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55화 (5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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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아 공, 아니 여왕님이라 해야겠군요.”

    4공작이 모인 자리.

    그 중심엔 카르가 국왕이 아닌, 실비아 공주가 앉아 있었다.

    “아닙니다. 아직 즉위식을 거치지 않았으니 공주면 됩니다.”

    공주는 내 물음에 조신하게 답하며 눈을 빛냈다.

    “너무 뜻밖의 상황이라 솔직히 적응이 잘되지 않습니다. 일단 찬성하긴 했지만, 뭔가 다른 생각이 있으신 거 아니죠?”

    당치도 않다며 손을 크게 내젓는 공주.

    그녀는 허리를 똑바로 새우며 말했다.

    “저는 제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바라시는 모든 일을 지지하고 지원해 드릴 겁니다. 따로 공작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

    한 나라의 여왕이 될 인물치고는 지나치게 저자세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녀가 왕권을 손에 넣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어째서 왕좌를 원한 겁니까?”

    내 물음에 실비아 공주는 마치 면접을 보는 사람처럼 긴장하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어차피 왕권은 기울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왕좌에서 내려오라고 하면 저흰 물러날 수밖에 없죠. 아직은 왕권에 관심이 없으셔서 상황을 지켜보고 계시지만, 왕가가 아르비스 공작님의 발목을 잡게 된다면 여지없이 쫓겨나겠죠.”

    맞는 말이다.

    굳이 걸리적거리는 왕을 내버려 둘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주는 차근차근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폐하께선 이미 모든 의욕을 잃으셨죠. 그저 왕좌에 앉아 계실 뿐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이대로라면 반드시 왕가와 공작님 사이에 마찰이 생길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폐하를 대신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게 공주 전하 본인이시고요?”

    “그렇습니다. 제가 왕족 중 그나마 아르비스 공작님에 대해 잘 아니까요. 저는 어리석게 공작님께 도전하지 않을 것이며,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할 겁니다. 부디 마음 편하게 부려 주세요.”

    여왕이 될 그녀를 마음 편하게 부리라는 대사가 어째 이상야릇하게 들려왔지만, 그녀의 태도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가문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마음에 들었다.

    “좋아요. 하지만 저는 말만으로 상대를 신뢰할 만큼 착하지 않아서 공주 전하께 몇 가지 제약을 걸려 합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제노아드 공작은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실비아 공주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

    대답이 너무 상큼해서 오히려 내가 당혹스럽다.

    그녀의 발밑에 피처럼 붉은 마법진이 생겼다.

    그리고 제노아드 공작과 아인트 공작, 카르가 국왕과 나눴던 조건을 그대로 계승한 피의 족쇄로 그녀를 제한했다.

    이제 그녀는 직간접적으로 나를 죽일 수도 배신할 수도 없고, 내게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누설할 수 없고, 나와 내 가족들에게 어떠한 종류의 위협도 주지 못한다.

    계약을 마친 그녀는 어째서인지 홀가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저는 이제 아르비스 공작님의 사람인 건가요?”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물어 오는데 뭐라 답을 해야 할까?

    “적어도 동반자 관계라 할 수 있죠.”

    “좋네요, 동반자.”

    그러며 공주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부디 못난 제 과거를 잊어 주시고 앞으로 함께 이 나라를 이끌어가요.”

    “앞으로 많이 바빠질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웃어 보였다.

    지금의 실비아 공주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

    20. 이능 적성 검사

    7클래스의 막바지와 8클래스의 입문.

    아주 간발의 차이지만, 괜히 등급이 나뉜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클래스가 한 단계 오르면서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졌다.

    마법사의 서클이 많아지면 배울 수 있는 마법이 많아질 뿐 아니라,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지며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의 양도 달라진다.

    덕분에 내가 마도 병기 개발에 본격적으로 달려들자 연구는 굉장히 빠르게 성과를 더해갔으며, 더욱 많은 기술을 발견하고 축적할 수 있었다.

    “설마 한 달 만에 마나하트의 연구가 이 정도까지 진척될 줄은 몰랐습니다.”

    주먹만 하던 마나하트는 개량과 연구를 걸쳐 어느새 농구공보다 큰 사이즈가 되었다.

    마나하트는 기간트를 포함해 마도 병기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핵심부품으로 대기 중의 마나를 활용하는 일종의 가공장치.

