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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47화 (4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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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텔라는 걱정이 많아 보였으나 이내 무슨 일이 있겠냐는 듯 표정을 풀고, 레이포드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벌군은 현재 5일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추가 토벌군 모집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성왕은 지금의 전력이면 충분히 우리를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칼바도스 제국에서 성왕국에 관심이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 엄청난 수의 정보원이 깔려있으니, 혹시 모를 돌발상황을 조심하라는 아인트 공작님의 전언입니다.”

    “혹시 모를 돌발상황이 설마 녀석들이 끼어들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만약 칼바도스 제국이 끼어들면 이 전쟁은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다.

    “확신할 순 없습니다. 다만 아르비스 공작령 주변에 칼바도스의 정보원이 줄어든 것으로 봐선 대역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다는군요. 칼바도스 입장에서 아르비스 공작 전하가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면 제거하려 들 수도 있다는 것이 아인트 공작님의 생각입니다.”

    일리 있는 추측이다.

    어차피 마스터 셋과 대마법사 셋 정도의 전력은 내게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드러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온 것이지만, 칼바도스가 위협으로 여기기엔 충분한 전력이다.

    확실히 아인트 공작의 말대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멍청한 헤르만.”

    스텔라는 대역이 들킨 것이 황당한지 짜증이 담긴 혼잣말을 내뱉었다.

    “전달 사항은 이상입니다. ”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공작 전하.”

    그리고 그는 다시 투명로브로 모습을 감췄다.

    문뜩 그 모습이 꽤나 멋져 보였다.

    “역시 거금을 투자한 보람이 있는 것 같네요.”

    정보전이라 할 수 있는 요원끼리의 암투에서 마드세인의 정보원이 이타루스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래도 칼바도스를 상대로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과연 제국의 정보부라는 걸까?

    “괜찮을까요?”

    스텔라의 물음에 나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비는 해둬야죠. 지난번처럼 어중간한 전력이 튀어나오면 잡아먹고 아니면 말고, 상대하기 힘들 정도의 전력이면 객기 부리지 않고 도망갈 겁니다.”

    명예롭지 못한 이야기지만, 스텔라는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두 사람을 이끌고 성녀 일행이 있는 영지 광장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성녀의 물음에 토벌군이 조직돼 현재 남하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렇군요.”

    안색이 어두운 성녀의 모습에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토벌군이 몇 번이고 밀려온다 해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나는 이타루스 성왕국의 토벌대보다도 혹시 모를 칼바도스의 난입이 더 신경 쓰였다.

    성녀는 듬직한 내 모습에 인상을 폈다.

    “믿겠습니다.”

    아마 내가 없었다면, 그녀의 혁명은 여기서 끝을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다.

    *

    토벌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날의 밤.

    나는 변신을 풀고 소년의 모습으로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가장 최근에 마스터가 된 아델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충격입니다. 많은 수하 중 제게 검과 박투술을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는데, 키가 평균 이하여서 선택했다니요.”

    그의 말에 나는 웃음기 없이 답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그에 아델은 말을 잃더니, 내게 사과의 악수를 건넸다.

    묵묵히 그의 손을 붙잡은 나는 호기롭게 말했다.

    “잘 부탁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근접 전투기술을 배우겠다는 건지요?”

    아델의 물음에 나는 간단하게 답했다.

    “신체가 재구성되면서 뛰어난 능력치를 갖게 되었는데, 안 써먹는 건 아까운 것 같아서요.”

    “흠, 대마법사가 무술을 배운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지만, 확실히 신체 능력이 뛰어난 만큼 빠르게 습득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오러는 별개의 이야기지만요.”

    “오러는 힘들어도 오러 같은 능력은 이미 있잖아요?”

    나는 마력 코어의 마나를 끌어올려 손위로 검의 형태를 만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기운은 마치 오러 같았고, 세밀한 조정을 통해 날카롭게 가다듬으니, 얼핏 보면 오러블레이드처럼 보였다.

    “과연 그렇군요.”

    아델은 내 능력에 감탄사를 토하며 붉은 검을 살폈다.

    “어때요, 위급할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죠?”

    이 또한 마력의 활용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운이 사뭇 매섭군요. 생긴 건 영락없는 오러블레이드인데···. 이거 강도 실험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그의 제안에 나도 관심이 생겼다.

    코어의 마력으로 만들어낸 검기가 어느 정도의 위력을 지녔을까?

    이론상 마스터의 오러블레이드는 대마법에 비견되니, 최대출력이 6클래스 정도인 마력의 발산으론 막아내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좋아요.”

    내 허락에 그는 자신의 검을 빼 들며 오러블레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가짜 오러블레이드에 슬며시 가져다 댔다.

