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38화 (38/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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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격동하는 마드세인 왕국

    “아니! 봉작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공작이라뇨! 유례없는 승작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건 너무 성급한 결정입니다.”

    귀족들의 반발에 마드세인 국왕은 고개를 내저으며 피곤하단 표정으로 아인트 공작을 바라보았다.

    “이견은 받아들이지 않겠소. 승작은 이미 결정 사안이며, 폐하는 물론 우리 공작들 모두가 동의한 내용이요.”

    “하, 하지만 공작이라면 그에 맞는 공적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인트 공작은 국왕을 대신하여 말을 이어갔다.

    “아르비스 공작으로 인해 올해 왕실의 세수입이 80% 넘게 증가했소. 또한 사비로 헬리온 요새를 증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부의 발전에 앞장서고 휘하에 마스터를 부하로 둔 인물이기도 하오. 재력이면 재력 무력이면 무력 그는 이미 왕국 내에 비교 상대가 없는 ‘제일 귀족’이라 할 수 있는데, 무엇이 부족하단 말이오?”

    아인트 공작의 입에서 나올 ‘제일 귀족’이란 말에 회의에 참석한 귀족들은 놀란 표정으로 제노아드 공작과 카르디아 공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그들이 웬일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조, 좋습니다. 아르비스 후작의 공로는 그렇다 쳐도 너무 이른 승작이 아닙니까? 최소한 공작위를 하사하더라도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진행하심이 나을 듯합니다.”

    왕국 북서부 변경백의 반발에 잠자코 있던 제노아드 공작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아르비스 후작이 아닌 아르비스 공작이다. 그리고 이미 결정 사안이라 했을 텐데? 작위 승작 및 봉작은 국왕폐하와 공작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 자네들이 왈가왈부할 내용이 아니야. 아니면 국왕 폐하와 우리 공작들이 우습게 느껴지나?”

    제노아드 공작의 강경한 반응에 귀족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더 이상 반발을 할 수가 없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포기들 하시게.”

    더구나 마지막 희망이자 아르비스 공작의 정적이라 할 수 카르디아 공작까지 어깨를 으쓱이니, 귀족들은 하나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앞으로 아르비스 공작의 대리인이 대신 회의에 참석하게 될 것이오.”

    “대리인이라뇨?”

    “폐하께서 그에게 공작위를 하사하시며, 세습이 가능한 자작위 3개와 단승 남작위 10개의 임명권 내리셨소. 아마 새로 작위를 받은 아르비스 공작가의 가신이 참여하지 않을까 싶군.”

    대신 회의라 하면 마드세인 정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공작은 따로 직함을 갖고 있지 않아도 대신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데, 세 공작은 모두 왕실의 주요 대신이고, 그동안 당연하다는 듯 공식 석상에 참여했기에 대리인 출석이란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세습이 가능한 작위의 대리임명권을 주다니, 무슨 파격적인 대우란 말인가.

    귀족들은 그런 걸 왜 허가해 주냐는 눈빛으로 공작들을 바라보았지만, 제노아드 공작의 살벌한 시선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대체 이런 게 무슨 회의란 말인가.

    일방적인 통보지.

    원래 작위의 봉작과 승작이 그들의 권한이라지만, 대귀족의 승작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는 없었다.

    보통 대신 회의에서 의제를 걸고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에 최종적으로 국왕이 결론을 내리는 것인데, 그 앞부분의 빼먹고 원론만을 밀어붙이다니.

    당연히 규칙이 그런 만큼 안될 것 없지만, 새삼 귀족들이 불만을 갖는 것도 당연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누가 봐도 아르비스 공작을 밀어주기로 마음먹은 듯한 모습.

    아무래도 자신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카르디아 공작성 지하 연구실.

    [오리하르콘을?]

    “그렇습니다. 덕분에 애꿎은 공주만 중독당하고 아르비스 후작이 길길이 날뛰어 왕성이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림자의 형태를 한 칼바도스 제국의 크리스토프 공작은 혀를 찼다.

    “아르비스 후작이 위스워드로 간다는 것을 국왕이 공작의 작위를 포함해 이런저런 보상으로 붙잡긴 했지만, 앞으로 그를 어찌하긴 힘들 것 같군요.”

    [이거 일이 복잡해지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더구나 아르비스 후작과 아인트 공작이 저를 의심하고 있어서 한동안은 숨죽이고 있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알겠네, 몸 간수 잘하게나.]

    크리스토프 공작의 위로에 카르디아 공작은 슬쩍 그림자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마드세인의 상황도 좋지 않은데, 지금 제국으로 이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은근한 그의 물음에 크리스토프 공작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힘들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유지해 주지 않겠나? 독살에 실패하는 바람에 자네의 입장이 애매해졌어. 중요한 순간에 마드세인에 혼란을 만들면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카르디아 공작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표정을 짓자, 크리스토프 공작은 설득하듯 말했다.

