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63화 (6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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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별이 유난히 밝구나.”

    네나 왕국의 국왕은 자신의 침소에서 와인을 마시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수도의 밤은 마법 가로등으로 환했지만, 그의 방은 밤하늘을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마법 처리가 되어 있는지라 항상 쏟아지는 듯한 별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밤하늘의 별을 구경하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그것은 오랜 세월 네나 왕국 국왕이 지켜온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그렇게 별을 벗 삼아 얼마나 술잔을 기울였을까.

    똑똑똑.

    “폐하, 왕태자입니다.”

    와인 한 병이 바닥을 보일 때쯤, 갑작스런 왕태자의 방문에 국왕은 의문을 표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왕태자가 어인 일인가?”

    “급히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 늦은 밤에 보고라니, 다급함 배어 있는 왕태자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국왕은 마지못해 그의 입실을 허락했다.

    “들라.”

    문이 열리고 왕태자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이 시간을 방해받는 것은 용납 못 한다. 그걸 알면서도 찾아왔다는 뜻은 그만큼 심각한 내용이라 생각해도 되겠느냐?”

    “예, 그러하옵니다.”

    “말하라.”

    “방금 태그 상단주에게 급히 연락이 왔사온데, 환각초 재배 농장이 대 마법에 의한 공격으로 증발했다고 합니다.”

    국왕은 두 눈을 크게 뜨며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다.

    “마드세인의 짓이냐?”

    “증거는 없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증거가 없어도 지금 이 시기에 환각초를 날릴만한 이유를 갖고 있는 국가는 오로지 마드세인 뿐이었다.

    네나 왕국이 타국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은 그가 왕이 되고 처음 있는 일.

    황당하면서도 마음속 깊이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자신들이 한 짓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거리낌 없이 공격을 해오다니.

    네나 왕국을 우습게 보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과연 마드세인이 많이 크긴 한 모양이야.”

    국왕의 입꼬리가 심하게 씰룩거렸다.

    하지만 보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왕태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현장에 있던 마법사의 보고에 의하면 농장을 날린 공격 마법이 헬파이어 같다고 합니다.”

    “헬파이어?”

    8클래스 궁극의 공격 마법으로 준 9클래스로 치부되는 마법이 바로 헬파이어다.

    “아니다. 그가 잘못 안 것이다.”

    국왕이 고개를 내저으며 현실을 부정하자 왕태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폐하!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짐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서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국왕의 모습에 왕태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는···.”

    ‘그래도 이젠 할 말은 해야겠다.’고 판단한 그는 다시금 국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이잉!

    하지만 국왕이 등진 창문 너머 밤하늘을 수놓는 거대한 마법진의 존재로 인해 왕태자는 말을 잃고 말았다.

    “어허, 대답을 못 할까!”

    “폐, 폐하 뒤를!”

    안색이 새하얘진 왕태자가 창밖을 가리키자, 국왕은 미간을 좁히며 자신이 바라보던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

    별을 대신해 밤하늘을 가득 채운 거대 마법진.

    그리고 하늘에서 붉은 불덩어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폐하! 보호의 팔찌를!”

    “그, 그렇지.”

    왕태자의 비명과 같은 외침에 문밖에 대기하던 기사들이 뛰쳐 들어왔다.

    하지만 국왕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이 착용한 팔찌의 보석을 누르며 외쳤다.

    “샤이닝 쉴드!”

    네나 왕국 왕실에 대대로 전해오는 국보인 보호의 팔찌.

    그것엔 샤이닝 쉴드가 내재되어 있었다.

    비록 재충전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에 신중히 사용해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보호의 팔찌를 사용해야 할 때라 판단했다.

    드드드드!

    불꽃 덩어리가 지상에 가까워짐에 따라 주변의 대기가 떨리기 시작한다.

    콰아아아아앙!

    이어서 그 불꽃이 지상에 닿는 순간.

    네나 왕국 수도에 요란한 충격음이 울려퍼지고, 유리를 사용한 고급건물의 창문들이 일제히 터져나갔다.

    드드드드드!

    강력한 지진이 수도를 뒤흔들고, 기사들이 침소에 밀고 들어와 국왕과 왕태자를 둘러쌌다.

    다행이라면 거대 불꽃은 왕성을 노리지 않았다.

    공격을 당한 곳은 수도 북서방면의 외곽.

    두 사람은 그곳이 태그 상단의 창고와 본부가 밀집된 곳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대마법은 태그 상단뿐만 아니라 수도의 성벽까지 깔끔하게 날려 버렸다.

