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52화 (5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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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국왕 위의 공작

    “자네, 아르비스 공작에 관한 이야기 들었는가?”

    “아아, 이타루스 성왕국의 내전에 한발 걸쳤다는 것 말인가? 승리한 성녀를 도왔다니, 더욱 승승장구하겠군.”

    “그 이야기밖에 모르는가?”

    “왜, 뭘 또 알아야 하나?”

    “내전에서 아르비스 공작과 칼바도스 제국이 충돌한 이야기 말일세.”

    “뭐?”

    “칼바도스에서 정통 왕권인 성왕을 지원하기 위해 정예 병력을 투입했다고 하네.”

    “정예라니?”

    “고위기사 오십에 마스터 다섯, 대마법사 둘을 말이지. 더구나 마스터 중 한 명이 대륙 최강의 기사라는 샤를로트 공작이었지.”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어째서 칼바도스에서 성왕에게 그렇게까지 해주는 건데? 아니, 그전에 전쟁은 성녀측이 이기지 않았나?”

    “맞아 성녀가 이겼지. 왜냐하면 아르비스 공작이 샤를로트 공작을 포함한 칼바도스의 지원을 분쇄시켰으니까.”

    “허···. 자네는 농담도 재미없게 하는군.”

    “아니, 진짜라니까? 그걸 발표한 게 칼바도스 제국이니.”

    “그럼, 자네가 잘못 안 거겠지. 말이 되는 소릴 해야 믿던가 할 것 아닌가?”

    “아, 이 사람이 답답하게 이미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네.”

    “그럼 어떻게 그만한 전력을 아르비스 공작이 물리친단 말인가?”

    “아르비스 공작이 이번에 8클래스의 벽을 넘었다는군. 그리고 수하로 마스터 8명과 대마법사 2명을 두고 있다는···.”

    “에잉, 괜히 열 냈군. 아무래도 자네 더위 먹은 것 같네.”

    “아, 글쎄 정말이래도? 그래서 일각에선 아르비스 공작을 하이랜드에서 침투시킨 하플링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 그 왜 땅딸막한 종족 있지 않은가.”

    “그래, 그래. 알겠네, 알겠어.”

    칼바도스 제국에 의해 이타루스 성왕국 내전에 대한 비사가 널리 퍼졌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뜬소문이라 여기고 장난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보고도 믿기 힘들 사실을 누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는가.

    다만 각 왕가와 정보부로부터 퍼진 이야기의 출처가 칼바도스 황실이란 점이 의문일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조사를 통해 샤를로트 공작이 중상을 입어 요양 중이며, 황실 고위 기사단과 마스터 몇 명이 사망한 것이 사실임을 확인한 국가들은 이를 장난으로 치부할 수가 없게 되었다.

    심지어 마드세인 왕국의 동맹국인 알카드 왕국에선 사실 확인을 위해 마드세인 왕실에 이를 직접 문의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소문을 긍정하는 답변이 돌아와 각국의 정보부를 당황케 만들었다.

    정황이 하나둘 진실로 밝혀지고 있음에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

    대부분의 국가는 신중하게 사실확인을 위해 움직이며 섣부른 판단은 자제했다.

    만약 칼바도스 제국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드랜드 북부의 세력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게 될 테니.

    그리고 분명한 점은 이번 일로 아르비스 공작의 이름이 미드랜드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르비스 공작이 8클래스 마법사라면 대륙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란 뜻이다.

    덕분에 그의 정체를 두고 많은 말이 나왔다.

    하플링이다.

    유희를 하는 드래곤이다.

    음모 세력의 앞잡이다.

    폴리모프한 리치다.

    각종 소문이 무성하게 퍼졌다.

    칼바도스 제국에선 어떻게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아르비스 공작을 음모 세력의 앞잡이로 몰았으나, 국가와 영지의 발전을 위해 돈을 쏟아붓는 그의 행보는 음모 세력으로 보기가 힘들었다.

    덕분에 하나둘 추가된 말들이 그의 정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

    그토록 바라던 8클래스가 되었다.

