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34화 (3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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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감한 걸까?

    아니면 철이 없는 걸까?

    공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첩이란 단어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소속 국가의 공주를 첩으로 부린다니···. 설마 제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합니까?”

    내 직설적인 물음에 공주는 큰 눈을 껌벅거리다가 이내 얼굴을 붉혔다.

    솔직히 공주의 외모는 나쁘지 않다.

    체구는 12살인 나보다 조금 큰 정도로 아담하고, 몸매도 꽤나 남성의 눈길을 받을만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얼굴이 단아하게 예뻐서 화려함의 끝을 달리는 루시엘라와 다른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맛있어 보인다고 낼름 삼키기엔 가시가 많은 존재다.

    “돌아가시죠, 제 대답은 바뀌지 않습니다.”

    나는 길게 생각할 것 없다는 식으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시만요!”

    등 뒤에서 공주가 부르는 소리에 안 보이게 한숨을 내쉰 나는 또 뭐냐는 표정을 지었고, 그녀는 자존심이 상한 듯 입술을 깨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이곳에라도 있게 해주세요. 따로 뭘 바라진 않을 테니까요.”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 계속 골 때리는 제안을 날리는 공주.

    덕분에 살짝 마음이 약해진 나는 허락할까 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의 기대를 배신했다.

    “이 상황에 저의 성에 머물게 되면 공주님의 혼사가 막히지 않습니까? 저는 원치 않은 책임을 지고 싶지 않습니다.”

    단호한 거절이 이어져서인지 공주는 이마를 짚으며 비틀거렸고, 그녀의 기사가 나서며 말했다.

    “후작 각하! 공주 전하께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전형적인 기사의 모습.

    콘스탄틴은 항상 그렇듯 죽고 싶냐는 눈빛을 쏘아 보냈고, 블레이크도 무례한 것은 너희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공주 전하께서 기분이 상했다면 대단히 죄송하지만, 뻔히 목적이 보이는데 그 장단에 어울려 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억지죠.”

    나는 그대로 응접실의 문을 열었고,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집사와 시녀들에게 말했다.

    “공주님 돌아가십니다. 배웅해드리세요.”

    “네···.”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지만, 이 이상 말이 길어지면 말려들 것 같기에 단호하게 행동했다.

    “저는 왕실에 아무런 악감정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이상한 짓만 안 하다면 문제를 벌일 이유도 없죠. 엄한 저를 신경 쓰기보단 주변 사람의 단속이 먼저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공주를 남겨두고 응접실을 나섰다.

    괜히 이걸로 나중에 왕실에서 트집 잡지 않으면 좋으련만.

    나는 다시 집무실로 돌아왔고, 조용히 창밖으로 펼쳐진 영지 개발 풍경을 바라보던 아인트 공작이 어찌 되었냐며 물었다.

    “직접 가보시던가요.”

    “아아, 분위기를 보아하니 지금 공주님을 만나면 눈물이 날 것 같군.”

    하여간 너스레는···.

    이제 좀 친해져서인지 아인트 공작은 가끔 실없는 소리를 했다.

    “그럼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죠.”

    아인트 공작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다시 공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토르말린 말일세. 대체 그게 어떻게 쓰이는 것이길래, 이 난리인 건가?”

    주된 주제는 토르말린에 대한 것.

    아인트 공작은 시달린 게 많은지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마법에 있어 꽤 유용한 광물이란 것을 알아냈죠. 그래서 그렇게 사재기를 했던 거고요.”

    “그거 때문에 위스워드 제국과 칼바도스 제국에서의 압박이 장난 아닐세. 자신들이 매각한 것은 돌려받았으면 좋겠다는군.”

    “그래요?”

    이건 분명 그들도 용도를 알아냈다는 뜻이다.

    내가 알던 것보다 토르말린에 대해 알려진 게 너무 빠르다.

    원래대로라면 3~4년 뒤에나 사용 용도가 밝혀질 텐데.

    혹시 나 때문에 미래가 바뀐 걸까?

    어쩌면 전생의 칼바도스와 위스워드도 이맘때에 토르말린의 용도를 알아챈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처럼 토르말린을 헐값에 사기 위해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마나전지가 유출되고 나서야 토르말린의 가치가 알려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먼저 토르말린을 선점한 바람에 두 제국과 마찰이 생기면서 전생보다 빨리 토르말린의 가치가 알려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에 꼭 따라야 하는 건가요?”

    나는 아인트 공작에게 현실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시세대로 구입한 것이니.”

    “그럼 무시하면 되죠.”

