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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40화 (4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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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구입을 해야지.”

    그의 대답에 방금까지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요즘 국왕이 부쩍 생각이 많아진 것 같은데, 당연히 그 원인은 나에게 있다.

    말없이 국왕을 바라보던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시연은 끝났습니다. 함께 차라도 하시죠.”

    “그러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함일까?

    아인트 공작이 넉살 좋게 다가와 물었다.

    “왠지 저게 다가 아닐 것 같은데?”

    작게 미소를 지은 나는 태연히 답했다.

    “이것저것 개발하고 있죠. 하지만 당장 내놓을 수 있을 만한 건 마력포대뿐입니다.”

    “그런가? 왠지 자네들이라면 엄청난 것을 내놓을 것 같아.”

    마력포대를 아공간에 수습한 뒤, 우리는 다 함께 왕성의 응접실로 향했다.

    그리고 자리를 잡아 다과를 나누는데, 아인트 공작이 국왕의 눈치를 살피곤 조심스레 말했다.

    “이타루스에서 연락이 왔네.”

    “뭐라던가요?”

    “아쉽지만, 우리의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군. 성녀는 누군가의 부름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돈을 줘도요?”

    “돈 이야기를 하니, 욕설을 아주 고상하게 바꾼 대답이 돌아오더군. 이타루스 성왕국은 돈에 목메는 국가가 아니라고 말이야.”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우리가 이타루스 성왕국에 요청한 것은 바로 성녀의 부활 주문이다.

    이는 유적 한구석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공주를 살리기 위함인데, 거절을 당하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공주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내가 8클래스에 오르는 것 외에 답을 얻지 못했고, 결국 타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현재 공주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미드랜드에서도 단 세 명뿐이다.

    이타루스 성왕국의 성녀와 위스워드 제국의 마르스 공작, 케일론 왕국의 폴시스 공작이다.

    그중 8클래스 마법사 두 명은 내가 넘지 못한 경지의 존재이기 때문인지 왠지 마드세인에 들여놓기가 꺼려졌다.

    그래서 왕실의 이름으로 성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인트 공작이 말 한대로.

    쉽지 않을 거란 건 예상했지만, 공주를 살린다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나는 슬쩍 국왕의 안색을 살폈지만, 딱히 표정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혹시 국왕은 공주에게 애착이 없는 걸까?

    “그런데 이상한 정보를 얻었네.”

    “정보라뇨?”

    정보라는 이야기에 국왕과 제노아드 공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아인트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인트 공작은 그런 두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 안 했다.

    아무래도 국왕과 제노아드 공작은 사전에 정보라는 것을 듣지 못한 모양.

    아인트 공작은 지금 국왕보다 나를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충신이나 현실적이기도 한 인물, 감정보단 충실히 이성에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이 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도 국왕을 무시할 생각이 없는지라, 아인트 공작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일러둬야겠다.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성녀가 우리 마드세인에 있을 수도 있다는 정보네.”

    “네? 거절을 그렇게 해놓고 성녀가 마드세인에 있다뇨?”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이타루스의 정치 상황에 대해 아는가?”

    “아뇨.”

    내가 고개를 내젓자 그는 설명을 추가했다.

    “이타루스 성왕국은 성왕파와 성녀파로 세력이 양분되어 있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성녀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성녀파의 인물들은 모두 중앙에서 축출되었지.”

    어렵지 않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챈 나는 황당함을 표했다.

    “성직자들이 권력 싸움을 한다고요?”

    “이타루스 성왕국은 내부가 곪아 있기로 아주 유명하거든. 국민들의 세율이 얼만 줄 아나? 최소 8할이네.”

    세율이 8할이면 생활이 가능할까?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미쳤네요. 그러면서 뭐가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거죠?”

    “단단히 미쳤지. 그들은 원래 궤변이 특기거든. 그런데 신앙심이란 게 굉장히 무서운 거라서 고혈이 짜여 굶어 죽더라도 국민들은 운명이라며 받아들인다는군.”

    “허···.”

    이타루스 성왕국에 태어나는 순간 개돼지 생활이 예약되는 것인가.

