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62화 (6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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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그리 확신하신다면 맞는 거겠죠.”

    실비아의 반응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분명한 것은 마드세인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마약의 존재는 그것을 저해할 수단이란 거죠.”

    “혹시 칼바도스가 뒤에 있는 것은 아니겠죠?”

    배제할 수 없는 가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이런 내 반응에 실비아는 알겠다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나 왕국에서 직접 마약의 유통관리를 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하도록 하죠. 그게 싫다면 상인 해방이고 뭐고 관세협정을 파기한다고요.”

    그녀의 이야기에 제노아드 공작은 눈을 크게 뜨고 아인트 공작은 당황했다.

    “관세협정을 파기한다니요?”

    “어차피 자재 수입으로 무역적자가 심하잖아요. 차라리 동맹국인 알카즈 왕국이나 이타루스 성왕국에서 자재를 공수하는 편이 미래 지향적이라 생각합니다. 적대 국가에 배를 불려줄 이유는 없으니까요.”

    내 말을 근거로 네나 왕국을 적대적 국가로 분류하는 실비아였다.

    “하지만 굳이 무역의 선택폭을 좁힐 필요는···.”

    “저희가 손해일까요? 아니면 네나 왕국이 손해일까요? 이런 강수를 두는데도 네나에서 저희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확실히 의도를 알 수 있게 되니 좋죠.”

    요즘 따라 실비아의 행동이 참 마음에 든단 말이야.

    나는 그녀의 의견을 지지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네나 왕국에 목멜 필요는 없죠. 그리고 관세협정을 폐기한다고 수입이 원천 차단되는 건 아니잖아요. 단지 무역 경쟁력을 잃는 것뿐이죠.”

    아인트 공작은 별수 없다며 쓴웃음을 흘렸다.

    “폐하와 자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단호하게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네나 왕국에 해당 내용을 통보하도록 하죠.”

    나에 대한 두려움이 실비아를 이리 바꾼 것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처음에 보았던 그녀보다 지금의 모습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마법적 계약으로 묶여 있음에도 적극적인 행동이 지난 국왕과의 다른 점이었다.

    “그런데 만약 네나에서 관세협정을 철폐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이런저런 루트로 환각초를 판매하면 어떻게 할 건가?”

    잠자코 있던 제노아드 공작이 내게 물었다.

    “그럼 완전히 악의적인 속셈으로 우리를 농락하는 것이니, 봐줄 필요는 없죠.”

    “봐주지 않는다면?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에이, 뭐하러 칼바도스 좋은 일을 시켜줘요. 그냥 윗대가리들만 자르면 되지.”

    큰 고민이 담겨 있지 않은 대답.

    그에 제노아드 공작은 말을 잃었다.

    “그땐 헬파이어의 위력을 실험해 보는 순간이 되겠군요.”

    ***

    “폐하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네나 왕국의 왕태자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국왕을 바라보았다.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어차피 그 이야기는 허풍일 테니.”

    국왕의 무덤덤한 반응에도 왕태자는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말 그 이야기들이 허풍일까?

    마드세인에는 8클래스 마법사를 비롯한 초인이 10명 넘게 숨겨져 있었단 사실이···.

    그런데 이 사실을 알린 것은 마드세인이 아닌 칼바도스 제국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들에게 카코스 환각초의 마드세인 유통을 부탁한 것도 칼바도스 제국이었다.

    칼바도스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면 이미 그들은 마드세인 왕국을 정당한 방법으로 상대하기 힘든 적수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혹여 그 말들이 사실이라 해도 상관없다. 우리의 뒤엔 칼바도스 제국이 버티고 있지 않느냐.”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칼바도스와 손을 잡는 것이 잘하는 행동일지.”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다.”

    “하지만 마드세인의 아르비스 공작이란 자가 칼바도스에서 대륙일통을 위한 준비 하고 있다지 않았습니까? 마드세인 왕국에 변고가 생기면 저희는 칼바도스 제국과 국경을 맞대게 됩니다.”

    계속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왕태자의 모습이 못마땅한지 국왕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국경을 맞댄다고 해도 칼바도스에선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지나친 걱정이다.”

    완고한 국왕의 태도에 왕태자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 상황판단을 못 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국왕이었으니.

    혹여 고만고만하던 마드세인의 급성장을 순수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질투하는 걸까?

    아무튼 왕세자는 지금의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하필 사이가 나쁘지 않은 마드세인을 저버리고 국경도 접하지 않은 칼바도스의 손을 잡다니.

