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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43화 (4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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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아이리 성녀는 누워있는 공주를 조용히 내려 보았다.

    그러다가 문뜩 뭔가가 떠올랐는지, 성녀는 나를 향해 물었다.

    “연인인가요?”

    공주와의 관계를 묻는 성녀.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네? 하지만···.”

    성녀는 의문을 표했지만, 공주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 자연히 우리의 시선은 소파로 향했다.

    “헙!”

    공주가 번쩍 눈을 떴다.

    그 모습은 마치 알람에 놀라 잠에서 깬 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일어나셨습니까.”

    “여, 여긴?”

    이어서 공주가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나는 친절하게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제 집무실입니다.”

    공주의 눈동자가 나에게 향하고 한참을 깜빡이더니, 이내 비명을 지르듯 이상한 목소리를 냈다.

    “아르비스 후작님?”

    지금은 공작이지만··· 뭐, 됐다.

    그녀가 쓰러졌을 땐 후작이었으니.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네, 뭐···.”

    “다행이군요.”

    쌀쌀맞던 내가 부드럽게 대해서일까?

    그녀는 그저 놀란 표정을 지을 뿐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혹시 깨어나기 전 상황을 기억하는지요.”

    공주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눈썹을 모으며, ‘나 기억을 더듬고 있소’라는 모습을 연출했다.

    “헉.”

    그리고 중독되었던 일을 기억해냈는지, 허둥지둥 자신의 입과 배를 쓰다듬었다.

    “저, 저는 분명.”

    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덕분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지만, 상황이 진정이 된 후 그녀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본의 아니게 불쾌한 경험을 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좋게 끝나서 다행이죠. 자칫 후작님께서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러면서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데, 손끝이 떨리는 것을 봐선 공포심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만 돌아가서 쉬시죠. 제가 왕성으로 모시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공주는 3개월 만에 집이라 할 수 있는 왕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16. 계획

    “뭐라!”

    이타루스 성왕국 왕성.

    성좌에 앉은 중년인이 손잡이를 쿵 내려찍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앉아있던 성좌 아래로 성기사단과 성왕기사단이 2열로 줄지어 있고, 그 사이에 두 남성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데려간 50명의 성왕기사단 정예를 모두 잃었을 뿐만 아니라, 마녀와 크리드 후작도 처리하지 못했다?”

    성녀를 마녀라 칭하는 성왕.

    그러나 누구도 그의 발언에 반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표정들.

    “면목 없습니다.”

    성왕은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와 고개를 숙인 사내들을 엄한 눈초리로 내려 보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다르닐 후작, 데이브 후작.”

    성왕의 호명에 두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마드세인에서 끼어드는 바람에 일이 실패했습니다.”

    “마드세인?”

    황당함이 가득 담긴 음성만큼이나 성왕의 기분 또한 그랬다.

    마드세인이 어찌 이유가 된단 말인가?

    물론 마드세인에 침범했으니, 지방군이나 주변 영주의 군대가 출동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어지간한 전력으로 마스터와 마스터 팔라딘, 기사 50명이 포함된 전력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혹여 마드세인의 아르비스 공작이란 자를 아시는지요?”

    “토르말린으로 두 제국의 심기를 어지럽힌 귀족이 아닌가? 현재 마드세인 경제 부흥의 중심에 있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아르비스 공작과 그의 기사들이 난입하면서 일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다르닐과 데이브의 일을 망친 소년이 스스로를 아르비스 공작이라 밝히지 않았으나, 바보가 아닌 이상 조금만 조사하면 알아챌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허···.”

    “마치 성녀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던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성왕은 대마법사가 끼어들었다고 해서 그 인원으로 일을 이 정도까지 말아 먹을 수 있냐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아르비스 공작의 호위기사 두 명이 모두 마스터였습니다. 한 명은 신뢰의 기사로 유명세를 떨치는 제논 백작으로 보이고, 다른 한 명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성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왕도 아닌, 일개 귀족이 두 명의 마스터를 부린다는 것인가? 더구나 정통 귀족도 아닌 신흥 귀족이?”

    “그렇습니다.”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상황.

    아르비스 공작의 존재에 성왕은 깊은 의문을 표해야 했다.

    “설마 거짓은 아니겠지.”

