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186 --------------
“대마법사가 몇 명이나 가길래?”
“8클래스 1명에 7클래스 5명이래.”
“허···.”
전함이라면 흔히 바다에서 사용하는 군함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마도시대의 전함은 하늘을 날며 대마법을 날리는 거대 병기를 뜻한다.
마도제국의 핵심 공중 전력으로 하늘을 까마득하게 채운 전함과 드래곤들의 공중전은 많은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내용이었다.
그런 마도병기의 격납고가 발견되었다니, 하이랜드에서 눈에 불을 켜는 것이 당연했다.
“엘븐 킹덤에서 추진체 공중유닛 개발에 힘을 쓰고 있는데 쉽지 않다는 것 같아. 어쩌면 이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면서 꽤나 열을 올리더라.”
“그래?”
“응, 이번에 온 사람 중에 하이랜드 기술청 대마법사들이 포함되어 있거든.”
오랜만에 듣는 마을 소식이 신기한 걸까?
제이미는 이것저것 궁금해하는 데미안의 반응에 작게 웃음을 흘리며 그의 입에 데로버섯 구이를 찔러넣었다.
“자, 어서 먹어.”
“고마워.”
데미안은 그녀가 가져온 버섯구이와 빵을 맛있게 해치우고는 빈 바구니를 건넸다.
“어때, 나밖에 없지?”
‘에헴’하며 소담스런 가슴을 내미는 제이미를 보며 데미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갑끼리 징그럽게 이럴래?”
“난 성인이고 넌 아직 성인이 아니잖아?”
“흥, 그런 게 어딨어? 동갑이면 동갑이지. 너도 엘프잖아.”
자신을 다른 엘프들과 다르지 않게 보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여성 엘프를 떠올렸다.
“무슨 생각해?”
“지난번 기간트 탈취 작전 때, 다른 하이랜드의 엘프들은 전부 나를 꺼려했는데 한 엘프가 나를 동료라며 도와줬었거든.”
그에 제이미는 제 일처럼 기뻐하며 눈을 반짝였다.
“정말? 그래서 그 엘프는 어떻게 됐는데?”
“글쎄, 인간 제국의 마스터에게 쫓기다가 헤어졌어. 나 이외에 생존자 소식이 없으면 죽거나 잡혀갔겠지.”
“그, 그렇구나. 역시 마을 밖은 무섭네.”
“그러니까 넌 전사 말고 다른 길을 선택해.”
데미안의 걱정이 싫진 않은지 제이미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볼게, 그럼 조금만 더 고생해. 내가 촌장 할아버지를 계속 조를 테니까.”
“고마워.”
제이미는 바구니를 들고 초소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착지한 후 그에게 손을 흔들며 마을로 달려갔다.
“녀석···.”
홀로 남게 된 데미안은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함참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털썩.
그런데 돌연 그의 눈이 붉게 빛나더니 기우뚱거리다 옆으로 쓰러졌다.
퍼드득!
이어서 안전구역 밖에 있던 작은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눈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 데미안이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요즘 따라 정신을 잃는 일이 많은 것 같네.”
*
노라마을 출신의 마르코는 영주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잡부에서 갑자기 인부관리자로 신분이 상승했다.
덕분에 일은 편해지고 수입은 더 많아졌지만, 같은 마을 출신이란 이유로 루이스의 덕을 너무 보는 것 같아서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루이스는 마르코를 비롯한 노라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방과 맛있는 음식을 제공했지만, 개인적인 일에 돕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실히 못을 박았다.
하지만 루이스의 신분이 워낙 높다 보니, 그와 안다는 것만으로 노라마을 출신 인부들이 누리는 편의는 상당했다.
아무런 기술이 없는 14살짜리에게 인부관리자란 직책을 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
새삼 권력의 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르코가 걷고 있는 거대한 성뿐만 아니라 이 영지 자체가 루이스의 것이었으며, 이보다 거대한 영지가 두 개나 더 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마르코님.”
“네, 네! 안녕하세요!”
또한 예쁘게 미소 짓는 수많은 시녀를 비롯해 병사와 기사들까지 모두 루이스에게 봉사하는 존재였으며, 마르코가 평생 일해도 한 줌 얻을 수 없는 미스릴을 톤 단위로 생산하여 돈을 쓸어 담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왕국 제일의 마법사라 불리는 존재였으니, 권력이면 권력, 재력이면 재력, 무력이면 무력까지 루이스가 가지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지간히 잘났으면 질투라도 하지, 이건 잘난 정도가 아닌지라 감히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송구스러울 정도.