    샤이닝 쉴드 속에서 엉덩방아를 찧고만 국왕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검은 뭉게구름을 바라보았다.

    “이건 경고입니다.”

    그리고 말을 잃은 국왕에게 왕태자가 말했다.

    “만약 저 공격이 왕성으로 향했다면, 막아 낼 수 있었을까요?”

    저건 7클래스 급의 마법이 아니다.

    국왕도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다.

    만약 저런 것이 왕성을 덮쳤다면 샤이닝 쉴드가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막지 못할 것이다.

    순식간에 왕성은 증발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한줌의 재가 될 터.

    왕태자의 말대로 이것은 분명 괜한 수작을 부리지 말라는 마드세인의 위협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국왕은 아들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비규환이 된 도시는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이게 헬파이어란 건가?”

    거대한 크레이터.

    깔끔하게 날아간 성벽은 보수로만 엄청난 거금이 깨질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국왕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답했다.

    “고민해 보겠다.”

    네나 왕국 국왕의 표정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마드세인의 위협은 제대로 먹힌 것이다.

    언제든 자신의 모습을 날릴 수 있는 존재가 마드세인에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겪으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가증스럽게도 마드세인에서 이번 공격을 사고로 치부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을 전해 왔다.

    [우선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지난번에 이어 다시 강력히 요청하는바, 마드세인 왕국을 향한 네나 왕국의 마약 유통을 근절해주길 바란다.]

    결국 네나 왕국은 협박에 굴해 마드세인에 들어가는 환각초를 모두 막았다.

    *

    “네나 왕국에서 더 이상 마드세인에 환각초를 유통시키지 않겠다고 합니다.”

    칼바도스 제국의 황제는 외무대신의 보고에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제법이군. 환각초의 위험성이 이리 빨리 간파하고 막아낼 줄이야. 새로운 여왕이 유능한 건가? 아니면 아인트 공작이?”

    “역시 아르비스 공작이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외무대신의 대답에 황제는 수긍했다.

    “헬파이어 한 번에 기가 꺾여 버리다니.”

    “네나 왕국은 8클래스 마법이 왕성에 날아든다면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나라의 왕이 내뱉은 말은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헬파이어가 걱정되면 지하에서 생활하면 될 것을.”

    칼바도스 제국의 황성은 이타루스 성왕국의 왕성 수준은 아니지만, 대마법 공격에 대한 대비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칼바도스 제국 5천 년의 역사 동안 등장한 8클래스의 마법사가 제법 되었고 그들이 황성을 보강하고 또 보강했기에 헬파이어 한두 방에 뚫릴 일은 없었다.

    “뭐, 됐다.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지. 네나 왕국은 좋은 말로 구슬리도록. 긴밀한 관계가 끊겼다고 적대할 필요는 없으니.”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가? 케일론 왕국에서 기간트를 실전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결과 사실로 판명되었습니다. 케일론 왕국 아리타 방면에 10대 배치를 확인하였으며, 그 외에 다른 곳에 배치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아리타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 보니, 연구기체를 양산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능은?”

    “덩치와 움직임을 봐선 10.0에 조금 못 미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허, 그것만 해도 우리가 연구 중인 마나하트의 출력의 두 배에 가깝지 않은가.”

    칼바도스제국과 케일론 왕국은 거의 끝과 끝에 위치해 있지만, 기간트 관련 정보에 대해선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마도공학 기술의 총아라 불리는 것이 기간트다.

    기간트의 마나하트를 이용하면 다양한 병기들을 개발할 수 있는데, 만약 이런 기술이 미드랜드 전체에 퍼지면, 칼바도스의 대업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유적을 손에 넣은 만큼 다른 국가들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칼바도스의 황제는 태연한척해도 조바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기간트 개발 상황은?”

    “순조롭습니다. 꾸준히 마나하트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마드세인의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것도 문제로군.”

    황제는 황좌의 손잡이를 톡톡 두들기며 고민했다.

    “한동안은 마도병기 연구와 군사력 증강에만 신경을 써야겠군.”

    ***

    23. 케일론 왕국

    네나 왕국의 항복으로 마드세인의 마약사태는 일단 잠잠해졌지만, 이로 인해 마약의 존재가 알려졌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일단 어디서든 마약을 몰래 들여오려는 자들이 있고, 또 그만큼의 수요가 있다 보니, 지구와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번 일로 인해 나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순히 평민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선 돈만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호기심도 충족시켜 줘야 한다고.

