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45화 (45/186)
  • -------------- 45/186 --------------

    ***

    17. 성왕국의 내전

    “지금 무어라 했는가?”

    “카, 칸델 공작령이 성녀의 군대임을 자칭하는 집단의 공격에 함락되었다 합니다.”

    “······.”

    칼델 공작가라 하면 4대 공신 가문으로 많은 대주교를 배출한 전통 있는 가문이다.

    또한 성왕가와 깊은 친교를 맺고 있는 가문이기도 했는데, 현 성왕의 부인인 왕후가 바로 그 칸델 공작가의 여식이기도 했다.

    칸델 공작가가 함락되었다니, 이는 성왕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한 보고였다.

    많은 대신들과 교단의 주요 성직자들이 자리 잡은 공식 석상이건만 성왕은 표정관리가 안 되는 것을 느끼며 되물었다.

    “어쩌다가 칸델 공작가가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함락되었는지를 알려줘야 할 것 아닌가.”

    칸델 공작가는 이타루스 성왕국의 4대 공작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병을 보유한 대영주.

    그런 가문이 왕성에 아무런 기별 없이 함락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벌한 성왕의 눈빛에 보고를 올린 정보부 차장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크리드 후작과 하라드 후작을 포함한 정예들이 영주 성에 침입하여 칸델 공작 일가를 붙잡았다 합니다. 그로 인해 반란군은 공작성에 무혈입성을 했다고···.”

    쾅!

    “빌어먹을!”

    결국 분을 참다못한 성왕은 일갈을 내질렀고, 귀족과 교단의 주교들은 어깨를 움찔 떨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마녀는 아직 그대로 칸델 공작가에 있는가?”

    “아, 아닙니다. 최소한의 방어 병력만 남겨두고 북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내무대신! 지금 당장 인근 영주들을 왕성으로 불러들이도록!”

    “네!”

    “그리고 마녀의 반란 소식을 왕국 전체에 알리거라!”

    성왕의 지시에 내무대신이 고개를 숙이곤 얼른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성왕국의 왕성은 여신의 축복을 받아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부정으로부터 보호하고, 8클래스 이하 마법공격에 파괴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성기사와 성왕 기사단이 빈틈없이 방어하니 칸델 공작가처럼 어이없이 당하는 일은 없다.

    비록 지금은 여신이 자신들의 부름에 답을 주고 있지 않지만, 왕성을 보호하는 성스러운 힘은 아직도 남아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다.

    성왕은 잔뜩 겁먹은 정보부 차장을 내려 보며 물었다.

    “적의 규모는?”

    “2천 정도가 칸델 공작령에 남아 있으며, 지금 이동 중인 병력은 약 2만 2천 정도입니다. 병력은 크리드 후작가와 하라드 후작가의 사병이 주축이며, 남부지역의 주교와 성직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녀, 아니 마녀 주변에 마법사와 정체불명의 기사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혹시 아르비스 공작의 부하들이냐?”

    “그건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아르비스 공작과 두 마스터는 영지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냉랭한 성왕의 물음에 정보부 차장은 연신 땀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분명 어제까지 아르비스 공작가에 있던 마녀가 어찌 칸델 공작가를 친 것이지?”

    “아무래도 아르비스 공작이 텔레포트로 성녀 일행을 본국으로 이동시킨 것 아닌가 싶습니다.”

    “쯧.”

    이타루스 성왕국은 마법사에게 굉장히 배타적이다.

    그 이유는 가이아가 분노하여 마도제국을 없앤 데서 비롯되었는데, 인간이 사용하는 마법은 마도제국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이타루스 성왕국은 아예 마법의 존재를 죄악처럼 여겼다.

    때문에 이타루스에서는 마법사 자체를 보기가 힘들었고, 상대적으로 마법이 가져오는 변칙성에 대해 이해력이 부족했다.

    “마법사의 도움까지 받다니, 타락할 대로 타락했군.”

    마법사까지 달고 있다고 하니, 증거는 없어도 아르비스 공작에게 어떠한 도움을 받아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당장 마녀군의 정벌대를 결성한다! 또한 남부 군사령부에 연락을 넣어 칸델 공작령을 재탈환하라 지시를 내리도록!”

    “예, 폐하!”

    그리고 광기로 번들거리는 듯한 눈빛의 성왕은 조용히 이 사태에 입을 닫고 있는 대주교를 바라보았다.

    “대주교께선 이 사태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오?”

    성직자는 성녀에게 우호적인 것이 보통이지만, 수도에선 성왕을 지지하는 성직자의 수가 절대다수였다.

    그건 대주교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성왕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인물이건만, 그는 꼼짝도 못 하고 목을 움츠렸다.

    “저는 언제나 성왕 폐하를 지지할 뿐입니다.”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성왕은 대주교를 향해 명령하듯 부탁했다.

