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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44화 (4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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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당황한 아인트 공작의 물음에 나는 안 될 것 있냐는 투로 답했다.

    “목표는 높게 잡아야죠.”

    “높게 잡는 수준이 아니라 자네의 뜻이 성공한다면, 미드랜드 북부의 세력 판도가 바뀌네만?”

    “그거 좋군요.”

    내가 만족스런 표정을 보이자 아인트 공작은 쓰게 웃었다.

    “대체 자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바라는 것이라.

    뜬금없지만 가볍게 답하기 힘든 물음이었다.

    미래의 기억을 이용해 이득을 얻고 그것으로 내 가족과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사는 것.

    그것이 원래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큰 권력을 쥔 지금, 예전과 생각이 같냐고 물어 오면 그렇다고 바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 것 같아요. 하나를 가지니 둘을 갖고 싶고, 둘을 가지니 셋을 갖고 싶네요. 그렇다고 폐하를 몰아내고 마드세인의 왕이 되고 싶진 않으니. 차라리 칼바도스에 아르비스 제국을 세워볼까요?”

    반은 농담, 반은 진담.

    내 대답을 들은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넨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지금 스스로가 무엇을 바라는지 잘 모르는데 그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오니, 그것들을 차근차근해나갈 뿐이다.

    “성녀를 돕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지?”

    “네.”

    “솔직히 자네가 돕는다면 성녀를 중심으로 한 이타루스의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

    “다행이군요.”

    아인트 공작의 긍정적인 반응에 나는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하지만 이건 마드세인이 돕는 것이 아닌, 자네 개인이 돕는 걸로 하게나.”

    어차피 나라에 손을 벌릴 이유는 없지만, 그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궁금했다.

    “어차피 힘을 쓰는 것은 자네일 텐데, 굳이 전공을 나라와 나눌 필요가 있겠는가? 마드세인 왕국이 성녀를 도운 것보단, 아르비스 공작이 성녀를 돕는 것이 추후 이타루스를 컨트롤하기 편할 것이네.”

    “그렇군요.”

    “그리고 어중간하게 마드세인의 영향력을 키우기보다 자네 개인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에 집중하게나.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어차피 내 영향력은 나라에 고스란히 반영되겠지만, 나라의 영향력은 온전히 내 것이라 볼 수 없다.

    아무래도 아인트의 조언은 내가 왕권에 도달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감사합니다.”

    내 대답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답했다.

    “정말 나는 무서운 자와 손을 잡게 되었군.”

    “전 아군에겐 손익 따지지 않고 퍼주는 스타일입니다. 아인트 공작님은 현 귀족 중 가장 마음 맞는 아군이고요.”

    어느새 내겐 없어서 안 될 조언자가 되어버린 아인트 공작이었다.

    “그거 다행이군. 왠지 아르비스 제국을 세운다는 말이 농담처럼 안 느껴지네.”

    “반은 진담이니까요.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

    [자숙한다고는 했지만, 자네 너무 오랫동안 잠잠한 것 아닌가?]

    검은 그림자, 크리스토프 공작의 물음에 카르디아 공작은 고개를 깊히 숙였다.

    “죄송합니다. 잠깐 사이 아르비스 공작의 세력이 워낙 막강해져서···. 더구나 아인트 공작과 제노아드 공작도 일방적으로 그의 편을 들고 있죠. 4명의 공작 중 3명이 한목소리를 내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잘 유지되어온 마드세인의 세력도가 한 명으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 버렸군.]

    “요즘은 국왕 위에 아르비스 공작이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돌고 있습니다. 이젠 대업을 대비해 세력을 키워두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군요.”

    [그런가.]

    능숙하게 거짓말을 이어가는 카르디아 공작의 말에 크리스토프 공작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네 그거 아나? 이타루스의 성왕이 성녀를 제거하려 했단 사실을.]

    갑자기 성왕국의 이야기가 왜 나오지?

    카르디아 공작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한데 아르비스 공작이 끼어들어 성녀를 구했다는 정보가 있네.]

    “허, 그렇습니까?”

    그건 카르디아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르비스 공작의 노예가 되었지만, 그는 자신을 부려 먹기 좋은 말로 써먹을 뿐 일일이 사정을 설명하진 않았다.

    [이쪽에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겠지만, 자네 쪽에서도 알아봐 주지 않겠나? 뭔가 꺼림칙해.]

    “네,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 외에도 본국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들을 수집해 주게나. 그 정돈 할 수 있겠지?]

    카르디아 공작이 알겠다고 하자 그림자는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만하세.]

    “쉬십시오.”

    그리고 그림자가 완전히 연기가 되어 사라지자 그는 지하 연구실을 나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주인님께 충성을!]

    [쓸데없는 잡념은 버리자!]

    [정신 차려!]

    그의 방엔 알 수 없는 문구의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는데, 그것을 보니 애써 참았던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빌어먹을 어쩌다가 내 신세가 이리되었는지.”

    치욕에 물든 그의 표정은 뻘겋게 달아오르고 자신이 아르비스 공작의 노예가 된 날을 떠올리면 절로 살의가 들끓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끄악!”

    무언가가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이 밀려오고 그는 급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주인님께 충성을! 사랑합니다! 만세! 만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쌩쇼를 하니, 머릿속에 잡념이 사라지며 거짓말처럼 서서히 심장을 조이는 통증이 없어졌다.

    바닥에 얼굴을 박고 거친 숨을 몰아쉰 그는 절로 튀어나오는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저주도 어쩜 이리 지독한 저주가 있겠는가.

    이내 그는 허무함이 깃든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잠자코 살걸.”

    하지만 이미 후회해봐야 늦었다.

    이젠 마드세인을 배신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으니.

