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32화 (3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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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치 부근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

    나는 무사히 몸 안에 자리를 잡은 드라켄의 마력을 운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습니까?”

    스텔라가 공손하게 다가와 내게 옷을 건네며 물었다.

    “괜찮네요. 이걸 어떤 식으로 써먹을지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이 정도의 마력이면 용도는 많을 것 같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쉽게 나는 8클래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금 내 상태는 8클래스에 한발 걸치고 있는 상태로 계기만 있다면 충분히 벽을 넘을 수 있는 상황이다.

    분명 8클래스에 대한 요지는 알고 있는데, 대체 뭐가 부족한 걸까?

    앞으로는 수련이나 연구보다 개인 명상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듯하다.

    나는 운용하던 코어의 마력을 손끝으로 모았다.

    “기사들이 오러를 운용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듯합니다. 오러는 마나보다 컨트롤하기 힘들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요?”

    나는 손끝에 모인 마력을 창문 밖으로 방출했다.

    새액!

    “어?”

    그런데 방출된 마력을 보던 나와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는데, 손끝을 떠난 마력이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며 직선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기세와 속도가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뭐죠?”

    나는 당황하며 다른 대마법사들에게 물었고, 그들도 신기하단 표정을 지으며 턱을 집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마나와 성질이 달라서 환원되기까지 오래 걸리는 모양입니다.”

    헤르만의 대답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마법이라는 건 마법사가 체내에 보유하고 있는 마력만으로 발현하는 것이 아니다.

    마법사의 서클은 촉매제 또는 조종장치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고, 마법 발현에 필요한 에너지는 대기 중에 있는 마나를 수집하여 사용한다.

    때문에 클래스가 높은 마법일수록 수식도 복잡하지만 수집해야 하는 마나의 양이 많아져 마법진의 크기가 점점 거대화되는 것이다.

    마법은 기본적으로 지속성과 단발성으로 나뉘는데, 지속성은 말 그대로 내가 끝까지 서클을 이용하여 컨트롤을 하는 것을 말하고, 단발성은 마법을 쓰고 별도의 컨트롤이 추가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단발성 마법은 발현 이후 어느 순간부터는 손실이 일어나고, 마법이 위력이 줄어들다가 결국엔 소멸해 버린다.

    우린 이것을 마법이 마나로 ‘환원되었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내가 가슴에 품고 있는 마력 코어는 오러처럼 체내에 축적된 것이고 성질도 대기 중의 마나와 비슷하면서 조금은 달랐다.

    성질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일반적인 마나가 아주 옅은 푸른색이라면, 코어의 마나는 아주 짙은 붉은 색이라 할 수 있다.

    헤르만의 이야기는 코어의 마력은 대기 중의 마나와 성질이 달라서 환원되기까지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다시 코어의 마력을 손끝에 집중시켜 유형화시킨 다음 유입을 끊어보았다.

    “오, 진짜네.”

    내 손끝에서 일렁이던 붉은 기운이 지속적인 마력의 유입이 없음에도 형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약 1분이 지나서부터 위력이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2분 후 완전히 형태가 사라졌다.

    보통 단발성 마법은 15초부터 위력이 약해져 30초 이내에 사라져 버리니, 지속시간이 4배 이상 길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건 가공되지 않은 에너지 그 자체인 만큼, 추가로 가공을 거친다면 유지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아무래도 위력을 실험해 봐야겠어요.”

    나는 바로 한적한 산속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대마법사들이 자신들도 따라가겠다며 나서는 통에 다 함께 이동해야 했다.

    발테르 시 외곽의 돌산을 앞에 둔 나는 우선 적은 양의 마력을 손끝에 모아 방출했다.

    퍽!

    “오오.”

    마치 ‘나이스 샷!’을 외쳐야 할 것 같은 부하들의 감탄사가 이어지고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주 적은 양이지만, 위력이 2클래스의 파이어 애로우보다 높은 것 같다.

    더구나 이건 딜레이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기에 아주 훌륭한 무기라 할 수 있다.

    “완전 프리저네.”

    “네?”

    “아, 아닙니다.”

    이번에 마력의 양을 늘려 손 전체로 방출했다.

    쿵!

