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30화 (3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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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의 심문은 힘들다고 판단한 나는 그들의 마나 서클을 동결시켰고, 덤으로 노예들에게 거는 도주방지 마법에 행동제약 마법, 신체능력약화 저주까지 착실히 걸었다.

    “그러고 보니 엘프는 정령도 사용할 줄 알죠?”

    마지막으로 모든 종류의 소환을 봉인하는 저주를 더함으로써 루시엘라와 남자 엘프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한숨을 내쉬는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어쨌든 반갑네요. 저도 입장이 있는지라 어쩔 수 없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기사들은 내 행동에 손을 검에 가져가며 만약을 대비했지만, 루시엘라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너의 입장은 몰라도, 나의 입장은 확실히 이해했어.”

    “솔직히 아까 그 변태들에게 잡혀가는 것보단 나을 테니, 너무 분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어서 그녀가 장비한 물건들을 압수한 나는 잊고 있던 뭔가를 떠올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모르시겠지만, 저는 루시엘라님의 목숨을 또 구한 적이 있습니다. 방금 상황까지 더하면 은혜의 무게는 제가 더 클 것 같군요.”

    루시엘라는 그게 무슨 뜻이냐며 미간을 좁혔지만, 나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5년 전 그녀가 유적을 찾아왔을 때 살려서 보내줬다.

    만약 내 목숨을 구해준 그녀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유적에 침입하려 했다면 방어시스템을 이용해 가차 없이 죽였을 것이다.

    쉽게 말해 그녀는 내게 두 차례나 목숨을 빚졌다는 뜻이다.

    정작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만 돌아가도록 하죠.”

    엘프들에게 후드를 뒤집어씌운 우리는 그대로 영지로 돌아갔다.

    “어디에 묵게 할까요?”

    콘스탄틴의 물음에 잠깐 고민한 나는 발테르 영주성 지하에 있는 방을 떠올렸다.

    “지하층에 감금용 방이 있더군요. 그곳에서 생활을 시키도록 하죠. 둘의 심문은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도망치지 않을까요?”

    “지금 그들은 저주 때문에 신체 능력은 어린아이나 다름없습니다. 경비를 뚫고 도망치기도 힘들겠지만, 설사 그것을 해낸다 해도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면 전기 충격으로 기절하게 될 거에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내 말에 그게 무슨 인도적인 대우냐는 눈빛을 쏘아 보내던 루시엘라는 내가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리며 바라보자 귀가 축 처졌다.

    “창문이 없고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샤워시설과 화장실도 잘 갖춰진 방입니다. 생활에 불편함은 없을 거예요.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죠.”

    “나를 얼마나 가둬둘 셈이야.”

    “글쎄요. 경우에 따라 1년이 될 수도 있고, 5년이 될 수도 있고, 제가 죽고 나서야 나갈 수도 있겠죠.”

    “차라리 죽여.”

    “그래도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상대를 죽일 수는 없죠. 그리고 루시엘라님은 상당히 제 취향이거든요.”

    “결국, 너한테 잡히나 제국 녀석들에게 잡히나 그게 그거였네.”

    “똑같이 치부하면 곤란하죠. 적어도 저는 반항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성적 학대는 하지 않습니다.”

    “······.”

    “감금을 안 당하는 방법이 있는데, 알려 드릴까요?”

    그녀는 다시 귀를 쫑긋 새우며 눈을 깜빡였다.

    새삼 루시엘라가 예쁘긴 예쁘다고 생각한 나는 인심 쓰듯 말을 이었다.

    “제게 충성 맹세를 하세요. 마나의 언약과 피의 족쇄까지 더해서. 그럼 갇혀 지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내가 죽을 때까지 속박된 삶을 살아야겠지만.

    루시엘라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발테르 영주성 지하실로 끌려갔다.

    “책에서 엘프는 식물을 좋아한다던데, 방에 화분 좀 놓아 드릴게요.”

    ***

    “베일 후작과 타르니스 후작이 당한 것 같습니다.”

    쾅!

    칼바도스 제국 황실 대전.

    사방이 황금과 붉은 융단으로 도배가 된 넓은 공간에 붉은색의 어깨 망토를 걸친 청년이 광포한 눈빛으로 황좌를 내리쳤다.

    “감히 짐의 나라에 침범해 병사를 죽인 것도 모자라, 마스터와 대마법사까지 살해하다니!”

    청년의 이름은 트라칸 프리우스 폰 칼바도스.

