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35화 (3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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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분노

    아르비스 후작령의 발테르 시 중심가.

    “뭐가 이리 소란스럽죠?”

    하룻밤을 고급 여관에서 묵고 다시 아르비스 영주성으로 향하던 실비아 공주는 분수대 쪽이 소란스러워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체이슨 자작에게 물었다.

    그에 체이슨 자작은 기사들에게 알아보고 오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왕실 기사단의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 두 명이 소란의 중심으로 향했다.

    하지만 왕실 기사가 다가오자, 아르비스 후작령에서 제논과 호위 기사단에게만 지급되는 미스릴 갑옷을 걸친 고위기사가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왕실 기사가 돌아와 보고했다.

    “아르비스 후작의 가족들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 주고 있답니다.”

    “후작님의 가족이라 하시면?”

    “부모님과 여동생이랍니다.”

    실비아 공주는 눈을 크게 뜨며 분수대 광장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줄을 서 있는 사람 중엔 행색이 남루한 아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병사 중 누구도 복장이 깔끔하지 못하다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줄을 선 아이들은 인파를 뚫고 나올 때 다들 입이 볼록해지고 사탕이 든 작은 나무통을 품에 안고 나왔다.

    “배가 고픈 사람에겐 사탕보단 밀을 주는 게 낫지 않나요? 저 정도 사탕이면 밀 한 포대 가격은 될 텐데요.”

    그녀는 이것을 너무 값비싼 생색내기라 생각했다.

    “혹시, 식량 지원을 또 따로 하는 게 아닐까요?”

    정말 그런걸까?

    체이슨 자작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아무리 자신이 세상 물정에 어두워도 이건 너무 실속 없는 행동이라 생각되었다.

    철컥.

    “식량 지원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겐 일자리를 주선해 직접 벌어 먹고살 수 있게 해주고, 몸이 불편해 가족을 지킬 수 없는 가정은 시에서 운영 중인 시설에 입소할 수 있죠.”

    그때, 실비아 공주와 체이슨 자작의 대화에 어느새 다가온 아르비스 후작가의 호위기사가 말했다.

    “경은?”

    “예고 없이 끼어들어 죄송합니다. 아르비스 호위기사단의 레이포드 준남작이라 합니다.”

    체이슨 이상으로 반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기사는 화려한 무장 때문인지,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괜찮으시다면 공주님께서 사탕을 드셔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레이포드는 실비아 공주에게 작은 나무 목함을 건넸다.

    무심코 그것을 받아든 공주는 뚜껑을 열었고, 달달한 향기와 함께 알싸한 향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안의 내용물을 꺼내 먹으려는데, 체이슨 자작이 확인 안 된 음식은 먹지 말라며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제지를 무시하고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이건?”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향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실비아 공주가 이런 사탕은 처음 먹어 본다는 표정으로 레이포드를 바라보자,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단순한 사탕이 아니죠, 면역력 향상을 돕는 약초와 빈혈에 좋은 약초를 조청과 함께 섞어 만든 겁니다.”

    “아···.”

    “저희 영지에 굶는 아이는 없습니다. 다만 영양 상태는 생활 수준에 따라 불균형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보조제를 제공하는 것이죠.”

    “그럼 매번 이것을 아이들에게 지급한다는 겁니까?”

    “한 달에 한 번 영지 전체에 배분하고 있습니다. 이 사탕은 누구나가 먹을 수 있지만, 팔고 사는 것은 금지된 물품이죠.”

    실비아 공주는 자신의 상식으로 아르비스 후작을 멋대로 평가하려 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돈이 굉장히 많이 들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조청이 설탕보단 싸지만, 약초값을 생각하면 일반 사탕보다 싸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세금도 다른 곳보다 5할은 싸다고 들었는데.”

    레이포트는 경건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퉁 치며 말했다.

    “영주님께선 영지민이 있기에 영지가 존재하는 것이며, 아이들은 바로 영지의 미래라 하셨습니다.”

    마치 명언을 읊는 연사처럼 자랑스러움이 배어 있는 그의 대답에 실비아 공주는 주군에 관한 기사의 충성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주님께선 사탕값을 아까워하실 만큼 배포가 작은 분이 아닙니다.”

    그녀는 레이포드의 갑옷과 검을 보며 그런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야?”

    그때, 실비아 공주는 레이포드의 뒤에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 보는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눈을 깜빡였다.

    “아, 아가씨.”

    그런 소녀의 뒤로 어제 보았던 후작 성의 시녀 두 명과 평범한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기사 네 명이 서 있었다.

    바로 소녀의 정체를 눈치챈 공주는 아이 만큼이나 눈을 반짝이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후작님의 동생이구나.”

