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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과 두 후작님께서 다르닐과 우측의 마스터 둘을 상대해 주세요.”
“네, 네!”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된 듯 혼란스런 눈치의 성녀가 이견 없이 답했고, 나는 스텔라와 아드리안에게 두 대마법사를 상대하라고 지시했다.
마법의 숙련도 상대측이 뛰어날지 몰라도 이쪽은 기본적으로 장비가 다르다.
대충 보기에도 그들은 마도 시대의 장비가 없어 보이니, 충분할 거라 생각한다.
“샤를로트 공작과 남은 마스터 둘은 저희가 상대하죠.”
“부탁합니다.”
나는 샤를로트 공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오겠는가?”
끄덕.
“플라즈마 블래스트.”
콰아아앙!
샤를로트 공작의 눈앞에 범위는 작지만 한 점 폭발력이 강한 대마법이 작렬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뒤로 물러나며 뻗어오는 불길을 오러블레이드로 갈랐다.
팟!
그리고 폭발 소리를 신호 삼아 전투가 개시되었다.
양 진영이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내 지시대로 성녀 일행과 대마법사들이 자신의 표적에게 달라붙고, 드레이크와 메어리가 나머지 마스터 둘을 물었다.
“하하! 이렇게 많은 마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다. 아주 좋은 경험이 되겠어.”
호쾌한 샤를로트 공작의 외침에 나는 다시금 마법으로 답했다.
“경험이랄 것 있습니까! 이 자리에서 죽을 텐데! 세퍼레이션!”
그가 서 있던 공간이 유리가 깨지듯 균열이 생긴다.
세퍼레이션은 균열에 신체의 한 부위라도 걸리면 그대로 절단된다.
“소용없네!”
쾅!
하지만 샤를로트 공작은 마법의 발동 위치를 느끼는지 가볍게 피했고, 세 방향에서 날아드는 마스터들의 검을 최소한의 동작으로 튕겨냈다.
오러블레이드의 밀집도가 다른 걸까?
샤를로트 공작과 검을 맞댄 마스터들의 오러블레이드가 뜯겨 나갔다.
“미친.”
선공격을 날린 마스터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고, 그 빈자리를 다른 마스터들이 채웠다.
쾅! 쾅!
오러블레이드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왕성은 여신의 가호로 멀쩡했지만, 그 파편에 맞은 자들은 그대로 절명했다.
덕분에 한참 잘 싸우던 몽크와 칼바도스 기사들은 거리를 벌렸다.
“콘스탄틴 경도 같이 싸우세요.”
찰나의 격돌이지만, 쉽지 않음을 직감한 나는 호위를 위해 남은 콘스탄틴에게 그리 지시를 내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콘스탄틴까지 합세하자, 완전히 7:1의 싸움이 되었다.
샤를로트 공작의 발아래서 솟구쳐 오르는 붉은 색의 가시들.
그것은 코어의 마력을 가공한 것으로 대주교를 잡을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기술이었다.
“사술을!”
하지만 샤를로트 공작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마스터들의 검을 막아내면서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 가시들을 분쇄시켰다.
대주교완 차원이 다른 강함.
“괴물이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오러블레이드와 내 견제에 방어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는 꾸준히 허점을 만들어 내 부하들을 위협했다.
오러의 질과 양뿐만 아니라 검술의 실력도 규격이 달랐다.
기사의 경우 마법사처럼 등급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그의 강함은 예상을 가볍게 넘어섰다.
샤를로트 공작과 많이 비교되는 위스워드 제국의 마르스 공작(8클래스)도 저렇게 강할까?
저건 마스터가 아니라, 하이 마스터같은 뭔가 다른 호칭으로 불려야 할 것 같다.
뭐, 7클래스도 대마법사고 8클래스도 대마법사라 부르긴 하지만···.
“합!”
결국 단순한 실력만으로 그를 쓰러뜨리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기사들은 마법검에 내재 된 특성을 사용했다.