    “어찌 폐하를 우롱하겠습니까.”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실패하는 것도 당연하다.

    성왕은 성좌 밑에 대기하던 대신을 향해 말했다.

    “아르비스 공작에 대해 조사하도록. 성녀와의 관계도 말이지.”

    “알겠사옵니다.”

    지금 벌이고 있는 일만 봐선 아르비스 공작의 거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마드세인이다.

    그리고 그가 보유한 전력이라면 마드세인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충분한 수준.

    “대체 뭐하는 녀석이냐.”

    새로운 성녀를 등장시키기 위해선 지금의 성녀가 죽어 줘야 하는데, 이 상태라면 제거가 힘들어진다.

    또한 성녀가 외세를 끌어들이기라도 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질 것이다.

    마드세인 따위에게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아르비스 공작의 존재와 현 상황은 성왕의 심기를 건들기 충분했다.

    ***

    심장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7개의 서클.

    더불어 배 아래에선 묵직한 마력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제 한발만 더 내디디면 8클래스인데, 좀처럼 그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쉽지 않다.

    대체 뭐가 부족한 걸까?

    ‘머릿속을 비우고 계속 검을 휘둘렀습니다. 그것을 반복하니, 어느새 벽을 넘었더군요. 그동안의 고민을 허무하게 만드는 결과였습니다.’

    약 5개월 전부터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던 아델 경이 드디어 벽을 넘고 마스터가 되었다.

    그의 존재는 트레이닝 캡슐을 통한 훈련에도 벽을 넘지 못한 이들의 희망이었으며, 8클래스에 도전하고 있는 나를 더욱 분발하도록 만들었다.

    아델경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잡생각을 떨친 나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수련에 임했을까?

    “후우···.”

    오늘도 8클래스와 줄다리기를 벌이다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나는 긴 호흡과 함께 서클의 회전을 멈추었다.

    자리를 옮겨 소파에 누운 나는 머리나 식힐 겸 뱃속에 깃든 붉은 기운을 손끝으로 꺼냈다.

    우웅!

    작은 공명음이 울리고 손끝에 모인 마력이 길쭉한 화살의 형태가 되었다.

    마력 코어의 붉은 기운도 이젠 어느 정도 모양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능력이 마스터와의 싸움에서도 꽤나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조금 더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코어를 이용한 마력 방출의 가장 큰 장점은 캐스팅이 필요치 않다는 것.

    따로 연산과 마나수집 과정이 없으니, 의지만으로 공격성을 띈 에너지 탄을 즉시 날릴 수가 있다.

    그런 마력 방출의 위력은 최대 6클래스 수준.

    그것만 해도 엄청난 위력이지만, 공격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게 아쉬웠다.

    마력을 연료라 치면 유조차(탱크로리) 수준의 연료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활용할 엔진의 크기가 작아 출력이 제한 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엔진의 크기가 작은 이유는 내가 어려서라기보다 인간의 한계가 그러하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큰 위력을 내고 싶으면 직접 방출이 아닌, 서클을 활용한 7클래스 마법의 연료가 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마법은 ‘연산-마나수집-발현’의 단계에서 ‘연산-발현’으로 단축되니, 매우 빠르게 대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시 방출에 비하면 아쉬운 속도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무기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에 만족할 생각은 없다.

    이걸 잘만 연구하면 분명 엄청난 힘이 될 테니까.

    나는 붉은 마력을 꼬기도 하고 방패도 만들면서 여러 방법으로 활용해 보았다.

    “흠흠!”

    너무 열중한 걸까?

    언제 왔는지, 집무실 한구석에 설치된 텔레포트 게이트 위에서 헛기침을 하는 아인트 공작의 모습에 나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셨어요?”

    “뭐 하고 있던 건가? 특이한 걸 갖고 노는 것 같던데?”

    붉은 마력을 갖고 노는 모습이 그에게는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수련한 거예요. 방금 전 붉은 건 마력이고요.”

    “이런! 미안하네. 수련을 방해한 거 아닌가?”

    “아, 아닙니다. 제가 와달라고 한 건데요.”

    수련이란 이야기에 그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대단히 미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식으로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물었다.

    “공주는 어떤가요?”