    마드세인에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내 조국에 대한 감사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썩은 권력의 중심에 있는 것이 성왕이고, 신실한 신앙심으로 성왕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던 인물이 성녀였지. 아무래도 성왕이 단단히 마음먹고 칼을 빼 든 모양이야. 그로 인해 소리소문없이 밀린 게 성녀측이고.”

    “그래서 결론은 성녀가 제 몸 지키기 위해 마드세인으로 도망쳤단 겁니까?”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네. 성왕의 기사단이 마드세인과 국경을 맞댄 영지에 출몰해 며칠 동안 수색을 벌이고 있다는군. 하지만 뭔가를 발견하진 못한 모양이야. 지금까지 국경지대에 기사들이 머물러 있다네.”

    확실히 그의 말만 들어선 성녀는 마드세인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나는 성녀란 존재에 깊은 호기심을 느꼈다.

    어차피 망명 신세인데, 우리가 그녀를 거두진 못하는 걸까?

    물론 이타루스와의 관계를 생각해 존재를 숨겨야겠지만, 최고위 성직자의 존재는 여벌의 목숨을 갖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찾아봐 주시겠어요? 만나고 싶군요.”

    “노력해 보겠네. 정보부 요원들을 이타루스 국경지대에 대거 투입하도록 하지.”

    설사 영입에 실패한다고 해도, 그녀를 돕고 대가로 부활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일전에 자네가 했던 부탁 말이네만.”

    내가 했던 부탁?

    나는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청혈초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맞아. 자네 말대로 각 영주들에게 청혈초 수집을 명한 결과 상당한 양을 모을 수 있었네. 그래서 이에 대한 대금 결제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물론, 해드려야죠. 어디에 지급하면 되나요?”

    “행정부에 전달해 주면 되네.”

    내가 만족스런 반응을 보이자, 그는 영문을 모르겠단 투로 물었다.

    “대체 청혈초는 왜 그렇게 모으는 건가?”

    “왠지 나중에 비싸게 팔릴 것 같아서요.”

    간단한 대답에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안색을 살피다가 돌연 씨익 웃어 보였다.

    “뭐, 좋네. 그런 거면 나도 모아 볼까?”

    실소를 흘린 나는 알아서 하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국왕과 제노아드 공작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특히 성녀에 관한 부분은 나라에 영향이 끼칠 수 있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새삼스레 이 자리의 주체는 나고, 더 이상 국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어쩌다 보니 저희끼리만 이야기를 하게 되었군요.”

    “괜찮네. 자네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3개월 사이 많은 것을 내려놓은 국왕은 조용히 차를 들이켰다.

    솔직히 국왕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전면에 나서면 혼란만 커질 테니, 아직 국왕은 필요한 존재였다.

    “폐하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안인가?”

    내 말에 국왕은 의아하단 반응을 보였다.

    마치 굳이 내 의견이 필요하냐는 모습.

    이거 완전히 악당이 된 느낌이다.

    아니, 이미 악당인가?

    “아르비스 공작가에서 자금을 출자하여 대대적으로 기사 학교와 마법사 학교를 만들 생각입니다. 그에 따른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기사학교와 마법사학교라면 이미 존재하지 않는가? 대대적이라니?”

    “15세 이하 모든 국민들의 적성을 검사하여, 적성이 있으면 신분을 불문하고 무상으로 마법사와 기사를 양성할 생각입니다. 왕국의 전력을 급증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죠.”

    전생에 내가 전장에 끌려가게 된 계기를 마련한 전국 마법사 적성검사.

    그것의 확장 버전을 나 스스로 제안한 것이다.

    당연히 전생처럼 개목걸이 채워서 전장에 내던지진 않겠지만, 그 발상은 높게 평가해줄 만하다.

    “괜찮은 제안이네만, 스케일이 너무 크군. 전 국민이라니···.”

    국왕이 헛웃음을 흘리자, 나는 제노아드 공작에게 어떻게 생각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마드세인 입장을 보면 좋은 것 같군. 하지만 자금 소모가 엄청날 텐데? 더구나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마법사 적성과 달리 기사의 적성은 확인하기가 까다롭네. 아마 굉장히 많은 인력을 움직여야 할 거야.”