    “우리 오빠 알아?”

    “그럼 알고말고, 언닌 이 나라의 공주인 실비아라고 해.”

    “공주님?”

    공주란 말에 깜짝 놀라 박수치는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그녀는 당황하는 레이포드를 올려 보며 물었다.

    “영주님의 부모님도 나와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생각해보니 가장 먼저 두 분께 인사를 드려야 하는 건데,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요.”

    *

    “부모님 돌아오셨어요?”

    내 물음에 어째서인지 움찔 놀란 집사가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지, 지금 응접실에 계십니다.”

    “응접실이요?”

    부모님이 응접실이라니 별일이다.

    한평생을 농가에 살아오시던 분들인 만큼, 영주성의 응접실에서 누군가를 대접할 일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낮에 영지민들에게 영양 사탕을 나눠주러 간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때 노라 마을 사람이라도 만나셨나?

    결국 가보면 알겠지란 생각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머뭇거리며 발길을 붙잡는 집사로 인해 의문을 표해야 했다.

    “무슨 일인데요?”

    “실은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공주 전하와 함께 복귀하시어···.”

    와락 인상을 찌푸린 나는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재확인차 집사에게 되물었다.

    “밖에 나가셨던 부모님이 공주님과 함께 돌아오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레이포드 경이 영주님께 공주 전하의 방문 사실을 알리라고 해서 지금 알리려던···.”

    짧게 혀를 찬 나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그런 내 뒤를 따르는 콘스탄틴과 블레이크로 인해, 철커덕거리는 소리가 영주성 복도에 요란히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응접실에 도착했다.

    나는 응접실밖에 서 있는 공주의 기사들과 아르비스 기사단 기사들의 인사를 무시하며 예고 없이 문을 열어 재꼈다.

    까르르.

    문을 열자마자 에리스의 순진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어오고, 나는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실비아 공주와 의아한 표정의 부모님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에리스가 열심히 짧은 다리를 놀리며 달려오자, 나는 언제 짜증을 부렸냐는 듯 웃으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에리스를 허공에 띄워 주곤 그대로 응접실의 상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면목 없습니다.”

    레이포드의 말에 괜찮다며 손을 내젓고는 부모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내 물음에 부모님은 공주란 존재가 부담스러운 듯 힐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내게 답했다.

    “우연히 밖에서 공주전하와 만나서 말이지.”

    “나도 참, 공주님과 함께 다과도 해보네. 그런데 너 왕실과 혼담이 오갔다며? 왜 어미에겐 말하지 않은 거야? 공주님께서 어찌나 에리스를 아껴주시는지 황공해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안 봤는데, 꽤나 영악하지 않으십니까? 제 가족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쓰다니.”

    내 물음에 공주는 어깨를 움츠리고 공주의 기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 하기 위해 나서려 했으나, 콘스탄틴의 기세에 굳어 얼굴색이 파리해졌다.

    아직 자신들의 위치에 대한 감각이 낮은 부모님은 나라님의 딸에게 아들이 이리 모진 말을 할 줄 몰랐는지 헛바람을 삼키셨다.

    “너, 너. 고, 공주님께 무슨 말을 그리하니.”

    어머니는 너무 놀라 내 허벅지를 탁 치며 제지하셨으나, 나의 시선은 오로지 공주에게 향해 있었다.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책임감? 아니면 단순한 폐하의 지시 때문에?”

    “그건···.”

    “무슨 이유라도 최악의 선택을 하셨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감정이 없던 제게 처음으로 분노란 것을 느끼게 해주셨으니.”

    내 비난에 공주는 울상이 되어 ‘이게 아닌데’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는 너무 놀라 비틀거리셨고, 아버지는 영문은 몰라도 나를 존중하는 건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셨다.

    그런데 공중을 떠다니던 에리스가 뜬금없이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오빠 악당?”

    “뭐?”

    “공주님 못살게 굴면 악당인데?”

    맥빠지게 만드는 에리스의 말에 나는 살벌한 분위기에 아무 말도 못 하는 공주와 명령 한마디면 바로 검을 빼 들 것 같은 호위기사들을 보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 굳이 가족 앞에서 이럴 필요는 없지.

    “제가 무례를 저질렀군요.”

    그에 콘스탄틴이 기세를 거둬들이고 공주의 기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뒷걸음질 쳤다.

    영문을 모르는 부모님은 그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죄, 죄송합니다. 후작님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공주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자, 나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됐습니다.”

    “저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닌데···.”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처럼 눈가에 이슬이 그렁그렁 맺혀 변명하는 모습이 보호욕을 자극한다.

