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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49화 (4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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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쿵! 쿵!

    “음?”

    성녀와 대화하는 와중에 새하얀 빛줄기 세 개가 날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활성화 시켜둔 오토 쉴드에 가로 박혀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니 성력총을 쥔 병사 셋이 집 안에 숨어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에 병사들이 숨어 있던 집이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전의를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나요?”

    한 성직자의 용기 있는 물음.

    성녀는 잠자코 상황을 주시했고, 내 부하들은 감히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며 살기 등등한 눈빛을 흘렸다.

    “제 목숨을 노렸는데, 살려 둘 필요는 없죠. 그리고 인심 써서 살려뒀다가 나중에 저들에게 아군이 죽으면 어쩌려고요? 성직자여도 전장에 나선 이상 피아식별을 확실하게 해두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전생의 기억을 통한 충고에 그 성직자는 고개를 떨궜다.

    “공작님께선 전쟁 경험이 풍부해 보이십니다.”

    성녀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경험이랄게 필요합니까? 그저 현실적 판단일 뿐입니다.”

    성의 없는 대답에 그녀는 뭐가 좋은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왕성이군요.”

    느리지만 우린 꾸준히 전진을 거듭했고, 드디어 왕성을 눈앞에 두었다.

    내 눈짓에 스텔라는 다짜고짜 왕성 성벽에 플레임 블레스터를 사용했다.

    피슉.

    그러나 용틀임을 하며 날아가던 대마법이 마치 물속에 빠진 성냥개비처럼 맥없이 소멸했다.

    “허···.”

    저건 딱 봐도 7클래스 마법 몇 개 날린다고 피해를 줄 수 있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성녀가 왜 자기 말을 안 믿냐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자, 나는 뺨을 긁적였다.

    “주변에 공간이동을 방해하는 신성마법도 깔려있고.”

    병사들이 정렬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성녀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기사단과 몽크들만 모아서 날아가죠.”

    부수지 못하면 넘어가면 된다.

    아주 간단한 결론이었다.

    어차피 초인의 수는 이쪽이 압도적이고, 기사단의 수도 엇비슷하다.

    지금 왕성 내부에 숨어 있는 것은 발악에 지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크리드 후작님, 기사와 몽크들을 모아주세요.”

    “네, 성녀님!”

    크리드 후작의 지시에 기사와 몽크들이 한데 모이고, 총 천오백에 달하는 병력을 허공에 띄워 성벽을 넘었다.

    쿵! 쿵! 쿵! 쿵!

    밑에서 빛의 화살이 미친 듯이 날아들었지만, 성녀와 대마법사가 3명이나 있는지라 막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뭔가 지난 싸움 이후 다시 긴장감이 떨어진 느낌.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나는 아직 벽을 넘을 만한 자극을 받지 못한 상태다.

    “저희는 바로 안으로 들어가죠.”

    “그러죠.”

    굳이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쾅!

    크리드 후작의 말대로 내성의 문은 여신의 가호를 받지 않았다.

    사방에서 병사와 기사들이 성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달려들었지만, 함께 이동해온 기사들에게 가로막혀 아무도 다가오지 못했다.

    더불어 성녀의 군대가 성벽을 타고 올라오니, 앞뒤에서 샌드위치를 당한 적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워했다.

    우린 그 틈에 몽크 50여 명을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섰다.

    나와 스텔라, 아드리안의 마법이 복도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을 휩쓸었다.

    “마법이 먹통이 되는 건 아니네.”

    건물과 성벽에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할 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공격할 수 있었다.

    “저쪽이 왕실 대전입니다.”

    우리는 성녀의 안내에 따라 빠르게 내성의 복도를 걸었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기사들을 가볍게 제거했다.

    그리고 마드세인의 왕성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하고 화려한 문이 나타났다.

    “여깁니다.”

    그 문은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있었는데, 우리가 다가가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절로 열렸다.

    “왔나.”

    왕실 대전 상석엔 성왕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앉아있었고, 그 밑으로 성기사와 기사들이 정렬해 있었다.

    “당연히 와야지요. 이 나라의 썩은 살을 도려내기 위해서.”

