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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61화 (6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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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리커버리. 큐어 포이즌.”

    사내의 몸이 새하얀 빛과 녹색의 빛에 물들었다.

    얼마나 다쳤는지는 몰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그의 상처를 치료하고 독소를 제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히히히!”

    하지만 그는 내 치료마법을 받고도 행동에 변화가 없었다.

    “뇌에서 발생하는 흥분성분으로 약효가 사라져도 바로 정신을 차리진 못해. 조금 시간이 지나야 할 거야.”

    “허···.”

    흥분성분이라니, 엔돌핀이나 아드레날린을 말하는 건가?

    나는 결국 손을 놓았다.

    치료를 하고 중독성분을 제거해도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까진 어쩌지 못 했으니.

    “영주님, 이자는 저희에게 맡기시고 이만 차에 오르시죠.”

    아마 오래 걸리지 않아 제정신으로 돌아오겠지만, 그걸 계속 지켜보고 있을 이유는 없다.

    제논의 말에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이자는 구류하세요. 그리고 랜든 경에게 중독성 환각초가 영지에 유통되고 있는지 조사해 보라고 하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가 스스로 환각초를 구해 복용했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다른 누군가로부터 구매한 것이라면 빠르게 유통라인을 끊어야 한다.

    진통성 약초가 많은데 굳이 카코스 환각풀을 의료용으로 사용할 이유는 없다.

    더불어 내 땅에 마약성 물질이 반입되는 것은 절대로 사양이다.

    나는 루시엘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보는 사람이 많은지라 내 에스코트를 무시하지 않고 응했다.

    다시 차량에 탑승한 나는 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 환각초라는 거 구하기 쉬운 건가요?”

    “아니, 자연적으론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편이야. 일단 일년초인 데다가 산화철의 함량이 높은 땅에서만 자라거든.”

    산화철의 함량이라니, 나는 겨우 그게 끝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그게 끝이야. 그래서 자연적으로는 구하는 게 쉽진 않지만 재배하기로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재배할 수 있는 풀이기도 하지.”

    ***

    새로 이사를 하게 된 영주성은 겉에서 보면 마드세인의 왕성보다 조금 작지만, 지하층이 워낙 넓어서 사용면적이 더 컸다.

    지하는 3층까지 뚫려 있는데, 최하층엔 기간트를 비롯해 마도 병기의 생산라인이 될 공방이 설치되어 있다.

    1000명이 넘는 인원은 거뜬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으로 마드세인의 미래를 책임질 곳이었다.

    각종 자재와 대형 중장비를 운반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출구는 오직 하나뿐이다.

    지하 2층은 금고를 포함해 각종 전략 물품을 비축하는 공간이다.

    이곳에 내 재산 중 일부와 미스릴, 토르말린 등이 보관되어 있다.

    금고는 모두 강철로 되어 있으며, 이곳 역시 운송용 엘리베이터가 있고 단 하나의 출구로 사람들이 오갈 수 있다.

    지하 1층은 연구실과 수련실, 대형 비밀 연무장이 위치 해있는데, 이곳은 대마법사나 마스터, 또는 그 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는 존재만이 사용 가능한 공간이다.

    각자 연구와 수련에 몰두할 수 있게 개인실이 배정되었다.

    지하 세 개 층은 보통의 건물처럼 층층 쌓아 올린 형태가 아니라, 땅속에 구멍을 따로 파서 위치가 모두 다르다.

    덕분에 출입구와 화물 엘리베이터도 모두 위치가 달랐다.

    지상은 총 7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영지총괄 행정부서와 군부서 업무 공간.

    2층은 공용식당, 행정관 휴게실, 시종 휴게실.

    3층은 연회장, 파티장, 응접실, 회의실,

    4층은 손님방.

    5층은 가신들의 개인실.

    6층은 영주 일가의 생활 공간.

    7층은 영주의 업무 공간, 옥상 정원.

    새로운 보금자리는 모두가 만족하는 공간이었다.

    더구나 시종들 사이에선 영주가 자신들을 생각해 휴식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며 감격했다.

    이 세계 사람들은 모두 순박해서 주인인 내가 조금만 잘 대해줘도 지나칠 만큼 기뻐했다.

    영주성에서 가장 멋진 공간이라면 내 집무실을 꼽을 수 있는데, 책상 맞은편에 옥상 정원이 넓게 꾸며져 있으며, 그 밑으로 조금씩 화려함을 더해가는 영지의 모습이 펼쳐졌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 정원을 걸을 때면 그 어느 때보다도 스스로가 성공했다는 느낌이 든다.

