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28화 (28/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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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루시엘라를 포함한 엘프들이 숨어 있는 숲은 칼바도스 제국 최남단에 위치한 곳이었다.

    숲속에 은신하고 있는 엘프의 수만 총 오십.

    그중엔 마스터급의 초인이 넷이나 속해 있었으며, 나머지 엘프들은 루시엘라처럼 6클래스의 마법사이거나 상급의 정령사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스윽.

    무리를 이끄는 마스터의 수신호에 엘프들은 하나같이 무광의 검은색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목표는 마도차량을 보호하며 이동 중인 칼바도스 제국군.

    그중에서도 마법사와 기사가 첫 번째 타겟이다.

    루시엘라는 시위를 당겨 적을 조준하며 공격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척.

    공격 수신호에 루시엘라를 비롯한 엘프들의 화살이 일제히 시위를 떠났다.

    화살이 만들어내는 파동에 그녀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검은 화살은 암살자처럼 소리 없이 인간들에게 날아들었다.

    활 자체에 가속과 위력증가, 소음제거 기능이 달려있어 단순한 화살을 날렸을 뿐인데도 그녀가 노린 기사의 갑옷이 종이처럼 꿰뚫렸다.

    투투툭!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듯, 직선 상의 모든 것을 꿰뚫으며 땅속으로 사라진 화살.

    예기치 못한 기습에 당황한 걸까?

    놀란 표정의 병사들은 입을 벌릴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엘프들의 화살은 같은 표적에 중복되어 박히는 일 없이, 단 한 번의 기습 공격으로 마법사 20명과 기사 30명을 제거해냈다.

    “적, 적습!”

    “적습이다!”

    그리고 이제는 기습의 의미가 없어졌기에 자유 사격 지시가 내려졌다.

    엘프들은 일제히 특수화살에 마법을 담았다.

    루시엘라의 활 앞에 커다란 마법진이 나타나고, 시위를 떠난 화살은 증폭된 레이저 캐논이 되어 범위 내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콰콰콰쾅!

    으아아악!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고위 마법과 정령 마법에 마도 트럭을 호위하던 군대가 속절없이 분쇄된다.

    처참한 비명과 폭발음의 하모니가 귀를 자극했지만, 엘프들은 표정 변화 없이 철저하게 인간들을 학살했다.

    쿵!

    폭격이나 다름없는 마법 세례에 결국 마도차량이 파손되어 주저앉았고, 그 위에 실린 거대한 짐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인간의 갑옷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철거인.

    “기간트가 저렇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니.”

    문헌에서만 봤던 마도 병기의 등장에 루시엘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게 인간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아무리 온전한 형태의 기간트를 얻어도 처음부터 인간들이 마도시대 수준의 기간트를 만들어내진 못하겠지만, 기간트 자체가 마도공학의 산물인 만큼 문명의 기술력은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그동안 손에 넣은 유적으로 하이랜드의 기술력은 매일매일 진보하고 있는 상태지만, 인간의 마도 기술력 또한 빠르게 발전을 거듭한다면 모든 것은 원점이 될 것이다.

    그건 하이랜드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중지!”

    공격이 멈췄을 땐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선 인간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습부대 리더의 명령으로 엘프들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지상으로 내려왔다.

    “철저히 확인 사살하도록.”

    “네.”

    그의 지시에 마스터급의 초인 네 명을 제외한 46명의 엘프들이 2천에 달하던 군대의 생존자를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엉뚱하게도 이 순간 루시엘라는 하프엘프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분명 그의 반쪽은 인간일 테니, 어떠한 심리적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하프엘프는 다른 엘프들과 다름없이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걸까?

    루시엘라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생존한 군인을 찾아 죽였다.

    “큭!”

    그런데 그때였다.

    “뭐, 뭐야?”

    전신을 짓누르는 압박감.

    루시엘라는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고, 곧 자신들이 있는 구역 전체에 중력 증가마법이 걸렸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몸무게를 줄이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엘프들이 당황한 그 찰나의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겐 활동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컥!”

    그 잠깐의 머뭇거림이 큰 혼란을 만든다.

    엘프 기습부대의 대마법사가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뒤이어 대정령사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루시엘라를 비롯한 엘프들은 모두 헛바람을 삼켰다.

    “엘프인가? 살면서 엘프의 기습을 받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언제부터 그곳에 있던 걸까, 검을 쥔 중년인이 신기하단 표정으로 잘린 대정령사의 머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그에 당황한 엘프들의 리더가 황급히 검을 뽑아 들고, 또 다른 대정령사가 물의 최상급 정령 엘레스트라를 불러냈다.

    “그런데 엘프가 어찌 본국을 공격하는 거지? 혹시 저 마도 병기 때문인가.”

    중년의 남성은 가벼운 가죽 갑옷 차림에 기사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롱소드보다 조금 짧은 검을 들고 있다.