어느 검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어느 검에선 불꽃이 피어올랐으며 바람과 중력 등 갖가지 속성이 검에서 생성돼 오러블레이드와 융합했다.
“큭!”
레이포드의 뇌검강을 막아낸 샤를로트가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호신강기처럼 전신을 푸른 오러로 감쌌다.
그런데 레이포드를 막더라도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은 5개가 더 있다.
제논과 콘스탄틴은 피처럼 새빨갛게 물든 검으로 쇄도했다.
샤를로트 공작이 그 검을 막아내자 이번엔 화염이 그를 집어삼켰다.
오러블레이드와의 융합으로 하나하나가 고위 마법 못지않은 위력을 지닌 공격들이었다.
더불어 전신을 짓누르는 고중력의 검과 검탄이나 다름없는 바람의 칼날이 날아드니, 수적 열세에도 잘 싸우던 샤를로트 공작이 사정없이 뒤로 밀렸다.
“어때요, 경지가 다가 아니죠?”
그에게 압도적인 능력치와 기술이 있다면 이쪽엔 비교 불가능한 템빨이 있다.
안쪽에 드래곤 비늘과 드라켄 가죽을 덧댄 통짜 미스릴 아머.
드래곤의 콜렉션인 마검 수준의 무기들.
또한 오러를 증폭하는 오리하르콘 팔찌까지 차고 있으니, 아무리 그의 경지가 높다고 해도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장비도 대부분 값비싼 미스릴로 보였지만, 단순가공된 미스릴 무구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세퍼레이션!”
계속 코어의 마력으로 만든 가시를 촉수처럼 공격하던 나는 그가 거리를 벌리려 하자 마법으로 이동 경로를 제한했다.
샤를로트 공작은 점프로 마법을 피했지만, 그가 몸을 날린 방향에서 다시금 콘스탄틴과 제논이 나타나 붉은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이거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샤를로트 공작을 공략할 수 있을 것 같다.
“만만하게 봐선 곤란하지.”
하지만 방금 생각이 착각이란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샤를로트 공작이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검을 휘두르자, 오러블레이드가 방어막처럼 펼쳐지고, 콘스탄틴과 제논의 화염강기를 밀어냈다.
“오러블레이드를 방어막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 내 부하들에게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샤를로트 공작의 허리춤에 걸린 검집에서 길이 50cm 정도의 아주 얇은 검날이 스스로 뽑혀 나왔다.
손잡이가 없는 그 검은 의지를 지닌 것처럼 두 사람을 노리며 날아들었는데, 그 검날에 오러블레이드가 씌워지자 제논과 콘스탄틴은 헛바람을 삼켰다.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한 두 사람은 빈틈을 파고드는 공격에 당황했다.
쾅!
그러나 한 끗 차이로 검을 뻗은 아델에 의해 샤를로트 공작의 검이 튕겨 나가고 두 사람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챙그랑!
마치 실 끊어진 연처럼, 바닥을 뒹구는 검날.
그게 루시엘라에게 들었던 플라잉 소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제대로 가보지.”
촤촤촤촤촤!
샤를로트 공작이 검집의 입구를 허공으로 향하자, 얇은 검날들이 마치 분수처럼 끊임없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숫자는 도저히 얇은 검집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든 양이었는데, 아무래도 검집에 공간확대 마법이 걸려 있는 모양이다.
투투투투툭!
설마 저것들이 물고기 떼처럼 날아드는 건 아니겠지?
걱정과 달리 기세 좋게 하늘로 쏘아진 검날들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사방에 흩어진 검날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발아래 떨어진 검에 오러블레이드가 서리더니,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기겁한 나는 강화 배리어를 사용하며 몸을 뒤로 날렸다.
블링크를 사용하면 편한데, 이곳은 공간이동 방해마법이 깔려 있어서 직접 피하는 수밖에 없다.
“헙!”
쾅!