    아인트 공작은 앞으로도 골머리를 꽤나 썩히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발테르의 매장량도 상당한 데다가 시중에 풀린 토르말린을 싹쓸이했다지? 도대체 얼마나 갖고 있는 건가?”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어야 했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정제된 게 수천 톤 단위라고 알고 있습니다.”

    “허···. 그게 대체 얼마지?”

    “저도 모르죠, 나중에 값이 한창 올랐다고 생각될 때, 정리할 생각이거든요.”

    보통의 토르말린도 귀하지만, 더욱 귀한 것은 붉은 토르말린인 루벨라이트다.

    루벨라이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쌀 때 시장에 내놓을 생각이다.

    어차피 쌓아둬서 뭐하나, 쓸 거 쓰고 나머진 파는 게 낫지.

    “자네는 알면 알수록 무섭다니까. 날 꼬드겨줘서 고맙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영주님.”

    그때, 공주를 배웅하라고 했던 집사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공주님은 갔어요?”

    “네, 영주성을 벗어나신 것까진 확인했사오나, 왕성엔 돌아가지 않으시겠답니다.”

    “그게 무슨?”

    “주변에 숙소를 잡아, 매일 인사를 드리러 오겠다는군요.”

    공주가 유비라도 되나?

    이게 무슨 삼고초려야.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끈질기네.

    ***

    위스워드 제국 황실 마탑.

    “대체 연구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야!”

    위스워드 제국의 마르스 공작은 마법성 소속의 7클래스 대마법사 5명을 모아놓고 호통을 쳤다.

    하지만 모두 대답을 못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자, 그는 더욱 진노하며 매직 스태프를 바닥에 쿵 하고 찍었다.

    솨아아!

    대기 중의 마나가 파도처럼 주변으로 뻗어 나가고 그것에 떠밀린 대마법사들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누가 감히 대마법사들을 이리 대접한단 말인가.

    이건 마르스 공작이 8클래스 마법사이기에 가능한 망동이었다.

    마르스 공작은 마법을 숭배하는 위스워드 제국에서 존재 자체가 신화이자 꿈인 존재로, 마법사들에겐 황제 이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나마 마르스 공작이 현 황제의 외할아버지기에 평화가 이어지는 것이지, 만약 그가 다른 세력을 이끌고 황제와 대립했다면 위스워드 제국은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누가 빼돌린 건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나?”

    마르스 공작의 차가운 물음에 5명의 인원 중 유일한 여성 대마법사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며칠 전부터 황실 마탑 소속의 하울드 자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조사했더니, 가족과 함께 칼바도스 제국으로 망명한 정황이 밝혀졌습니다. 아마도 그가···.”

    “그럼 마드세인은?”

    하지만 연거푸 이어진 물음에 그녀는 말을 잃었다.

    그에 나이 지긋한 대마법사가 대신 답했다.

    “마드세인에서 토르말린을 대대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됐지만, 자국 내에서 토르말린의 재고를 끌어모으고 광산을 확충해 대량 채석에 들어간 것이 5개월 전입니다.”

    “뭐?”

    예상치 못한 대답인지 흥분했던 마르스 공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들이 마나석과 토르말린의 결합이라는 우연한 발견에 의해 연구에 들어간 것이 3개월 전이다.

    연구는 마르스 공작이 직접 진두지휘하여 황실도 모를 만큼 아주 은밀하게 이뤄졌다.

    그리고 토르말린을 활용한 마나석의 효율성 확대라는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되었을 때, 마르스 공작은 급히 황실에 토르말린의 대량확보를 부탁했다.

    하지만 그의 부탁에 황실로부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는데, ‘토르말린은 마드세인 왕국이 매점하고 있어, 요청하신 물량을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란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하던가.

    뒷골이 당길 정도였다.

    그래서 마르스 공작은 어떤 간 큰 놈에 의해 완성 직전의 연구결과가 마드세인으로 건너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부하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드세인이 자신들보다 5개월은 빨리 토르말린의 활용방법을 알아냈다는 뜻이 된다.

    “마드세인은 이미 토르말린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정황만 보면 그렇습니다.”

    획기적인 발견이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것은 공교롭지만, 자신들이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미드랜드 최고의 연구개발능력을 보유한 위스워드와 달리 마도공학 후진국인 마드세인은 이 결과를 얻기까지 몇 년이 걸렸을지 모르는 법.

    오히려 칼바도스가 그런 것처럼 위스워드에서 마드세인의 기술을 빼냈다고 오해 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토르말린을 독식한 인물은 마드세인 왕국의 두 번째 대마법사 아르비스 후작입니다.”

    “아르비스 후작이라. 전에도 한 번 들었던 것 같군. 시간 가속을 활용해 수련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한다지?”

    “네, 맞습니다.”

