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36화 (3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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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럭.”

    “리커버리!”

    코어의 마력을 운용해 재빨리 치료마법을 사용하고 내가 차고 있던 오리하르콘 팔찌를 그녀의 손에 걸었다.

    “음식에 손댄 사람 전부 구속해!”

    콘스탄틴의 외침에 식당 안에 있던 시녀와 시종들이 겁에 질려 한곳에 모이고 기사들이 재빨리 밖으로 튀어나갔다.

    “리커버리! 리커버리!”

    “으으.”

    아무리 손을 써도 공주는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이미 오리하르콘과 마법으로 독소는 제거된 것 같지만, 내부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은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배에 손을 얹고 내부를 살폈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입력되는 그녀의 상태에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대체 무슨 독에 당한 건지, 아주 잠깐 사이 그녀의 내장은 거의 녹아내린 상태였다.

    “후, 후작각하?”

    패닉에 빠진 체이슨 자작이 묻자 나는 이마를 짚으며 답했다.

    “제 수준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해요.”

    “헉.”

    뭔가 방법이 없는 걸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나는 트레이닝 캡슐의 신진대사를 느리게 만드는 부과 효과를 떠올리며, 한 달짜리 캡슐을 꺼내서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그것을 분쇄해 그녀의 입에 넣은 뒤 강제적으로 흡수되게 만들었다.

    서서히 움직임이 잦아드는 공주의 모습에 체이슨 자작이 감탄사를 토했지만, 내 얼굴은 조금도 펴지지 않았다.

    “잠깐 시간을 번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콘스탄틴 경, 마법사들을 모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리커버리는 회복 마법이지 이미 죽어버린 장기까지 살리지는 못한다.

    지금 당장 그녀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선 성녀 수준의 부활이나, 8클래스 마법사의 리저렉션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방법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마드세인은 그런 인물들을 섭외할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공주의 목숨은 내 손에 달려있었다.

    7클래스 마법사 5명, 7클래스를 앞둔 마법사가 7명이나 있는 아르비스 후작가에서 이 문제를 해결 못 한다면, 왕국 어디에서도 그녀를 살릴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

    “제, 제가 왕실에 연락해서 해독제를!”

    “독은 이미 해독이 되었습니다. 괜히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가족들이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공주만 극독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맨다니, 누가 봐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일이 대외적으로 알려진다면 우리 가문은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될 터.

    “감히 어떤 녀석인지···.”

    하지만 지금 나는 곤란한 입장에 대한 걱정보다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가 월등히 컸다.

    변고를 당한 것은 공주지만 이건 그녀를 노린 것이 아닌 나를 노린 공격이었다.

    만약 오리하르콘 팔찌가 없었다면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까지 모조리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나는 이를 갈며 머릿속에 이런 일을 저지를만한 인물들을 떠올렸다.

    “영주님!”

    대마법사들이 달려오고, 굳어버린 내 가족들은 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식당을 벗어났다.

    나는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공주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

    마드세인 왕국의 북부, 카르디아 공작령.

    “그 독은 확실한 거겠죠?”

    영주성 지하에 위치한 개인 연구실에 앉아 아무도 없는 허공에 혼잣말을 하자, 그의 앞으로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생겨났다.

    [그래, 아주 잘 만들어진 독이지. 그냥 검사하면 독이라고 알 수 없고, 침과 섞여야 독성이 생기네. 2~3초면 몸 안의 장기를 곤죽으로 만들기 충분한 만큼 해독을 해도 살아나기 힘들 거야.]

    “후···. 듣기로는 실비아 공주도 함께 식사한 것 같던데, 불필요한 희생이 더해지는군요.”

    [아직 마드세인에 애정이 남아 있는 건가?]

    그림자의 물음에 카르디아 공작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멸망할 나라에 관심 둬서 뭐합니까? 조국에 대한 제 애정은 공작님의 접근과 함께 끝이 났습니다. 단지 공주의 미색이 대단하여 첩으로 삼을까 생각했을 뿐이지요.”