강화 배리어는 1초도 버티지 못해 깨지고, 검은 내 어깨를 스키고 지나갔다.
“큭! 세퍼레이션!”
1차 공격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뱀처럼 재차 날려들던 검이 마법과의 충돌로 의지를 잃고 추락했다.
나는 비로소 바닥에 깔린 무수히 많은 검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발밑을 조심하세요! 어느 검이 날아들지 모릅니다!”
내 외침에 기사들은 표정을 굳히며 달려드는 샤를로트와 검을 맞댔다.
핏! 핏!
샤를로트 공작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발아래 흩어져 있던 검날이 수시로 빈틈을 노리고 날아왔다.
덕분에 이건 더 이상 1:7의 싸움이라 볼 수 없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마스터급의 암살자가 곳곳에 숨어서 샤를로트 공작을 도와주는 느낌이다.
그나마 공작이 플라잉 소드를 한 자루밖에 다루지 못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덕분에 기사들은 집중력이 깨져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유리했던 전황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캉!
“쓸데없이 튼튼한 갑옷이군.”
샤를로트 공작이 날린 플라잉 소드가 아델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다행히 오러블레이드는 갑옷의 미스릴은 뚫었으나 안에 있는 드래곤 비늘에 막혔다.
만약 갑옷을 보강하지 않은 순수 미스릴 아머였다면, 그는 심장을 꿰뚫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게 어찌 검술이란 말인가.
나는 바닥에 떨어진 검들을 제거하기 위해 자력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검들은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평범한 철이 아닌 모양이다.
방법을 바꿔 이번엔 검을 녹이기 위해 고열의 마법을 사용했으나, 검들은 빨갛게 달아오를 뿐 녹아내리지도 않았다.
“에라이!”
나는 결국 이삭줍기하듯 마법으로 검날들을 끌어당겨 아공간에 쑤셔 넣었다.
샤를로트 공작은 마스터들의 검을 막아내며 내 행동에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으나, 나는 무시하고 꾸준히 견제를 하면서 바닥에 흩어진 검들을 아공간에 쓸어 담았다.
이거 어째 전투 도중 분리수거를 하는 느낌이다.
이런 내가 거슬렸는지, 샤를로트 공작이 나를 향해 플라잉 소드를 사용했다.
그러나 나는 정면에 아공간을 열어 그가 날린 검을 그대로 수납할 뿐이다.
내 행동에 샤롤로트 공작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이런 식으로 내 수가 막히는 경우는 처음이군.”
폼은 안 나지만 어쩔 수 없지.
촤촤촤촤!
그런데···.
검날의 수습이 거의 끝나 간다 싶을 때, 샤를로트 공작의 검집에서 다시금 검날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저 검집엔 얼마나 들어 있는 건지.
“그랜달, 이 검날들 전부 보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랜달을 이용했다.
왕실바닥 전체가 검게 물들고, 바닥 곳곳에 흩어져 있던 샤를로트 공작의 검들이 사라졌다.
“허! 이것도 아공간이란 말인가?”
그는 이게 기간트의 아공간이라곤 생각지 못하는 것 같다.
칼바도스에선 연구 외에 따로 운용하는 마도시대의 기간트가 없는 걸까?
그제야 내 기사들은 마음 놓고 검을 휘둘렀다.
나는 다시금 부하들과 힘을 합쳐 샤를로트 공작을 공략했다.
기습이 차단당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플라잉 소드를 기습이 아닌 공격 보조로 사용했다.
쾅! 쾅! 쾅!
전투는 점점 치열해졌다.
내 기사들과 샤를로트 공작의 공방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나는 아군이 휘말릴까 큰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마력 가시와 견제마법으로 그의 발밑을 노리며 귀찮게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사리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기사들을 보호하던 갑옷이 서서히 뜯겨 나갔다.
샤를로트 공작의 수단 하나를 막았다고 해서 이긴 게 아니었다.
마스터 6명과 대마법사 1명을 상대하면서도 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투신 같았다.