    더불어 그런 왕태자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는 일이 벌어졌다.

    “폐하, 외무대신입니다.”

    “무슨 일인가?”

    국왕의 개인 서재를 방문한 외무대신은 당혹스런 소식을 전해왔다.

    “마드세인에서 통보를 해왔사온데···.”

    “통보?”

    통보란 말에 국왕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그렇습니다.”

    “뭐라 하던가?”

    “‘카코스 환각초를 마약으로 지정하며 앞으로 환각초를 들이다 적발되면 모두 처벌할 것이다. 네나 왕국의 왕실에서 마약 유통을 계속 침묵으로 용인한다면 양국간의 관세협정을 파기하겠다.’라고 합니다.”

    “허, 뭐라? 관세협정을 파기해?”

    설마 음모를 꾸미면서 그 상대에게 대우받길 바라는 걸까?

    왕세자는 작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마드세인에선 이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확인해 보려는 것 같습니다. 마드세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고 판단하겠지요.”

    새로운 여왕에 새로운 권력체계까지, 마드세인의 변화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신속한 대응이었다.

    왕태자는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현재 마드세인과의 무역 이득이 엄청납니다. 덕분에 본국의 경제 또한 호황을 맞이하고 있죠. 관세협정 폐기는 그런 이득을 날려버리는 짓이나 다름없습니다.”

    국왕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차며 고민했다.

    그리고 오래걸리지 않아 답을 내렸다.

    “알겠다. 마드세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답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제대로 된 판단에 왕태자는 안도했다.

    “옳으신 판단입니다.”

    그러나 비웃음을 흘리며 답하는 국왕의 반응에 그는 표정을 굳혔다.

    “말로만 그러겠다고 하고 느슨하게 풀어 주면 상인들이 알아서 환각초를 마드세인으로 옮길 것이다.”

    “폐, 폐하?”

    “외교는 꼭 양자택일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건!”

    “그만, 되었다.”

    왕태자는 답답함에 고개를 내저었다.

    *

    도대체 마약을 왜 하는 걸까?

    물론, 마약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고 하니 호기심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행복초 한 줌을 사는 것은 경제력을 손에 넣은 평민들에게도 큰 문제는 아니었으니.

    나는 평민들이 마약에 손을 대게 된 진정한 이유는 돈이 생겼는데 그 돈을 쓸 공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 세계는 오로지 상류층을 위해 문화가 발달해 있으며, 가난한 평민들을 상대로 한 즐길 거리는 거의 전무하다.

    이전까지 돈이란 먹고 사는 것 외에 쓰는 일이 없고, 사치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래서 마약뿐만 아니라 매춘, 도박 같은 단순하고 원초적인 사업이 흥하는 것 아니겠는가.

    ‘영지의 경제와 환경뿐만 아니라, 영지민들을 위한 문화도 발전시켜야 한다.’

    자연히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바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총괄 행정부에 문화진흥부서를 만들고 막대한 예산을 편성했다.

    우선 각 도시를 중심으로 매일 저녁 음악회와 연극회를 열었다.

    그 두 가지는 특별한 시설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무대만 갖춰지면 야외에서도 손쉽게 할 수 있기에 즉각 실행했다.

    그로 인해 시끌벅적한 도시에 음악 소리가 더해졌다.

    뿐만 아니라 도시 외곽에 동물원을 계획하고 외곽 마을들을 위해 서커스 팀을 사들여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대단위 축제를 기획했다.

    건국 기념일, 국왕 탄신일, 영주 탄신일과 각 지역 토속 행사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돈을 소비할 분위기를 만들 것이다.

    더불어 개인이 즐길만한 오락거리로 체스와 오셀로를 비롯한 여러 보드게임을 선보일 예정이며, 배드민턴과 당구, 축구, 농구 등도 보급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평민들이 글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문맹률을 낮출 계획도 갖고 있다.

    문맹률이 낮아지면 책, 신문의 유통을 확대할 수 있으니 문화력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보통의 귀족들은 영지민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꺼리지만, 그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준다면 문제가 발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총만 쥐면 군인과 엇비슷하게 싸울 수 있는 지구와 달리 이곳은 영지민이 영주의 군사력에 대항할 수가 없다.

    고로 쓸데없는 걱정이란 것이다.

    문화진흥부 행정관들은 계속해서 각종 아이디어를 내는 내가 신기한지, 역시 영주님이라며 떠받들었다.

    하지만 이건 지구의 기억을 활용한 것뿐이니, 괜한 칭찬에 들뜰 이유가 없었다.