    [큭! 그런가?]

    “이걸로 마드세인은 난리가 나겠군요.”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카르디아 공작의 모습에 표정 없는 그림자에 새하얀 입이 생겨 웃음을 흘렸다.

    [그렇겠지. 그런데 괜찮겠나?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자네일 텐데. 자칫 제논이라는 자한테 칼 맞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

    “확실한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이제 제가 마드세인의 유일한 대마법사인데.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쳐내진 않겠죠. 정 위험하다 싶으면 그곳으로 도망가면 되는 거고요.”

    [그렇군. 맞는 말이야. 우린 언제나 자넬 환영하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르비스 후작 밑에 마스터가 한 명 더 있는 것이 사실인가?]

    “100% 확신은 못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마드세인의 초인은 대마법사 둘에 마스터가 둘 또는 셋이 되는 거였나? 끔찍하군. 소국의 전력이 아니야.]

    “부디 이번 일로 황제 폐하께 인정을 받으면 좋겠군요.”

    [받고말고. 본국이 불필요한 피해를 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지.]

    그림자의 대답에 카르디아 공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억지를 부린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실 겁니다.”

    [자네의 노고에 대해 잘 알고 있네. 대계가 시작되면 자네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야.]

    카르디아 공작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대계는 언제 시작되는 겁니까? 바로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요?”

    [그걸 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네. 황제 폐하시지.]

    “그,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잠시 후 그림자가 연기처럼 흩어지기 시작하고, 카르디아 공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비스 후작가의 상황이 밝혀지는 대로 다시 보고 하겠습니다.”

    [고생하게나.]

    상대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는 실소를 흘리며 지하를 벗어났다.

    ***

    몇 시간 동안 공주의 상태를 살피며 마법사들과 머리를 맞댔는데,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하아···.”

    바닥에 누워 있는 공주의 상태를 살피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진대사가 느려졌다고 해서, 파괴된 장기의 영향을 안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2~3일을 못 넘길 것 같군요.”

    나는 내 기사들에게 붙잡혀 억류된 공주의 기사들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얼리도록 하죠.”

    “얼리다뇨? 공주님을요?”

    경악한 대마법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데미지는 계속 몸에 중첩될 겁니다. 차리리 세포 하나까지 모조리 얼려서 이상태를 유지 시키도록 하죠.”

    “그, 그건 너무···. 차라리 아공간에 모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공간 내부에서도 시간이 흐릅니다. 냉동이 가장 확실하게 현상을 유지하는 방법이에요.”

    냉동인간이라는 게 그냥 얼린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마법이라면 더 쉽고 간단하게 사람을 냉동시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신체 강화마법을 사용한 상태에서 얼리고, 하루에 한 번 리커버리를 사용한다면 더는 괴사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사실 냉동인간은 얼리는 것만큼이나 녹이는 것도 문제지만, 그 부분은 그녀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진다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어차피 이대로 두면 필사였으니.

    “그런데, 괜찮을까요? 공주님을 살리려는 방법이라곤 하나 얼리다니···.”

    “이대로 죽게 둘 순 없잖아요.”

    헤르만은 공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입장을 걱정하는 것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이 상황을 얌전히 넘길 생각이 없으니.

    애초에 이 독은 공주를 노린 게 아니라, 나와 우리 가족을 노린 것.

    이런 일의 재발 가능성의 싹 잘라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공주의 몸을 뒤져, 걸치고 있는 장신구를 모조리 제거했다.

    그리고 옷을 벗기려 하는데, 체이슨 자작이 거품을 물며 끼어들었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얼릴 겁니다. 이상태로 해결이 안 돼요.”

    “그렇다고 해도 어찌 공주님의 옷을!”

    “죄송한데 좀 조용히 해주실래요?”

    결국 그는 콘스탄틴에게 다시 제압당하면서 입을 다물었지만, 확실히 처녀의 몸을 사람들이 보는 데서 함부로 다루는 건 안 좋은 것 같다.