    [이대로 아무런 공로 없이 본국으로 오면 그냥 망명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럼 끽해봐야 작위는 백작으로 그치겠지.]

    “그렇군요.”

    [조금만 더 노력해 주게. 한동안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사태가 진정 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지.]

    조심스런 크리스토프 공작의 태도에 카르디아 공작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미 한배를 타기로 한 이상 어쩔 수 없죠.”

    [잘 생각했네.]

    “저···.”

    [더 할 말이 있는가?]

    미안한 기색이 가득한 크리스토프 공작의 태도.

    카르디아 공작은 그림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도대체 칼바도스 제국에서 이렇게 시간을 끄는 이유가 뭡니까?”

    크리스토프 공작은 쉬이 답을 하지 못했다.

    그에 카르디아 공작은 미간을 좁히며 그를 닦달했다.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군사력이 비교가 되지 않는데, 마드세인에 이만큼이나 공을 들이는 이유가 뭔지. 그냥 밀어 버리기로 마음먹으면 지금도 충분히 마드세인을 점령할 수 있지 않습니까.”

    원래라면 씨알도 안 먹힐 물음이지만, 분위기가 알 것 없다고 딱 끊기가 힘들었다.

    그냥 관계가 소원해질 것을 각오하고 무시할지, 아니면 적당한 정보를 주고 달랠지 고민하던 크리스토프 공작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라면 이미 칼바도스의 대귀족이라 할 수 있으니, 알아도 되겠지.]

    “반드시 비밀을 엄수 하겠습니다.”

    배신자의 맹세만큼 신뢰가 가지 않는 것도 없지만, 크리스토프 공작은 덤덤히 말했다.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마드세인이 아니야. 바로 이타루스 성왕국이지.]

    “이타루스 성왕국이요?”

    이타루스 성왕국은 칼바도스 제국 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마드세인 왕국과 나란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국가다.

    유일신 가이아와 천족을 숭배하는 종교 국가로 미드랜드를 대표하는 다섯 대왕국 중 하나였다.

    “설마 그 미친 광신도들과 싸울 생각입니까?”

    [어쩔 수 없지. 우리의 황제 폐하께선 진지하게 대륙 통일을 계획하고 계시니.]

    “허···.”

    [마드세인은 길목에 지나지 않네. 하지만 그 길목에서 힘을 빼서야 멀리 나아갈 수 있겠는가.]

    ***

    나는 카르디아 공작의 보고에 미간을 좁혔다.

    “대륙 통일이라···. 역시 대제국의 황제라 그런가? 스케일도 크시네.”

    대륙 제일 국가인 칼바도스의 황제라면 응당 꿈꿔 볼 만한 미래지만, 설마 그걸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획할 줄은 몰랐다.

    칼바도스가 이타루스까지 칠 계획이라는 건 대단한 정보다.

    전생에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으니.

    머리를 잘 굴려보면 활용할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칼바도스가 국경을 맞댄 국가는 세 개인데, 하나가 우리 마드세인이고 나머지 둘이 이타루스 성왕국과 위스워드 제국이다.

    위스워드 제국은 칼바도스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든 국가.

    이타루스 성왕국은 광신도인 국민 전체를 죽여버리겠단 생각으로 달려들지 않는 이상 차지할 수 없는 국가다.

    때문에 일반적인 상식으로 칼바도스 제국의 탈출구는 마드세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마드세인을 차지하고 나면, 그 밑으로 만만한 규모의 왕국들이 밀집되어 있으니, 정복 놀이를 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식을 깨고 이타루스를 공격할 생각을 하다니, 과연 대국 답게 대담하다고 해야 할까?

    “혹시 크리스토프 공작이란 녀석이 카르디아에게 대충 둘러댄 것은 아니겠지?”

    독 사태 이후 부쩍 의심이 많아진 나였다.

    뭐, 이타루스 성왕국이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곳이지만, 칼바도스가 독하게 마음을 먹고 몰아붙인다면 못 밀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긴 기간트를 대량 보유하고 있다면 뭔들 못하겠어.”

    더구나 칼바도스엔 비장의 무기가 존재하지 않던가.

    아직은 개발 중인 것으로 보이지만, 칼바도스에서 기간트가 양산된다면 지금의 이타루스는 상대가 아니었다.

    “주군!”

    카르디아 공작의 보고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불쑥 집무실의 문을 열고 나타난 헤르만의 존재에 의문을 표했다.

    “무슨 일이에요?”

    영주의 집무실에 노크도 없이 쳐들어온 것은 대단한 무례지만, 헤르만은 아무 이유 없이 그럴 인물이 아니다.

    분명 노크도 잊을 만큼 급한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소형 마나하트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알려온 소식에 나는 순수하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력을 끌어 올린다.

    “바로 가죠.”

    나는 즉시 텔레포트를 사용했고, 주변의 풍경이 집무실에서 넓은 동굴로 바뀌었다.