    “이것들 보소?”

    나는 행정관들의 칭찬보다도 네나 왕국의 행동에 웃음을 흘렸다.

    “우리의 요청에 따르겠다고 해놓고 이딴 식으로 나오는군요.”

    나는 국내로 유통하다가 발각되는 카코스 환각초의 양이 줄어들지 않은 것을 보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걸로 네나 왕국의 의도는 명확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 말에 함께 자리한 공작들과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나 왕국과 칼바도스 제국 간의 접점은 없는 건가요?”

    실비아의 물음에 아인트 공작은 턱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아직 증거를 찾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칼바도스에서 이 사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더군요. 정황상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실비아 공주는 어떻게 하겠냐며 내게 물었다.

    “일단 경고를 할 필요가 있겠군요. 환각초를 납품한 상회와 재배지는 찾으셨죠?”

    “그렇네.”

    “제가 환각초 재배지와 납품 상회를 날리고 오겠습니다.”

    “이러다가 괜히 네나 왕국과 대대적인 전쟁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제노아드 공작은 여전히 걱정이 담긴 모습으로 이 사태에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굳이 저희가 그랬다고 밝힐 필요는 없죠. 녀석들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되는 거니까요. 이것도 많이 봐준 겁니다.”

    헬파이어가 여기저기서 날아들면 나를 의심하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 쪽에서 아니라고 발뺌하면 그들이 어쩌겠는가.

    확신이 있어도 증거가 없다면 그들의 주장엔 힘이 실리지 못한다.

    “이김에 8클래스 대마법사를 적으로 돌리면 어떻게 되는지 깨닫게 해주겠습니다. 네나 왕국과 칼바도스 제국에 말이죠.”

    나는 실비아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쯧, 마드세인 녀석들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서.”

    “많은 양의 행복초를 압수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얻은 수익이 훨씬 큽니다.”

    네나 왕국 동부에 위치한 비밀 농가.

    그곳에선 밀이나 보리 등 곡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닌, 카코스 환각초를 재배했다.

    농장주는 네나 왕국 5대 상단 중 하나인 테그 상단의 간부로 카코스 환각초의 중독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형님, 이제 슬슬 저희도 다음을 준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처음엔 상부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카코스 환각초를 대량 생산했다.

    하지만 위험한 중독물질이라고 생각했던 그 환각초가 큰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없던 욕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테그 상단 뒤에 왕가가 있다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굳이 저희가 두 국가의 세력싸움에 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잖아요? 만약 뭔가 일이 생기면 저희를 쳐내려 할 게 뻔한데요.”

    “음.”

    “환각초는 작은 밭과 종자만 있으면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지 않습니까? 각국에 은밀하게 농장을 세워 환각초를 유통하면 저흰 떼부자가 될 겁니다.”

    형님 아우 하는 친한 부하 녀석의 부채질에 농장 책임자는 흔들렸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었으니.

    권력자들에게 일개 상인인 자신들은 언제든지 쳐낼 수 있는 장기말에 불과하다.

    마드세인과의 마찰이 확실시되는 와중에 자신들의 안위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작은 사무실에 앉아 고민하고 있을 때, 어둠이 짙게 깔린 창밖이 밝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드드드드드.

    “응?”

    그런데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듯 건물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이상함을 깨달은 그들은 창문에 매달렸다.

    “뭐, 뭐야 저건!?”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을 가득 덮은 푸른색의 마법진이었다.

    “대마법 같습니다!”

    “설마 마드세인에서?”

    그 마법진의 존재가 대마법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은 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마법진이 거대한 불덩어리를 토했다.

    거대한 불덩어리는 하얀 연기를 꼬리처럼 달고 환각초를 재배하는 농장으로 떨어져 내렸다.

    “형님! 엎드리세요!”

    두 사람은 바닥에 바짝 엎드렸고 이어서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음과 함께 강력한 지진이 그들을 덮쳤다.

    콰아아아아앙!

    드드드드드!

    첫 번째 충격파에 사무실의 지붕이 날아가고, 두 번째 충격파에 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얼마나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엎드려 두려움에 떨었을까.

    두 사람은 지진이 멈추자 고개를 들었고, 농장에서 거대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사색이 되었다.

    제법 큰 규모의 농장을 중심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붉게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 둘이 충격파에 날아가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다른 나라 가서 환각초를 파실 생각이라면 저는 칼바도스 제국을 추천 하고 싶군요.]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에 두 사람은 무언가에 홀린 듯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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