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33화 (3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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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비스 후작의 숨겨진 힘은 제논만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제노아드 공작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이후 마드세인 국왕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폐하, 지금이라도 아르비스 후작의 정체를 밝혀내야 합니다. 만약 그가 엉뚱한 짓을 벌인다면 마드세인은 외세가 아닌 안에서부터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음···.”

    국왕의 개인 서재.

    함께 자리한 3공작 중 카르디아 공작의 주장에 국왕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옆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노아드 공작도 같은 생각인가?”

    그에 제노아드 공작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아르비스 후작을 악당 취급해선 곤란하지만, 그의 생각과 세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곤란하게 되었군.”

    제노아드 공작까지 그리 말하니 국왕은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절대 쓸데없이 남을 모함할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는 반대입니다. 왕실에서 영지 조사가 들어가는 순간, 아르비스 후작과의 관계는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그냥 끝이죠.”

    그런데 이 이야기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 아인트 공작이 단호하게 반대를 하고 나서자 국왕은 더욱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찬성 둘, 반대 하나.

    국왕은 중립이긴 하나 첫 만남을 떠올리면 왠지 후작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사람의 심성을 첫인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그래도 자꾸 괜한 사람을 잡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인트 공작, 누가 보면 아르비스 후작의 대변인인 줄 알겠네. 왜 그렇게 그를 감싸고 도는 것인가?”

    카르디아 공작의 날 선 물음에 아인트 공작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마나의 언약을 잊었는가? 그는 우리의 적이 아니네, 이건 대단히 무례한 행동이야.”

    아인트 공작의 이야기의 제노아드 공작은 미간을 좁혔다.

    그도 마나의 언약을 떠올리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리가 너무 마나의 언약을 맹신하고 있는데, 그것도 속임수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둘 필요가 있네.”

    카이트 백작의 작위식 이후로 아르비스 후작에게 더욱 적대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카르디아 공작이었다.

    아인트 공작은 두 공작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나보다는 마스터와 대마법사인 자네들이 더 잘 알겠지. 그게 정말 거짓된 마나의 언약이라 생각하는가?”

    답을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아인트 공작이 언성을 높였다.

    “왜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한가. 아르비스 후작이 적이 아님을 알고 있는데, 왜 굳이 그를 적으로 못 만들어 안달이냔 말이야!”

    “그래도 이대로 두기엔 너무 찜찜한···.”

    “나는 아르비스 후작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네. 분명한 것은 그는 우리의 적이 아니고, 그의 경계심은 칼바도스에 향하고 있으니!”

    항상 냉소적인 아인트 공작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리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덕분에 두 공작은 크게 당황했고, 국왕도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거 아는가? 자네들이 그리 경계하는 아르비스 후작 덕분에 마드세인 왕국은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귀족들이 아르비스 후작의 면세 혜택에 반발하고 있지만, 그가 아끼지 않고 돈을 푼 덕분에 세수입이 작년보다 5할이나 늘었네.”

    아직 공표하지 않은 사실인지라 두 사람은 알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카르디아 공작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고, 제노아드 공작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헬리온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면서 유례없는 요새 중축공사가 벌어지고 있지. 아마 예정대로 완공이 된다면, 헬리온 요새는 지금보다 10배 이상은 견고해질 거네. 국경을 보강하기 위해 사비를 터는 귀족이 그 말고 또 누가 있지? 왕실이 나서서 해야 할 일을 그가 혼자 해내고 있지 않은가.”

    “······.”

    “카르디아 공작, 자넨 카이트 백작을 후작에게서 떼어 놓지 못해 분한 모양이네만, 아르비스 후작 덕분에 왕국의 최전선은 더욱 굳건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네.”

    아인트 공작은 서늘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나라에서 자신을 의심하며 조사를 벌인다면 그는 어떤 기분일까? 나라면 없던 악의도 생길 것 같은데? 그 상황이 더 위험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가?”

    국왕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인트 공작이 결정을 종용하듯 자신을 바라보자, 마침내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트 공작의 말이 맞다.”

    “폐하!”

    “두 공작의 의견도 납득이 되지만, 아인트 공작의 말이 더 크게 와 닿는군. 아르비스 후작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없다. 세금 문제도 분명 내가 허락한 것이고, 그것을 이용한다고 뭐라 할 수도 없지.”