    “그나저나 성녀라니,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거야?”

    자신이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장기말이라면, 아르비스 공작은 그 장기말을 움직이고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었다.

    그런 존재를 만만하게 봤다니, 새삼 자신의 안목이 한스러웠다.

    ***

    햇빛이 잘 드는 응접실 테라스에 앉아 함께 차를 마시던 성녀가 내게 말했다.

    “도와주신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공작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이곳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녀에겐 이타루스의 국민들을 구하고 싶다는 목적이 있다.

    그런 인물을 붙잡고 있어 봐야 반감만 높아질 테니, 나는 큰 고민 없이 허락해 주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내가 너무 쉽게 허락을 해줘서일까,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왔다.

    엄연히 따지면 성녀는 밀입국에 소란을 피운 죄로 구류되어있는 상태지만 체포자가 나인 만큼, 방면의 권한도 내게 있었다.

    “이타루스의 국민들을 구하고 싶다고 하셨죠? 그에 대한 계획이 있습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내가 자신을 위해 내뱉은 말이라 생각했는지,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끄덕였다.

    “저를 지지해 주던 귀족과 성직자들이 중앙에서 축출되긴 하였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세력과 군대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과연 맨주먹으로 성기사와 드잡이질을 벌인 성녀다웠다.

    괜히 이상적인 말만 내뱉으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위선자들과는 다르다.

    “승률은 얼마나 됩니까?”

    “병사의 수는 저희가 월등히 부족합니다. 하지만 성녀에겐 수적인 불리함을 어느 정도 매울 수 있는 신성 마법이 존재하죠. 그 중 대표적인 게 ‘부활’이고, 나머지가 ‘은혜의 노래’와 ‘성전의 노래’입니다.”

    “그게 뭐죠?”

    “은혜의 노래는 일정 범위에 있는 아군의 이상을 치료하거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주문이고, 성전의 노래는 제게 축복을 받은 병사들의 전투 능력을 높여주는 주문이죠.”

    쉽게 말해 광역힐과 아군의 공격력 증가 마법같은 건가?

    어느 정도의 효율이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성녀가 이리 말하는 것을 보면 효과가 상당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원하던 도움을 모두 얻는다고 해도 전투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해야죠. 어머니를 믿는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죽겠군요.”

    “이미 각오한 바입니다. 모든 원망과 분노는 제가 받아들일 겁니다. 이건 성전입니다.”

    성녀의 의지는 잘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본론을 꺼냈다.

    “저도 성녀님을 돕고 싶군요. 한발 걸칠 수 있게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네?”

    성녀는 전혀 예상을 못 한 듯 놀란 토끼 같은 표정을 지었으나, 그녀의 뒤에 서 있던 크리드 후작은 내 도움이 찜찜한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어째서 타국의 내전에 참여하시려는 겁니까?”

    “바라는 게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사사건건 여러분이 하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진 않을 겁니다.”

    갑작스런 제안에 어찌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모양이다.

    나는 똑바로 성녀의 연녹색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신 제 손을 잡으신다면 여러분께선 원하시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확신에 찬 나의 제안에 성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공작님께서 비밀이 많은 분이란 것은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세간에 밝혀진 것 외에 더욱 큰 힘을 갖고 있을 수도 있겠죠. 그렇기에 손을 잡는다는 게 꺼려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크리드 후작의 경계 어린 눈초리에 웃음을 흘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많은 분들이 저를 무슨 음모 세력 우두머리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하지만 저는 마드세인의 귀족일 뿐입니다. 마드세인의 귀족으로서 이 나라의 안전을 바랄 뿐이죠.”

    “그럼 원하는 것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이타루스에서 칼바도스의 야욕을 막는데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누가 봐도 내 근간이 되는 땅은 마드세인이다.

    이렇게나 돈을 쏟아붓고 칼바도스와 접한 국경요새를 강화하는 것을 보면 마드세인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칼바도스가 금방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인 만큼, 외부에서 바라보는 마드세인은 꽤나 위태롭게 느껴질 것이다.

    “이건 마드세인 왕국의 의지라 봐도 되겠습니까?”

    “아뇨, 제 개인의 의지입니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을 지는 것은 저뿐이죠.”

    내 말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 모르겠으나, 성녀의 눈빛 속에 깊은 호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마드세인의 정확한 상황을 모르다 보니, 내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다만 크리드 후작은 여전히 의심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꿍꿍이가 있을지언정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굴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칼바도스에서 마드세인만 노리는 게 아니라, 이타루스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네?”

    “저희 정보원이 꽤나 우수하거든요. 혹시 이타루스가 칼바도스의 위협에서 무조건 안전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단순히 국민들이 완강해서? 국민들은 성벽이 아닙니다. 결국 칼바도스에서 밀고 들어오면 내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대참사로 이어지겠죠.”

    “······.”

    “그러니, 칼바도스의 침공이 나완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하셔선 안 됩니다. 마드세인 다음은 여러분의 차례니까요.”

    성녀는 말을 잃고 크리드 후작은 그런 성녀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귓속말을 전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작은지 신체가 강화된 내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성녀는 그걸 용케 알아듣고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마음을 정했는지 나에게 물었다.

    “공작님께선 저희에게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들으면 놀라실 정도의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정확한 수준은 비밀 유지를 위한 계약을 한 뒤에 알려 드리죠. 만약 이쪽에서 제시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비밀만 지키고 도움은 없던 일로 하면 됩니다.”

    어차피 그들에게 선택 사항은 없다.

    성녀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승리할 확률보다 패할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할 테니.

    결국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다시 한번 악수를 건넸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마침 8클래스에 오르기 위한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모습을 감춰 직접 전쟁에 뛰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성왕국의 내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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