    그랬더니 4클래스급의 파괴력이 나왔다.

    “허···.”

    마지막으로 마력의 양을 조절하지 않고 그대로 쏟아부으니 돌산에 큼지막한 터널이 생겼다.

    “6클래스의 레이저 캐논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대 마법사들이 감탄사를 터뜨리며 박수쳤고, 나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대단합니다. 이 정도면 7클래스 마법사 2명이 동시에 덤벼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단순 방출일 뿐이니, 마법과 결합 시킬 수 있다면 엄청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확실히 별도의 캐스팅 없이 이 정도 위력이면, 대마법사 이하의 존재에겐 재앙이라 할 수 있겠다.

    아니, 대마법사라 해도 방심하는 순간 골로 갈 수 있는 수준.

    하지만 8클래스 마법사와 비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동급 마법사 중엔 적수가 없겠지만, 8클래스의 위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

    8클래스의 대표 공격마법인 헬파이어는 성하나 정돈 가볍게 날리는 위력이라 하지 않던가.

    그런데 내가 이 상태에서 8클래스에 오른다면?

    아마 마법사 중에 최고의 전투력을 가졌다고 평가해도 되는 게 아닐까?

    비록 서클을 올리지 못했지만, 경지를 확 끌어올려 8클래스를 문전에 두게 됐고, 비장의 무기까지 손에 넣었으니 어느 정도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드라켄 급의 마나 코어 말고도 내부에 마력을 생성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확실히 그것도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만약 위력은 낮더라도 마나 코어를 가질 수만 있다면, 마법사들에게 엄청난 힘이······.”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표정들을 지었다.

    *

    드라켄의 코어 이식으로 어수선했던 상황이 정리되니, 블레이크가 별실에 묵고 있던 7명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아르비스 후작 각하를 평생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이어지는 충성 맹세.

    어째서인지 모두 나를 우러러보는 것 같다.

    당연히 이유를 모르는 나는 맹세를 받아들이며 블레이크를 바라보았고,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세 분이 벽을 넘고, 네 분은 아직 벽을 넘지 못했군요.”

    벽을 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면목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 계기만 있다면 충분히 벽을 넘을 수 있을 테니까요.”

    내 위로에 그들은 강렬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한동안 준 남작의 작위로 살아가야 할 겁니다. 머지않아 반드시 여러분의 능력에 맞는 위치를 만들어 드릴 테니, 잠시만 참아주세요.”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니죠. 아, 혹시 무기는 어떤 걸 씁니까?”

    나는 그들에게 벽을 넘은 사람과 넘지 못한 사람의 차별을 두지 않고, 드래곤의 레어에서 얻은 무기를 한 자루씩 꺼내 건네주었다.

    의아해하는 그들은 검을 뽑아 들고 하나같이 놀란 모습을 보였는데, 기사들보단 옆에 있던 마법사들이 검에 새겨진 마법들을 보며 경악했다.

    “이건!?”

    “제국의 웬만한 국보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명검이죠.”

    이어서 마법사들에게 매직스태프 역할을 하는 ‘매직 스펠 브레슬릿’을 건넸다.

    “이거 참, 놀라움의 연속이군요···.”

    레어에서 얻은 검은 아직 여유가 있지만, 이제 다음부터 올 마법사들에게 줄 건 2개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래도 ‘매직 스펠 브레슬릿’을 대신할 무기를 미리 만들어 놔야겠다.

    그리고 마도서는 유적에 7클래스까지 사본이 있으니, 신규 마법사들은 그걸로 마법을 익히면 된다.

    “아르비스 기사단의 갑옷과 검, 아르비스 마탑의 로브는 빠른 시일 내로 제작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게 당장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군요.”

    그러면서 열 돈짜리 오리하르콘 팔찌를 하나씩 건네니, 의문을 표하던 이들은 그것이 무언인지 알아채고 비명을 지르듯 헛바람을 삼켰다.

    “이, 이건 못 받습니다!”

    “세상에···.”

    오리하르콘 팔찌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해봤자 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건 제 최측근인 기사와 마법사임을 증명하는 물건입니다. 그래도 안 받을 겁니까?”

