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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41화 (4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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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저리 같은 놈들! 성녀는 마스터나 다름없다고 하지 않았나! 괜한 공로에 객기 부리지 말고 다르닐 후작이 올 때까지 포위공격으로 체력을 빼앗도록!”

    대장의 외침에 당황했던 검은 로브의 사내들이 거리를 벌리며 대형을 짰다.

    그러나 성녀의 손가락이 한 곳을 가리키자, 다시 습격자 한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빛의 화살이다! 오러면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너무 한눈을 파는군.”

    쾅!

    “빌어먹을!”

    이렇게 손발이 안 맞을 수가 있나.

    습격대 대장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하들의 모습에 혀를 차며 압박해 들어오는 오러블레이드를 막아냈다.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었음에도 성녀가 무력을 사용하자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닌, 당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연출 되었다.

    그는 검 끝에 짜증을 한껏 담으며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증원에 분통을 터뜨렸다.

    투투투툭!

    “큭!”

    하지만 그때.

    하늘에서 순백의 화살들이 쏟아지고, 그중 하나가 정확하게 빈틈을 파고들어 성녀 측 마스터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치료!”

    비록 순백의 화살은 성녀의 치료에 증발하고 상처도 순식간에 아물었지만, 새로운 인물의 난입은 성녀 일행을 주춤 거리게 만들었다.

    “다르닐 후작.”

    “마스터 팔라딘 다르닐이 성녀를 뵙소이다.”

    하필 보통의 마스터보다 더욱 상대하기 힘든 존재가 나타났다.

    자연히 성녀의 표정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검은 로브의 성기사가 대검을 뽑아 들자, 그 위로 새하얀 오러블레이드가 만들어졌다.

    “다르닐 후작! 자네가 성녀를 맡게.”

    “그러지.”

    성녀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는 성기사 다르닐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르닐, 당신도 타락했군요.”

    “성왕국의 존재가 곧 정의. 타락한 것은 내가 아닌, 성녀 당신이오.”

    “신도들이 얼마나 고통받는지 몰라서 그러는 건가요!”

    분에 찬 성녀의 호통에도 다르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인고의 희생정신이 있기에 가이아님의 정신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것. 문제 될 것은 없소.”

    “어디서 궤변을···.”

    “성녀 당신이 지나치게 정적인 것이외다.”

    고운 미간을 와락 찌푸린 그녀는 이를 갈며 거치적거리는 치마의 옆부분을 찢었다.

    그리고 다르닐을 향해 손을 까딱이며 말했다.

    “내가 친히 그 고장 난 머리에 가이아님의 가르침을 새겨드리죠.”

    그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다르닐이 악당 같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성녀는 재밌는 사람이오.”

    *

    유적에서 내 전용 방이 되어버린 지휘관실.

    나는 공주가 잠들어 있는 얼음 덩어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속 봐서 그런가? 이상하게 정감 가네.”

    이미 마음속 짝으로 루시엘라를 정해 둔 상태지만, 공주의 잠들어 있는 모습을 계속 보니 묘하게 빠져드는 것 같다.

    비록 그녀가 했던 행동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지만, 왕가를 위한 행동이던 만큼 희생정신은 높게 평가할 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제법 취향이었다.

    그녀는 백인답지 않은 단아함이 있다.

    더구나 체구가 아담한 것에 비해 몸매도 좋고, 성격도 순종적일 것 같다.

    “아니지, 아니야.”

    하지만 고개를 내저으며 잡생각을 떨친 나는 얼음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이런 감상을 표하는 건 실례지. 죄송합니다, 공주님.”

    이어서 그녀에게 리커버리를 사용한 나는 영주성으로 돌아갔다.

    기분전환을 겸해 루시엘라나 보러 가야겠다.

    “지하로 가죠.”

    나는 집무실에 대기하고 있던 콘스탄틴을 이끌고 루시엘라의 방으로 향했다.

    루시엘라가 머무는 방은 이번에 마스터가 된 메어리를 비롯해 여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엘프의 아름다움은 같은 여자조차 홀릴 정도이니, 괜히 남자를 두었다가 말썽이 생기는 것은 싫었다.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언제나처럼 호쾌하게 문을 열어 재낀 나는 풀 내음이 가득한 방에 들어섰다.

    “루시엘라. 저 왔습니다.”

    “그래.”

    이제는 포기했는지, 루시엘라는 더 이상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녀의 방은 얼마 사이 더욱 울창해졌는데, 덕분에 생활 공간이 좁아져 방 2개를 더 터서 공간을 넓혔다.