    마나하트의 출력이 마도 병기의 전체 성능을 좌우한다.

    나는 눈에 보일 만큼 짙은 마력을 내뿜는 마나하트를 보며 헤르만에게 물었다.

    “출력이 어느 정도인가요?”

    그에 헤르만은 컴퓨터 같은 유적의 마도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며 답했다.

    “7.2Mmp입니다.”

    좋다.

    우리가 처음 완성한 마나하트의 출력이 1.2였으니, 6배에 달하는 성능향상을 이뤄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기간트를 만들 수 있는 수준.

    물론, 이 마나하트를 탑재한 기간트는 마도시대에선 산업 보조용으로 쓰던 단순한 중장비 수준이지만, 기간트 관련기술을 축적하기엔 적당했다.

    그랜달의 출력은 120, 안타레스의 출력은 81.5로 출력 단위는 메가마나포인트(Mmp)다.

    두 장비 모두 마도시대 기준으로 상급 기간트로 분류되며, 특히 그랜달은 지휘관용으로 제작된 기체인 만큼, 현존 기술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사실 7.2 수준의 출력을 지닌 기간트만 하더라도 병사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장에선 마법사와 기사가 주력이라 할 수 있기에 제대로 된 활약을 하기 위해선 못해도 지금의 두 배에 달하는 출력을 지녀야 한다.

    아직 연구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칼바도스보단 먼저 고성능의 기간트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녀석들의 인적자원을 고려하면 기간트 개발능력은 절대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우리에겐 온전한 마도시대의 유적이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도 매우 큰 이점이다.

    칼바도스 제국이 다른 지역으로 기간트를 운송하던 것을 떠올리면 녀석들은 우리처럼 온전한 형태의 유적을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류 측정 및 연구 보조, 각종 데이터 저장까지···.

    유적은 아주 이상적인 연구 공간이다.

    더불어 기간트 정비 능력 덕분에 V1을 활용하면 장비 가공도 가능하다.

    특히 마나하트를 제작할 때,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마법진 각인작업을 굉장히 손쉽게 해냈다.

    그로 인해 연구에서 테스트까지의 시간이 크게 단축이 된다.

    또 이를 활용해 마나하트를 양산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요술방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V1의 양산능력은 대량의 인력을 투입한 것보다 빠르다곤 할 수 없지만, 인간과 달리 오류가 없으니 높은 안정성을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마드세인 왕국 최전선에 배치되는 마력포대의 양산도 차질없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드디어 기간트 제작에 들어가는군요.”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예요. 새롭게 연구해야 할 게 많아졌으니.”

    “그것참, 설레는 말씀이군요. 마법사에게 있어 새로운 문물과 기술은 활력소라 할 수 있죠.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의욕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야기 속에서 마법사는 교활한 인물로 자주 등장하지만, 이런 것을 보면 정말 단순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영지에 칼바도스 제국의 정보원과 간자가 엄청나게 많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이곳에 오갈 때는 각별하게 주의해주시고 외출할 때는 꼭 기사들을 대동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샤롤로트 공작과의 전투에서 그랜달을 사용하기도 했고, 기간트의 핵심부품인 토르말린을 과점하고 있다.

    칼바도스 제국이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기간트를 개발하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다.

    덕분에 최근 늘어난 외국 정보원의 수가 마을 하나를 꾸려도 될 정도여서 보안 관리에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비열한 녀석들이 나에 대한 온갖 공작을 벌이며 정보를 까발리고 있는데, 그랜달에 대한 내용은 절대 공개하지 않는 것을 보면 너무 웃기다.

    뭐, 기간트는 우리에게도 극비 사안이지만, 녀석들이 하는 행동이 너무 아니 꼬와서 나는 칼바도스가 대륙 통일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미드랜드 전체에 퍼트렸다.

    녀석들이 폭로전을 원한다면 나도 기꺼이 응해 줄 뿐이다.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오늘 일이 있어서···.”

    “아, 오늘이 그날이군요? 수고하십시오.”

    대외적으로 할 일이 있는 나와 달리, 그들은 아예 유적에서 숙박을 해결하며 연구에 매달렸다.

    내 목적과 그들의 탐구심이 부합하는 아주 긍정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흰색 로브를 걸치고 반지와 팔찌를 착용한 나는 바이탈 캐슬로 이동했다.