    성녀의 당당함에 성왕은 끌끌 웃으며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마치 뭐라도 된 듯한 모습이군. 결국 네년도 이 자리를 원하는 것 아니냐.”

    “저는 어머니와 국민을 위해 움직인 겁니다.”

    “입에 발린 말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네년도 현실적으로 바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당신은 현실적인 게 아니라, 양심이 없는 겁니다. 적어도 저에겐 자긍심이란 것이 있죠.”

    “기회가 될 때 죽였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군.”

    “같은 생각입니다. 미리 당신을 제거했다면 이리도 큰 희생은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두 사람의 기 싸움.

    그 장면을 잠자코 지켜보던 나는 문뜩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나 지금 너무 조연 같지 않나?

    이 자리의 주인공은 성녀가 맞지만, 한 번쯤은 내게 시선이 돌아올 법도 한데 신경도 쓰지 않는 성왕을 보니 왠지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네놈이 엿 된 게 실은 내 공이라고.

    하지만 어린애 같아서 관뒀다.

    굳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방정맞게 굴 필요는 없지.

    지금 나의 행동은 어떤 식으로든 이타루스 성왕국의 역사에 영향을 줄 테니 말이다.

    “네 녀석이 아르비스 공작이로군.”

    드디어 성왕이 내게 시선을 주었다.

    “들켰나요?”

    그리고 변장 마법을 푸니, 나는 앳된 소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고, 원래 스텔라의 것인 붉은 로브는 내 신장에 맞춰 줄어들었다.

    그는 돌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정신이 나간 겁니까?”

    내 물음에 성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광기 어린 눈빛으로 천천히 우리 일행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나?”

    성왕의 낌새가 뭔가 거슬린다.

    나는 미간을 좁혔고, 성녀는 주먹을 말아쥐며 말했다.

    “순순히 투항하시죠.”

    “투항? 투항이라.”

    성녀의 권고에도 그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나는 뭔가 있다고 생각하며 코어의 마력을 움직였다.

    “투항은 없다. 왜냐면 이 자리에 끝까지 서 있을 사람은 네년이 아닌 나일 테니.”

    이어서 성왕의 곁에 다르닐이 경호하듯 달라붙었다.

    모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성왕의 옆에 새파란 마법의 문이 생기자 일행들은 움찔 놀랐다.

    성인 남성 4명이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문.

    나를 포함한 대마법사들은 믿을 수 없다며 눈을 부릅떠야 했다.

    “마법인가요?”

    성녀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워프입니다.”

    “워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고대의 기술이죠. 마법으로 치면 9클래스에 해당됩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헛바람을 삼켰다.

    이어서 워프의 문을 통해 이타루스와 다른 양식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왕실 대전이 적으로 가득 차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순 없는 노릇.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플라즈마 버스터를 사용했다.

    콰아아앙!

    끄아악!

    스톰에 비해 범위는 좁지만 더욱 강력한 폭발이 워프에 작렬했다.

    10여 명의 기사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음에도 워프는 흔들림 없이 기사들을 토해냈다.

    뒤이어 스텔라와 아드리안이 메모라이즈 해둔 플레임 블레스터를 사용했다.

    “환영 인사 한번 거창하군.”

    그런데 중년의 기사가 워프에서 느긋하게 걸어 나오더니, 단 일 검에 플레임 블레스터 두 개를 베어버렸다.

    “무슨?”

    워프는 얼마 안 있어 문이 닫혔다.

    하지만 이미 성왕의 뒤로 50명은 될법한 기사들과 2명의 마법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실 숫자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마법사 두 명과 기사 다섯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자네가 요즘 신나게 날뛰는 아르비스란 자로군.”

    플레임 블레이스터를 베어버린, 기묘한 분위기의 중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는 당신은 샤를로트 공작이시오?”

    “호···. 어떻게 알았지? 대외적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혹시나 내뱉은 말이 정답으로 밝혀지자, 나는 이마를 감싸야 했다.

    아인트 공작이 했던 경고가 이런 식으로 이어질 줄이야.

    나는 분노한 표정으로 성왕에게 소리쳤다.

    “하필 손을 잡아도 칼바도스와 잡다니,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닥쳐라! 네놈도 어차피 외세가 아니더냐!”

    “멍청한 새끼.”

    거침없는 내 말에 성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위험한가요?”

