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37화 (3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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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이른 아침에 호출이라니.”

    왕성에 도착한 카르디아 공작은 혀를 차며 걸음을 옮겼다.

    아직 아르비스 후작가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 못 한 상태여서 애가 타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 국왕이 호출을 하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혹시 아인트 공작이 먼저 아르비스 후작가의 변고를 알아챈 걸까?”

    그렇다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부른 거라 생각할 수 있겠다.

    아르비스 후작이 벌여 놓은 일이 워낙 커서, 당장 그가 없어지면 꽤나 큰 혼란에 휩싸일 테니 말이다.

    더구나 아인트 공작의 정보력은 왕국 내 으뜸인 만큼, 자신보다 먼저 후작가의 변고를 알아채도 이상할 것 없다.

    “그래, 그래. 그런 거군.”

    혼자 결론을 내린 카르디아 공작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국왕의 서재로 향했다.

    “폐하, 카르디아 공작입니다.”

    “들라.”

    그리고 서재 안에 들어가니, 아인트 공작과 제노아드 공작이 먼저 도착해 있었고, 분위기가 좋지 않아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찾으셨습니까?”

    “앉게.”

    국왕의 지시에 카르디아 공작은 두 공작과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어제 아르비스 후작령에 변고가 있었네.”

    역시.

    카르디아 공작은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변고라 하시면?”

    “독일세. 아르비스 후작이 독이 든 음식을 먹었다는군. 하필이면 후작을 찾아갔던 실비아 공주와 함께.”

    “아르비스 후작 정도면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할 텐데요?”

    “마법으로도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퍼지는 극독이었다 하네.”

    카르디아 공작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범인은 찾았습니까?”

    “용의 주도한 인물인 것 같더군. 실행범은 모조리 죽고 물질적 증거는 독밖에 안 남았네.”

    애초에 그리 계획하긴 했지만, 깔끔한 결말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카르디아 공작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칼바도스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와중에 전력이 줄다니. 대마법사라면 수만의 군대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거늘···.”

    지금 그의 행동만 보면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아르비스 후작의 희생을 통탄하는 모습이었다.

    “칼바도스 제국에서 벌인 수작이 아닐런지요. 지금 마드세인에서 아르비스 후작이 사라진다면 큰 혼란이 오고, 그럼 가장 큰 득을 보는 것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이 아닙니까?”

    “하긴, 우습게 보던 우리 마드세인의 전력이 급증한 것을 아니꼽게 여길 만하지.”

    국왕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자 카르디아 공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어진 국왕의 말에 그는 그 자리에 굳어 멍청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하지만 심려치 말게, 위대한 가이아의 축복에 새로운 대마법사가 탄생했으니.”

    “네?”

    서재의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성이 걸어 들어왔다.

    “자네도 한 번쯤은 들어 봤겠지. 골렘 마이스터 엠브리오 경이네. 놀랍게도 그가 대마법사가 되었지.”

    “반갑습니다.”

    상대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에너지 파동.

    그는 의심할 것 없는 7클래스의 대마법사였다.

    “에, 엠브리오 경이라면 아르비스 후작의 휘하로 들어갔던 것으로 알고 있네만.”

    “맞습니다. 아르비스 후작님 덕에 벽을 넘을 수 있었죠.”

    한 명을 죽이니, 또 다른 대마법사가 기어 나온다.

    대체 아르비스 후작령에 무엇이 있기에 이런 강자가 툭툭 튀어나온단 말인가.

    카르디아 공작은 표정관리가 안 되는 것을 느끼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놀랐는가?”

    국왕의 물음에 카르디아는 급히 표정을 수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아직 놀라긴 이르지. 대마법사가 더 탄생했으니.”

    “네? 그게 무슨.”

    그리고 다시 서재의 문이 열리고 2남 1녀의 마법사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하나같이 7클래스의 파장을 지닌 그들은 등장만으로 서재의 공기가 묵직해지는 착각이 들었다.

    “자, 자, 잠시만요! 이게 대체?”

    이상함을 느낀 카르디아 공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뒷걸음질 쳤다.

    “인사하게나, 그들은 아르비스 후작가의 마법사로 활동하던 헤르만 경, 스텔라 경, 아드리안 경이라네.”

