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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31화 (3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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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드립니다. 그것을 이용하면 더 앞으로 나아가실 수 있겠군요.”

    이건 결코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내가 쥐고 있는 코어에 눈독을 들이지 않고, 순수하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왔다.

    꾸민 행동이 아닌, 진심이 전해져왔다.

    “모두의 노고를 독식하게 돼서 미안할 뿐입니다.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들에게 벽을 넘을 계기를 제공한 게 어느 정도의 은혜인지 모르겠으나, 덕분에 미안한 감정을 덜 수 있었다.

    “저희 또한 주군의 것. 일일이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저희는 이제 겨우 벽을 넘었을 뿐입니다. 다음 경지를 노린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주군께서 노리는 것이 당연하죠.”

    고개를 끄덕인 나는 코어를 아공간에 넣었다.

    오늘 우리가 이 변종 히드라를 잡기 위해 굳이 알카드 왕국까지 온 이유가 바로 이 드라켄의 심장을 얻기 위해서였다.

    즉, 그들이 이렇게 고생한 이유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란 뜻이다.

    현재 나의 경지는 7클래스 중반 정도.

    원래부터 갖고 있던 재능인지 아니면 트레이닝 캡슐에 의한 후천적 재능인지는 몰라도 나는 차근차근 다음 클래스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상태였다.

    벽을 넘고 난 뒤 정체하는 마법사들을 생각하면 축복받은 현상이다.

    하지만 그 상태로 평범하게 마법을 수련하면 8클래스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노력만으로 8클래스가 될 수 있으면, 미드랜드에 8클래스 대마법사가 단 2명뿐이진 않았겠지.

    나는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만큼 강해지기 위해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빠르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 열심히 머리를 굴렸고, 그러다가 전생에 위스워드 제국에서 잡아낸 네임드 히드라 드라켄을 떠올리게 되었다.

    로이아스 대륙은 워낙 에너지가 충만한 세상인지라 가끔 규격을 벗어난 네임드의 변종들이 탄생한다.

    더구나 히드라는 마수형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녀석이기에 드라켄을 준 드래곤급으로 칭하는 것도 과장이 아니었다.

    드라켄의 심장은 어린 드래곤 심장이라며 팔아도 누구나 속을 엄청난 물건이었다.

    그것을 이용하면 어쩌면 단번에 8서클의 벽을 넘을 수도 있고, 벽을 못 넘는다 해도 나는 방대한 마력을 얻게 되니 일반적인 7클래스와 규격을 달리할 것이다.

    “이 녀석의 사체를 이용하면 대단한 장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렇네요.”

    드라켄의 방어력은 오러블레이드와 6클래스의 상급 마법이 아니라면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힘든 수준이었다.

    분명 가죽에 비늘을 덧대서 갑옷을 만든다면 강철보다 방어력이 높고 가벼운 데다가 활동적인 방어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녀석의 신체 중 가장 단단했던 송곳니는 오러블레이드가 실린 검조차 씹을 정도였는데, 미스릴에 비견되는 강도를 갖고 있었다.

    더구나 녀석의 송곳니가 워낙 거대하고 많아서 검을 만들면 족히 천 자루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드라켄의 사체는 드래곤 부산물의 하위 호환 버전이라 볼 수 있겠다.

    이걸로 기사단을 무장시키면 그 모양새가 꽤나 멋질 것 같다.

    “여러분도 가죽 갑옷을 하나 정도 갖고 있는 게 어때요? 이 가죽에 예전에 얻은 드래곤 비늘을 덧대서 갑옷을 만들면 방어력이 엄청 날 텐데.”

    “오, 그거 좋지요. 당연히 기사들은 뛰어난 장비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드래곤의 부산물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건 앞으로 마스터급의 초인들과 마스터를 앞둔 인물들의 장비를 만들 때 사용하려고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주군을 따르길 잘한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재밌는 경험을 많이 하네요. 젊은 시절의 모험심이 되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제논의 너스레에 나는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앞으로도 재밌는 일이 많을 겁니다.”

    드라켄의 사체가 워낙 거대한지라, 우린 텔레포트로 몇 차례에 걸쳐 왕복해야 했다.

    *

    “충성!”

    영지에 몇 안 되는 여기사들이 지키는 큼지막한 방문.

    평기사의 입장에서 나는 하늘 위의 존재인지라, 다가온 것만으로 크게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산책은요?”

    “식사 후, 약 1시간에 걸쳐 영주님의 개인 정원을 산책했습니다!”