    나는 모두를 등을 돌리게 만든 뒤, 손수 그녀를 얼리기 시작했다.

    1차로 얼린 다음 몸을 가리기 위해 커튼을 덮고, 그 위에 한 번 더 직사각형의 얼음을 감쌌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작업이 끝난 뒤 공주를 감싼 얼음 덩어리를 아공간에 넣었다.

    “끝났어요.”

    공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체이슨 자작이 다시 난리를 피웠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내 물음에 제논이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신체 반응이 더해져야 효과가 생기는 특수한 독인 모양입니다. 분명 저희가 독 체크를 했지만, 그땐 이상이 없었습니다.”

    가장 확실한 독 체크는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먹이고 반응을 살피는 거지만, 애초에 식기에 독이 묻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음식은 그렇다 쳐도 독 검사를 위해 다른 사람이 사용한 식기까지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린 음식과 식기를 약물과 아티팩트로 검사를 할 뿐 따로 사람에게 실험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맹점을 찌른 독이 있다니, 이건 범인이 철저히 작정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범인은요?”

    “음식과 식기를 나르던 시녀 두 명이 주방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자살 같더군요. 그 외에 따로 수상한 사람이···.”

    하긴, 그렇게 쉽게 꼬리 잡히도록 일을 꾸미진 않았겠지.

    죽은 시녀들이 원래부터 내 영지에 섞여 있던 간자인 건지, 아니면 이번 일에 이용당한 건지는 몰라도, 이대로라면 독살을 사주한 범인을 찾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왕실 기사단은 잠시 조용한 곳으로 모시죠. 호위기사단과 마법사들은 절 따라오세요.”

    “조, 조용한 곳이라뇨? 각하! 후작각하!”

    나는 그대로 식당을 나섰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내 뒤를 따르며 제논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자 나는 깊게 고민할 것 없이 바로 답을 했다.

    “누군가가 저와 제 가족을 죽이려 했습니다. 당연히 위협이 될 만한 것을 제거해야죠. 이런 일이 또 일어나는 것은 사양입니다.”

    “네?”

    “부모님과 에리스를 부탁드립니다.”

    헛바람을 삼키는 제논을 뒤로하고 나는 호위기사단과 마법사 모두를 이끌고 왕성으로 텔레포트를 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카르디아 공작이 수상하다니?”

    국왕은 밤이 돼서 은밀히 면담을 신청해온 아인트 공작의 이야기에 두통을 느껴야 했다.

    “4개월 전부터 카르디아 공작의 재산이 칼바도스로 이전되고 있습니다.”

    “뭐?”

    “그리고 언제부턴가 카르디아 공작 주변에 새로운 인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모두 마드세인 출신이 아니더군요. 어쩐지 점점 주변을 정리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게 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냐며 뒷목을 주무른 국왕이 확인하듯 아인트 공작에게 물었다.

    “그 말은 카르디아 공작이 칼바도스 제국과 내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카르디아 공작의 행동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굳이 불필요한 아르비스 후작과의 마찰을 유도하고 국론을 분할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본국의 전력을 깎아 먹기 위함이라 생각하면 앞뒤가 맞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다.

    더구나 재물이 칼바도스로 이전되고 있다는 점이 의심을 증폭시키는 부분이었다.

    그에 함께 자리에 참석한 제노아드 공작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결론적으론 자네도, 본국의 전력을 깎아내려 하고 있지 않은가?”

    제노아드 공작이 이런 말을 할거라 전혀 생각을 못 한 걸까?

    미간을 좁힌 아인트 공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자네, 아직도 내가 영지 조사를 반대한 걸 마음에 두고 있는 건가? 미안하네,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이 옳다고 여겼을 뿐이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나는 요즘 자네가 아르비스 후작을 지나치게 싸고돌아서 걱정될 뿐이네. 혹시 후작에게 약점이라도 잡혔나?”