    대마법사의 존재가 시장에서 덤으로 얹어 주는 제철 과일도 아니고, 무더기로 나타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폐하! 대체 이게 어찌 된···.”

    하지만 열려 있는 서재 문을 통해 기사와 마법사를 대동한 아르비스 후작이 들어서자, 카르디아 공작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아, 아르비스 후작?”

    “안녕하십니까? 카르디아 공작님.”

    “자넨, 폐하께서 독에 당했다고···.”

    “독이 든 음식을 먹긴 했지만, 중독되진 않았습니다.”

    아르비스 후작이 크리스탈 같은 재질의 팔찌를 짤랑이며 답했다.

    “오리하르콘?”

    “네, 제가 제법 가진 게 많아서요. 저와 제 가족들은 모두 오리하르콘 팔찌를 착용하고 있죠. 애석하게도 봉변을 당한 사람은 공주님뿐이었습니다.”

    열심히 눈알을 굴리던 카르디아 공작은 이제 알았다는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것참 다행이군. 그나저나 놀라지 않았는가, 이런 장난을 치다니. 자네도 은근히 못됐어. 대마법사가 줄줄이 등장해서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는 앞서 등장한 4명의 대마법사는 진짜가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비스 후작이 국왕 앞에 자신의 병력을 끌고 나타난 것은 가볍게 볼 수 없는 사안인 만큼,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게 메모라이즈를 해둔 마법 수식들을 떠올렸다.

    “장난이라뇨? 그들은 정말 7클래스의 대마법사입니다만?”

    “뭐?”

    이어서 앞서 들어온 아르비스 후작가의 마법사 네 명이 서클 프레스를 사용하고, 그 기세가 어찌나 흉흉한지 속절없이 속박당한 카르디아 공작은 코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카르디아 공작은 혼란스런 표정으로 국왕과 두 공작을 올려 봤지만, 그들은 말없이 시선을 피할 뿐 아르비스 후작을 제지하지 않았다.

    “카르디아 공작님. 제가 한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크윽!”

    “혹시 우리 가족식사에 독을 탄 게 공작님인가요?”

    “자, 자네···.”

    “결백하다면 마나의 언약으로 대답해 주시죠. 그럼 목숨은 부지 할 수 있을 겁니다.”

    살기를 줄줄 흘리는 아르비스 후작의 모습은 악귀나 다름이 없었다.

    더구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자신의 존재감을 가볍게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다, 당신 뭐야?”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물음입니까?”

    “황제는 되어야 얻을 수 있는 인물들을 수하로 부린다니···.”

    이것이 죽음의 공포란 걸까?

    아르비스 후작을 올려보는 카르디아 공작은 도무지 그가 같은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이런 인물을 농민 출신의 마법사라 생각하겠는가.

    “호, 혹시 위대한 존재이신 것은···.”

    “이 상황에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겁니까?”

    아르비스 후작은 미간을 좁히며 항상 허리에 차고 다니는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단검에 코어의 마력을 밀어 넣자, 오러를 연상시키는 붉은 기운이 솟아났다.

    “제가 묻는 말에나 답을 하시죠. 우리 식사에 독을 탄 게 공작님이 맞습니까?”

    이어서 단검으로 카르디아 공작의 뺨을 스윽 스치고 지나가자, 마치 면도날에 베인 것처럼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나, 나는.”

    ***

    “설마, 그가 정말 칼바도스와 내통하고 있었다니.”

    제노아드 공작은 충격받은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는 카르디아 공작을 죽일 듯이 바라보았다.

    그에 아인트 공작은 거보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니까, 저를 죽이도록 사주를 한 게 칼바도스다?”

    내 물음에 카르디아 공작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 맞네. 아니 맞습니다. 칼바도스 제국 황실 마탑주 크리스토프 공작이란 자가 사주했습니다.”

    “그럼 그동안에 저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한 게 모두 그 크리스토프 공작의 지시란 겁니까?”

    “처, 처음엔 물론 좋게 여기지 않았죠. 하지만 아르비스 후작님께서 작위를 받고 난 직후 그가 접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아무 고민 없이 그들의 손을 잡았다?”