    정면엔 공상과학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매끈한 철제문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V1, 나야.”

    [출입문을 개방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루이스님.]

    “그래.”

    방문을 환영하는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열리고 안에 있던 10명의 마법사들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달려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결과물은요?”

    내 물음에 골렘 마이스터로 유명한 엠브리오가 씩 웃으며 주먹 크기의 은청색의 금속 구슬을 건네주었다.

    작지만 묵직한 금속 구슬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중첩되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바로 그 구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지이잉!

    작은 진동과 함께 새빨갛게 물드는 구슬.

    몇 번이고 만져본 녀석이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어서 구슬은 내 마력뿐만 아니라, 대기 중의 마력까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파앗!

    그리고 구슬 한쪽에 새겨진 마법진에서 눈에 보일 만큼 엄청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주입한 마나와 비교가 되지 않는 양.

    흡수, 증폭, 방출까지 원하던 반응 그대로였다.

    “정말 이렇게 빨리 만들어 내다니.”

    “이 인원으로 뭘 못하겠습니까. 더구나 이건 저희만의 성과가 아닙니다. 모두 영주님께서 방향을 잡아 주신 덕분이죠.”

    겸손한 헤르만의 반응에 나는 그를 비롯한 마법사 전원과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왠지 역사의 한 장면에 서 있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주군께선 역사의 주인이 되실 테지요.”

    입에 발린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손에 쥔 금속 구슬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것의 이름은 마나하트.

    기간트의 핵심 부품으로 심장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물론 마도시대에 사용된 마나하트와 비교하면 조잡하고 에너지 출력도 별 볼 일 없지만, 기초가 되는 기술을 얻었으니 앞으로 이것을 발전시켜 나가면 될 것이다.

    현대 마도 공학 기술에서 의심할 여지 없는 쾌거.

    또한 칼바도스 제국의 야망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한 성과였다.

    벌써 머릿속에 칼바도스 제국의 황제가 경악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다.

    마나하트를 들어 올린 나는 더없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

    북부 최전선의 요새들을 대대적으로 보강하고 아르비스 공작령에서 시작된 철도 사업을 남부만이 아닌 왕국 전체로 확장한다.

    요새 보강 사업은 왕실이 5할, 해당 영지의 영주에게 5할을 징수하여 진행하고, 철도 사업은 아르비스 공작가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대신 공사비용 또한 아르비스 공작가에서 전액 투자한다.

    해당 내용이 또다시 일방적으로 대신 회의에 알려지자 다시금 북부의 귀족들은 난리를 피웠지만, 네 명의 공작과 국왕이 한목소리를 내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압박하고, 그게 싫으면 마드세인을 떠나라는데 어쩌겠는가.

    결국 귀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금을 댔고, 마드세인 왕국 전체에서 유례없는 대공사가 진행되었다.

    처음엔 재산이 줄어드는 것에 불만을 표하던 영주들도 왕국 전체에 불기 시작한 개발 붐으로 세수입을 비롯해 사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자, 부정적이던 시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자금의 흐름을 신경 쓰지 않고 1차원적으로 돈을 끌어모으던 귀족들 사이에 조금씩 인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해당 사업이 시작되고 3개월이 지난 지금 부쩍 아르비스 공작의 철도 산업에 관심을 보이는 귀족들이 늘었다.

    아르비스 공작령에 귀족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으며, 공작의 집무실엔 각종 선물이 넘쳐났다.

    수시로 혼약을 제안하는 귀족들과 사업에 껴달라며 굽신거리는 귀족들 때문에 많은 시간을 빼앗긴 아르비스 공작은 참다못해 대신 회의에 참석하여 이리 밝혔다.

    ‘앞으로 내 수련을 방해하는 자는 적대시하겠다.’

    아르비스 공작의 위세는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상태.

    지금 그에게 밉보이는 것은 무덤을 파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로 인해 아르비스 공작은 다시 평화를 맞이하게 되었고 매일 수련과 연구에 시간을 쏟아부으며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아···.”

    그런데 요즘 그에게 한 가지 큰 고민이 생겼다.

    덕분에 아르비스 공작은 홀로 한숨을 내쉬는 일이 많아졌고, 덩달아 부하들도 걱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고민이 있으십니까?”

    결국, 총대를 멘 콘스탄틴의 주군에게 물었다.

    그에 루이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보았다.

    우수에 찬 주군의 눈빛.

    콘스탄틴은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어떤 고민이 이리도 잘난 주군을 한숨짓게 한단 말인가.

    “지난달에 13살 됐잖아요.”

    “네.”

    현재 루이스의 나이는 13살.

    한국 기준으론 14살이며 곧 해가 바뀔 테니, 15살을 앞둔 상황이다.

    갑작스런 나이 이야기에 콘스탄틴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루이스는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키가 안 커요.”

    격동하는 마드세인 왕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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