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46화 (4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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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가 군대를 일으킨 지 일주일째.

    “성녀는 악마에 의해 타락한 마녀다! 외세를 끌어들여 나라를 혼란케 했으며, 가이아님의 선택을 받은 성왕가를 모독하고 있다! 형제자매여! 부디 마녀의 혓바닥에 놀아나는 일이 없도록 이 말을 명심 또 명심하도록 하라!”

    침공을 당하지 않은 영지에선 모두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성전을 한 손에 쥐고 소리치는 전도사들.

    그런 전도사를 바라보는 영지민들은 피폐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여신님의 선택을 받은 것은 성왕폐하가 아닌, 성녀님이 아닌가?”

    “누구냐! 신성 모독이다! 방금 누가 성왕 폐하를 욕보였는가!”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들은 전도사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지친 영지민들은 아무도 그의 호통에 어울려 주지 않았다.

    국민이 아무리 우매하고, 국가 정황에 어둡더라도 성녀가 어째서 전쟁을 일으켰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여신과 가까운 인물은 성녀지, 세습에 의해 나라를 다스리는 성왕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타루스 성왕국은 종교의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린다고 많이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주변 국가와 다름없이 성왕가의 세습 정치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성왕에게 작위를 받은 귀족들이 각 영지를 운영하는 전형적인 봉건국가였다.

    그것도 착취가 아주 심한 최악의 부패국가 말이다.

    성왕국이 일반 국가와 다른 점이라면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며, 성직자의 정치 참여가 쉽고 성녀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병사들은 뭣들 하는 것이오! 얼른 성왕폐하를 모욕한 자를 잡아들이지 않고!”

    “예, 예!”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였으나, 범인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영지민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 누구도 범인 색출에 협력하지 않았다.

    이타루스 성왕국의 국민들은 세뇌에 가까운 교육으로 모두 가이아 교단을 믿는 광신도들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었다.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존재는 교단과 그 교단의 꼭대기에 있는 성녀지, 이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님이 아니다.

    그런 성녀가 성왕과 대립한다면, 국민들은 성녀를 지지하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모든 국민이 한뜻은 아니고 곡해하는 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생각은 그러했다.

    여신 가이아는 세계의 유일신.

    그런 인물이 선택한 성녀와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

    그런 성녀를 위해 싸울 수 없다는 것이 통탄할 따름이다.

    [라라라라···.]

    그런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신경을 자극하는 청아한 노랫소리가 들려온 것이.

    영지민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고, 신성력의 파도가 성벽을 투과해 영지민들을 훑고 지나갔다.

    더불어 검은 먹구름에 가려진 하늘에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서, 성녀님이다.”

    “아이리 성녀님!”

    “기적이다!”

    영지민들은 모두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기적이 아니야! 이건 신성 마법이다! 그리고 저 햇빛은 연출이란 말이다!”

    전도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영지민들은 모두 같은 태도를 보일 뿐,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우매한 사람들을 보았나! 당신들은 지금 마녀에게 속고 있는···.”

    빡!

    전도사의 외침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누군가가 그에게 돌을 던졌기 때문이다.

    “누구냐! 어떤 녀석이 감히! 병사! 병사!”

    퍽! 퍽!

    “악! 아악!”

    그에게 날아오는 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주변에 있던 영지민들이 전도사를 따르던 병사들에게까지 돌을 던지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전도사란 인물이 어찌 성녀님을 마녀라 칭한단 말이냐!”

    “이 성스러운 기운을 봐라! 이게 어딜 봐서 악마에 의해 타락했다는 것이야!”

    결국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전도사는 병사들과 함께 도망쳐야 했다.

    “잡아! 아니, 성녀님을 위해 성문을 열어 드리자!”

    덕분에 영지는 안팎으로 난리가 났으며, 성녀의 군대는 더욱 수월하게 영지에 입성했다.

    그리고 성녀가 찾아가는 영지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니, 영지 방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성녀의 군세는 날이 갈수록 힘을 더해갔다.

    *

    칼바도스 제국 황실마탑 탑주 집무실.

