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42화 (4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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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크리스 그라비티.”

    전투현장에 난입한 소년, 루이스의 혼잣말에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며 사람들의 움직임이 굳어졌다.

    성녀와 다르닐, 마스터 둘을 제외한 나머지 습격자들은 중력증가 마법 속에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투항하시겠습니까?”

    다시 한번 이어지는 루이스의 물음엔 짙은 냉기가 묻어 있었다.

    누구 하나 대답 없이 신음소리만 흘렸다.

    그로 인해 루이스의 눈썹이 팔(八)자가 되고, 다시 마법을 사용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성녀 측 기사가 크게 소리쳤다.

    “알겠소! 투항하지!”

    성녀도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투항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투항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은 루이스는 이어서 습격자들의 대장 격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인상을 쓸 뿐 투항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귀공은 뉘시오.”

    성기사 다르닐은 인크리스 그라비티의 영향이 없는지 아무렇지 않게 대검을 어깨에 짊어지며 물었다.

    그에 루이스는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는 귀공은 뉘시오?”

    자신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상대를 보며 다르닐은 말문이 막혔다.

    씨익 웃음을 흘린 루이스는 습격자들을 둘러 보았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당신들은 투항할 의지가 없다고 봐도 좋겠습니까?”

    다르닐의 눈빛이 착 가라앉는다.

    동시에 습격대 대장과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받고, 그들은 루이스의 경고를 무시하며 성녀와 성녀의 기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직! 퍽!

    그러나 예측했다는 듯 바로 날아드는 붉은 기운.

    습격대 대장은 그것을 무시하지 못하고 검을 휘둘러 스스로를 방어했으나, 성기사는 데미지 따윈 신경 쓰지 않겠단 태도로 성녀를 향해 대검을 내리찍었다.

    쾅!

    대검이 땅속 깊숙이 틀어박힌다.

    그런데 그의 대검은 성녀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방금까지 루이스 뒤에 서 있던 제논이 옆에 나타나 오러블레이드로 대검의 방향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네놈이 무시해도 될 분이 아니다.”

    쓸데없이 화려한 미스릴 갑옷이 장식은 아닌지, 경시할 수 없는 기세로 자신을 노려보는 제논의 모습에 다르닐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퉁! 퉁! 퉁! 퉁!

    그리고 전신을 꿰뚫는 붉은 기운.

    다르닐은 머리와 목, 배, 다리를 꿰뚫리며 비틀거렸다.

    그리고 제논이 그의 목을 베기 위해 오러블레이드를 날렸으나,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은 다르닐의 방어에 막히고 말았다.

    순식간에 꿰뚫린 구멍을 채우는 새살들.

    루이스는 못 볼 걸 봤다는 투로 말했다.

    “성퀴벌레가 진짜 있을 줄은···.”

    영문 모를 말에 대검을 치켜든 성기사는 대꾸 없이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쳐라!”

    그리고 그의 명령과 동시에 습격자들을 속박하고 있던 중력증가 마법이 파훼되고 그들은 파도처럼 루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리석긴.”

    그러나 루이스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크아아악!

    한정된 범위로 쏟아져 내리는 벼락 폭풍.

    그 기세가 어찌나 흉흉하고 공포스러운지,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시키기 충분했다.

    불 속에 달려든 불나방처럼 습격자들은 속절없이 쓰러지고, 도망치는 자들은 루이스의 곁을 지키고 있던 콘스탄틴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벼락의 폭풍이 사라지고 루이스에게 달려든 습격자는 모두 제거되었다.

    “저쪽을···.”

    루이스는 콘스탄틴에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습격대장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콘스탄틴은 습격 대장에게 달려 들었다.

    “투항하신 분들, 이쪽으로 오시지요.”

    소년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자신의 부하들을 마법으로 백업하며 어정쩡하게 물러난 성녀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두 사람은 소년의 말에 따라 걸음을 옮겼고, 다르닐은 멀어지는 성녀의 모습에 이를 갈며 제논에게 대검을 휘둘렀다.

    “호위들을 보내고 저희와 함께 있어도 괜찮겠습니까?”

    소년에게 다가온 성녀의 기사가 물었다.

    만약 자신이 공격하면 어쩌려고 이러느냐는 표정이지만, 소년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보이지 않는 흑기사가 있거든요. 자신 있으면 공격해 보시던가요.”

    눈빛을 보니 괜한 엄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등장에 처음 보는 마법, 마스터 둘을 호위로 부리는 모습까지 모든 것이 범상치 않은 존재에게 다짜고짜 검을 휘두를 만큼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또 그만큼 악독하지도 않고 말이다.

    쾅!

    눈을 어지럽히는 오러블레이드 세례도 문제지만 딜레이 없이 날아드는 마법이 더욱 거슬렸다.