    기분 좋게 정원을 한 바퀴 돌고 집무실로 돌아오니, 어느새 나타난 루시엘라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서 있는 시녀들과 기사들.

    아무래도 내가 한소리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제 답도 받았으니, 생각을 달리 해보려고. 솔직히 너의 입장도 이해는 되고, 그간 허튼짓 안 하고 내게 잘 해줬으니까.”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너무 늦게 알아주시는군요. 그리고 이 몸으로 무슨 허튼짓을 하겠습니까?”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쪽 취향이셨어요?”

    “그럴 리가. 그냥 그 몸이면 성욕도 없는 건가 싶어서. 정신은 어른이라며?”

    누굴 놀리나.

    나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물었다.

    “그럼 만지게 해주실래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농담입니다. 농담.”

    우리의 대화를 들은 여자들은 모두 얼굴을 붉혔다.

    “잘도 그런 걸 물어보시네요.”

    “그래? 나는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어.”

    엘프에 대한 환상을 아주 철저히 깨주시는구만.

    “뭐, 어쨌든 좋은 모습이네요. 저도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루시엘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차를 들이켰다.

    똑똑.

    “영주님, 랜든입니다.”

    노크 소리에 루시엘라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찻잔을 들고 옥상 정원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자리를 피해주려는 생각인 것 같다.

    “네, 들어오세요.”

    집무실 안에 들어선 랜든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자리를 피하는 루시엘라를 보고 눈을 크게 떴으나, 내가 헛기침을 하자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시, 실례했습니다. 주군께서 지시하신 카코스 환각초에 대한 유통조사가 완료되어 알려 드리러 왔습니다.”

    “어떻던가요?”

    “확인결과 복수의 상단을 통해 두 달 전부터 약 550kg의 카코스 환각초가 행복초란 이름으로 판매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시세는 100g 50실버이며···.”

    랜든은 평범하게 조사 결과에 대한 보고를 이어갔으나, 나는 잠자코 들을 수가 없었다.

    “잠깐만요. 영지에서 환각초가 거래된 지 두 달이 넘었다고요?”

    “네? 네, 그렇습니다.”

    나는 심각하게 그의 이야기를 받아 들었다.

    행복초란 이름만 봐도 이건 유통업자가 카코스 환각초가 마약성 물질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드세인엔 마약에 대한 인식이 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마약의 중독의 위험성 따윈 알지도 못하고 그로 인해 발생할 심각한 후유증도 생각하지 못했다.

    랜든도 마약에 대해 모르다 보니, 그것이 몰고 올 후폭풍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 행동에 의아하단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기분이 좋아진다며 아무 생각 없이 행복초를 태우고 있는데, 그것이 독초나 다름없음을 인지시켜야 한다.

    “어디서 들어오고 있죠?”

    “환각초는 네나 왕국의 상인들을 통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환각초를 파는 건 국내 상인이지만, 네나 왕국에서 물건을 팔지 않았다면 유통되는 일도 없었겠죠.”

    네나 왕국이라면 마드세인 왕국의 동맹국인 알카즈 왕국과 함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국가였다.

    국력도 고만고만하고 기본적으로 마드세인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무슨 민폐란 말인가.

    “일단 영지 내에 카코스 환각초를 유통하는 상인들을 모조리 체포하시고 환각초의 부작용을 영지민들에게 알리세요.”

    “부작용이라 하시면?”

    나는 랜든에게 환각초를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또 그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문제점을 설명해주었다.

    “헙···.”

    그로 인해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랜든은 곧바로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이건 내 영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예 환각초가 국내로 유통되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한다.

    네나 왕국에 엄중 관리를 부탁하는 것은 기본이다.

    “카코스 환각초가 가져올 후폭풍을 잘 이해하고 있구나.”

    랜든이 나가고 어느새 집무실로 돌아온 루시엘라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람을 짐승으로 만드는 풀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그녀는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내 지시에 따라 영지에 행복초가 실은 독초라는 이야기가 빠르게 퍼졌고, 내 말을 법처럼 생각하는 영지민들 사이에서 바로 환각초를 배척하자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두 달 사이 중독된 사람의 수가 적지 않아, 아예 치료 센터를 꾸려야 했다.

    치료를 위해 일일이 대마법사와 고위 마법사를 써먹을 수 없으니, 나는 믿을 수 있는 가신들에게 오리하르콘 팔찌를 내주었고, 영지관청에는 치료를 원하는 중독자들로 가득 찼다.

    덕분에 마약의 확산을 빠르게 잡을 수 있었지만, 중증 중독자들은 아무리 위험한 물건이라고 알려줘도 계속 환각초를 원했다.