    또한 코어의 출력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전투 능력은 기존 8클래스 대마법사들과 궤를 달리했다.

    덕분에 이젠 내가 그토록 신경 쓰던 샤를로트 공작이나 마르스 공작, 폴시스 공작을 마주하더라도 급사할 염려가 없어졌다.

    솔직히 샤를로트 공작은 모르겠지만, 같은 8클래스 마법사인 마르스 공작과 폴시스 공작을 상대로는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샤를로트 공작은 9클래스 마법사와 동급으로 취급되는 그랜드 마스터에 한발을 걸치고 있는 상태인지라 가장 위험했다.

    특히 검을 휘두르며 빈틈을 노리고 날아드는 플라잉 소드는 굉장히 위협적이다.

    아마도 최상급 익스퍼트가 미완성의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것처럼, 플라잉 소드도 미완성이 아닐까 싶다.

    보통 플라잉 소드 하면 이야기 속에선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으로 표현되는데, 샤를로트 공작은 단 한 자루의 사용에 그쳤으니.

    지난 전투로 어느 정도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이젠 이기진 못하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내겐 8클래스 마법이란 강력한 무기가 있지 않은가.

    헬파이어, 블리자드, 카오스 인페르노, 플라즈마 스톰, 헤븐즈 필드까지.

    사람들이 8클래스의 마법사를 전략 전술을 무시하는 무기라 평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덤으로 리저렉션과 오러블레이드도 막을 수 있는 샤이닝 쉴드는 강력한 옵션이다.

    “어떤 빌어먹을 인간들이 저를 하플링이라 소문내는 거죠?”

    내 물음에 아인트 공작은 껄껄 웃으며 답했다.

    “한 귀로 듣고 흘리게나, 솔직히 하플링이라 보기엔 큰 편이니.”

    “흠흠, 그렇죠. 이번에 서클이 오르면서 키도 컸거든요. 무려 5cm나.”

    “그럼 140cm은 되는 건가?”

    “무슨 소리세요? 150cm 넘거든요?”

    “그렇군. 축하하네.”

    갑자기 아인트 공작이 밉상으로 보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뭔가요?”

    나는 긴히 논의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찾아온 아인트 공작에게 용무를 물었다.

    “이제 슬슬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나.”

    “뭐를요?”

    “왕권 말일세.”

    “······.”

    제안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을 꺼낼지는 몰랐다.

    “국왕 폐하를 싫어하진 않지만, 이미 이 나라는 자네의 것이라 할 수 있네. 그런데 굳이 왕좌를 사양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답했다.

    “전 지금이 편해요. 따로 일을 하지 않아도 영지는 알아서 잘 돌아가고, 뭔가 해야 할 게 있다 싶어 국왕폐하께 부탁하면 그대로 들어주시잖아요. 굳이 행동에 제약이 많은 왕좌를 원할 필요가 있나요?”

    아인트 공작은 끙 소리를 내며 목을 주물렀다.

    “아직은 왕좌라는 게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다들 왕좌에 앉고 싶어 난리 건만···.”

    “이미 저의 힘이 왕권을 넘어섰잖아요.”

    내 말에 그는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알겠네, 이야기는 미뤄두지.”

    아마도 그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안을 해올 것 같다.

    “그리고 카르디아 공작에게 연락이 왔네.”

    “뭐라고요?”

    “뭐긴 칼바도스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거지. 그것 때문에 엄청 불안해하고 있어, 자기가 가치 없어지면 자네에게 죽는 것 아닐까 싶어서.”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네요.”

    칼바도스에서 모를 수가 없겠지.

    나 정도 되는 인물이 카르디아에게 당할 이유가 없으니까.

    “일단 지켜보죠. 아쉽지만 당장 대마법사를 죽이기엔 아까우니. 그에겐 전쟁에 대비해 마법 수련이나 잘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리 전하지.”

    “아, 그리고 칼바도스의 전력을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지?”

    “이번에 칼바도스 제국의 대마법사들과 전투를 벌였는데, 모두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더군요. 그리고 마스터 중 한 명도 긴가민가하고요.”