    *

    현재 나를 따르는 마스터와 대마법사의 수는 총 12명이다.

    이중 마스터가 8명이고, 대마법사가 4명이었으며 벽을 넘진 못했지만, 예비 초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인물 10명이 뒤를 받치고 있다.

    아직 한 달짜리 트레이닝 캡슐이 26개나 남아 있으니, 초인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갈 것이다.

    현재 레이포드와 스텔라가 인재 영입을 위해 발 빠르게 뛰고 있으며, 아르비스 상단이 그 둘을 보조하고 있다.

    다가올 전쟁에 대비해 아무리 확충해도 부족하지 않은 것이 초인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추세를 보면 캡슐을 다 사용하면 적어도 20명 이상의 초인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초인의 수만 많아진다고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머지않아 초인의 수는 우리가 칼바도스보다 우위에 설 가능성이 높지만, 그 외의 전력은 비교 불가능한 수준이니.

    칼바도스는 200만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리하게 수를 늘린다면 300만까지 끌어모을 수도 있다.

    반면 마드세인은 한계치가 20만 수준.

    애초에 인구수가 2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지라 군사적인 부분에선 오히려 무리하는 쪽은 칼바도스가 아닌 우리 마드세인이었다.

    그래서 전생에 수적인 열세를 만회하고자 전국적으로 마법사 적성 검사를 실시하여 2클래스의 전투 마법사를 양성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나름의 효과를 거두었다.

    비록 그 과정은 비인간적이었지만 말이다.

    태생적 한계라 볼 수 있는 쪽수에선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질을 높이는 것은 아주 옳은 선택이다.

    더구나 이번엔 드래곤의 레어를 털어 막대한 재화를 지닌 내가 있고, 왕가를 비롯해 3대 공작가에서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어거지로 서클을 끌어올려 2클래스 전투 마법사를 양성하는 것보다 건전하게 고급 전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나의 제안에 따라 전국적으로 이능 적성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번에 실시 되는 이능 적성 검사에선 기사와 마법사, 정령사, 세 분야의 검사가 진행된다.

    “기사 후보생 선발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마드세인 왕국의 수도 세인에선 지금 한창 15세 이하의 아이들을 상대로 적성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적성검사의 책임자인 카르만 남작은 내 물음에 긴장한 모습으로 딱딱하게 답했다.

    “기사 적성 검사는 순발력과 상황판단력, 오러 적응력을 기준으로 채점해···.”

    내가 물은 건 검사 방법이 아닌 선발 현황에 대한 것이건만 그는 엉뚱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몇 명이나 선발 되었어요?”

    “기사는 약 250명가량이 선발되었으며! 마법사는 600여명, 정령사는 50여명입니다!”

    “흠···.”

    나는 크게 설치된 천막과 현수막 앞으로 까맣게 몰려 있는 시민들을 보았다.

    수도 세인의 인구는 약 120만.

    이중 적성 검사에 포함되는 연령대 약 30만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지금까지 검사한 인원만 해도 5만명은 될 것 같은데, 1000명을 넘기지 못하는 것 보면 확실히 원하는 인원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기사 적성으로 선발되는 사람의 수가 너무 적다.

    이대로라면 수도에서 1500명정도 밖에 못 뽑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기사 선발 기준을 조금만 더 낮추도록 하죠. 기사가 마법사보다 적다는 게 말이 돼요?”

    간단하게 적성을 판단할 수 있는 마법사, 정령사와 달리 기사 적성 검사는 기준이 모호하긴 하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그 어린 기사 후보생들이 미래의 기간트 오너가 될 테니.

    “네?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전쟁의 방향은 단순한 인력의 충돌에서 기간트를 앞세운 방식으로 전장의 풍경이 바뀔 것이다.

    결국 전장의 지배자는 오러를 내뿜는 기사가 아닌, 기간트가 된다는 소리인데, 기간트의 전력 극대화를 생각하다가 문뜩 이런 의문이 들었다.

    기사의 경지가 높다고 무조건 기간트를 잘 운영할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아니다.

    내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닌 만큼 기사의 전투 능력만으로 기간트 운용능력을 판단할 수 없다.

    오러블레이드를 지닌 마스터를 제외하면 어차피 오러로 싸우는 것은 마찬가지.

    그럼 아예 기간트 운용 센스를 가진 인원을 선별하여 전문 조종사를 양성하는 편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능 적성 검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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