    스윽.

    그러자 오러블레이드는 너무도 쉽게 내 가짜 오러블레이드를 베었고, 베인 부분부터 그 윗부분의 마력이 소실되어 사라졌다.

    “오러블레이드가 날아오면 답이 없네요. 무조건 피해야지.”

    내 감상에 그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으로 오러블레이드를 막았으면, 엄청 허무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오러블레이드 대신 오러를 끌어올렸다.

    “이 정도면 상급 익스퍼트 수준의 오러입니다.”

    파랗게 불타오르는 검기가 새롭게 만들어진 가짜 오러블레이드에 닿았다.

    치칙!

    “오!”

    그런데 오러는 이전처럼 쉬이 가짜 오러블레이드를 베지 못하고 반발력에 스파크가 튀었다.

    “허···. 이건 무술을 배우기 전에 오러를 갖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군요.”

    아델 경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어느 정도 예측한 결과였기에 만족했다.

    “확실히 잘만 활용한다면 근접 전투에서 큰 무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래도 근접전이 벌어지면 무술을 써먹기보다 마법으로 도망치는게 낫지 않을까요?”

    “이걸로 기사 흉내를 내겠다는 게 아니에요. 저는 어디까지나 마법사고, 마법으로도 어쩌지 못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신체 능력을 키우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어디까지나 생존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라 보면 될 것이다.

    큰 전투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미래에 대한 대비인지는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문뜩 신체를 단련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듯했다.

    언제 어떤 식으로 난전에 휘말릴지 알 수 없으니.

    “그렇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그리고 운동하면 관절에 자극이 가서 키 크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키가 작다고 징징댈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을 하면 절로 결과에 반영되지 않을까 싶다.

    덤으로 건강한 신체에 맑은 정신이 깃든다고 하지 않는가.

    마법 수련이 막힐 때는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

    나는 성벽 너머 진을 치고 있는 토벌군을 바라보며 성녀에게 물었다.

    “만약 저 토벌군을 모두 정리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괜히 또 답답하게 다음 영지를 쳐들어간다는 건 아니겠지?

    은근한 나의 시선에 그녀는 무얼 걱정하는지 안다면서 가볍게 답했다.

    “방어가 헐거워진 수도를 내버려 둘 필요는 없죠. 그곳엔 300만의 백성이 있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수도를 점령한다고 해도 성왕이 도망치면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반은 이긴 것이라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전투가 끝나면 무조건 수도를 정리해야 한다.

    그녀의 생각에 나는 안심하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쿵! 쿵! 쿵!

    그때 토벌군이 투항권고 없이 진군을 시작했다.

    그래, 귀찮게 이것저것 따지느니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편하겠지.

    성벽엔 나와 성녀를 비롯해 대마법사와 마스터들이 줄지어 섰다.

    “철저하게 말살해야 뒤가 편하다는 것을 알아 두세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성녀가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는 클래식한 찬송가지만, 전장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행위 자체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마치 전장의 아이돌 같달까?

    신성력의 파도가 훑고 지나가자 몸에 따뜻한 기운이 충만하게 차오르고, 전신에 힘이 솟았다.

    눈앞에 무엇이 나타나도 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

    “빛의 화살을 조심하십시오. 성직자와 성기사의 수가 2000이고, 성력총(마력총)수가 1만이니, 방심했다간 벌집이 될 겁니다.”

    하라드 후작의 경고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모두가 한눈을 판 틈에 예고 없이 날아드는 빛줄기에 눈을 크게 떴다.

    소리 없이 뻗어오는 빛줄기는 집채만큼 거대했으며, 섬전처럼 빨랐다.

    “위험!”

    이상을 발견하고 제때 방어 마법을 펼친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러나 그 빛은 그대로 내 방어 마법을 뚫고 성문에 부딪혔다.

    콰아앙!

    “뭐, 뭐야?”

    방어막에 위력이 줄어든 탓에 성문은 무사했지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잔뜩 균열이 생겼다.

    성직자의 신성 마법은 공격력이 별 볼 일 없는 게 아니었나?

    조금 전의 공격은 아무리 봐도 7클래스의 플래임 블레스터 수준의 위력이었다.

    “이런!”

    “뭔가요? 이게 무슨 공격이에요?”

    깜짝 놀란 내 물음에 성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주교급 이상의 성직자가 사용할 수 있는 신성마법이에요.”

    대주교급이라고 해봐야 그 위로 성녀밖에 없지만, 성직자가 무슨 대마법급의 광역 공격을 날린단 말인가.

    성녀도 그랬지만 의외로 할 거 다 하는 성직자였다.