    이젠 거의 지하의 작은 공원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한구석엔 물 생성 마법이 적용된 작은 냇물이 흐르고, 인조 태양 역할을 하는 라이트 마법과 공기정화, 습도유지, 온도유지 등이 더해져, 성에서 가장 안락한 환경을 자랑했다.

    꽃을 돌보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고, 나는 자연스레 그녀를 데리고 방을 빠져나왔다.

    “이제는 좀 생활할 만한가요?”

    “덕분에.”

    마음에도 없는 그녀의 대답에 웃음을 흘린 나는 지하를 벗어나 나와 내 가족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둔 정원으로 향했다.

    루시엘라가 지나갈 때마다 시종이건 병사건 하나같이 얼굴을 붉힌다.

    거의 매일 저택을 활보하는지라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체를 아는 사람은 가신 중에서도 나와 맹세로 엮인 소수뿐이었는데, 그녀의 손가락에 채워진 반지가 엘프의 특징을 감춰 주었다.

    때문에 루시엘라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천사님이라 부르곤 했다.

    정원 테이블에 마주 앉은 나는 아름다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에겐 루시엘라가 제 신부라고 말했어요.”

    “어린 녀석이 끈질기네.”

    시녀가 차와 쿠키를 내오고, 그녀는 묵묵히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다과를 즐겼다.

    엘프는 오로지 채식만 하는 줄 알았는데 동물을 죽여 잡아먹지는 않지만, 무정란이나 우유 등은 잘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계란 요리도 좋아하고, 우유가 들어간 빵이나 쿠키도 잘 먹었다.

    “이래 봬도 내용물은 먹을 만큼 먹었다니까요.”

    내 어필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마법으로 차를 시원하게 만들어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그나마 내가 잘 대해줘서인지 구속당한 상태임에도 예전처럼 적대적이진 않았지만, 철벽녀도 이런 철벽녀가 없을 만큼 내 제안에 넘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내게 넘어오시려나?”

    “젖살도 안 빠진 인간이 그래 봤자 아무 느낌 없어.”

    “그럼, 내가 나이를 먹을 때까지 계속 이대로 지내셔야겠군요.”

    “어차피 놔 주지도 않을 거면서.”

    시큰둥한 루시엘라의 모습에 나는 평소와 다른 반응을 살피고자 그녀가 관심 가질만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데미안은 자기 마을로 돌려보냈는데요?”

    데미안은 루시엘라와 함께 잡혀 온 하프엘프였다.

    처음 듣는 소식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나는?”

    “못 보내죠. 내게 위협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풀어줘요.”

    “데미안은 풀어 줬다며?”

    “아, 이걸 먼저 말씀드린다는 걸 잊었네. 데미안은 이제 제 사람이거든요.”

    “뭐?”

    “엘프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원래 살던 곳으로 보냈죠. 정보가 곧 힘이잖아요.”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데미안은 큰 정보를 못 얻을 가능성이 커. 조사를 받게 될 거야.”

    “그 정돈 저도 압니다. 당연히 대비까지 해서 보냈죠. 그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자살하라는 명령까지 더해서요.”

    “완전 악당이네.”

    “저도 요즘 들어 부쩍 그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저도 살자고 이러는 건데. 그리고 루시엘라도 칼바도스 입장에선 훌륭한 악당이란 걸 잊어선 안 되죠.”

    그 하프엘프는 얼마든지 소모품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잠깐의 침묵이 감돌고 조용히 차를 마시던 루시엘라가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차라리 조용한 산속에 들어가 사는 게 어때? 그럼 함께 가줄 수도 있는데.”

    예상치도 못한 그녀의 제안에 나는 깜짝 놀라 감탄사를 터뜨렸다.

    “정말요!?”

    “그래.”

    그녀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모양.

    너무도 기쁘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애석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었네요. 자신만을 챙기기엔 너무 많이 가져버렸거든요. 보살펴야 할 사람들도 많고.”

    “······.”

    내 반응에 그녀는 빤히 내 눈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손에 들어온 명예와 재산을 못 놓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죠.”

    굳이 포장하지 않고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너무 나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거 아냐?”

    “잊으시면 안 되는 게, 만약 사로잡은 엘프가 루시엘라가 아니었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죽였을 겁니다. 만에 하나 죽이지 않더라도 데미안처럼 동족을 배신하는 존재로 만들었겠죠.”