    “그럼 모든 성당에 연락을 넣어 마녀를 돕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주시겠소? 성직자들이 마녀의 세 치 혀에 놀아나는 게 불편하구려.”

    “알겠습니다. 그리하죠.”

    성왕은 성녀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

    마드세인 왕국의 정례회의가 진행되는 회의장.

    공작과 국왕을 제외한 나머지 귀족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으로 아인트 공작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아르비스 공작님께서, 정례회의에 참석하시다니,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까?”

    그에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아르비스 공작은 옆에 있는 아인트 공작이 옆구리를 찌르자 괜히 헛기침했다.

    “아아, 오늘 내가 발의한 내용의 세부 계획을 정하는 날이지 않소. 그러니 직접 와야지.”

    아르비스 공작의 대답에 왕국 3대 후작 중 한 명인 가라드 후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작님의 말투가···. 드디어 하오체를 쓰시는군요.”

    “응?”

    아르비스 공작은 깜짝 놀라 옆자리를 바라보고 어째서인지 아인트 공작은 이마를 짚었다.

    “그, 그렇소.”

    “보기 좋습니다. 그전에 경어를 쓰셔서 어찌나 대하기 힘들던지. 마치 벽을 치고 대화하는 느낌이었죠.”

    미소 짓는 중년의 가라드 후작을 보며 아르비스 공작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인트 공작은 목소리를 낮춰 아르비스 공작에게 아주 작게 말했다.

    “내가 말투 조심하라 하지 않았소.”

    “죄, 죄송합니다. 잠시 주군의 말투를 잊어서···.”

    “그리고 지금 너무 굳어 있소. 그냥 전부 아랫것이라 생각하고 당당하게 행동하시오.”

    “그러겠습니다.”

    아르비스 공작, 아니 주군의 모습으로 변장한 헤르만은 졸지에 대역배우가 된 자신의 상황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에 칼바도스와 이타루스의 끄나풀이 있을지 모르니, 대역 좀 해주세요. 생긴 것만 이렇지 행동에 특징이 없어서 어렵지 않을 거예요.’

    꼭 벽을 넘어 돌아오겠다며 스텔라와 아드리안을 데리고 이타루스로 떠난 주군의 존재가 그리도 야속할 수 없었다.

    자신도 요즘 몸이 근질근질한데.

    “시작되었소.”

    아인트 공작의 신호와 함께 정례회의가 시작되었고, 가장 먼저 아르비스 공작이 발의한 내용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그럼 가장 먼저 아르비스 공작께서 발의한 내용에 대해 세부 계획을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대적으로 마법사와 기사를 육성하기 위해 전국 적성검사를 실시하며···.”

    *

    이타루스 성왕국 남동부의 네이드 백작령.

    요란하게 주변을 밝히는 발광체로 인해 백작령의 성벽은 주황빛으로 물들고 그 위로 활과 성력총이란 무기를 든 병사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다.

    “조사에 의하면 영주는 왕성으로 도망친 상태고, 영지를 지키고 있는 병력은 5천 정도랍니다.”

    항상 입는 백색의 로브 대신, 붉은 실크에 금색실로 마법진을 수 놓은 화려한 로브를 걸친 나는 평소보다 높아진 눈높이로 성녀를 향해 물었다.

    “성벽을 날려 드릴까요? 아니면 지난번처럼 내부 침투를?”

    내 눈빛에 그녀는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같은 방법은 안 통할 겁니다. 아마 공간이동을 방해하는 신성 마법이 깔려있겠죠.”

    신성마법에 그런 것도 있던가?

    나는 확인차 백작성에 텔레포트를 시도했다.

    “정말이군요.”

    하지만 텔레포트 발현과정에 위협을 느낀 나는 바로 마법을 캔슬했다.

    “차라리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나을 것 같군요.”

    호쾌한 성녀의 반응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섹시미가 배제된 스텔라와 노인의 모습을 한 아드리안과 함께 마법이 최대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리로 블링크했다.

    우선 코어의 마력을 이용해 마법진 없이 시각 교란 마법을 사용하고는 두 사람과 함께 플레임 블레스터를 캐스팅했다.

    그에 마법진 특유의 푸른 빛 대신, 신성마법 같은 순백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천벌을!”

    이어서 주문과 다른 외침과 함께 마법진이 사라지고 굳게 닫힌 성문을 향해 거대한 화염 기둥 세 개가 용틀임하며 날아들었다.

    콰콰쾅!

    7클래스 마법 3연발에 여지없이 터져 나가는 성문과 성벽.

    덕분에 적군의 지휘관은 망연자실하고 병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진군하라!”

    크리드 후작의 외침이 들판에 울려 퍼졌다.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성녀의 군대.

    더불어 눈에 잘 띄는 바위 위에 올라 성전의 노래를 부르는 성녀에게서 순백의 광휘가 파도처럼 밀려와 아군을 감쌌다.