    “대체 뭐냔 말이다! 네 녀석은!”

    방어에 급급하던 다르닐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쾅!

    결국 다르닐과 습격대장은 이를 갈며 뒤로 물러나야 했다.

    갑작스런 난입으로 일이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다르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돌아가세!”

    “젠장···.”

    이어서 그들의 몸이 하얀빛으로 물들고 루이스는 급히 디스펠을 사용했다.

    “어딜!”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아무런 영향 없이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어? 뭐야?”

    당황한 루이스의 의문에 성녀가 답했다.

    “대성당과 연결된 성물이에요. 마법으로 막을 수 없어요.”

    “신성 마법으로도 못 막고요?”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루이스의 물음에 성녀는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답했다.

    “제 신성력이 둘을 제지할 만큼 남지 않아서요.”

    “그러시구나.”

    제논과 콘스탄틴이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오고, 성녀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저흰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여러분 하기에 달렸죠.”

    “네?”

    “성녀님께서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손님으로 대접하겠습니다.”

    자신이 성녀임을 알고 있다면 그들이 지금 이곳에 등장한 것도 우연이 아니란 뜻이 된다.

    “원하는 게 뭔가요?”

    “부활 주문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뭔가 엄청난 것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막상 성녀 입장에선 어렵지 않은 부탁에 정말 그거면 되냐며 눈을 깜빡였다.

    “일단 지금은 그렇네요.”

    “지금은?”

    두리뭉실한 말에 성녀는 미간을 좁혔지만 어쩌겠는가, 자신들의 처지가 처지인걸.

    “하긴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죠.”

    성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싸늘하게 식은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았다.

    “수습해 드릴까요?”

    루이스의 호의에 성녀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

    “성왕이 저를 제거하기 위해 수를 쓸 거예요.”

    깨끗이 씻고 새 옷을 입어 말끔해진 성녀가 제논과 콘스탄틴의 감시 아래 그렇게 말했다.

    마스터 팔라딘과 소드마스터를 놓친 것은 예상치 못한 실수다.

    덕분에 괜히 나에 대한 경계심만 심어 주었으니.

    그나마 제논과 콘스탄틴 두 사람만 호위로 데려간 상황에서 놓쳐 다행이지, 줄줄이 마스터와 대마법사까지 달고 갔다면 고스란히 내 전력을 드러낸 꼴이 되었을 것이다.

    뭐, 애초에 이쪽의 전력이 압도적이었다면 그들을 놓칠 확률도 낮았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콘스탄틴의 존재는 카르디아에 의해 칼바도스에서 알고 있다고 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성왕이 수작을 벌여 봤자 전쟁은 못 할 것 아닙니까?”

    “그야···.”

    걱정 가득한 성녀를 향해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답했다.

    “그럼 문제 될 것 없습니다. 법적으로도 이쪽이 정당하고, 무력적으로도 여차하면 두 분이 손을 빌려주실 테니 괜찮겠죠. 당사자이기도 하니.”

    성녀는 쓰게 웃었다.

    “마드세인에 새로운 기인이 나타났다고 하더니, 사실이군요.”

    “그런 소문이 났습니까?”

    “그럴 수밖에요. 요즘 마드세인이 보여주는 성장의 가장 중심에 있는 분이시잖아요. 외모적인 특징도 기인이란 호칭에서 한몫하지만요.”

    “외모 이야기는 빼주시죠. 요즘 콤플렉스가 심해서.”

    내 너스레에 그녀는 고상하게 미소 지었다.

    이렇게 예쁘고 가녀린 처자가 그 막강한 성기사와 맨손으로 치고받았다니, 상상이 잘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뜩 의문이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세습되는 성왕과 달리 성녀는 가이아님의 선택을 받은 존재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성기사란 존재가 성녀님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성왕을 위해 싸우는 거죠?”

    어려운 질문이었던 걸까?

    그녀는 잠시 대답을 못 했다.

    “그건···.”

    그리고 약간의 뜸을 들인 뒤에서야 성녀가 입을 열었다.

    “위대한 어머니 가이아의 가르침이 더 이상 저희에게 전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영문 모를 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예요. 더 이상 어머니께선 저희의 기도에 응해 주시지 않습니다. 저도 말이 성녀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그녀는 씁쓸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예전엔 많은 성녀와 성자들이 어머니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지만, 신탁이 내려오지 않게 된 게 벌써 100년이 넘었습니다. 덕분에 성녀의 영향력은 서서히 줄어들어, 이 지경이 된 거죠.”

    “하지만 신성력은 여전히 존재하잖아요?”