    설마 자신들이 대마법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신출내기에게 물을 먹게 될 줄이야.

    마르스 공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괘씸한 녀석이 아닌가.”

    공작의 진노가 가라앉자, 다른 대마법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을 조사해 보도록. 뭔가 꺼림칙하군.”

    “알겠습니다.”

    아르비스 후작의 이름이 마르스 공작의 머릿속에 각인된 순간이었다.

    “아 그리고 하울드 자작은 처리해. 가족도 같이.”

    ***

    “어때요?”

    새로 만들어진 미스릴 갑옷과 드라켄의 가죽과 드래곤 비늘로 만든 갑옷을 입어본 신입 마스터가 감격한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전에 순수 미스릴 아머와 드래곤스케일 아머를 입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뒤이어 대마법사인 스텔라처럼 유일한 여성 마스터인 메어리가 기분 좋게 외치자 예비 마스터들도 동의했다.

    “생각보다 미스릴 아머의 퀄리티가 좋게 나왔군요? 모양이 저희 것과 똑같은데요?”

    옆에 있던 제논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마법적 처리를 거쳐 모습은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순수강도는 마도시대 물건을 따라가지 못하더군요. 아무래도 제조 과정에 뭔가가 첨부되는 모양입니다.”

    순수 미스릴 아머는 값어치만큼이나 대단한 방어력을 지닌 물건이지만, 마도시대의 미스릴 아머와 강도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물론 급격한 성능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구력과 관통력, 반발력이 2할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마도시대의 장비는 분명 대량생산 제품일 텐데도 이리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것을 보면 세밀한 부분까지 기술 격차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영지의 제련 기술을 높이기 위해 상회에 드워프 노예를 구할 수 있으면 구해 달라고 했는데, 쉽지 않겠죠?”

    “로엘 제국 황실에 드워프 장인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드워프가 노예로 팔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군요.”

    하이랜드의 존재 덕분에 이 종족의 노예는 구경조차 힘든 것이 현실이다.

    척.

    마지막으로 미스릴 롱소드까지 마법 검과 교차해 걸치자 새로 영입된 기사 4명도 제논들과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다.

    한 명이 몸에 걸치고 있는 미스릴의 양만 해도, 백작령의 일 년 예산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거기에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드래곤 스케일 아머와 마법 검까지 있으니, 기사들이 연신 송구하단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했다.

    마법사들은 드라켄의 가죽을 얇게 가공하여 만든 로브와 드래곤 레어에서 얻은 미스릴 실로 만들어진 로브가 제공되었다.

    “그러고 보니 마법검과 매직 스펠 브레슬릿을 마음껏 써본 적이 없죠?”

    “네!”

    새 장비를 얻고 나면 응당 써보고 싶은 법.

    눈빛을 반짝이는 그들에게 씨익 웃어 보인 나는 그들과 함께 몬스터 사냥을 떠나기로 했다.

    제논에게 영주성을 맡긴 나는 새로운 호위기사와 마법사들을 데리고 몬스터가 득실대는 ‘악마의 숲’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트롤이라니 검을 휘두를 맛이 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린 악마의 숲을 초토화시키며 점점 안으로 들어갔다.

    “와이번 떼입니다!”

    나는 여기사의 외침에 마침 잘 됐다며, 그동안 연구를 통해 얻게 된 성과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마법사들의 마법사용을 제지한 나는 묵직한 기운이 꿈틀대는 코어의 마력을 운용했다.

    “썬더 스톰.”

    그리고 7개의 써클의 보조가 더해지니 룬문자가 눈앞에 떠오르고, 아무런 낌새 없이 하늘에서 벼락 폭풍이 휘몰아쳤다.

    “하핫!”

    내가 신이 나서 웃음을 터뜨리자, 주위에 있던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마법을 캐스팅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마나 수집 과정을 생략한 것이다.

    마법은 대기 중의 마나를 수집하여 발현되는데, 나는 이미 충분한 마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마법을 준비하고 발현되는 것이 메모라이즈 수준으로 빨랐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거의 ‘노 캐스팅’이라 봐도 될 정도.

    또한 마법의 발현을 예고하는 마법진의 존재가 없어 기습에도 아주 좋을 것 같았다.

    “아이시클 레인. 아이스 스톰.”

    내가 연이어 대마법을 사용하자, 하늘엔 헬게이트가 열리며 와이번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내렸다.

    부하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악마의 숲에 와놓고 가장 신난 사람이 바로 나였다.

    마지막 한 마리를 간단한 마력 방출로 쓰러뜨린 나는 상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 흥분했네요. 볼만 하던가요?”

    그에 질린 표정을 지은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능력이면 거의 언령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

    분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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