    “무슨 말도 안 되는···. 성녀 쪽에 붙어있는 대마법사의 수가 3명이나 된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네이드 백작령의 성문을 날린 것은 플레임 블레스터가 분명한데, 요원의 보고에 의하면 스크롤 같은 다른 수단이 아닌 캐스팅에 의한 공격으로 보인다는군요.”

    “성왕은 그것을 파악하고 있나?”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왕 측의 정보원이 마드세인의 정보원에 계속 제거당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규모와 움직임밖에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마드세인과 이타루스 정보요원의 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크리스토프 공작은 정보부 부장의 이야기에 미간을 좁히며 고민에 빠졌다.

    “대체 아르비스 공작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조사하면 할수록 의문이 들 게 만드니.”

    “본인은 마드세인의 농가에서 태어난 평민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그것이 연기 같진 않거든요. 하지만 그가 5년 동안 모습을 감춘 시기가 있는데, 그때 뭔가가 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설마 이야기 속에나 등장하는 음모 세력 같은 것은 아니겠지?”

    “황당하긴 하지만, 그것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죠. 농가에서 태어난 그가 대마법사가 되고 마스터를 수하로 부리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으니까요.”

    이거 일이 복잡하게 되었다.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으니, 크리스토프 공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드세인은 이미 아르비스 공작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보부의 동향만 봐도 아인트 공작은 아르비스 공작을 따르고 있으며, 제노아드 공작과 국왕도 끽소리 못하고 있죠.”

    “아르비스 공작이 이타루스에 있는 게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지금 마드세인에 남아 있는 아르비스 공작의 대역이 연기를 너무 못해서 가짜가 분명해 보입니다. 대역을 세웠다는 것은 본인이 자리를 비웠다는 뜻이죠.”

    “기존에 알려진 아르비스 공작가의 전력은 마스터 둘에 대마법사 하나, 최악은 마스터 둘과 대마법사 셋인가?”

    “어쩌면 아직도 숨기는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크리스토프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 선에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황제폐하와 샤를로트 공작께 알려 드려야겠어.”

    *

    “브라스 백작령까지 마녀의 군대에 함락되면서, 남동부 웜벨트 지역은 성왕청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 칸델 공작령의 탈환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영지민들의 저항이 워낙 거센 데다가, 텔레포트로 나타난 정체불명의 마스터와 대마법사로 인해 지방군의 기사단이 전멸했답니다.”

    “수도원의 몽크들이 마녀를 지지한다며, 마녀의 군대에 합류했습니다. 그 수가 대략 삼백에 달한다 합니다.”

    “남부의 성직자들이 국민들에게 반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영주들이 영지민 관리가 쉽지 않다며 조속한 해결을 바란다는···.”

    정보부 관료들은 실시간으로 날아오는 보고를 올리면서 성왕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성왕이 세게 말아쥔 주먹은 부들부들 떨렸으며, 코에선 연신 거친 숨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성왕은 끝내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는데,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눈빛으로 군무 대신을 향해 물었다.

    “토벌군은?”

    “결성이 완료됐습니다. 현재 보급물자를···.”

    “최소한의 보급만 챙겨서 토벌군 먼저 출발시켜, 보급물자는 조달이 완료되는 대로 보내면 되지 않나.”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부대를 출발시키겠습니다.”

    성왕은 대답 없이 답답하단 표정으로 혀를 찼다.

    군무 대신은 부하에게 명령을 전달했고, 그 부하는 재빨리 왕실 대전을 빠져나갔다.

    “토벌군의 전력은?”

    “소드마스터 둘, 마스터 팔라딘 둘, 주교 넷과 기사 4천, 성기사 1천, 성직자 1천, 기병 1만, 중장 보병 1만, 일반 보병 5만, 궁수 1만, 성력총(마력총)수 1만입니다.”

    소드마스터와 마스터 팔라딘의 수만 무려 4명.

    마법사를 대신할 주교가 포함된 성직자단은 강력한 방어막을 가졌으며, 병사들의 공격력과 생존력을 높이는 중요 전력이었다.

    거기에 자가 치유능력을 지닌 성기사단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들이니, 절대로 질 수가 없는 이타루스의 최대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록 마법사는 없지만, 기사단 전력은 대왕국 중 가장 강력하다 자부하는 국가가 바로 이타루스 성왕국이었다.