    애초에 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내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영지민들에겐 그만한 대우를 해주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나를 영지민들에게 성군이라 추앙받는 영주로 만들어 주었지만, 솔직히 이는 나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한 행동이지 영지민을 위한 것이라 볼 순 없었다.

    아무튼 이번 사태로 나는 평민들의 문화생활과 소비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많은 정책과 물건을 내놓았고, 이는 곧 엄청난 이슈를 끌었다.

    먼저 음악회과 연극회는 의심할 여지 없이 모두가 좋아했다.

    덕분에 음악회와 연극회가 시작될 때는 해당 장소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 하나의 작은 축제가 열렸다.

    영주성의 허가를 받은 많은 가판이 자리를 잡고 이미지 아티팩트와 소리증폭 아티팩트를 요소요소에 만들어 편의를 더했다.

    사람들이 각자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TV처럼 이미지로 송출되는 화면을 보던가,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판의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실상 나라의 사정을 살펴보면 칼바도스 제국의 위협에 맞서 유례없는 군사증강을 하고 있는 상태인데 말이다.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영지민들은 오셀로를 즐기곤 했다.

    체스는 룰이 어려워 익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오셀로는 어린아이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바로 경쟁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공을 이용한 놀이와 장난감들을 만들어 시장에 푸니 마치 마른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영지민들이 받아들였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해, 놀이에 빠지고 그것에 흥미를 잃어도 즐길 거리는 얼마든지 있으니 조금이나마 마약에 대한 관심을 지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문화회관과 동물원, 각종 공연장을 대대적으로 만들고 있다.

    아직 평민들의 문화생활엔 깊이가 없지만, 이런 식으로 토대가 만들어지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이로 인해 아르비스 공작령의 분위기는 어느 도시와도 다른 특색있는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다.

    그것은 영지를 찾은 손님들도 깊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정도였으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손님들 또한 그랬다.

    “영지가 정말 멋집니다.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평민들은 처음 보는 것 같군요. 모든 것이 영주님의 올바른 성정 덕분이겠죠.”

    그간의 내 노력을 인정하며 칭찬을 늘어놓는 흑발 적안의 사내.

    표정관리가 힘들었지만 나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

    “오늘 많은 것을 배워갈 것 같군요. 반갑습니다. 케일론 왕국의 왕립마탑주 카일 드 폴시스 공작입니다.”

    “바, 반갑습니다. 마드세인 왕국의 루이스 로이드 아르비스입니다.”

    갑자기 내 영지를 방문한 케일론 왕국의 8클래스 대마법사.

    그의 등장만으로도 당혹스러운데, 문제는 그만이 아니었다.

    “이쪽은 저의 부인인, 리사엘 드 에클로 공작입니다.”

    미드랜드에서 보기 힘든 능력제일 주의 국가인 케일론 왕국은 여자라도 왕이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다.

    에클로 공작은 현 케일론 국왕의 유일한 혈육이자 다음 대 국왕으로 거의 확실시 되는 인물이었다.

    만약 능력이 부족하면 모를까, 그녀는 공주의 몸으로 마스터의 자리까지 오른 검의 귀재였으며 8클래스 대마법사를 남편으로 두고 있다.

    왕좌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

    두 사람은 10대 후반, 20대 초반 정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제 나이는 30대 중반이다.

    소문에 의하면 20대 초반에 벽을 넘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천재라 해야 할까?

    나는 현 상황에 대해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당혹스럽군요. 귀한 분들께서 저를 만나겠다고 찾아오신 것은 기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두 사람은 붉은 눈을 제외하면 동양인과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전형적인 케일론인의 외모였다.

    그리고 능력만큼이나 외모도 잘난 선남선녀였는데, 특히 무표정한 에클로 공작이 풍기는 신비한 분위기는 어쩐지 루시엘라를 연상시켰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것은 예의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너무 급한 일인지라···.”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국가 수준에서 케일론과 마드세인은 비교 상대가 아니다.

    케일론 왕국은 5대 대왕국 중에서도 가장 강성한 국력을 지닌 곳으로 제국에 비견되는 국가였다.

    그런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이 사과를 해오는데 언제까지 당혹스러움을 표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폴시스 공작을 바라보았다.

    “용건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폴시스 공작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어왔다.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대량의 청혈초를 보유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그 청혈초를 저희에게 팔지 않겠습니까?”

    케일론 왕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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