    내 물음에 여기사들은 군기 있는 모습으로 대답을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간단히 복장을 정리한 후, 그대로 방문을 열었다.

    화아악!

    분명 영주성 지하에 있는 밀폐된 곳임에도, 방문을 여는 순간 마치 숲속에 온 것처럼 강한 풀 내음이 풍겨왔다.

    마치 내 방처럼 거리낌 없이 안으로 들어서니, 하늘색 머리카락과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진 절세의 미인이 방안을 가득 채운 식물을 가꾸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방안 천장을 뒤덮는 꽤 큰 규모의 나무로 결코 방에 있을 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또한, 방을 개조하여 바닥엔 융단 대신 잔디가 깔려있고, 한구석엔 비싸기로 유명한 꽃들이 피어있다.

    아마 중앙에 침대가 놓여 있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이곳이 침실이란 생각을 못 할 것이다.

    “신기하네요. 엘프의 손이 닿는 것만으로 햇빛이 없는 곳에서 식물이 이리 잘 자라다니.”

    나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고, 원래라면 항상 내 옆을 지킬 콘스탄틴은 방문을 닫아주며 밖에서 대기했다.

    루시엘라와 둘만이 남은 방안은 곧 침묵에 물들었다.

    며칠 사이 익숙해진 상황이라 나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아, 잠자코 루시엘라가 식물을 가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또 심문할 생각이야?”

    드디어 내게 향하는 에메랄드 빛 눈동자.

    이곳에 갇힌 지 2주일이 지나 평온을 되찾은 그녀의 눈동자는 잔잔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나는 내 옆자리를 툭툭 치며 앉으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그녀는 미간을 좁히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콘스탄틴이 있었다면 분명 검에 손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위치였으나,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루시엘라의 몸 상태에 대해선 내가 오히려 그녀 자신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아뇨, 더 이상 심문은 없습니다.”

    내 말이 의외였을까?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문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예요?”

    “네가 자꾸 여우처럼 반응 살피면서 진실을 알아내 가니까.”

    이렇게 말하고 있으면, 누가 그녀를 포로라 생각하겠는가.

    그냥 평범하게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대화 같다.

    하지만 나는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고, 누군가의 화를 돋우는 덴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어차피 그 하프엘프가 전부 불었어요. 지금 제 부하가 되라는 작업 중인데, 거의 다 넘어왔습니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이야기에 그녀의 인상이 다시금 찌푸려졌다.

    “설마, 그를 고문한 건 아니겠지?”

    “아무것도 안 했다곤 할 순 없지만, 그의 인격을 짓밟거나 고통을 주진 않았으니, 걱정 마시죠.”

    우리 쪽엔 대마법사가 넷이나 되는지라 굳이 야만적인 방법을 거치지 않아도, 시간만 있다면 상대의 비밀을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것보다 놀랐네요, 하이랜드에서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을 줄은···.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입니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마도 병기들을 줄줄 꺼내놨으면, 엘프들의 표적이 되었을 테니까요. 정말 루시엘라님은 여러모로 제게 도움이 되는 분이네요. 제게 잡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비꼬는 말투가 되어버린다.

    나 혹시 악당 체질인 걸까?

    내 말에 그녀는 짧게 혀를 차며 물었다.

    “굳이 내 신경 긁겠다고 이렇게 앉아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렇게 사람이 꼬인 거지?”

    지극히 맞는 말.

    굳이 반감을 사는 말을 해서 점수를 깎아 먹을 필요는 없지.

    미녀를 싫어하는 남자가 어딨겠는가.

    내가 아무리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내용물은 아저씬데.

    더구나 그녀는 첫인상만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엘프였다.

    오히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큰 게 사실이다.

    한참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항복을 표했다.

    “좋아요. 쓸데 없이 신경 긁는 말은 관두기로 하죠.”

    “그래, 잘 생각했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를 바라보며 기습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셨어요?”

    “뭘?”

    “마나의 언약과 피의 족쇄 말이죠. 제게 충성을 맹세하면 언제든지 산책할 수 있는 창문 있는 방에 더 강해질 수 있는 계기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안 해.”

    반응을 살필 필요 없는 즉답.

    “뭐, 예상했던 반응이네요. 그래서 이번엔 한 가지 다른 제안을 또 들고 왔는데, 들어 보실래요?”

    다른 제안이란 것에 그녀는 아닌 척하면서도 관심을 보였다.