분명 출생은 비슷한 농가에서 태어났는데, 자수성가의 끝이 무언인지를 보여주는 루이스였다.
“음?”
그렇게 이런저런 감정을 느끼며, 휴일을 맞이해 영주성을 거닐던 마르코는 문뜩 정원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아···.”
그곳엔 한 여인이 눈 부신 햇살을 받으며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하늘빛의 머리카락.
찻잔을 집는 새하얀 손끝은 우아했으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각인 된다.
더불어 살짝 스쳐 지나간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사람을 홀리는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어 마르코는 정신이 아찔 해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절대미.
너무도 아름다워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천상의 미인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뭐, 하는 녀석이냐?”
마치 미술품을 감상하듯 넋 놓고 여인을 바라보던 마르코는 여성 기사가 다가와 물었음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심코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디고 말았는데.
퍽.
돌아오는 것은 강철 부츠의 정강이 공격이었다.
“악!”
통증에 정신을 차린 마르코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으며 사색이 되었다.
“뭐하는 녀석이냐고 물었다.”
“마, 마르코라 합니다.”
여자임에도 기사가 내뿜는 기운이 어찌나 흉흉한지 겁에 질린 마르코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하늘빛 머리카락의 여인은 여전히 차만 홀짝였고, 시종들은 누구도 다가올 생각을 못 했다.
“주군의 손님이다.”
그때 어느 기사가 다가와 말했다.
여기사가 경례를 올리고 남자 기사는 마르코를 잡아당겨 등을 돌리게 했다.
“너, 손님을 다른 곳으로 안내하도록.”
그리고 남자 기사에게 지목당한 시녀는 움찔 놀라며 다가왔다.
“가, 가시지요.”
마르코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기사에게 감사를 전하며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휴···.”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좀처럼 하늘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말 다행입니다. 만약 아델 남작님께서 그곳을 지나가지 않으셨다면, 카릴 기사님께서 검을 뽑으셨을 겁니다. 이 성에서 남자가 그분을 바라보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되어있거든요.”
“그 여성분은 누굽니까?”
마르코의 물음에 시녀는 웃으며 답했다.
“루시엘라님께선 영주님의 미래 신부님이랍니다.”
루이스의 여자라고?
마르코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시녀는 슬쩍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런데 예전엔 두 분이 자주 차도 마시고 하셨는데, 영주님께서 요즘 루시엘라님을 찾질 않으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그, 그렇습니까?”
자신이라면 손발이 없어질 때까지 일해서라도 떠받들 텐데···.
“저리도 아름다운 분이 질리신 걸까요? 가끔 저곳에서 루시엘라님을 바라보고 계시긴 하지만 예전처럼 다가오시진···. 어머.”
시녀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마르코는 창가에 기대 정원을 바라보는 루이스를 볼 수 있었다.
분명 루시엘라를 바라보는 것일 터.
하지만 루이스는 얼마 안 가 고개를 돌렸다.
“봤죠? 두 분이 다투시기라도 하신 걸까요?”
누군가가 들으면 경을 치고도 남을 이야기건만 시녀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마르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루이스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진짜 성공의 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창문을 통해 정원의 루시엘라를 바라보던 나는 얼마 안 가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루시엘라의 제한을 많이 풀어 주었다.
이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성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며, 체력을 갉아먹던 신체 능력 약화 주문도 해제했다.
여전히 마법과 정령소환은 막아 놓은 상태지만, 이 정도만 해도 포로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우였다.
“어찌해야 할지.”
더 이상 루시엘라에게 결혼해 달라느니, 어쩌고 매달리지 않는다.
강요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상대가 넘어올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모든 게 바보 같아졌다.
그리고 점점 죄의식 때문인지,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꺼려지면서 좀처럼 다가가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포로다.
솔직히 죽이는 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간 정을 준 게 있는데 어찌 죽이겠는가.
더구나 마음에 든 여성을 말이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처우가 고민이었다.
그냥 마나의 언약으로 비밀만 지키게 하고 풀어 줄까?