    “아주 잠깐의 고민은 있었죠. 하지만 아무리 마드세인이 내 조국이라 해도 칼바도스와의 군사력 차이를 생각하면 미래는 없습니다. 대마법사 한두 명이 늘어난다고 이겨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죠.”

    그는 피의 족쇄로 계약한 덕분에 내 물음에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의 진실 된 속마음에 제노아드 공작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

    “이 매국노가!”

    “자네가 너무 멍청한 거야. 지금 시대에 절대 충성이 어딨겠는가!”

    내게는 설설 기면서 제노아드 공작의 말엔 지지 않고 반박하는 모습이 과연 카르디아 공작다웠다.

    그래, 지금 시대에 절대 충성을 바라긴 힘들지.

    나처럼 배신할 수 없는 마법적인 제약을 걸지 않는 이상 말이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인트 공작이 내게 은근히 물어 오자, 나는 단검을 만지작거리면서 카르디아 공작을 내려 보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절대 배신도 하지 않을 거고, 배신하겠단 마음을 먹는 순간 심장이 터지는 걸로 마나의 맹세도 하겠습니다.”

    이렇게 비굴한 인물이었나?

    이런 인물에게 엿 먹은 것을 생각하면 허탈할 지경이다.

    그냥 성질대로 죽여 버려?

    나는 힐끔 국왕을 바라보았다.

    잠깐 사이 10년은 늙은 듯 아무 말 않고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왠지 애처로워 보였다.

    “폐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내 물음에 국왕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며 서재 안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자네의 선택에 따르겠네.”

    그리고 이어진 국왕의 대답에 제노아드 공작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고, 아인트공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에 반해 카르디아와 내 부하들은 모두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자 때문에 실비아 공주님이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게 선택을 맡기시는 겁니까?”

    “그렇네.”

    나는 굳이 그에게 자세를 낮추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 자의 처리는 제가 결정하도록 하죠.”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소파처럼 편안하게 앉은 나는 카르디아 공작을 빤히 바라보았다.

    “크리스토프 공작과 연락은 얼마나 자주 하죠?”

    “보통 5일에 한 번씩은 꼭 하고, 급히 알릴 일이 생기면 따로 제약 없이 바로 연락을 합니다.”

    “연락 수단은요?”

    “제 영주성 지하에 그와 연결된 통신 장비가 있습니다.”

    그의 생사를 놓고 가만히 고민하던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려 드리죠. 대신 앞으로 당신은 평생 저의 노예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제 마음이 바뀌지 않을만한 마나의 맹세를 해보시죠.”

    나는 스스로 마나의 맹세를 하며 온갖 제약을 거는 카르디아 공작을 빤히 보았다.

    굳이 카르디아 공작을 살려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작을 부린 놈들을 전부 잡아 쳐 죽이기 위해서.

    원래 그의 단독 범행이었으면 고민 없이 죽였겠지만, 배후가 있다고 하지 않은가.

    당연히 싹 청소를 해야지, 카르디아만 제거하는 것으론 성에 차지 않는다.

    그는 청소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카르디아 공작은 이용가치가 굉장히 많았다.

    이중 스파이로 칼바도스의 상황을 알아낼 수도 있고, 당장 그가 죽어버린다면 칼바도스의 경계심이 올라갈 테니, 살려 두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끝났습니다. 주군.”

    나를 주군이라 칭하는 카르디아의 모습에 서재의 모두가 실소를 흘렸다.

    단검을 허리춤에 꽂으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은 나는 그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좀 맞도록 하죠.”

    “네?”

    “이걸로 제 화가 풀릴 리 없잖아요.”

    “그게 무슨.”

    내가 턱짓을 하자, 콘스탄틴을 비롯한 기사들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다가와 그를 사정없이 밟기 시작했다.

    퍽! 퍽!

    “주, 주군!”

    이용가치가 있어 살려는 두겠지만, 분풀이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웃으며 국왕에게 다가갔다.

    “제가 있기에 이 나라는 앞으로 더욱 부강해질 것입니다. 많은 도움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방적인 폭행현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국왕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 나라를 잘 부탁하네, 아르비스 ‘공작’.”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

    격동하는 마드세인 왕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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