    공주는 정말 나와 상극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루시엘라처럼 굳건한 게 낫지.

    나는 옆에서 살벌한 표정으로 제발 그만하라는 눈빛을 쏘아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였다.

    “혹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공주님을 초대한 겁니까?”

    “그래.”

    짧은 아버지의 대답.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공주에게 말했다.

    “부모님께서 초대한 인물을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내 말에 끝내 눈물을 참아낸 공주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그녀도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녀석 때문에 이리 마음고생을 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사과의 의미로 식사라도 함께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화를 내던 내가 식사 권유를 할 거라 생각 못 했는지, 공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름 책임감을 갖고 있지만, 마음이 너무 여려 보인다.

    국왕도 참 못됐지.

    “대신, 식사 이후 왕성으로 돌아가시는 겁니다.”

    “네?”

    “공주님의 목적이 저와 왕실의 마찰은 아닐 것 아닙니까?”

    “······.”

    이게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대우였다.

    “마지막이라도 웃으며 식사를 하고 작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계속 제게 적대적인 감정을 심어 주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결국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알겠어요. 돌아갈게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어딘지 지쳐 보이는 그녀에게 힐을 사용했다.

    “부디 무례를 잊어 주시길 바랍니다.”

    “저야말로.”

    우리 사이의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부모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에리스는 괘씸하게 공주에게 날아갔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공주와 마음에도 없는 담소를 나누어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그녀가 경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집사가 식사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 왔다.

    “가시죠. 키는 제가 더 작지만, 에스코트하겠습니다.”

    그리고 다 같이 식당으로 이동해 길 따란 테이블 끝자락에 모여 앉았다.

    “가, 가족분들이 모두 같은 팔찌를 하고 계시네요?”

    눈앞에 스프가 놓이고 식사가 준비되는 과정에서 우리 가족들이 하나씩 차고 있는 오리하르콘 팔찌를 발견한 공주가 슬며시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네, 뭐.”

    어차피 곧 갈 사람이란 생각에 나는 크게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더욱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거 오리하르콘 아니에요?”

    역시 여자란 건가?

    그녀는 바로 우리가 착용한 게 오리하르콘이라고 알아보았다.

    생긴 것만 봐선 투명한 크리스탈 팔찌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내가 가족에게 겨우 크리스탈을 착용시키겠는가.

    나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놀란 사람은 공주가 아닌 우리 부모님이었다.

    여태 자신들이 착용한 게 오리하르콘이란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과연 왕국 제일의 금력을 지닌 분답네요. 국왕 전하께서도 겨우 반지 하나를 갖고 계실 뿐인데.”

    “이번 국왕 폐하 탄신일에 하나 선물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니. 그러지 마세요.”

    손을 크게 내저은 공주는 숟가락을 들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오리하르콘은 몸에 지닌 것만으로 모든 독과 저주를 막아준다면서요?”

    “피로회복에도 좋은 물건이죠. 마법사와 기사의 수련에도 좋고요.”

    “신기하네요. 단순한 금속이 어찌 그런 힘이 담겨 있는지.”

    원래 이런 성격인 걸까?

    아니면 일부로 내 생각을 바꾸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 걸까.

    아까 내 행동은 잊었는지, 방긋 미소 짓는 모습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그래 봤자 생각이 바뀔 만큼 나는 헤프지 않다.

    “식기 전에 드시죠. 공주님이 식사를 안 하시니, 가족들이 숟가락을 들지 못하네요.”

    “아, 죄송합니다.”

    공주가 스프를 크게 떠서 입에 가져가자 나도 수프를 먹었다.

    식사 때 자주 먹는 크림스프.

    어머니가 해준 것보다 훨씬 맛있지만, 그래도 신기하게 농가에 살던 시절에 먹던 묽은 스튜보다 애정이 가진 않는다.

    “팔찌 반짝!”

    “응?”

    뜬금없는 에리스의 외침에 나는 뭔가 싶어 손목에 걸린 팔찌들을 바라보았고, 새하얀 빛을 내뿜는 오리하르콘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현상에 가족들과 공주가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와, 뭐죠?”

    “저도 잘.”

    공주의 물음에 나도 처음 겪는 현상인지라,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이어서 내 몸에서 검은 연기가 스물스물 빠져나가자, 표정을 굳힌 나는 다급히 마법을 사용했다.

    “큐어 포이즌!”

    식당 전체를 뒤덮는 해독마법의 발현.

    더불어 테이블의 모든 것을 얼린 나는 다급히 공주에게 다가갔다.

    “공주님!”

    “네?”

    갑작스런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의문을 표하던 공주의 입에선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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