    자신의 형제를 비롯해 제국의 최대공신 가문인 대공가까지 정리하여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세력을 철저히 배척한 인물이었다.

    덕분에 젊은 황제는 사람들에게 피의 황제라 불리었는데, 악명은 떨칠지언정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황권을 확립하면서 선대의 어느 황제보다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되었다.

    황제의 격분에 위의 사실을 보고한 정보부 대신은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바짝 숙였다.

    “미드랜드에 터전을 꾸리고 있는 엘프마을을 모조리 태워야 합니다. 감히 폐하께 검을 들이민 어리석은 엘프들을 벌하시지요!”

    황제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 내뱉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

    그에 얼굴에서 분노를 지운 황제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무, 물론입니다. 그런 괘씸한 녀석들은···.”

    “이건 누가 봐도 엘븐킹덤의 소행이 아닌가? 엘프 마을에서 뭐하러 기간트를 차지하기 위해 이 소란을 피우겠나.”

    눈을 껌뻑인 정보부 대신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는지, 얼른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엘븐킹덤에 보복을···.”

    “엘븐킹덤에 보복? 하이랜드 전체와 전쟁을 하자는 소리인가?”

    “예?”

    “애석하지만 본국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하이랜드에 시비를 거는 것은 미친 짓이지. 그런 어리석은 의견을 제시하다니, 자네 혹시 반동주의자인가? 제국의 전복을 바란다든가.”

    방금까지 화를 내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시큰둥한 표정으로 무서운 말을 해오는 황제의 모습에 대신은 기겁하며 바닥에 ‘쿵!’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찧었다.

    “믿어 주십시오! 절대로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겁에 질린 그의 모습에 황제는 조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농담일세, 농담.”

    “······.”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드는 대신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황제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쳤다.

    얼른 피를 닦는 대신에게 황제가 말했다.

    “마음 같아선 하이랜드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지만···. 녀석들은 건들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상대야. 더구나 우린 기간트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만큼, 이 일은 함구할 수밖에 없겠어.”

    괴팍한 행동과 달리 지극히 정상적인 결론을 내리는 황제.

    정보부 대신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황제의 결정이 곧 칼바도스의 방침.

    이견 따윈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스터와 대마법사를 잃은 것은 굉장히 뼈아픈 상황이군.”

    *

    약 4만 년 전.

    미드랜드를 지배한 마도 제국 ‘브릴란테’는 하이엘프와 하이드워프, 거인족을 포함해 선천적으로 높은 능력치를 갖고 있는 이 종족을 중심으로 세워진 과학 국가였다.

    하지만 지나친 기술의 발달이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 되어 유일신의 분노를 사게 되고, 결국 마도 제국은 종말의 길을 걷게 된다.

    유일신 가이아로부터 척살 명령을 받은 드래곤들과 벌인 유례없는 대전쟁.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갈라지는 최악의 화력전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드래곤과 마도제국은 빠르게 서로의 전력을 갉아먹었고, 단 1년 만에 대륙의 3할이 바닷속에 가라앉으며 전쟁은 끝이 났다.

    전쟁의 승자는 드래곤.

    그로 인해 마도제국의 찬란했던 문명은 철저히 파괴되어 땅속에 파묻혔고, 얼마 남지 않은 마도제국의 후손들은 문명을 상실한 채 하이랜드로 추방되었다.

    하지만 전쟁의 승자는 드래곤이었으나 그들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터라 무언가를 관리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드래곤들은 조용히 리모트 랜드로 물러났고 주인 없는 땅이 된 미드랜드에 남겨진 것은 몬스터와 마도 제국에서 노예취급을 받던 인간뿐이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느리긴 하지만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는 종족.

    삶이 짧기 때문인지 그들은 굉장히 열심히 살았고, 보잘것없는 문명을 발전시켜 새로운 미드랜드의 패자가 되었다.

    마도 제국의 후예인 하이랜드의 이종족들에게 인간이란 미개한 종족일 뿐이다.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조금씩 발전을 거듭한 인간은 어느새 하이랜드에 비견되는 기술력을 갖게 되었고, 이는 곧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기간트를 넘겨 줄 순 없습니다. 대대적으로 침투 인원을 파견하여, 기간트를 되찾아와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인간들은 엘프를 숲의 종족이라 여기며 고상하다 상상하지만, 그들도 인격체다 보니, 각자의 생각이나 성격이 모두 달랐다.