    그로 인해 병사들은 모두 은은한 빛에 둘러싸이고, 더욱 사기 충만한 모습으로 검을 치켜들었다.

    “정말 장관이군.”

    “주군.”

    스텔라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녀 근처로 블링크를 사용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니, 나의 기사들이 반겨 주었다.

    이번 원정엔 블레이크와 레이포드, 아델 세 명의 마스터와 나와 스텔라, 아드리안까지 세 명의 대 마법사가 함께하고 있다.

    모두들 나처럼 위장마법을 활용해 모습을 감추고 있는데, 나는 175정도의 키를 지닌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세 명의 기사도 20대 초반 정도의 외모로 위장한 상태였다.

    스텔라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주군께서 성인이 되신다면 그런 모습일까요? 너무 멋지세요.”

    나는 갑자기 달라붙는 스텔라의 행동에 움찔거렸다.

    청순하고 앳된 모습으로 위장을 해서 그렇지, 스텔라는 마녀라 불리며 꽤나 문란한 생활을 즐기는 여인이다.

    솔직히 나와는 상성이 안 맞는지라 스텔라가 이런 눈빛을 보내도 곤란할 따름이다.

    “감사합니다. 수고를 덜었어요.”

    때마침 성녀가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스텔라에게서 도망쳤다.

    “아닙니다. 별로 힘들지도 않은데요.”

    뒤에서 할망구 어쩌구 하면서 웃음을 흘리는 기사들을 향해 스텔라가 욕을 했으나, 나는 모른 척 성녀와 함께 전투가 한창인 네이드 백작성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성을 차지하는 게 효과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적의 주요 전력을 갉아먹는 것은 중요하지만, 차라리 적에게 시간을 주느니 바로 중심을 치는 게 좋지 않을까.

    내 물음에 성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성왕과 성녀의 알력 싸움이 아닌, 백성의 계몽을 위한 전투이기도 하니까요. 백성들이 저의 뜻을 이해해 준다면 함께 무기를 들어줄 것입니다.”

    칸델 공작령에서도 그녀를 위해 싸우겠다며 나선 영지민들이 꽤나 많았지만, 일반 백성이 무기를 든다고 얼마나 큰 전력이 되겠는가.

    그들은 지금 남겨진 병사들에게 훈련을 받고 있지만, 나는 이런 방식에 대해 살짝 부정적이었다.

    불확실한 방식에 사활을 거는 느낌이랄까?

    차라리 ‘나’라는 고급 전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편이 더 계산적인 것 같은데.

    성녀가 나름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성직자인 모양이다.

    어차피 이 전쟁의 주체는 성녀인 만큼 그녀의 행동을 지지하고 따라 줄 생각이지만, 자꾸 전쟁 과정에 괜한 포장이 들어가는 것 같아 이런 의문이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째 불만족스러우신 것 같습니다.”

    성녀의 물음에 나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뭔가, 전투다운 느낌이 안 들어서···.”

    “좋은 겁니다. 공작님께서 전력을 다하는 사태라면 저희에겐 최악의 상황일 테니까요.”

    맞는 말이다.

    그러나 8클래스의 벽을 깰 수 있을 만한 자극을 원하는 나로선 아쉬웠다.

    “하지만 그때가 분명 올 겁니다. 성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그렇겠죠.”

    그러니까 불확실한 여건을 만들기보다 빠르게 치는 편이 좋다는 건데.

    나는 불만을 떨치고 성벽을 바라보았다.

    대마법 3연타에 이어 성녀의 버프를 받은 정예 병력이 밀고 들어오니, 백작성의 병사들은 속절없이 밀려 함락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더구나 저들은 이미 영주가 왕성으로 도망친 상태기에 사기도 최악.

    이건 이미 끝난 싸움이라 볼 수 있었다.

    “크리드 후작과 하라드 후작이 살판 낫군요.”

    매섭게 오러블레이드를 휘두르는 이타루스의 두 마스터.

    마드세인까지 성녀를 보필한 크리드 후작은 말할 것도 없고, 성왕국에 남아 세력을 하나로 긁어모은 하라드 후작이란 인물도 그녀의 충실한 기사였다.

    만약 하라드 후작이 없었다면, 세력 규합과 군 결성부터 시작해야 하니,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을 것이다.

    마치 시합이라도 하듯 적을 썰던 하라드 후작과 크리드 후작에 의해 얼마 못 가 적의 기사단이 궤멸하게 되고, 백작군은 내성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끝났군요.”

    “가죠.”

    나는 성녀와 함께 호위병력을 이끌고 네이드 백작령에 입성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너무도 쉽게 남동부의 두 번째 대영지를 차지했다.

    전생의 처절했던 칼바도스와의 전쟁이 너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일까?

    막상 뚜껑을 여니 대왕국이란 칭호를 가진 나라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쟁을 우습게 여겨선 안 되지만, 과연 성왕이 이 전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왕국의 내전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