    “세상의 법칙이 그렇게 되어 있답니다. 어머니께서 하나하나 힘을 내려주시는 게 아니에요. 성직자도 적성이란 게 있습니다. 적성이 있는 사람이 성직자가 되면 신성력을 얻고 아니면 그냥 신도로 남는 거죠.”

    뭐야 그 말은 신성마법도 결국 마법과 비슷하다는 뜻이 아닌가.

    마법과 다른 점은 기도가 수련이 된다는 거고?

    “그럼 성녀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성녀도 같습니다. 적성 있는 신도가 성직자가 될 때 탄생하죠.”

    뭔가 삭막하다.

    하늘에서 광명과 함께 천사가 내려오고 성녀에게 축복 내리는 것을 상상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 대충인 느낌이랄까?

    “덕분에 성녀를 그저 신성력이 높은 성직자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아까 보았던 마스터 팔라딘 다르닐 경도 성녀의 존재보단 대대로 이어져 온 성왕가의 피를 귀하게 여기는 존재죠.”

    그런 거군, 이해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앞으로 성녀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타루스의 백성들을 위해 싸울 겁니다. 저는 백성들이 앙상하게 말라가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생각이 없습니다.”

    탄생 방식이 극적이지 않고 여신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해도, 그녀는 마음가짐은 훌륭한 성녀였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그녀의 세력은 이미 분쇄된 상태라는 것.

    성녀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거의 없지 않을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나누기로 하고 피곤함에 찌든 그녀를 이젠 놔줘야겠다.

    “부활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신성력은 언제 회복됩니까?”

    “내일 아침이면 문제없을 거예요.”

    “그렇군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부활은 말이 부활이지 죽은 사람에겐 쓸 수 없습니다. 대신 죽지 않은 상태라면 어떠한 부상이나 신체 손실도 복구할 수 있죠.”

    “알고 있습니다.”

    공주는 얼음 속에서 특별히 관리를 받고 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루에 한 번 리커버리를 사용하는데, 마법이 적용된다는 뜻은 아직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죠?”

    “이런, 실례를···. ”

    나는 그녀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마드세인 왕국 루이스 로이드 아르비스 공작입니다.”

    “이타루스 성왕국의 성녀, 아이리 크리우스입니다.”

    이어서 자신을 레만 크리드 후작이라 밝힌 마스터와도 악수를 나눴다.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쉬시죠.”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성녀라면 왠지 연약하고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마주한 그녀는 목적의식이 굉장히 뚜렷한 혁명의 여인이었다.

    그녀와 접촉한 가장 큰 목적은 역시 공주를 되살리는 것이지만, 한편으론 성녀를 내 사람으로 영입할 순 없을까 기대하던 나는 고개를 내저어야 했다.

    아이리 성녀는 백성을 내버려 두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할 사람이 아니었으니.

    *

    다음날.

    “죄송하지만 성녀님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나가 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성녀의 호위기사인 크리드 후작이 움찔거렸으나, 성녀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내 기사들과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그녀와 단둘이 남게 된 나는 아공간에서 공주가 잠들어 있는 얼음을 꺼내 집무실 중앙에 내려놓았다.

    “이건?”

    아이리 성녀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함께 식사하다가 독에 당했습니다. 저는 독에 대한 방비가 되어 있던 터라 그녀만 당했죠. 급히 독성을 없애긴 했지만, 그땐 이미 리커버리로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장기가 형태를 잃은 후였습니다.”

    “그래서 얼린 건가요?”

    “네, 죽지 않고 상태를 유지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마법사들의 사고방식이 특이하다곤 들었지만, 설마 살아 있는 사람을 그대로 얼리다니...”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해봐야죠.”

    “얼음이 없어지면 바로 부활을 사용해주셔야 합니다.”

    아이리 성녀가 굳게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심호흡을 하곤 얼음에 손을 댔다.

    “시작하겠습니다. 준비됐나요?”

    “네.”

    나는 즉시 마법을 사용했다.

    “디스펠.”

    파앗!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얼음.

    알몸의 공주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동시에 그녀의 발아래 황금빛의 신성 마법진이 새겨졌다.

    “부활!”

    대기를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7클래스의 마법과는 격이 다른 기운이 집무실을 뒤덮었다.

    동시에 나는 공주를 안아 들었다.

    알몸의 여인을 안는 것은 실례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리 성녀를 바라보았다.

    “됐어요.”

    그녀가 미소를 짓자 나는 얼른 집무실 한 켠에 놔두었던 원피스를 공주에게 입혔다.

    물론 마법으로 말이다.

    우연히 맞잡은 공주의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새삼 그녀가 살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아마 공주가 그대로 죽었다면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을 것이다.

    “으음.”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입을 오물거리며 꿈틀거리는 공주.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그녀를 소파에 눕혔다.

    계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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