 친밀하게 지낼 일은 없었다.

    6살 생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에리스가 풍부한 표정을 드러내며 루시엘라를 요모조모 뜯어보는 것과 달리 감정표현이 적은 이브릴은 어깨를 움츠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이브릴이 말을 못하는 것은 선천적 문제가 아니다.

    아무래도 가족을 잃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것 같은데, 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 생각한다.

    “오늘부터 루시엘라가 이 둘의 마법 스승이 되어 주세요.”

    내 부탁에 그녀는 소파에 깊이 몸을 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소일거리삼아 해볼게.”

    그녀의 동의가 떨어지자 나는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예쁜 언니가 너희들에게 마법을 가르쳐 줄 거야. 말 잘 들으렴.”

    “마법? 좋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브릴과 눈을 반짝이는 에리스.

    루시엘라는 에리스가 내 동생임을 알고 있지만, 이브릴은 처음 보는지라 누구냐고 물었다.

    그에 나는 간략하게 이브릴을 만나게 된 경위와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은 루시엘라는 내게 그런 면모가 있냐며 새삼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은 나도 변덕이 든 것뿐이라서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아, 참고로 두 아이다 글을 모르니, 글부터 가르쳐야 할거에요.”

    “······.”

    단순히 인간의 아이라 그런 건지, 원래 애가 질색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꽤나 두 아이를 어려워했다.

    “그래, 알았어.”

    “고맙습니다.”

    이걸로 우수한 선생님을 붙여 줬으니, 두 아이에게 나름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루시엘라는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네 동생은 정령마법도 가르쳐?”

    “정령?”

    “적성 있는데, 몰랐구나.”

    정령사의 적성을 가진 사람은 매우 귀하다.

    이번에 실시한 전국 적성검사에서 정령사의 자질을 가진 아이는 겨우 500명이 채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는 마법사보다 11배 낮은 수치였으며 두 개의 적성을 모두 가진 사람은 겨우 15명밖에 없었다.

    나는 에리스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크게 될 그릇일지도 모르겠는데?

    “정령 속성이 뭔데요?”

    루시엘라는 에리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빛이야.”

    빛 속성 정령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고작 길거리를 비추는 라이트 같은 건 아니겠지?

    “희귀 속성이야. 마법으로 치면 보호계라고 할 수 있지.”

    “보호계?”

    “높은 치유능력과 방어력을 갖고 있고 있으며 언데드와 마속성 몬스터에게 강하지. 단점은 중급 이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일반 공격력은 거의 제로나 마찬가지란 점이야.”

    높은 치유능력과 방어력이란 점이 성직자 떠올리 게 만든다.

    조금 어정쩡한 느낌이지만, 마법과 정령마법을 함께 쓸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에리스는 마드세인에 16명뿐인 듀얼 클래스였으니.

    “그럼 에리스에겐 정령 마법도 부탁드려요.”

    루시엘라는 완전히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브릴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겉모습만 보면 나와 3~4살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왠지 딸을 키우는 느낌이다.

    ***

    “요즘 서부 영지의 안정화를 위해 폴시스 공작과 에클로 공작이 격려차 순방을 하고 있다는군요.”

    “둘이 같이 움직이는 건가?”

    “아뇨, 폴시스 공작은 북서부를, 에클로 공작은 남서부 영지를 돌고 있습니다.”

    “그 둘이 왕성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따로 움직이고 있다고?”

    완전히 ‘날 잡아드세요’라고 광고하는 것 같지 않은가.

    다크엘프 퀸은 부하의 보고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여왕님! 기회가 아닙니까. 그 둘을 제거하면 케일론 왕국의 전력이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엘프 장로의 주장에 그녀는 한심하단 반응을 보였다.

    “함정이잖아. 당신 바보야?”

    바보란 말에 울컥 기분이 상했으나, 함정에 이야기에 의문을 표했다.

    “함정이라뇨?”

    “딱 봐도 그렇잖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인물이면 전염병이 작위적이란 것을 알아챘을 텐데, 바보처럼 국가의 주축이 되는 두 사람이 따로 다닌다고?”