    본질을 흐리는 제노아드 공작의 물음에 아인트 공작은 눈을 가늘게 떠야 했다.

    “자네 도대체···.”

    하지만 아인트 공작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왜냐면 제노아드 공작이 다짜고짜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의 검에 손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던 서재의 문이 예고 없이 열린 것도 거의 동시였다.

    “아르비스 후작?”

    서재 안으로 들어서는 작은 소년.

    국왕이 의문스런 표정으로 그 소년을 바라보다가 뒤를 따라 줄줄이 따라 들어오는 기사와 마법사들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폐하를 뵙습니다. 이렇게 불쑥 찾아오게 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당황한 국왕은 말을 잇지 못했고, 그런 국왕의 앞을 제노아드 공작이 막아섰다.

    “이건 반역이라 봐도 좋겠는가?”

    기세등등한 제노아드 공작의 물음에 아르비스 후작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뇨, 반역을 저지를 생각은 없습니다.”

    그에 제노아드 공작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예고 없이 왕실에 무장병력을 끌고 왔을 뿐 아니라, 문지기까지 쓰러뜨리고선 반역이 아니다?”

    “네, 아닙니다. 밖에 있던 기사들은 그냥 기절시켜 놓았을 뿐이니 안심하시길.”

    “그럼 무엇 때문에 폐하께 이런 무례를 저지른단 말인가!”

    가벼운 아르비스 후작의 태도에 제노아드 공작은 호통을 쳤고, 항상 악의 없는 모습으로 뒤통수를 긁적이던 소년이 표정을 지우며 물었다.

    “그전에 한가지 여쭙겠습니다. 혹시 이곳에 저희 가족식사에 독 탄 사람이 있습니까?”

    “뭐라?”

    독이라는 이야기에 국왕과 제노아드 공작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아인트 공작은 뜨악한 얼굴로 나섰다.

    “자, 자네의 가족이 독에 당했는가?”

    “아뇨, 다행히 저희 가족은 모두 오리하르콘 팔찌를 차고 있어서요.”

    눈에 띄게 안도하는 아인트 공작의 모습에 제노아드 공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함께 식사하신 손님이 중독되셔서 사경을 헤매고 계십니다.”

    손님이란 말에 그게 누구냐며 의문을 표하던 이들은 동시에 누군가를 떠올렸고, 그것은 국왕도 마찬가지였다.

    “자, 자네 설마.”

    그에 아르비스 후작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직사각형의 얼음 덩어리를 꺼냈고, 그것을 바라본 이들은 하나같이 헛바람을 삼켰다.

    “실비아?”

    그 안엔 천으로 아슬아슬하게 나신을 가린 공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직은 살아 계십니다. 하지만 이 얼음에서 풀려나시면 돌아가실 겁니다. 공주님을 살리기 위해서 리저렉션이나 소생 급의 치료술이 필요합니다.”

    아르비스 후작은 그것을 도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집어넣었고, 국왕은 뒷목을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공주님께서 이렇게 되신 데는 제 탓도 있으니, 최선을 다해 살려 보겠습니다.”

    국왕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말아쥐며 물었다.

    “무엇을 할 셈인가.”

    “저와 제 가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를 제거할 생각입니다.”

    “그게 짐이어도 말인가.”

    “그렇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제노아드 공작은 분노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감히!”

    그러나 아르비스 후작의 뒤에 위치한 기사와 마법사들이 일제히 기세를 발산하자, 그는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무, 무슨.”

    경악한 제노아드 공작의 몸이 중력 마법에 당하기라도 한 듯 점점 바닥에 달라붙고, 헛바람을 삼킨 국왕을 무덤덤하게 바라본 아르비스 후작이 말했다.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저를 가만두지 않는군요.”

    “······.”

    “그러니 부디 제가 안심할 수 있게, 맹세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제노아드 공작과 국왕의 발밑에 붉은 마법진이 그려지고, 아르비스 후작은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목숨을 걸고 저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피의 족쇄를 말입니다.”

    *

    분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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