    걱정 가득한 성녀의 물음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빨간 망토는 칼바도스의 마스터를 상징하는 겁니다. 그리고 마법사 두 명은 7클래스고요.”

    “······.”

    다르닐을 포함하면 마스터 전력 여섯에 대마법사 둘이 되는 걸까?

    “초인의 숫자는 우리가 한 명 많지만, 저긴 괴물이 껴있군요.”

    나는 일행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샤를로트 공작은 그랜드 마스터를 목전에 둔 마스터입니다. 9클래스를 앞둔 8클래스의 마법사라 생각하고 싸워야 합니다.”

    그에 사람들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소문이 과장된 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희망을 바라는 듯한 크리드 후작의 물음에 나는 현실로 답했다.

    “어, 어쩌죠?”

    예상치 못한 위기에 성녀는 내게 의견을 구해왔다.

    “어차피 도망치긴 글렀으니. 싸우는 수밖에 없죠.”

    아마도 워프는 유물인 모양이다.

    드래곤이 아닌 이상 워프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리가 없으니.

    기간트도 보유하고 있으니, 워프 같은 특이한 아티팩트를 갖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째 나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는 듯한 눈치군.”

    샤를로트는 롱소드보다 짧은 브로드소드의 검 끝을 내게 겨눴다.

    “뭐, 적국의 최강자니까요.”

    “그런가?”

    그가 어깨를 으쓱이자, 칼바도스의 기사들이 전투태세를 취하고 초인들도 하나같이 자신만만하게 검과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말이야.”

    그런데 그때.

    샤를로트 공작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저기 문 뒤쪽에 모습과 기척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은 뭔가?”

    영문 모를 샤를로트 공작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돌리며 의문을 표하고,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언제 알아챘어요?”

    “흐릿하지만 기척이 느껴지는군. 아무래도 이상을 알아챈 사람은 나뿐인 모양이야.”

    긴장감 없는 우리의 대화.

    나는 혀를 차며 손가락을 튕겼다.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듯 작은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내 앞에 색이 입혀지는 것처럼 5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

    성녀와 그녀의 부하들이 뒷걸음질을 치고, 새로이 등장한 5명이 나를 보호하듯 일렬로 늘어섰다.

    전신을 미스릴 갑옷으로 무장하고 미스릴 롱소드와 마법검을 표준으로 장비한 기사들.

    제논, 콘스탄틴, 미하엘, 드레이크, 메어리.

    영지에 있어야 할 나의 소드마스터들이다.

    기존에 나를 수행하던 마스터 세 명까지 더해 모두들 제식동작처럼 마법검을 뽑아 들었다.

    이어서 8명이 일제히 오러블레이드를 형성하자 대전의 공기가 흔들렸다.

    “칼바도스에서 난입할 수도 있다는 조언을 해준 사람이 있어서 말이죠.”

    “누군진 몰라도, 대단한 예지력을 지닌 인물이군.”

    “그런 경고를 들었는데, 멍청하게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닐 수는 없죠.”

    “마스터를 8명이나 수하로 둔 건가? 대마법사 둘을 더하면 자네를 포함해서 초인만 열한 명이군. 아니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도 웬만해서 전력을 드러내고 싶진 않았지만, 앞으로 끈질기게 달려들 테니, 귀찮게 굴지 말라는 경고의 뜻이기도 합니다.”

    칼바도스에서 나를 제거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면 무엇이 최악일까?

    고민하던 나는 자연히 샤를로트 공작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현 황제의 충실한 검인 그라면 나를 제거하기에 가장 확실한 수일 것이다.

    “유리하다 생각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루시엘라와 데미안을 통해 그가 마스터급 엘프 넷을 베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내 부하들은 단순한 마스터가 아니다.

    극강의 장비로 무장한 마스터다.

    “불리하진 않죠. 이들은 단순한 마스터가 아니니.”

    “재밌는 사람이로군.”

    나와 샤를로트 공작 사이에 스파크가 튀듯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성녀 일행이 급히 다가와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냥 이타루스 일에서 손을 떼지 않겠습니까?”

    “자네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더욱 그럴 수는 없지.”

    결국 싸워야 하는 건가.

    나는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

    전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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