    엘븐킹덤의 왕궁회의실에 참석한 장로 중 국방청의 청장이 여왕에게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

    “아닙니다. 여기선 소란을 피우기보다, 인원을 파견하여 아직 칼바도스를 탈출하지 못한 인원을 구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강경론을 펼치는 국방청 청장과 달리, 마법청의 청장은 아직 살아남았을지 모르는 엘프들을 우선적으로 구원해야 한다며 여왕을 설득했다.

    그에 여왕은 도도하게 두 사람을 내려보며 말했다.

    “당연히 구원활동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국방청장의 의견은 받아들일 수 없군.”

    “어째서입니까?”

    국방청장이 불만 어린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여왕은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답을 내려줬다.

    “자칫 인간과 엘프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린 인간 공통의 적이 될 테니, 자칫 미드랜드와 하이랜드간의 대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굳이 나뉘어 있는 인간의 세력을 하나로 뭉쳐질 명분을 제공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인간 제국이 기간트의 기술을 손에 넣으면 크나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미드랜드보다 압도적인 힘과 기술을 키우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하나라도 더 많은 유적과 유물을 손에 넣어야 한다.”

    “여, 여왕님!”

    “그리 흥분할 필요 없다. 어차피 인간은 힘을 얻으면 자기들끼리 싸우게 되어 있지. 결론적으로 미드랜드와 하이랜드의 힘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순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 그때 가서 인간의 국가를 제재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여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기간트 관련 기술을 독점하고 싶은 인간의 제국은 소문이 퍼져 나가는 걸 쉬쉬하며, 이 일을 묻어 뒀습니다. 하지만 만약 기간트를 완전히 탈취당하게 된다면, 벌어질 일은 뻔합니다.”

    마법청 청장이 여왕의 의견을 거들고 다른 장로들도 고개를 끄덕이자, 국방청 청장은 작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너무 인간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군요.”

    “과소평가는 안 하지만,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지.”

    급진파라 할 수 있는 국방청 청장은 결국 자신의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

    11. 벽

    키에에에엑!

    쿵!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내뱉으며 쓰러지는 육중한 괴물.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이 인원이 히드라를 상대로 고전할 줄은 몰랐네요.”

    내 말에 히드라의 피를 뒤집어쓴 제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보통의 히드라가 아니군요. 괜히 이름을 갖고 있는 녀석이 아니었습니다.”

    마스터 5명과 나를 포함한 대마법사가 4명.

    마음만 먹으면 어중간한 왕국의 왕성은 가볍게 날려 버릴 수 있는 전력이지만, 9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 드라켄은 일반 히드라의 능력치를 아득히 초월한 녀석이었다.

    전생에 마드세인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 피해를 끼친 녀석은 준 드래곤급으로 분류가 되었는데, 괜히 그런 칭호를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숫자가 9명이니, 각자 머리 하나씩만 상대하면 되겠다는 가벼운 생각은 속성을 달리하는 머리의 연계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불, 물, 바람, 전기, 독, 회복, 저주, 육탄공격, 육탄방어.

    무슨 잘 짜인 초인 파티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기간트인 그랜달이 참전하고, 테스트용으로 아공간에 넣어놨던 마도 폭탄까지 사용하고 나서야 녀석을 처치할 수 있었다.

    “모두 수고 많았어요. 아무도 죽지 않은 게 기적이네요.”

    “하하···.”

    나는 지친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격려하곤 시체가 된 거대한 히드라에게 다가갔다.

    짙은 녹색의 비늘은 하나하나가 솥뚜껑 같았으며, 쓰러진 녀석은 족히 5층 건물에 비견되는 높이를 갖고 있었다.

    드라켄이 고개를 치켜세웠을 땐 이것보다 네 배는 커 보였으니, 걸어 다니는 빌딩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녀석이면, 드래곤 하트는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정수가 깃들어 있겠죠?”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제논과 콘스탄틴이 녀석의 몸통에 검을 찔러 넣었다.

    히드라의 비늘과 가죽은 미스릴 정도는 아니어도 강철보다 높은 강도를 지닌 것 같다.

    두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가슴에 큰 구멍을 냈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고깃덩어리에 다가간 나는 눈을 감고 마나가 밀집된 코어를 탐색했다.

    “찾았다.”

    코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대한 마나 덩어리가 안쪽 깊은 곳에서 느껴졌으니.

    내 손짓에 히드라의 내장과 살을 뚫고 나온 무언가가 눈앞에 멈춰섰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붉은 기운이 꿈틀거리는 주먹만한 보석.

    이 거대한 녀석의 신체를 유지하고 높은 능력을 부여한 막대한 에너지가 담긴 코어였다.

    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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