    “······.”

    듣고 보니 이상하긴 하다.

    그녀의 조롱에도 엘프 장로는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녀석들이 우리의 소행이란 걸 눈치챘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고 봐야겠지.”

    “아직은 때가 아니란 소리입니까?”

    다크엘프 여왕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원래 함정이란 게 모르고 당하면 위협적이지만, 알고 있다면 역이용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한편으론 이 또한 적들의 계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티가 나는 함정.

    그들도 바보가 아닌데, 자신들이 그걸 간파할 것이란 사실을 모르겠는가.

    “이럴 땐 잠자코 있는 것이 안전하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밀릴 이유가 없단 말이지.”

    호전적이고 단순하게 표현되는 다크엘프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신중한 성격.

    “성 밖에서 8클래스 마법사 3명이 헬파이어를 날릴까?”

    “오, 그거 좋군요.”

    “아니야, 기본적으로 외부 공격에 대한 대비는 되어있을 테니.”

    “······.”

    그런 여왕의 성격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엘프 장로의 몫이었다.

    “좋아, 정했어.”

    한참을 고민하던 다크엘프 퀸은 결정을 내렸고, 장로들을 소집했다.

    그렇게 소집된 인원은 8클래스 마법사 2명과 상급 소드마스터 3명.

    제국의 황성이라도 정문으로 뚫고 들어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전력이었다.

    “목표를 정하셨습니까?”

    다크엘프 퀸은 말했다.

    “녀석들의 연구 시설을 칠 거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생각.

    굳이 공격 대상을 인간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었다.

    케일론의 연구 시설을 괴멸시키기만 해도 큰 성과였으니.

    아니, 어떻게 보면 하이랜드에서 바라는 목적을 일부 달성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가자.”

    다크엘프 퀸은 마음의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바로 행동했다.

    *

    케일론 왕국 수도 외곽에 위치한 위성도시 제니스.

    제니스는 왕립 마탑을 비롯해 마법 연구기관이 집중 배치된 폐쇄적인 도시이다.

    입장이 어려울뿐더러 여기저기 감시의 눈이 깔려 있어서 수상한 행동을 보인다면 바로 체포가 된다.

    그런 제니스로 6개의 그림자가 숨어들었다.

    “보안마법이 징하게 깔려있군.”

    여왕을 비롯한 다크엘프의 장로들.

    제니스의 방어가 아무리 철저하다고 해도 8클래스 마법사가 3명이나 포함된 이들을 막을 수 있는 보안시스템은 없었다.

    높은 건물이 밀집된 도시를 누빈 여섯 명은 도시 내에서 가장 큰 건물 앞에 멈춰섰다.

    [케일론 왕립 마탑]

    그곳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였다.

    입꼬리를 말아올리는 여왕의 손짓에 따라 다크엘프들은 연기가 되어 3층의 창문으로 스며들었다.

    파앗!

    의문을 표하던 다크엘프 퀸은 예고 없이 발아래 펼쳐지는 마법진에 당황했다.

    “강제 텔레포트?”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폭사하는 새파란 빛이 여섯을 잡아먹어 버렸다.

    “······.”

    그리고 갑자기 바뀐 풍경.

    다크엘프 퀸은 사방이 꽉 막힌 넓은 공동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공간 좌표 보호 장비를 갖고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자신들은 이곳을 뒤덮은 공간이동 방해진에 걸려 신체가 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 넓은 공동엔 10명의 마스터와 10명의 대마법사, 마스터가 탑승한 것으로 생각되는 기간트 다섯 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간트의 모습을 보아하니, 케일론에서 생산했다는 어설픈 녀석이 아닌 마도시대의 오리지널로 보였다.

    그렇게 신중을 기했건만 오랜 고민을 허무하게 만드는 결과였다.

    그때 다크엘프 퀸을 향해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사내가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그냥 순순히 텔레포트 오류로 죽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런 그 사내의 곁으로 8클래스의 마법사로 보이는 소년과 상급 마스터 여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함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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