    “제게서 돈 걱정을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노아드 공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래도 이걸 자네 혼자 부담할 필요는 없지. 차라리 교육기관을 여러 곳에 만드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는 내가 마법사와 기사를 대량 생산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이다.

    이미 그들의 목숨과 이 나라의 권력은 내가 쥐고 있는 상태인데도 저러는 모습을 보면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것 같다.

    나는 상관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제 세력을 키우기보단 왕국의 전력 증대를 위해 내놓은 의견이니까요. 그럼 왕실과 4대 공작가에서 자금을 출자해 교육기관을 만드는 걸로 할까요?”

    내 제안에 국왕과 제노아드 공작, 아인트 공작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후로도 우린 많은 의견을 나눴다.

    대부분이 국가의 안전과 이득을 위한 것이었으나, 동시에 많은 감정이 오고 가는 회의였다.

    *

    15. 성녀

    숲길을 달리는 여행복 차림의 2남 1녀.

    그들의 앞에 검은색의 로브를 걸친 사내들 나타나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 몸을 돌리니, 이미 사방이 포위를 당한 상태였다.

    검은색 로브의 사내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걸어 나오며 정중히 말했다.

    “거친 짓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와 함께 돌아가시죠.”

    그의 시선은 정확하게 여행복 차림의 젊은 여성에게 꽂혔다.

    눈부신 은발의 긴 생머리.

    길게 치솟은 속눈썹은 마치 눈이 내려앉은 듯 새하얗고,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는 햇빛을 받은 바다처럼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새하얀 피부와 오뚝한 코, 앵두같이 작은 입술은 그녀의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키는 보통이지만 몸매의 비율이 좋아 실제보다 커 보였다.

    “말을 섞지 않을 셈입니까? 과연 고고하십니다.”

    적의 대장이 로브 안자락에서 검을 뽑아 들고, 그 위로 푸른빛의 오러블레이드가 맺히자, 은발의 여성과 그녀의 동료 두 명은 표정을 굳혔다.

    그에 여성의 동료들도 검을 빼 들었다.

    한 명에겐 습격자와 같은 푸른 오러블레이드가, 다른 한 명에게선 미완성의 오러블레이드가 피어올랐다.

    “데이브 후작, 어쩌다가 그리 추악하게 변한 것인가. 젊은 시절엔 함께 이타루스의 어둠을 거둬내자며 약속했으면서.”

    포위를 당한 남성이 앞으로 나서며 그리 말하자, 검은 로브의 사내가 조소를 흘렸다.

    “사람은 변하기 나름이지, 자네가 지나치게 위선적인 거야.”

    “데이브 후작···.”

    “그리도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얻을 수 없으면 죽이라는 것이 폐하의 뜻이니.”

    그 명령과 함께 검은 로브를 입은 습격자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지켜야 할 여성이 있는 두 남성은 낭패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자네의 상대는 나일세!”

    오러블레이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오러블레이드 뿐.

    여성의 일행 중 가장 강력한 전력이 적의 대장에 의해 묶이자, 남은 호위가 정신없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습격자들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마스터가 아닌 이상 검 한 자루로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남은 호위는 여성을 향해 달려드는 습격자를 전부 막지 못하고 접근을 허락하고 말았다.

    “성녀님!”

    그의 다급한 외침에 가녀린 체구의 여성, 이타루스 성왕국의 성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빠악!

    하지만 습격자의 검은 끝내 여성에게 닿지 못했는데···.

    그녀가 몸을 회전시키며 내뻗은 발길질에 습격자의 검이 부러지고 목이 꺾여 즉사했기 때문이다.

    펑퍼짐한 치마 속에 숨겨져 있던 새하얀 다리가 시선을 잡아끌며 바닥을 쿵 내리찍자 무형의 충격파가 습격자들의 자세를 흩뜨렸다.

    “들어오시죠. 분쇄해 드릴 테니.”

    가녀린 외모와 어울리지 않은 광기 어린 눈빛.

    처음 보는 성녀의 모습에 습격자들은 주춤거렸다.

    성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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