아니, 엘프라는 종족은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녔으니, 마나의 언약만을 믿기엔 뭔가 찜찜했다.
그렇다고 데미안처럼 기억을 지우고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서 풀어 주자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
1회용으로 언제든 쓰고 버릴 수 있는 데미안과 그녀는 달랐으니.
“아아, 몰라.”
나는 애써 루시엘라에 대한 생각을 떨치며 의자에 앉았다.
똑똑.
그때 창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작은 새 한 마리가 창가에 앉아 붉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지 볼까?”
그 새는 엘프들의 정보를 실어나르는 퍼밀리어로 데미안은 지금 자신도 모르게 동료들의 정보를 내게 흘리고 있는 상태였다.
퍼밀리어는 데미안이 혼자 있을 때 접근한다.
그럼 그는 정신을 잃게 되고 정해진 키워드의 기억이 카피 되어 내게 전해지는 것이다.
새 형태의 퍼밀리어가 빛이 되어 내게 흡수되고, 데미안의 기억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새겨졌다.
잠시 후 나는 크게 놀라며 눈을 떴는데, 기억 속에 새로운 유적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공들여 작업한 데미안이 한 건을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칫 엘프들과의 마찰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이건 무조건 가야 한다.
딱 봐도 병기고와 비교가 되지 않을 규모의 유적이 분명하니.
“메어리 경과 드레이크 경을 뺀 나머지 마스터들을 모아주세요.”
“어디 가는 겁니까?”
한동안 저택 안에만 있는 것이 심심했는지, 콘스탄틴은 기대감 가득한 표정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나는 악당 같은 미소로 답했다.
“모험이요.”
“오, 좋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어서 유적으로 텔레포트하여, 대마법사와 6클래스 마법사들을 모으고 외근 중인 스텔라와 레이포드도 불러들였다.
나를 포함해 대마법사 5명, 6클래스 마법사 7명, 마스터 6명으로 탐사 멤버가 꾸려졌다.
지체할 것 없이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목적지는 로이아스 대륙 최대 호수인 인테라 호.
“갑작스럽지만 그만큼 급한 일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엘프들과 맞닥뜨릴 가능성도 있으니, 긴장해주시고요.”
“네!”
*
인테라호는 미드랜드의 6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대륙 최대의 호수로 호수면적이 마드세인 왕국 전체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한다.
마드세인 왕국은 약소국치곤 국토 면적이 상당히 큰 편이다.
대륙에 존재하는 32개국 중 12번째로 큰 영토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에 비견되는 인테라호는 거의 내륙에 있는 바다라 볼 수 있다.
물론 소금기가 없는 담수여서 호수가 맞지만, 거대한 만큼 많은 수산자원이 깃들어 있어, 바다를 보지 못하는 내륙 국가들에겐 바다와도 같은 존재였다.
“막상 오긴 했는데, 이걸 어디서부터 탐사를 해야 하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진짜 크네.”
누가 봐도 바다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한 호수를 보니, 새삼 자연의 웅장함이 몸으로 느껴졌다.
“일단 탐색장비를 띄워 보는 거 어떨까요?”
헤르만의 제안에 별다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나는 아공간에서 탐색장비를 꺼냈다.
탐색장비는 커다란 쓰레기통처럼 생겼는데, 총 5개를 보유했다.
호크아이와 와이드 서치가 더해진 아티팩트로 일종의 인공위성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비다.
감시 목적으로 개발해 시험을 남겨 놓은 상태인데, 오늘처럼 좋은 시험 기회가 없을 듯하다.
마력을 불어넣어 시동을 걸자, 소형 마나하트를 내장한 녀석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점이 되어 사라졌다.
“링크.”
그리고 손에 쥔 관리 단말을 통해 탐색장비의 정보가 머릿속에 입력된다.
머릿속에 펼쳐지는 끝없는 물의 향연.
탐색장비가 보내오는 영상을 보니 새삼 호수의 거대함이 질릴 정도였다.
장비 한 대가 호수를 탐색할 수 있는 면적은 끽해봐야 1/2000정도, 아무래도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
“조를 나누도록 하죠. 탐색 장비를 운용하는 5명과 호위기사 한 명 빼고 나머지는 수중 탐색을 합시다.”
“네.”
두 번째 유적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