    그럼에도 전신을 옥죄는 듯한 압박감에 두 엘프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랜드 마스터? 100년도 못 사는 인간 주제에 어찌···.”

    같은 소드마스터라 생각할 수 없는 압박감에 엘프 리더는 그를 그랜드 마스터라 생각했다.

    “아직 그랜드 마스터는 아니네. 벽의 꼭대기가 보이긴 하지만 좀처럼 넘을 수가 없더군. 굳이 따지면 최상급 마스터라 해야 할까?”

    그랜드 마스터는 9클래스 마법사와 비견되는 존재.

    쉽게 말해서 그는 9클래스를 앞두고 있는 8클래스 마법사와 동급의 존재란 소리였다.

    능청스레 웃는 모습에서 강자의 자신감이 보인다.

    루시엘라를 비롯한 엘프들은 방심이 있었다곤 하지만, 순식간에 대마법사와 대정령사를 해치운 인간의 등장에 당황하며 급히 활을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녀들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플라이!”

    인크리스 그라비티에 이은 리버스 그라비티 공격이었다.

    이번엔 엘프들이 플라이 마법으로 리버스 그라비티를 이겨내자 어디선가 강력한 바람이 불어와 엘프들을 멀리 날려 버렸다.

    이건 어딘가에 숨어 있는 대마법사가 장난을 치는 것이 분명했다.

    쾅! 쾅!

    루시엘라를 포함한 40여명의 엘프들이 농락당하고 있는 사이, 인간 검사와 엘프 초인들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새파란 오러 블레이드와 검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충돌하고, 엘레스트라가 날린 고압의 물줄기를 검붉은 오러아머가 가볍게 튕겨냈다.

    분명 2:1의 싸움이지만, 순식간에 형세는 중년의 인간 쪽으로 기울었고 엘프 초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저히 상대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엘프 리더는 이를 악물며 거리를 벌렸다.

    “작전 실패! 즉시 이탈하라!”

    즉시 이탈하라고 해서 그 둘을 두고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

    루시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엘프들이 고집스럽게 활을 겨눴지만, 그땐 이미 리더가 중년인에 의해 가슴이 꿰뚫리고 난 다음이었다.

    “괴물 새끼!”

    같은 마스터라 보기 힘든 압도적인 능력의 차이.

    표정을 일그러뜨린 루시엘라는 대정령사를 보호하기 위해 화살을 날렸다.

    바람을 뚫고 날아가는 새하얀 빛이 별똥별처럼 떨어졌으나, 허공에 나타난 방어막에 의해 막혀버렸다.

    뒤이어 다른 엘프들이 화살 날리자, 결국 방어막이 깨지긴 했지만, 그 어떤 공격도 중년인에게 닿지 않았다.

    “날파리가 많군.”

    중년인의 불평 어린 말과 함께 은색의 빛줄기가 맹렬하게 날아올라 루시엘라와 친분이 있던 엘프를 관통해 버렸다.

    “비올라!”

    “컥.”

    비올라란 이름의 엘프를 꿰뚫은 빛줄기의 정체는 그녀들의 리더가 사용하던 엘븐소드.

    루시엘라의 비통한 외침과 함께 비올라가 실 끊어진 연처럼 속절없이 추락했다.

    하지만 비극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플라잉 소드?”

    유연하게 하늘을 나는 엘븐소드는 어떤 방어라도 손쉽게 꿰뚫으며 엘프들을 사살했다.

    “아직 미완성인지라 오러 소모가 심한 기술이네만 어떤가?”

    중년인의 물음에 그새 팔 하나를 잃은 대정령사가 허무함을 넘어 황당함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었다.

    “지옥에 가서도 샤를로트 공작에게 죽었다고 하게, 그럼 그리 창피하지 않을 거야.”

    “웃기는···.”

    엘프 기습부대의 마지막 간부라 할 수 있는 대정령사까지 목이 날아갔다.

    결국 살아남은 엘프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방으로 도망쳐야 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적의 대마법사가 공간이동 방해 저주를 건 바람에 텔레포트 스크롤과 블링크는 사용할 수도 없었다.

    루시엘라는 계속해서 추락하는 다른 엘프들을 보면서도 도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력을 다해 도망치며 욕설을 내뱉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마도시대 유물인 기간트를 탈취하려던 엘프들의 계획은 실패했고, 추격대에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

    “네? 영지 조사라뇨?”

    “면목 없군, 일단 명분이 부족하단 이유로 반대하고 있지만, 카르디아 공작과 제노아드 공작이 같은 목소리로 국왕폐하를 설득하고 있어서 말이야. 잘하면 아르비스 후작령의 영지 조사가 이뤄질 수도 있어.”

    “영지 조사가 정확하게 뭘 하는 건데요?”