    그녀는 짜증 났는지 발을 뻗어 내 정강이를 걷어찼지만, 신체 약화 저주 때문에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영주님!”

    헐레벌떡 뛰어오며 우리들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집사.

    나는 미간을 좁혔고, 눈치 없는 집사는 한 차례 숨을 고르며 다급히 말했다.

    “방금 아인트 공작께 연락이 왔습니다. 영주님께서 원하시던 인물을 찾았다고요. 급하니 바로 연락을 달라면서···.”

    뺨을 긁적인 나는 루시엘라를 바라보며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이만 가봐야겠네요.”

    “별수 없지. 포로가 뭘 따지겠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도 치마를 털고 일어났다.

    그렇게 루시엘라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

    빡!

    “큭!”

    검은 로브의 성기사 다르닐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정말 끈질기군.”

    대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킨 그는 기이하게 꺾인 팔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뿌드득!

    그리고 부러진 팔에서 섬뜩한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부상이 치료되었다.

    마스터 팔라딘을 일반 마스터보다 상대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사기적인 자가치유 능력에 있었다.

    하지만 치유 능력을 지닌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우, 후우.”

    옆구리를 길게 베인 성녀가 상처 부위에서 손을 떼자, 깨끗하게 돋아난 새살이 반짝였다.

    성직자와 성전사의 모든 능력을 지닌 것이 바로 성녀.

    괜히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가 아니었다.

    “서, 성녀님.”

    “버나드 경···.”

    그러나 상황은 성녀에게 절망적이었다.

    등을 지켜주던 기사가 결국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심장이 관통당한 그는 이미 몇 차례나 성녀의 부활로 죽음을 딛고 일어났지만, 무한할 것 같던 그녀의 신성력이 바닥을 보이면서 더는 죽음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쓰러진 기사의 주변엔 검은 로브의 시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부디 무사하···.”

    충실한 기사가 쓰러지고 성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성기사 다르닐을 노려보았다.

    “치유 능력이 없다니, 평범한 기사는 불쌍하군. 만약 그가 성기사였다면 굉장히 애를 먹었을 텐데.”

    “불쌍할 것 없어요. 그는 충실한 어머니의 종으로 명예롭게 생을 마감했으니까요.”

    성녀의 반응에 다르닐은 대검을 치켜들며 말했다.

    “성왕 폐하를 등지고 국론을 분할 한 것은 성녀 그대요. 어머니를 들먹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어머니의 이름을 들먹이며 신자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있는 것이 성왕이잖아요! 설마 그것을 어머니 가이아께서 바란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격한 성녀의 반응에도 다르닐은 여전히 모르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것을 어찌 성녀가 판단하는 건지 모르겠군. 문제가 있다면 신벌이 떨어질 터. 내가 성녀에게 검을 휘두름에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 그대가 틀렸다는 증거요.”

    성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자신만의 정의가 있고, 그것에 반하는 것이 자신이었으니 설득이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힐끔 시선을 돌려, 위태롭게 오러블레이드를 휘두르는 동료를 바라보았다.

    동급의 마스터를 상대하는 것만 해도 버거울 텐데, 수시로 빈틈을 노리고 달려드는 습격자들로 인해 그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습격자들에겐 기사도 따윈 없었다.

    덕분에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치료해 주고 싶지만, 성녀는 지금 누군가를 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성녀의 특성에 대해 듣긴 했지만, 다루지 못할 힘이라 생각했소. 이 정도로 잘 싸울 줄은 꿈에도 몰랐군. 부활을 남발하지 않았다면 신성력이 먼저 떨어지는 것은 나였을 것이오.”

    다르닐의 대검에 우윳빛의 오러블레이드가 피어오르고, 성녀는 묵묵히 치마 사이로 새하얀 다리를 드러내며 격투 자세를 취했다.

    “흡!”

    그리고 성기사가 봐주는 것 없이 전력으로 성녀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큭!”

    그러나 그의 검은 성녀에게 닿기 전 섬전처럼 날아든 붉은빛의 광선에 부딪혔다.

    덕분에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한 다르닐이 재빨리 몸을 날려 자리를 피했다.

    “여러분께선 지금 마드세인 왕국에 무단침입하여 무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얌전히 투항한다면 살 것이고, 반항한다면 죽을 겁니다.”

    그때 하늘에서 세 명의 남성이 내려왔다.

    그중 선두에 선 자는 누가 봐도 소년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앳된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무려 미스릴 갑옷을 입은 두 명의 기사를 호위로 거느리고 있었다.

    성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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