    내 물음에 아인트 공작은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다지 왕실에서 환영받는 느낌은 아니네. 폐하께선 자네가 들고일어난 것에 공주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그럼 못해도 아르비스 공작의 곁을 지킬 것이지, 왜 왔나!’라는 물음을 분위기로 표현하시더군.”

    나는 인상을 썼다.

    가뜩이나 공주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아버지까지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너무 가엽지 않은가.

    더구나 그 공주는 왕의 명령으로 무리한 행동을 하다가 독을 먹은 건데.

    “폐하가 많이 변하신 것 같군요.”

    “그렇지.”

    아인트도 느끼는 바인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나 싶네. 피의 족쇄가 굴욕일지는 몰라도 자네가 확실히 왕권을 보장해주었고, 폐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너무 쉽게 모든 것 포기하셨어. 그냥 국왕으로서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네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원인 제공자인데.”

    “과정은 어쨌건 패망의 길이 정해진 나라에 희망이 생기지 않았는가. 더구나 발전은 덤이지. 자네는 이 마드세인에 없어선 안 되는 인물이야. 원한다면 왕권도···.”

    아인트 공작이 너무 나아가려 하자, 나는 그를 제지 시켰다.

    “너무 가셨어요. 그만 하세요.”

    “이런, 망발을···.”

    그는 면목 없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지만, 내뱉은 말이 틀렸다곤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인트 공작에게 부탁했다.

    “공작님께서 공주님을 챙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의외로 경제 쪽에도 관심이 많더라고요. 말이 통하실 거에요.”

    “알겠네, 그렇게 하지.”

    아무래도 앞으로 공주에게 신경을 더 써줘야겠다.

    “이타루스의 상황은 어떤가요?”

    “당연히 난리가 났지, 요즘 성왕국에서 넘어온 정보원이 나라에 쫙 깔렸네. 자네도 정보관리를 잘해야 할 거야. 그 정보원 중 5할이 아르비스 공작령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알겠습니다. 대신 정보원 처리는 공작님께 맡길게요.”

    “걱정 말게, 자네가 거금을 투자한 덕분에 마드세인의 정보부는 유례없는 규모를 갖게 되었으니.”

    정보가 곧 힘이다.

    나는 마드세인의 정보 능력을 높이기 위해 거금을 투자했고, 아인트 공작은 신이 나서 마드세인 정보부와 자신이 운영 중인 정보길드의 규모를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며 무섭게 키웠다.

    덕분에 지금 우리는 이타루스 성왕국 정보원들의 꼬리를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진지하게 아인트 공작을 바라보았다.

    “뭔가 무서운 말을 할 것 같군.”

    “의논할 것이 있습니다.”

    갑자기 분위기를 잡아서인지, 그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의논이란 말에 입을 닫고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많이 생각해봤는데, 저희 쪽에서 성녀를 돕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성녀를?”

    “네.”

    “당연히 순수하게 성녀를 돕고 싶다는 호의적인 생각은 아닐 테고···.”

    역시 귀족 중에 가장 나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

    내가 웃음을 흘리자 그는 대체 무슨 꿍꿍이냐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성녀를 이용해 이타루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음.”

    “저는 성녀를 은밀히 도울 능력이 되고, 성녀는 국민을 위해 나라를 바꾸고 싶어 하니, 이해는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칼바도스에 대항하기 위함인가?”

    카르디아 공작을 통해 칼바도스의 계획을 알게 된 만큼, 이타루스가 우리 마드세인을 따른다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렇다고 답을 했으나, 아인트 공작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자네가 전력으로 힘을 투사한다면, 마드세인을 지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나?”

    가능할 수도 있다.

    아니, 시간이 허락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아인트 공작과 나는 칼바도스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랐다.

    “한번 막아낸다고 칼바도스의 야욕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게 무슨 뜻이지?”

    “저는 칼바도스가 없어져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전생에 나와 내 가족을 죽였으며, 이번 생에도 우리에게 독을 선물한 새끼들.

    당연히 봐줄 생각은 쥐꼬리만큼도 없다.

    내가 굳이 카르디아를 살려 둔 이유가 응징을 위해서였으니.

    “성녀가 마드세인에 나타난 것은 여신께서 제게 마음껏 뜻을 펼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계획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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