적이지만 감탄할 수밖에 없는 강함.
쾅!
“컥!”
그러다가 제논과 아델이 폭발하듯 전신을 쓸고 가는 오러블레이드 파편에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리커버리!”
성녀가 바쁘니 내가 직접 치료 마법을 사용했는데, 두 사람의 이탈로 틈이 생기고 내 마법지원이 없어지자 샤를로트 공작은 매섭게 검을 휘둘러 블레이크의 오른팔을 절단했다.
“으악!”
그리고 샤를로트 공작은 그대로 마스터들의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주군!”
내가 그리 귀찮았을까?
그의 목표는 바로 나였다.
기사들이 급히 달려왔으나, 순간 스피드로 그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세퍼레이션!”
샤를로트 공작의 접근을 막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지만, 그는 말도 안 되는 몸놀림으로 마법을 피했다.
“아이스 월!”
나는 얼음벽을 세우며 급히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휘익!
내가 공중으로 도망치자 플라잉 소드가 얼음벽을 뚫고 요격 미사일처럼 날아왔다.
이리저리 피해도 끈질기게 쫓아오는 오러블레이드를 향해 플라즈마 버스터를 사용했다.
콰아앙!
머리 위에서 작렬하는 대마법에 왕실대전이 요동치고 플라잉 소드는 오러블레이드를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군! 피하십시오!”
하지만 나는 위기를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니, 샤를로트 공작이 허공을 뛰어올라 무시무시한 살기를 뿌리며 검을 휘둘러 오고 있었다.
“흡!”
나는 뒤로 물러나며 즉시 강화 배리어를 시전하고, 팔찌의 기능 중 하나인 압축 배리어를 방패처럼 펼쳤다.
또한 코어의 마력을 움직여 수십 가닥의 가시를 촉수처럼 그에게 날렸다.
“자넨 정말 우수한 마법사군. 하늘을 날면서 단 한 순간에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다니.”
그러나 그의 오러블레이드가 번쩍이고 동시에 내가 사용한 세 가지의 수가 모조리 날아갔다.
“젠장.”
시시각각 목숨을 위협하며 날아드는 오러블레이드.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콰직!
“컥!”
어째서인지 바로 앞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핀 나는 뒤에서 거대한 손이 튀어나와 샤를로트 공작을 움켜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 기간트?”
죽다 살아난 느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피를 토하는 샤를로트 공작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저는 갈 때가 아닌가 봅니다.”
그랜달의 손이 그를 완전히 뭉개기 위해 오므라들기 시작한다.
그에 샤를로트 공작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오러를 활용해 버텼다.
나는 그와 그랜달의 힘겨루기를 가만히 지켜볼 의리가 없는지라 포박된 샤를로트 공작을 제거하기 위해 마력탄을 날렸다.
푹!
“어?”
그런데 그때.
반짝이는 무언가가 마력탄을 가르며 날아왔다.
그리고 반응할 틈도 없이 들려온 섬뜩한 소리에 시선을 내리니, 얇은 검날이 푸른 빛을 머금은 채 내 가슴에 박혀 있었다.
“크윽!”
말이 안 나오고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어느새 기간트의 두 번째 손이 나와 있었는데, 아무래도 플라잉 소드를 막으려다 실패한 모양이다.
어이없이 이게 무슨 상황이람.
“그 새끼, 죽여···.”
“끄아아악!”
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추락하며 명령했고, 그랜달은 걸레를 쥐어짜듯 두 손을 움켜쥐었다.
“주군!”
“서, 성녀님!”
“공작전하 워프로 도망치십시오!”
“성왕을 죽여! 성왕이 도망쳐선 안 된다!”
“칼바도스 녀석들을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이 새끼들이 감히!”
폭음과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뿐이던 왕실 대전에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정신은 점점 몽롱해져 간다.
주변의 소란이 서서히 가시고, 몸은 물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트레이닝 캡슐을 먹었을 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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