    더구나 캐스팅 시간까지 짧은지 다시 빛줄기가 번개처럼 날아들고, 이번엔 미리 대비하고 있던 성녀와 스텔라, 아드리안도 방어에 가세하면서 아무 피해 없이 신성마법을 막아냈다.

    “대주교란 인물이 어찌 성왕의 하수인 짓을!”

    성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한 건 적이란 소리죠. 공격하겠습니다.”

    언제까지 방어 마법만 펼칠 수는 없지.

    나는 공격이 날아온 장소를 향해 썬더 스톰을 사용했다.

    콰콰콰콰쾅!

    자체 코어의 마력을 이용했기에, 썬더 스톰은 마법진 없이 바로 적군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성직자들이 급히 방어막을 겹겹이 펼치며 내 마법을 막으려 했지만, 썬더 스톰의 벼락 하나하나는 어중간한 방어에 막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끄아악!

    적들의 비명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내가 위치를 잘못 잡았을까?

    성문을 노리던 빛줄기가 다른 방향에서 날아들었다.

    더구나 이번엔 성문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우리가 있는 위치를 노리고 날아왔다.

    그러나 원거리 마법전은 대마법사 셋에 성녀까지 버티고 있는 이쪽을 대주교 혼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동료들을 믿고 다시 공격이 날아온 방향에 대마법을 발현했다.

    이번 마법은 불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벼락 폭풍이 아닌, 일정 구역을 불바다로 만드는 파이어 스톰이다.

    대주교의 신성마법은 성녀와 대마법사들이 막아냈고, 내가 사용한 파이어 스톰은 병사 수천을 잡아먹으며 불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른 방향에서 대주교의 공격이 날아왔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론 그를 쓰러뜨릴 수 없는 모양이다.

    쾅!

    그런데 우리가 대주교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갑작스레 성문이 터져 나갔다.

    성문을 날린 것은 허공에 떠 있는 성기사 한 명이었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다 싶었는데, 녀석은 일전에 성녀를 공격했던 그 마스터 팔라딘이었다.

    성벽이 뚫린 것을 보며 성녀 군은 모두 표정을 굳히며, 무기를 고쳐잡았다.

    아무래도 깔끔하게 싸우긴 힘들 것 같다.

    “성기사가 하늘도 나네?”

    “전이와 부유효과가 있는 성물이에요.”

    “전 이제 성녀님께서 이상한 주문을 외치며 변신해도 놀라지 않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해야 했는데.”

    대주교의 공격 스킬과 성물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었으면 방어는 더 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약일 뿐이고 성녀도 완벽한 존재가 아닌 만큼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날아드는 대주교의 공격과 마법으로 벽을 새우는 족족 파괴하는 마스터 팔라딘.

    동시에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오는 기병과 기사, 성기사들을 보며 이것이 진정한 전쟁임을 깨달았다.

    쏴라!

    아군이 화살을 날리지만 두터운 무장을 갖춘 적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하고, 그사이 다가온 적들의 궁수와 성력총수들이 우리를 향해 화살과 탄을 날렸다.

    덕분에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10만에 달하는 병력이 성하나를 함락하기 위해 달려오는 모습은 웅장하기까지 했다.

    “끈질긴 새끼!”

    마법을 날리는 족족 검으로 막아내거나 블링크처럼 전이로 피하는 마스터 팔라딘을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저희가 내려갈까요?”

    아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성 밖은 이미 적진이에요. 그냥 안에서 싸우죠.”

    “네!”

    이제 성벽을 지켜봤자 소용이 없다.

    “스텔라, 아드리안! 대주교의 공격은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병력을 공격해요!”

    “네!”

    어차피 성벽이 무너져 내려도 잔해 때문에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차라리 길목을 막고 대마법사들이 적의 주요 병력을 공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와 스텔라, 아드리안은 대주교가 성벽을 공격하든 말든 신경끄고 마법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적들이 몰려든 성문에 대마법이 연이어 쏟아지면서 죽음의 땅이 만들어졌다.

    “이 이단자가!”

    우리가 꾸역꾸역 정예 병력을 잡아먹자, 마스터 팔라딘 다르닐이 눈앞에 나타났다.

    “뭐래 궤변자가.”

    쾅!

    그러나 내 옆에 대기하고 있던 블레이크가 오러블레이드로 그의 검을 막아내고, 백색의 로브 자락을 휘날리는 성녀의 돌려차기에 다르닐은 옆구리를 맞고 멀리 날아갔다.

    속절없이 날아가던 다르닐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같은 복장의 성기사와 기사 둘, 나이 먹은 성직자 한 명을 대동한 상태였다.

    “친구 데려왔네?”

    내가 히죽 웃자, 아군의 마스터 다섯 명이 일제히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성왕국의 내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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