    이어서 국왕이 선언하듯 말했다.

    “아르비스 후작령에 대한 영지 조사는 하지 않겠다.”

    아인트 공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눈이 돌아간 카르디아 공작은 여전히 인정을 못 하는 눈치였으나, 제노아드 공작은 내키지 않아도 국왕의 명령에 따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인트 공작은 결코 아르비스 후작의 편을 든 게 아니다.

    이는 나라를 위해 영지 조사를 반대한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 아르비스 후작과 적대한다면, 왕권 교체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었다.

    그나마 아르비스 후작이 왕권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지, 그가 마음만 먹으면 왕실을 뒤엎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인트 공작에게 목숨을 빚진 것이다.

    스윽

    아인트 공작은 카르디아 공작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아르비스 후작이 다른 마음을 먹게 된다면 카르디아 공작이 그 원인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지금 그는 더 이상 아인트 공작이 알던 정적이 아니다.

    질투에 눈이 먼 멍청이일 뿐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처리하는 것이 왕실과 나라의 안위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덕분에 아인트 공작의 눈빛엔 냉기가 감돌았고, 그런 아인트 공작을 제노아드 공작이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대로 아무 조치 없이 손을 떼기엔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대로 결말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국왕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아르비스 후작에게 공주를 보내도록 하지.”

    전혀 예상치 못한 결정에 아인트 공작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너무 원색적인 방법이라 쓰지 않으려 했지만, 선택지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군.”

    아인트 공작은 속으로 괜한 짓 말라고 소리쳐야 했다.

    ***

    “네? 누가 왔다고요?”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귓구멍을 파며 되물었다.

    “고, 공주 전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집사의 대답에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마드세인 왕국의 공주님이요?”

    “그렇습니다. 실비아 데 마드세인 공주님께서 방문해 주셨습니다.”

    이게 뭔 개소리냐며 집무실 소파에 앉아있는 아인트 공작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슬며시 내 시선을 피할 뿐 뭐라 답을 하지 않았다.

    “일단 응접실로 모셨습니다.”

    혀를 찬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답했다.

    “회의 중이니까 10분만 기다리라고 하세요.”

    설마 공주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전하라고 시킬 줄은 몰랐는지, 그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러나 콘스탄틴이 턱짓을 하자, 고개를 숙인 집사는 조용히 집무실을 나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애써 덤덤한 척 차를 마시던 아인트 공작은 괜히 헛기침을 했다.

    “안 그래도 말하려 했는데, 국왕폐하께서 자네와 혈연관계를 맺고 싶어 하시네. 실비아 공주님이라면 아직 나이가 16살로 어리나 미색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분인데 어떤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나는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전 이미 마누라 삼을 사람 숨겨놨어요. 됐습니다.”

    “뭐?”

    이번엔 공작은 내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 모습을 보였다.

    “농담 아닌데요?”

    “그 모습으로 연애를 한다고? 혹여 상대 어린아이인가?”

    “실례네요. 아직 상대가 마음을 안 열긴 했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눈독을 들일법 한 엄청난 미녀라고요.”

    “음···.”

    “그리고 폐하의 생각을 모를 줄 알고요? 저한테 공주님 붙여 놓고 감시하겠다는 거잖아요.”

    내 말을 부정하진 못하겠는지, 아인트 공작은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정략혼이라니, 역시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권력사회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게 다 자네가 폐하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그런 것 아닌가.”

    나는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웬일로 영지 조사를 안 하나 했더니, 이런 귀찮은 짓을···. 전 확실하게 거절할 겁니다.”

    “뭐, 자네가 그렇다면 막을 수 없지. 대신 예의는 지켜주게.”

    “봐서요.”

    아인트 공작도 애초에 큰 기대를 안 했는지, 불필요한 설득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콘스탄틴과 블레이크를 대동하여 응접실로 향했다.

    ***

    ‘미안하지만 네가 왕실을 위해 아르비스 후작에게 가줘야겠다.’

    마드세인 왕국의 2왕녀인 실비아는 언젠가 때가 올 것이라고 각오는 했지만, 너무도 빨리 찾아온 혼약 이야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르비스 후작이라면 겨우 반년 전에 귀족이 되었다는 인물이 아닌가.