    “엘프는 반려가 된 사람을 절대 배신 못 한다면서요?”

    “······.”

    그녀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진심으로 하는 소린데.

    *

    “그럼 시작할까요?”

    내가 드라켄의 코어를 꺼내 들며, 대마법사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하나같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벽을 넘기 위해 리치가 되려 했던 헤르만과 골렘의 장인인 엠브리오, 마녀란 칭호를 가진 우리 진영의 유일한 여성 초인 스텔라까지.

    어느 왕국을 가더라도 왕실 마탑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검증도 끝냈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지금부터 이 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드라켄의 코어에 깃든 막대한 마나를 흡수할 생각이다.

    이 막대한 마나가 계기가 되어 다음 서클이 열리면 좋겠지만, 만약 실패한다고 해도 몸 안에 코어를 만들게 될 테니, 일반 7클래스의 대마법사와 완전히 규격을 달리할 것이다.

    “시작하죠.”

    드래곤 레어에서 얻은 자료로 이론을 완성했으며, 마나석을 활용한 검증도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전뿐.

    혹시 작업 중에 방해가 될까 봐 알몸으로 마법진 중심에 들어갔다.

    그리고 코어를 배 위에 올린 나는 바닥에 누워 호흡을 가다듬었다.

    스텔라의 시선이 자꾸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것 같지만, 신경 쓰지 않고 마나 샤워를 시작했다.

    전신에서 몰려 들어오는 마나.

    하지만 연습 삼아 대기 중의 마나를 순환시키고 있는 것이지,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꿈틀대는 코어에는 손을 대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마법진의 영향인지 상당한 마력이 몸 안으로 유입됐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연습이라 할 수 있겠지.

    “주군, 준비되었습니다.”

    “좋아요.”

    혼자 시도를 해도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다.

    그런데 백업을 위한 대마법사가 3명이나 있으니, 실패할 리가 없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불안감을 이성으로 쫓아내며, 드라켄의 코어에 정신을 집중했다.

    “큭.”

    배꼽을 통해 밀고 들어오는 엄청난 마력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뻔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버텨내며 계속해서 드라켄 코어에 깃든 붉은 마력을 몸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건 마력의 밀도가 대기 중의 마나와 차원이 다르다.

    굳이 따지면 풍선에 공기를 채운 것과 물을 채운 정도의 차이라 해야 할까?

    코어에서 흡수된 붉은 마력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선 타오르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으며, 녀석은 길들어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난폭하게 날뛰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새어 나오는 비명을 참느라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무협지에서 보던 것처럼 움직인다고 주화입마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소리를 지르는 순간 집중이 깨질 수밖에 없으니 참아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꾸역꾸역 드라켄 코어의 마나를 흡수했을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짓을 한 것일까’라는 금연 3일 차의 심정 같은 후회가 몰려올 때, 유입되던 마력이 끊겼다.

    코어의 마력이 모두 체내에 유입된 것이다.

    고통스럽긴 엄청 고통스러웠지만, 지금부터가 진정한 싸움이라 할 수 있다.

    드디어 대마법사들의 백업이 더해지고, 나는 뱀처럼 마나로드를 휘젓는 붉은 마력의 컨트롤을 시작했다.

    ***

    아르비스 후작령, 발테르 시의 영주성 별관에는 특별한 7명의 손님이 묵고 있었다.

    “내, 내가 드디어···.”

    처음에 반신반의했지만, 아르비스 후작이 준 약을 먹고 벽을 넘은 마법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둘이고,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나머지 넷이었다.

    “뭐, 뭐야.”

    하지만 그때였다.

    별관 밖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이 몸을 떠밀 듯 밀려왔고, 7명의 검사와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기겁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소름 끼칠 정도의 마력이군.”

    “뭔가요, 뭘 어떻게 해야 이정도의 마력이 발생하는 거죠?”

    그렇게 당황한 그들이 방을 나서려 할 때, 아르비스 후작가의 기사 한 명이 이들에게 다가왔다.

    “깨어들 나셨군요.”

    미스릴 갑옷과 허리에 찬 두 자루의 검은 누가 봐도 아르비스 후작가의 고위 기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이 거대한 마력은 대체···.”

    대마법사가 되고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남성은 뒷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기운에 말까지 더듬었다.

    그에 기사는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태연하게 답했다.

    “우리의 주군께서 다음 단계에 도전하고 계신 거니, 그리 경계할 필요 없습니다.”

    아르비스 후작가의 기사 블레이크의 대답에 그를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

    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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