    내가 유통을 막아놔서 환각초의 가격이 폭등한 상태인데도,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역시 좋게 말해서는 소용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현시간 부로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모두 죄인으로 엄중 처벌을 하겠다고 선포해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또한 중독자와 판매자를 신고하는 사람에겐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만들어 영지민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마약을 단속하게 했다.

    “이건 가볍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반드시 정리해야 할 극독이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약은 나라를 좀먹을 것이며, 국가의 업무 효율을 낮추고 막대한 재화가 외국으로 흘러갈 겁니다.”

    긴급 소집된 영주 회의에 직접 참석한 나는 국내에 빠르게 퍼진 환각초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마약이라는 표현으로 영주들에게 경고했다.

    머리가 돌아가는 영주들은 당연히 심각성을 인지하고 침음을 흘렸으나, 아무래도 영주란 직책이 세습으로 이어지다 보니, 모두가 상황판단력이 좋은 건 아니었다.

    “카코스 환각초의 가격은 많이 올라 100g에 1골드라고 들었습니다. 국내에 유통되는 양을 다 합쳐도 10톤이 될까 말까인데, 재화 유출이랄 것까지 있을까요? 너무 확대 해석하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타루스 성왕국과 국경을 맞댄 변경백의 물음에 나는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중독성이 강한 마약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찾는 양이 늘어날 것이고, 안달이 난 중독자들에게 점점 비싸게 팔게 뻔하지 않습니까.”

    한심하다는 내 대답에 얼굴을 붉힌 그는 입술을 깨물며 분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그는 아르비스 공작령과 영지도 멀고, 중앙에 큰 직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라 나를 어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르비스 공작이 모든 경우를 따지고 제의한 내용이 아니겠어요? 히슬리 백작, 불필요한 도발은 그만두시죠.”

    그리고 얼마 전 마드세인의 여왕으로 즉위한 실비아도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단지, 겨우 풀하나에 영주들을 소집하고 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문제라 생각한 겁니다.”

    세습은 이게 문제라니까?

    능력이 아닌 핏줄로 다른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니, 저런 멍청이들이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나대지.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나라의 문제보다 자신의 체면치레가 중요합니까? 그렇게 제가 소집한 영주회의가 거슬렸어요?”

    나를 비롯한 삼공작과 여왕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더불어 영지를 받은 내 부하들이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본 탓에 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귀족이 된 지 1년도 안 된 제가 이렇게 나서는 게 거슬리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정치 싸움하자고 이러는 게 아니니까요.”

    태클을 걸었던 변경백은 입을 닫고 있지만, 여전히 표정이 반항적이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능력이 되지 않는 영주는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르비스 공작의 의견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카코스 환각초를 거래 금지 품목으로 지정하고 네나 왕국과의 상행에 단속을 강화토록 하죠.”

    “감사합니다. 여왕 폐하.”

    “영주들도 협력해 주기 바랍니다.”

    제법 여왕으로서 위엄이 서는 모습.

    삭막한 회의실에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회의는 끝이 나고 나는 실비아, 공작들과 함께 자리를 만들었다.

    “오늘 아침 네나 왕국에서 요청이 왔네. 자네가 구금한 자국의 상인들을 해방해 달라고 말이지.”

    “환각초 유통에 대한 공식입장은 없고요?”

    “그래.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고, 네나에선 진통제로 쓰이는 약초인 만큼 유통을 제한할 이유가 없다는군.”

    네나 왕국이 미쳤나?

    “공작님들의 영지는 이상 없어요?”

    내 물음에 제노아드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영지는 왕국 최북단에 위치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리 상황이 심각하진 않았네. 아무래도 네나와 가까운 남부지역의 피해가 심한 것 같아.”

    아인트 공작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환각초는 평민들을 대상으로 한 장사야. 아무래도 평민들의 지갑 사정은 북부보단 남부가 좋지 않나.”

    차라리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때 실비아가 물었다.

    “그런데, 마약이라고 하셨죠? 그 후폭풍이 그리 클까요?”

    선례가 없으니, 위험하단 생각이 들어도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한 상황.

    하지만 나는 마약이 나라를 좀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다.

    청나라와 영국의 아편전쟁.

    상황이 조금 다르고 이쪽은 아직 초기에 지나지 않지만, 마약의 유통을 해이하게 관리하면 결국 마드세인도 청나라 꼴이 나지 말란 법이 없었다.

    물론 청나라가 영국에게 패했던 것처럼 우리가 네나 왕국에게 지는 일은 없겠지만, 진정한 적은 밑이 아니라 위에 있지 않은가.

    마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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