    “대주교는?”

    “대주교께도 참여를 종용할까요?”

    마스터 팔라딘은 어중간한 마스터로는 상대하기 힘든 강력한 존재지만, 성왕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겼다.

    “당연한 것 아닌가? 굳이 여지를 줄 필요가 어디 있나, 전력으로 쓸어버려야지.”

    성녀를 돕는 존재는 분명 아르비스 공작일터.

    정보팀에선 아르비스 공작이 마드세인에 있다고 보고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성녀를 돕는 대마법사가 아르비스 공작이라면 그의 수하인 두 명의 마스터가 함께할 수도 있으니, 초인의 수에서 밀릴 수도 있지 않은가.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성녀 쪽의 정보차단이 워낙 완벽해서, 정확한 전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성왕은 나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폐하의 분부를 전하겠습니다.”

    성왕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한 가지 제안을 떠올렸다.

    ‘원하신다면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건 회의 전에 칼바도스 제국에서 전해온 이야기였다.

    “웃기는군.”

    하지만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꿍꿍이가 있을 것이 분명한 칼바도스의 손을 덥석 잡을 만큼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단순한 초인의 수는 자신들이 밀릴지 몰라도, 초인의 질과 그들을 백업해줄 병력의 차이가 압도적이다.

    적의 마스터와 대마법사만 견제를 하면 충분히 성녀의 군대를 쓸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왕이었다.

    ***

    아무래도 내 생각이 틀린 것 같다.

    나는 굳이 다시 빼앗길 영지를 차지하며 성왕에게 시간을 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차지한 영지를 다시 빼앗기는 일은 없었다.

    성녀의 지시에 따라 영지민들이 악착같이 성을 사수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내 도움이 가미되긴 했지만, 신앙심 하나로 군대를 상대하는 영지민들을 보니 광신도가 괜히 무서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이 죽으면 그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메우고, 또 한 명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그 빈자리를 메운다.

    왜 그토록 다른 나라에서 이타루스와의 전쟁을 꺼리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성녀의 존재가 이 나라 백성에게 얼마나 사랑받는지 또한 알게 되었다.

    “성녀님!”

    “아이리 성녀님!”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

    이번에도 영지민들에 의해 성문이 절로 열리고 안팎으로 공격을 당한 영지군은 무력하게 항복했다.

    이런 식으로 차지한 영지의 수가 벌써 10개를 넘겼다.

    군대를 두 개로 나누는 바람에 성녀는 텔레포트로 여기저기 오가며 바쁘게 움직였지만, 신성력의 힘인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나도 영지민들에게 나름 사랑받는 영주이긴 하나, 성녀를 향한 국민들의 맹목적인 충성에는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요즘엔 내가 나설 일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음?”

    영지민들에게 둘러싸인 성녀를 지켜보던 나는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마력 파동에 고개를 돌렸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

    레이포드와 스텔라를 이끌고 잠시 성녀의 곁을 벗어났다.

    그리고 으슥한 골목에 들어가니, 값비싼 투명 로브를 걸친 사내가 스르르 모습을 드러내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공작전하를 뵙습니다.”

    “수고하십니다.”

    그는 마드세인의 정보원으로 이타루스 방면 담당자 중 한 명이었다.

    “성녀를 향한 토벌군이 조직되어 현재 남하하고 있습니다. 상세 전력은 여깄습니다.”

    그가 건넨 종이를 받아 바로 내용을 살폈다.

    “오, 비로소 저희가 힘을 쓸만한 상황이 되었군요.”

    옆에서 내용을 훔쳐본 스텔라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초인 넷에 병력만 10만에 가깝고, 성기사를 포함한 기사의 수가 5천? 거기에 성직자도 1천이니, 위험한 거 아닌가요?”

    “이렇게 많은 성기사와 성직자를 상대해본 적이 없어서 뭐라 평가하기가 힘들지만, 해볼 만할 것 같은데요?”

    “그럴까요?”

    상대편에 쪽수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는 초인이 성녀를 포함해 무려 9명이다.

    거기에 성녀의 버프를 받은 군대도 있으니,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전력으로 능력을 발휘해본 적이 없으니, 좋은 기회 같습니다.”

    성왕국의 내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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