    자신이 철이 없다고 해도 이건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절대 그를 우습게 보아선 안 된다. 그의 세력은 왕국에서 가장 크면 컸지 작지 않을 거다. 내가 너를 이렇게 보내는 것도 그를 회유하기 위함이 아닌, 감시의 일환이니 네가 앞으로 많은 노력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왕실에서 애지중지 크다 보니, 밖의 상황에 대해 어두운 그녀였다.

    하지만 그래도 국왕의 이야기는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귀족이 되고 반년 만에 왕국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갖게 되었다니, 상식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왕국의 두 번째 마스터인 카이트 백작이 주군으로 모신다는 이야기와 돈이 줄줄 흐르는 아르비스 영지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지 곳곳에 막대한 자재를 실은 마차와 마도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고,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거대한 공사에 영지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더구나 마탑과 영주성이 들어설 것이라며 보여준 현장은 왕성에 버금가는 크기여서 아르비스 후작의 금력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공사가 4개 지역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이곳 발테르 시와 다리우스 시, 록스터 시와, 카이트 백작령의 헬리온 요새까지 대대적인 공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사의 규모가 워낙 커서 자체 영지 인력만으로 진행이 어려워 주변 영지에서 인력을 수입해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공사 자금이 모두 다리우스의 미스릴 광산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고요?”

    국왕이 내린 면세 혜택을 악용해 미스릴을 마구 채취하고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정세에 어두운 그녀라도 알고 있는 이야기.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게, 확실치는 않습니다.”

    “무슨 말이죠?”

    “아르비스 상단에서 많은 양의 미스릴을 유통하고 있지만, 그것은 생산량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양입니다. 아무래도 대부분이 영주의 금고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네? 그럼 그 큰 공사의 자금은 뭐로 지급하는 데요?”

    “황금입니다. 그래서 상계에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후작께서 미스릴 광산 따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엄청난 재산이 있는 것 아니냐고요.”

    알면 알수록 수수께기인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하긴 그러니 국왕을 비롯해 카르디아 공작과 제노아드 공작까지 견제하고 있는 것이겠지.

    덕분에 아르비스 후작에 대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똑똑.

    “공주 전하, 아르비스 후작입니다.”

    때마침 등장한 당사자.

    그녀는 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단아하게 답했다.

    “네.”

    벌컥.

    응접실의 문이 열리고, 한눈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기사들과 함께 무표정한 미소년이 응접실로 들어섰다.

    아르비스 후작은 이야기로 들은 것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매우 기이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키도 자신보다 작고 겉모습은 영락없는 소년이지만, 상대를 찍어누르는 듯한 위압감은 결코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국왕과 3공작을 마주하면서도 느껴본 적 없는 긴장감에 그녀는 절로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이, 이분께서는 마드세인 왕국의 2왕녀 실비아 데···.”

    “자기소개는 관두도록 하죠, 서로의 이름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공주의 기사인 체이슨 자작은 무안한 듯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났다.

    “솔직히 기별 없이 찾아오셔서 굉장히 당혹스럽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르비스 후작은 자리에 털썩 앉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알고 있으니, 공주 전하께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시는 일이 없도록 제가 먼저 말씀드리죠.”

    “네?”

    “왕실의 제안을 거절하겠습니다. 저는 마음에 둔 여인이 있습니다.”

    쿵!

    ‘꼭 그와 이어져야 한다. 자칫 그로 인해 나라가 흔들릴 수도 있으니.’

    그건 사람들의 칭찬과 호감 속에 살아오던 그녀가 처음 받아보는 일방적인 거절이었다.

    당황한 공주는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 쉬이 말을 내뱉지 못했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표정에 변화가 없는 아르비스 후작은 그런 공주를 똑바로 응시하며 이어질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 태도가 더욱 야속하게 느껴졌다.

    “저, 저도 말해도 될까요.”

    애써 마음을 추스른 공주의 말에 후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시지요.”

    이런 식으로 거절 받고 끝이라니,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공주는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

    “저는 꼭 아르비스 후작님의 곁에 있고 싶습니다.”

    자존심을 버린 공주의 이야기는 아르비스 후작을 비롯해 응접실의 모두를 당황케 했다.

    *

    아르비스 후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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