    “허어.”

    아드리안으로부터 그날 싸웠던 대마법사 중에 크리스토프 공작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아인트 공작에게 명부를 받아 확인한 결과 대마법사 두 명 모두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륙 최고의 국력을 지닌 국가이니, 알려지지 않은 힘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칼바도스의 초인이 몇 명인지 예측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우리가 밀리진 않겠지만 말이다.

    한동안 바빠서 인재 영입에 뜸했지만, 우리도 마스터를 계속 늘려나갈 생각이다.

    “알겠네, 조사해 보지. 이젠 우리의 정보력도 칼바도스에 이빨을 꽂을 정도는 되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원에는 부모님이 나무 그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젠 그럴듯하게 귀족 분위기를 풍겨서 두 분을 구경하는 게 재밌었다.

    “공주는 어때요?”

    “응? 아아, 처음에 왕가의 상태를 알고 많이 상심했었지. 그런데 이젠 제 할 일을 찾아 바쁘게 생활하고 있네.”

    “일이요?”

    “지금 행정부 세무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네. 제법 일 처리도 깔끔하고 임기응변도 뛰어나. 처음엔 공주와 함께 일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던 부하들도 잘 따르고 있네. 이젠 행정부에 없어선 안 되는 꽃이지.”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에서 시선을 떼고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때 아인트 공작이 뒤늦게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로엘 제국에서 유학 중이던 왕태자가 돌아온다는군.”

    “왕태자요?”

    폐하와 전하, 태자와 세자의 호칭 차이는 해당 국가가 독립국이냐, 아니면 제후국이냐로 나뉜다.

    폐하와 태자는 제국뿐만 아니라 독립된 왕권 국가에서도 사용하며, 왕권을 격하한 전하와 세자란 호칭은 제국의 직간접 지배를 받는 제후국에서나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국이긴 해도 마드세인은 독립국인 만큼 국왕은 전하가 아닌 폐하라 칭해지며, 후계자는 왕세자가 아니라, 왕태자라 칭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넨 본적이 없겠구만. 왕태자는 완전히 제국에 매료돼서 방학때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래서 폐하께서 많이 불편해하셨지.”

    로엘 제국은 미드랜드의 세 제국 중 가장 어중간한 느낌이다.

    남부의 유일한 제국으로 해군이 강력하지만, 그 외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육로 진출로가 두 개의 대왕국에 가로막혀 있고, 해상으론 준 제국으로 취급되는 케일론 왕국과 마찰이 잦다.

    제국답게 많은 수의 마스터와 대마법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케일론 왕국에 폴시스 공작(8클래스)이란 특출난 존재가 있는 것에 비해 로엘 제국에는 그에 비견되는 초인이 없었다.

    그래도 제국은 제국.

    왕국과 비교가 안 되는 국력과 문화를 지닌 대국인 것은 분명하다.

    마드세인 같은 소국의 왕태자가 제국에 매료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순 있지만, 다음 대 국왕으로 낙점된 인간이 조국에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군.”

    아인트 공작은 이해한다며 말했다.

    “왕태자를 실제로 보면 더 황당할 거야.”

    “또 뭐가 있어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당히 오만한 데다가 호색한이거든. 그의 성격은 자네와 맞지 않을 거네.”

    “그런 인물을 왜 왕태자로 세운 겁니까?”

    “의외로 그런 인간들이 우수하거든. 오만함은 왕족이란 이유로 얼버무릴 수 있고, 왕태자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지. 농가 출신의 자네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귀족들에겐 흔한 모습이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으로 판단을 내려선 안 되지만,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꼭 그런 인물들이 큰 실수를 저지르곤 하던데.

    “일단 지켜보죠.”

    그냥 간단히 생각하기로 했다.

    귀찮게 굴면, 왕태자를 바꿔버리면 되지.

    아예 실비아 공주를 후계자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왠지 실비아라면 맡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것 같으니.

    물론 그것도 내가 왕좌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경우의 이야기지만.

    ***

    국왕 위의 공작 (2) -유료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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