    “재산조사, 세무조사, 군사력조사 등 자네와 자네 휘하의 가신들까지 모조리 조사를 받게 되네.”

    아인트 공작의 설명을 들은 나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카르디아 공작이야 원래 그렇다 쳐도, 제노아드 공작이 이러는 이유는 아마도 제논과 콘스탄틴 때문에 내가 가진 힘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러게 좀 자제하지 그랬나? 굳이 콘스탄틴 경까지 데려가서 경계심을 높이고 오다니.”

    콘스탄틴은 아인트 공작의 말이 거슬렸는지 다시금 살벌한 눈빛을 쏘아 보냈으나, 요 며칠 사이 콘스탄틴에게 익숙해진 그는 그냥 못 본 척했다.

    “제노아드 공작님은 조금 더 분별력 있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직설적으로 치고 들어 올 줄은 몰랐네요.”

    내가 경솔했다.

    카르디아 공작의 수작에 너무 어린애같이 대응해 버린 것 같다.

    “일단 국왕폐하께서도 나와 같은 생각이시네, 자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하시지. 폐하께선 자네가 헬리온을 간접 통치하는 것까지 눈감아 주고 계시네.”

    “그거 다행이군요.”

    “하지만, 오래 버티진 못하실 거야. 그 두 사람은 오랫동안 나라를 지탱해온 상징적인 존재들이니.”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합쳐야 할 나라가 자꾸 나를 귀찮게 한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내 의중을 물어오는 아인트 공작을 보며 나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투로 답했다.

    “당연히 거절할 겁니다. 그런데도 계속 찔러온다면 본보기로 카르디아 공작을 처리하던가 두 사람 모두 처리해야죠.”

    “뭐?”

    당황한 아인트 공작이 아연실색했으나, 내겐 지극히 당연한 대응이었다.

    두 사람이 없어진다면 이 나라의 권력은 내가 독점하게 되니, 그게 더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그 둘을 대신 할 사람은 제 쪽에 많습니다. 그들이 제게 맹세라도 하지 않는 이상, 지켜볼 필요가 없죠. 계속 방해하는데.”

    “하, 하지만 제노아드 공작은 진정으로 이 나라를 위하는 충신이야.”

    “제가 보기엔, 제노아드 공작님도 그냥 정치인 같던데요? 정말 나라를 위한다면 저를 건들면 안 되죠. 칼바도스는 여력을 남겨두고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닙니다.”

    단호한 내 반응에 아인트 공작은 앓는 소리를 냈다.

    “제노아드 공작은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 보겠네. 일단은 상황을 지켜봐 주면 안 되겠나?”

    아인트 공작은 제노아드 공작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우리의 관계와 제 힘에 대해 밝히지 않는 선에서 부탁드릴게요.”

    “알겠네.”

    그러고 보면 그도 카르디아 공작은 아예 포기한 모양이다.그를 설득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을 보니.

    “아, 어제 헬리온 요새에서 연락이 왔는데, 칼바도스 국경 근처에서 전투가 일어난 것 같다고 하더군요. 혹시 아는 거 없어요?”

    아인트 공작은 마드세인의 정보력을 꽉 쥐고 있는 인물이다.

    현재 마드세인 왕국의 주적이 칼바도스 제국인 만큼, 어느 정도 칼바도스의 상황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에 물었다.

    내 물음에 아인트 공작은 안 그래도 말하려 했다며, 칼바도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기사와 마법사가 대거 포함된 칼바도스의 수송부대가 로투스 영지에서부터 수도로 무언가를 은밀히 운반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받았지.”

    나는 은밀히 운반하는 물건이란 것에 관심을 보였으나, 그 말만 듣고 그게 무엇인지 판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수송부대가 무언가의 습격을 받아 전멸했다는군. 정확한 내용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 부대가 전멸했다면서 그 전멸 소식을 알려온 사람이 누군지 밝혀지지도 않았고, 철저하게 병사들을 학살했으면서 새로운 수송부대가 투입된 거 보면 결국 물건은 훔쳐가지 못한 것 같아.”

    “뭐지?”

    확실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지금의 자료만으론 상황을 유추하긴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 마스터 5명이 포함된 수색 인력이 국경선 인근에 투입되었는데, 수색 형태를 보면 습격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모양이야. 기사와 마법사가 대거 포진된 2천의 병사들을 학살한 능력이 있으면서 굳이 흩어져 도주한 이유가 뭔지···.”

    “그 말은 칼바도스의 수송부대를 전멸시킨 인물들이 아직 국경 부근에 남아 있다는 뜻인가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네만.”

    대체 의문의 세력은 무엇을 노리고 칼바도스 제국의 수송부대를 공격한 걸까?

    “한 번 가볼까?”

    내 혼잣말에 아인트 공작은 괜한 짓 말라며 말렸다.

    *

    기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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