    블레이크가 손에 차고 있는 오리하르콘 팔찌를 보여주자, 그들은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더 이상 못 받는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대륙 최고의 대우를 자랑하는 아르비스 후작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

    12. 아르비스 후작

    마드세인 왕국의 10대 상단 중 하나이던 다리우스 상회는 다리우스 백작령이 아르비스 후작령에 편입되면서 아르비스 상회로 이름을 바꿨다.

    주인인 아르비스 후작이 왕국에서 독보적인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는 실세인 만큼, 아르비스 상단도 나날이 규모를 키워가고 있었다.

    다리우스 상단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곡물 거래가 주요 활동이었다면, 아르비스 상회에서 곡물은 그저 많은 거래 품목 중 하나일 뿐이다.

    주인이 바뀐 상단의 주요 거래 품목은 무려 미스릴.

    그뿐인가?

    록스터 영지에서 양질의 철광석을 생산하고, 영지 개발 붐으로 막대한 자재 수입이 상단을 통해 이뤄지면서 단 5개월 만에 왕국 제일 상단이란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아르비스 후작은 국왕의 면세 혜택을 이용하여 미스릴을 마구 채취하고 있으며, 최근 왕국에서 발생한 물류 이동의 7할이 아르비스 후작에 의한 것인 만큼 운영되는 자금이 작은 왕국의 상단 수준이 아니었다.

    제국의 제일 상단이 이 만큼의 돈을 움직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어마어마한 돈을 운용하고 있는 아르비스 상단이었다.

    “뭐? 청혈초를 대량으로?”

    “그렇습니다. 각하께서 청혈초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확보해서 말려 놓으라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의 양을?”

    “최대한이요.”

    “또 그런 애매한 말씀을···.”

    “후작각하의 뜻입니다. 분명 이유가 있겠죠. 다만 시중에 풀린 것을 사들이는 것만으로 해결될 양이 아닐 겁니다.”

    “후, 그렇다면 재배도 해야겠네.”

    “그편이 낫겠죠.”

    아르비스 상회의 회장은 주인의 능력을 나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후작이 길을 제시해 주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 이득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안목은 후작이 상인을 해도 대성했을 거라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가끔 아르비스 후작으로부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지시가 내려올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 같은 경우였다.

    토르말린을 최대한 확보하란 지시도 그렇고 느닷없이 청혈초를 또 대량으로 확보하란 지시가 내려오자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그런데 누구의 명령인데 감히 거부하겠는가.

    상회의 회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최선을 다해 이행하는 것뿐이었다.

    “그럼 고생하시지요.”

    “그래, 자네도 수고가 많아.”

    젊은 행정관이 상회 사무실을 나서자 홀로 남게 된 회장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청혈초라···.”

    청혈초라면 푸른색의 피를 가진 풀이란 뜻인데, 상처소독에 널리 사용되며, 찬 기운을 갖고 있어 고열에 효과가 있는 약초이다.

    로이아스 대륙 전역에서 발견되는 풀로 약초 중엔 제법 흔해서 값이 싼 약초였다.

    그런데 그것을 모으라니, 뭐에 쓰려는 걸까?

    더구나 최대한 확보하라는 것은 행정관의 말대로 시중에 유통되는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닐 것이다.

    “회장님!”

    덜컥!

    “뭔데 난리야?”

    노크도 없이 개인실에 들이닥친 부하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린 회장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칼바도스 제국와 위스워드 제국에서 토르말린의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더구나 저희보다 비싼 가격에 토르말린을 매입하고 있어서, 하루 사이 가격이 3배 넘게 올랐어요.”

    “뭐?”

    “위스워드에서 먼저 토르말린의 수출금지 명령이 내려왔는데, 바로 다음 날에 칼바도스에서도 같은 지시가 내려와 토르말린을 판매하던 국가들이 모두 눈치를 보며 물량을 안 풀고 있습니다.”

    토르말린이라면 자신이 하찮게 여기고 창고에 쌓여 있는 그 물건이 아닌가?

    도무지 후작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린 게 조금 전의 일인데, 이건 바보라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인데?”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 제국의 황실이 나서는 바람에 가격은 지금도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상회의 회장은 소름 돋는 게 느껴졌다.

    자신들의 주인은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것일까?

    아르비스 후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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